LG경제연구원 '채권시장에도 외국인 영향력 시작됐다'
그동안 채권시장에서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낮아 외국인 채권투자가 채권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국인 채권투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외국인 순매수가 증가할 때 채권 가격이 상승하는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 주식시장에서의 논의와 비슷하게,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자의 매매가 금리 등의 가격변수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채권투자의 특징적인 현상들을 살펴보고, 현재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차익거래 기회가 외국인 채권투자 증가의 배경
채권시장이 개방된 1998년 이후 극히 미미했던 외국인의 채권 투자는 2007년 이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2006년 말 4조 6천억 원으로 전체 상장채권의 0.59%에 그쳤던 외국인 채권보유 규모는 2007년 말 38조 4천억 원으로 증가하여 전체 채권시장의 4.6%를 차지하였다. 급격히 증가하던 외국인 채권투자는 베어스턴스 사태가 발생했던 2008년 3월 이후 글로벌 신용경색 및 그로 인한 위험기피 경향 확대로 감소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2009년 4월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08년 3월의 55조 4천억 원에서 2009년 4월에 35조 3천억 원으로 감소했던 외국인 채권 보유규모는 올해 8월 23일 현재 75조 3천억원으로 증가하였으며 보유비중도 전체 상장채권의 6%를 넘어서고 있다.
이처럼 2007년을 기점으로 외국인 채권투자가 크게 증가한 것은 국내 채권시장에 존재하는 차익거래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있어 차익거래 유인은 국내 투자의 상대적 이익(내외금리차)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비용(스왑레이트)을 차감하고 남은 부분을 의미한다.
차익거래 유인이 크게 커진 것은 먼저 선물환 시장의 불균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7년 들어 세계 조선업의 호황으로 인한 국내 기업의 해외수주 증가, 글로벌 증시 호조와 해외펀드 활성화 조치에 따른 국내 투자자의 해외증권투자 증가 등을 배경으로 환위험 헤지를 위한 선물환 매도 수요가 크게 증가하였다. 미래에 유입될 수출대금 또는 해외투자 회수자금을 선물환을 이용하여 미리 원화로 고정시키고자 하는 수요가 갑자기 커진 것이다. 구조적인 선물환 매도 우위 상황은 선물환율의 하락을 야기하여 외국인의 국내 투자를 위한 환위험 헤지 비용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미국 정책금리 인하로 내외금리차까지 확대된 결과 국내 채권시장의 차익거래 유인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효율적인 시장이라면 차익거래 유인은 자본 이동을 통해 이내 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선물환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급격한 내외금리차 확대가 맞물려 큰 폭의 차익거래 유인이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외국인 채권투자가 무위험 차익거래 중심이었기 때문에 투자 대상은 안전자산인 국채 및 통안채에 집중되었다. 그 중에서도 통안채가 차익거래 대상으로 더욱 선호되었다. 국고채는 일정한 시기마다 이자가 지급되는 이표채여서 이자 수익을 재투자해야만 차익거래의 수익을 고정시킬 수 있는 반면, 할인채인 통안채는 이자 수익의 재투자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장기투자 목적의 외국인 채권투자 증가
외국인 채권투자는 2010년에 접어들면서 과거와는 다소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외국인 보유채권의 만기가 장기화되는 조짐이다. 경기회복에 따른 원화강세 전망, 우리나라 국채가 Citi사의 WGBI(World Government Bond Index)에 편입될 것이라는 기대 등에 따라 단기 차익거래가 아닌 중장기적 투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차익거래 유인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외국인 순매수가 증가한 것과 통안채에 비해 국채의 보유규모가 증가한 것은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다.
장기투자가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의 채권 보유비중에 비해 거래비중이 안정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과거 2006 ~ 2008년에는 외국인들의 채권 보유비중에 비해 거래비중이 높은 수준이었다. 외국인의 채권투자가 상대적으로 단기 채권에 집중되어 보유규모에 비해 거래가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금융위기 이후 2009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외국인의 채권 거래비중은 보유비중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채권 가격과 외국인 투자의 관계는 강하지 않아
외국인 채권투자가 증가하면서 그 영향력에 대한 논의도 많아지고 있다. 과거 외국인 비중이 낮았던 시기와는 달리 최근 들어서는 투자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할뿐더러, 투자대상이 주로 국채와 통안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투자가 채권가격과 금리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즉 외국인 순매수가 채권가격 상승(금리 하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채권가격 변화가 외국인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존재할 수도 있다. 채권가격이 하락하면 투자 매력도가 높아져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를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2006년 이후의 자료를 사용하여 외국인의 채권 순매수 규모와 가격변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KRX 채권지수를 채권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가격변수로 사용하였고, 국고채 및 통안채 금리를 통해 각 채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채권지수는 전기 대비 변화율(%)을, 금리는 전기 대비 변화폭(%p)을 변수로 사용하였다.
2006. 1~2010. 8월 기간 동안 월별 자료를 통해 상관관계를 살펴본 결과, 전반적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금리가 상승)하는 기간에 외국인 순매수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관계가 그리 강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지수 변화율과 외국인 전체 순매수의 상관계수는 -0.08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주로 보유하고 있는 국고채와 통안채의 경우 관계가 다소 강해졌으나 역시 상관계수의 절대값은 크지 않은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일별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와 같이 채권가격과 외국인 채권투자의 관계가 강하지 않은 이유로 먼저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 비중이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근 증가했다고는 하나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 및 거래 비중은 2010년 6월말 현재 각각 6.3%, 5.4%로,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보유, 거래비중이 약 31%, 20% 인 것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동안의 주가변화율과 외국인 주식 순매수의 상관계수는 0.54로 채권시장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무위험 차익거래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외국인 순매수와 채권가격 변화율 간의 관계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차익거래의 경우 거래 시점에서 투자의 수익이 확정되어 투자자가 채권가격의 움직임에 덜 민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 수익이 해외 수익률 및 환율 변동 등 여타 요인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도 상대적으로 국내 채권시장 가격변수와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요인일 수 있다.
최근 외국인 투자가 채권가격에 미치는 영향 증대
2010년 이후 들어 외국인 투자와 가격변수 간의 상관관계가 바뀌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전체 기간 동안 채권가격의 변화와 외국인 순매수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2010년 7, 8월 동안 채권지수 변화율과 외국인 총 순매수 사이의 상관계수는 0.18로 나타났다.
상관계수의 값이 양(+)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채권가격 변화와 외국인 순매수 사이의 선후관계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전체 기간 동안에는 채권가격이 하락할 경우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는 방향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 투자 증가가 채권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의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국채 가격과 외국인 국채 순매수는 2009년 이후 최근으로 올수록 양(+)의 상관관계가 더욱 강화되어 2010년 7~8월에는 상관계수가 0.4까지 상승했다. 이는 외국인 채권 순매수가 증가하는 기간에 국채 가격이 상승(국채금리 하락)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후 국채 금리가 하락한 것은 외국인의 국채 투자 증가가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한편 통안채의 경우 위의 결과와는 반대 부호의 상관계수가 도출되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주로 통안채가 무위험 차익거래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차를 고려한 교차상관관계 및 그랜져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외국인 투자가 채권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시차상관계수를 살펴본 결과, 2010년 이후 전체 채권, 국고채, 통안채 모두 외국인 순매수와 채권가격 변화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를 나타냈으며, 외국인 순매수가 1~2일의 시차를 두고 채권가격 변화에 선행할 때 상관계수가 가장 큰 값을 나타냈다.
그랜져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된다. 2006~2009년 기간동안에는 채권가격이 외국인 순매수에 선행하는 동시에, 외국인 순매수가 채권가격에 선행하기도 하는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채권가격이 외국인 순매수에 선행하는 관계는 유의성이 크게 낮아진 반면, 외국인 순매수가 채권가격에 선행하는 관계는 유의성이 높아진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가 채권시장의 가격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타낸다.
향후 외국인 영향력 확대에 대한 모니터링 필요
이상의 결과를 통해서 보건대, 지난 몇 년 간 주로 국내 채권시장 가격변수의 영향을 받던 외국인 채권투자는 2010년 들어 국내 채권시장의 가격변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외국인의 채권 보유 비중이 크지 않으며 최근 보유채권 만기의 장기화로 거래비중도 안정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외국인의 채권시장 영향력이 우려를 일으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향후 외국인 채권투자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외국인 보유 비중이 추가로 크게 높아지고 외국인의 채권시장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WGBI 편입 기대 및 환율 하락 기대 등이 여전히 남아있고, 선진국과의 경기회복 속도 차이로 내외금리차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외국인 매수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외은지점에 대한 선물환 규제의 영향으로 외은지점을 대신하여 외은본점 등에 의한 채권투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외국인 투자규모가 더욱 커지면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확대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채권매매는 해외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향후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의 유출입이 빈번해지면 통화정책 당국의 금리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책적 차원의 면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 및 만기의 채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채권시장의 안정과 발전을 동시에 꾀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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