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IT 미국의 화려한 비상과 그 의미'
미국경제는 IT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IT산업은 IT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고 더 강한 위세로 일어서고
있다. 구글, 애플, MS, IBM, 인텔, 퀄컴, 오라클, 시스코, 아마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업들이 모두 미국 기업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그 위상을 더 공고히 하며 영향력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미국의 IT는 왜 이렇게 강한가? 그 위세는 꺾이지 않을
것인가?
미국 IT산업은 메인프레임, PC, 클라우드 컴퓨팅 등 IT기반
기술의 변천과 혁신을 주도하면서 경쟁 게임의 룰을 결정해 왔다. 미국이 새롭게 주도하기 시작한 클라우드 컴퓨팅은 브로드밴드 네트워크 환경과 가상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클라우드 컴퓨팅을 매개로 한 각종 산업의 IT화 과정에서 미국 IT기업은 스마트 인프라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또한 미국 IT는 애플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첨단 서비스의 강점을 통해 고객에게 적합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차별화 포인트를 찾는 데 능숙하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인텔, 시스코와 같이 독점적 기술기반을 부각시키는 글로벌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이노베이션 스필오버 시스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도전적인 문화,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개발환경 등도 미국 IT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어느나라도 모방하기 어려운 토양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IT 강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IT 주도현상이 IT 하드웨어 강국인 우리나라에 던져주는 의미는 어느나라 못지 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 목 차
>
Ⅰ.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 IT산업
Ⅱ. 미국 IT산업 왜 강한가
Ⅲ. 미국이 주도하는 IT시대의
의미
Ⅰ.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
IT산업
미국이 새로운 IT혁명의 흐름을 주도하며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등장 이후 제2의 IT혁명(The Second Wave)이라고 불리우는 스마트폰,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등의 부문에서 미국 기업들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IT기업들의 실적 호전은 단순한
호황세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IBM, 구글,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 아마존, 야후, AMD, 시스코 등 미국의 주요 IT기업 9개사의
1/4분기 실적치를 살펴보면, 합계 순이익이 전년동월 대비 68.2% 증가한 170.9억 달러에 달해,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의 실적치를 크게
능가하였다. 특히 PC 수요의 회복과 함께 MPU(중앙연산처리장치)의 매출이 급증한 인텔의 경우 순이익이 전년동월비로 3.9배나 늘어나는
급반등세를 보였으며, iPhone으로 스마트폰 붐을 일으키고 있는 애플의 경우 90%가 넘는 수익 증가세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로서 경기 침체의 늪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미국이 이처럼 IT산업을 신성장동력(New Growth
Engine) 삼아 빠른 회복세를 보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동안 두드러져왔던 제조업 공동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오히려 전통적
제조업 강국인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월등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러한 미국 IT산업이 주도권을 확대해
가고 있는 현상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미국 IT산업의 도약
과정
현재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 IT산업의 급성장을 분석하기 위해서 미국 IT산업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위치와 진화방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IT경기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급등락을 거듭하여 현재까지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IT 관련 주가의 경우 미국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흐름보다 더욱 큰 등락폭을 나타내며 격변의 과정을 거쳐왔음을 알 수
있다(<그림 1> 참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첫 호황기(1995~2000)는 인터넷의 확산에 힘입은 닷컴 기업
등 여러 소규모 벤처 기업들의 부흥,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구소련과의 냉전이
종식되는 동시에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 완화, 성공적인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미국 기업들의 자금 확보 여력이 증대되면서 IT관련 기업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특히 개인용 PC 등 하드웨어 부문의 폭발적인 수요 증대를 가져와, 미국이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각종
첨단 장비들을 수출하고 아시아 등 각국으로부터 완제품을 수입하는 패턴을 정착시켰다.
과잉투자에 기인한 IT버블의 붕괴는 짧지만
혹독한 침체기(2000~2003)를 가져오기도 했다. PC 수요가 포화되면서 신규수요 급감으로 인한 공급과잉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IT 산업 호황을 이끌어 온 PC를 대체할 아이템이 부재한 가운데, 투자의 효율성 문제 및 기술 표준을 둘러싼 기업간의 이해관계 대립 등 차세대
디지털 제품 시장의 형성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들이 나타나면서 포스트 PC(Post-PC)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는 혼돈의 시기였다. 여러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IT산업은 개인용 PC에서 모바일 컴퓨팅으로, 유선인터넷 중심에서 무선통신시장 중심으로 구조적인 판도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의 IT산업은 IT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회복기(2003~2007)를 맞아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혁명 초기에 아이디어 및 단순 제조 등으로 무장한 B2C 형태의 벤처기업들이 IT산업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대기업들이 B2B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를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닷컴 기업의 몰락 속에서도 GE, IBM, 모토로라, 델 등 브랜드
확립과 e-business로의 변신에 성공한 소수의 우량 기업들은 큰 폭의 호조세를 보였다.
이 시기에 IT산업 전반에서
일어난 기술과 경영의 패러다임 변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IT를 활용한 상품화 기술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기업들 간 기술력
격차가 줄어들면서 고객 니즈의 개인화 및 다양화, 제품 수명주기의 단축 등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는
기존처럼 IT 제품 생산이나 투자 확대보다는 IT서비스 및 IT활용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IT적응 역량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IT의 적용 범위가 확장되면서 IT를 완전히 체화시켜 다른 기업들이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혁신 경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 것이다. 즉, Co-Invention(기업의 인력과 조직이 IT 환경 안에서 교류하며 발전)이나
Open Innovation(기업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R&D 활동을 확장해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 등의 개념이 등장,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셋째, 시너지 효과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R&D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산학 연계 활동이나 첨단산업연구단지(Cluster) 조성이 더욱 강조되며 그 효과가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실리콘 밸리나 보스턴 지역뿐만 아니라 텍사스 오스틴,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등에서도 학계와 산업계 간, 교육과 직장의 개념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시너지효과가 크게 창출되었다.
서프프라임 위기라는 IT산업 외부의 일시적 충격으로 잠시 하락기(2007~2009)를
경험한 미국의 IT 경기는 애플·구글 등 소프트웨어 IT기업의 급성장으로 본격적인 전성기(2009~) 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미국 IT산업의 최근 회복 동향을 살펴보면, 산업생산지수의 경우 2009년을 저점으로 컴퓨터 및 주변기기, 통신 장비, 반도체를
통틀어 뚜렷하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판단된다(<그림 2> 참조).
IT경기의 회복과 함께 IT 시장구도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위주의 IT서비스 시장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IBM, HP 등 기존의 세계적인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들이 시장 포화로 인해 성장이 둔화된 PC 및 서버 등의 하드웨어 중심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IT서비스 부문으로 빠르게 사업구도를 전환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IT의 적용범위가 크게
확대되면서 IT 융·복합화와 함께, e-government, e-health 등 과거에는 IT와 동떨어져 있던 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국정부도 이러한 산업의 IT화를 선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건 개혁도 비용 절감을 위한 헬스케어 IT 혁신에 적지 않은
중점을 두고 있으며,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 등도 의료 정보의 DB화 및 디지털 콘텐츠화 작업에 매진 중이다. 범국가적 정보교류
시범사업(NHIN)이나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체계(HIPAA) 등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을 엿볼 수 있다(LG Business Insight
2009년 9월 23일자 “IT 강국, 헬스케어 IT는 부진” 참조).
미국 기업이 IT 각
분야에서 상호연계 통해 기술혁신 주도
IT산업은 크게 △ 컴퓨터, 통신 관련 기기나 부품을 생산하는 하드웨어
분야 △ 소프트웨어, 정보처리, 인터넷 관련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정보 서비스 분야 △ 통신, 방송 등의 네트워크 분야 △ 영화, 음악, 신문,
출판 등의 콘텐츠 분야 등으로 나뉜다.
IT 각 부문에서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지닌 미국 기업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 분야의 경우 반도체 부문의 인텔·퀄컴·브로드컴, 네트워크 장비 부문의 시스코, PC 부문의 델·HP, 디지털가전 부문의
애플 등이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정보 서비스 분야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오라클 등이, 네트워크 분야의 경우 방송의
CNN·ABC·NBC, 통신의 버라이즌·AT&T 등이, 콘텐츠 분야에서는 디즈니를 비롯한 헐리우드 영화계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
또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포괄적으로 접근해 고객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공급하는 IBM이 IT분야의 거인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린 혁명과 함께 전력망과 IT 간 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새로운 통신 및 전력 네트워크인 스마트 그리드에 주력하고 있는
GE도 IT산업의 숨은 강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렇듯 IT 산업의 다양한 영역에 글로벌 거대 기업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는 배경은 10여 년에 걸쳐 큰 폭의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면서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식 특유의 자유경쟁 시스템과 정부 차원의 정책적
안목이 맞물려 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많은 벤처 기업들이 탄생하고 도태되는 과정 속에서 때로는 기존의 거대
IT기업에 통합되거나 독자적으로 성장하며 미국 IT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온 것이다.
미국 IT기업의
경우 각 분야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과 그 적용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원동력에 차이가 있다. 같은 분야내에서도 유력 기업 간 서로 다른 전략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하드웨어 분야를 살펴보면, 인텔과 퀄컴, 그리고 시스코는 독자적인 첨단
기술력으로 자신의 사업 영역에서 국제 표준을 이끌어 나가는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델이나 HP의 경우 글로벌 차원의
SCM(공급 사슬)의 효율적 운영 등 대량 생산 및 대량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 크게 도약하고 있는 애플의 경우에는
콘텐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의 융합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여 MP3 플레이어와 휴대폰에 이은 복합단말기(iPad) 시장 석권을 노리고 있다.
다음으로 정보 서비스 분야를 살펴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폐쇄적인 OS 규격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정착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반면, 구글은 OS를 무료로 개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은 모두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에 주력하고
있지만, 구글의 경우 서비스 자체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네트워크화를 통한 유저의 클릭 수 확대 등 광고 수입을 주로 추구하는 데 반해,
아마존은 클라우드 서비스 자체 내에서의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네트워크나 콘텐츠 분야의 경우 상대적으로 유력 기업간의 전략적
차이가 적어 중소형 기업이 거대 기업의 비즈니스 인프라에 도전해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미국
IT기업 전략의 핵심은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중심으로 방대한 미국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강력한 경쟁 잠재력을 갖춘 상태에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각 부문에 걸쳐 세계를 선도하는 거대 기업이 고르게 포진하고 있어, 여러 IT 분야의 상호
연계를 통해 이노베이션 방향을 조기에 설정하고 영향력있는 IT 시장을 선점하는 등 IT혁명을 세계적으로 주도하는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Ⅱ. 미국 IT산업 왜
강한가
IT 기술혁신 주도하면서 게임의 룰을
결정
미국 IT산업의 강점으로서 우선 IT의 혁신 방향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게임의 룰을 결정하여 초기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IT 분야의 핵심 기반 기술은 1960~1970년대 IBM으로 대표되는 메인프레임 컴퓨터(Mainframe
Computer)를 이용한 중앙집중처리 시스템에서, 1980년대 들어 PC와 서버를 이용한 분산처리 네트워크(Distributed
Processing Network)로 진화한 후, 2007년경부터는 가상공간에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인프라 환경 등을 유저의 요청에 따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Cloud Computing)으로 이행해 왔다(<그림 3> 참조).
일본
전자산업이 한때 메인프레임 컴퓨터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분산처리 네트워크 시대를 열기
시작한 미국의 윈텔(Wintel: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연합)에게 역공을 맞아 그 이후 IT 기술혁신 부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분산처리 시스템에 관한 한 미국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의 외국 기업들이 거의 전무한 가운데, 미국 내
자체적으로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기술혁신 흐름이 강해지면서 세계 IT 산업을 지속적으로 주도해 나가고 있다.
미국이 새롭게
주도하기 시작한 클라우드 컴퓨팅은 브로드밴드 네트워크 환경과 가상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가능하게 되었다(<그림 4> 참조).
유저가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해서 데이터 센터에 접속을 하고 다른 수많은 유저들과 각종 IT자원을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정보처리 환경이 실현된
것이다. 각종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가 데이터 센터에 있기 때문에 유저는 PC, 휴대폰, TV 등 간단한 단말기를 이용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같은 작은 단말기에서도 고도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것은 정보처리의 상당 부분이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경우 고객에게 스토리지(storage)나 서버 서비스를 용량·시간별로 구분하여 제공(IaaS:
Infrastructure as a Service)하고 있다. 고객의 정보처리 사용 정도에 따라 요금이 자동으로 청구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각종 IT 기반을 갖추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여겨져 왔던 복잡한 정보기기 구매나 정보관리 요원 배치 등에 더 이상 자금을 투자할
필요가 없어 코스트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구글의 경우 구글앱(Google Apps)을 통해 이메일, 워드프로세싱 및 표계산 소프트웨어 등을
무료로 제공(SaaS: Software as a Service)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전문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애플리케이션 엔진(Application Engine)을 제공(PaaS: Platform as a Service)해 이들이 자체적으로
창의적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IaaS, SaaS, PaaS라는 세 가지 유형을
통해 공급되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IT혁명 초기의 PC네트워크 중심 인터넷 환경과는 달리 데이터 센터가 중심이 되면서 보안 및 안정성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개인용 휴대폰 기능부터 기업 간 기밀 업무까지 모든 종류의 정보처리를 인터넷 상(Web-based)에서 직접
수행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경우 과거 수차례의 시도들이 상용화에 실패한 반면,
아이폰 (iPhone)은 그 동안 구글이 개척해 온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완벽하고 적절하게 응용해 냄으로서 IT 혁신을 이끄는데 성공했다.
구글의 경우 각종 단말기를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적용시키기 위해 자바스크립트(JavaScript)의 신속성이 부각되는 브라우저의 개발에
주력해 왔으며, 이러한 전략이 성과를 보이면서 다른 미국 기업들도 뒤따라오게 되었다. 실제로 아이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단말기의 일종이자 자바스크립트 고속 브라우저인 사파리(Safari)를 탑재해 구글을 포함한 각종 SaaS 클라우딩 서비스 이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이 휴대폰의 PC화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기존의 PC 네트워크 환경을 초월한
차세대 클라우드 컴퓨팅과 맞물리면서부터 비로소 폭발적 성장이 가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글이 자바스크립트 고속 브라우저
크롬(Chrome)에 적합한 OS인 안드로이드(Android)를 탑재한 휴대폰 사업에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애플과의 밀월 관계는 깨졌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휴대폰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인프라
서비스에서도 클라우드 컴퓨팅이 적극 응용될 것이다. 이러한 클라우드 서비스 영역의 확장은 미국 IT 기업의 새로운 성장 사업 범위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것이다.
예를 들어, IBM은 샌프란시스코의 노후화된 하수 처리 시스템에 각종 센서를 부착하여
관련 정보를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데이터 센터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게 함으로서 도처에 분산된 크고 작은 각종 설비의 수리 및 관리 업무를
효율화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IBM은 이러한 인프라 서비스를 스마트 그리드, 헬스케어, 도시 기능 관리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시킬
계획이다. 개별적인 데이터 처리 차원을 넘어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계산 역량을 공유하는 효율적인 서비스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노하우를 중국 등 신흥시장 공략에도 활용할 전망이다.
기존 산업의
클라우드 컴퓨팅화를 통한 선순환 효과 극대화
이와 같이 미국의 IT는 인프라 부문을 포함, 모든 산업을 클라우드
컴퓨팅 베이스로 혁신해 나가는 가운데 IT 융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냄으로서 항상 가장 앞서가는 경쟁력을 가진다. 사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 이후 그 극복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은 IT 산업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타 산업에도 IT 투자를 확대하여 생산성 제고를 노리는 동시에
산업 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선순환 구조 구축을 전략적으로 지향해 왔다.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경우도 IT인프라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여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과 비교해 보아도 199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IT투자 확대의 급증세는 월등한 수준이다(<그림
5> 참조).
미국의 각 산업 전반에 걸쳐 IT 활용도를 제고시킴으로서 얻는 시너지효과는 매우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
인터넷 상거래의 활성화와 함께 기업의 재무, 회계, 금융, 인사관리뿐만 아니라 전략적 의사 결정의 인프라로서 IT 기반의 역할도 강조되면서 미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금융 산업의 경우 매매 거래의 상당수가 컴퓨터 프로그램 기반으로 이행되면서 글로벌 국제금융
시장에서 발생하는 매순간의 투자 및 재정 거래 기회를 선점하는 등 금융 핵심 업무 자체가 IT 시스템에 기초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IT투자의 확대는 미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IT 산업의 수요 증대를 유발하면서 서비스 경쟁력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 등 IT 아웃소싱 강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IT 서비스 수입이 확대되는 측면도 있으나 미국은 오히려 고도의 IT 서비스를
수출하는 서비스 수출 강국이기도 하다. 특히 IT와 결합된 비즈니스 전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은 세계최강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각 산업 부문에서 IT를 활용한 생산 혁신이 성과를 보이면서 미국계 다국적 기업 본사는 이러한 비즈니스 서비스를 해외 자회사로 수출하고 있다.
사실, 1990년대 후반 이후 IT 혁명의 후광효과로 미국의 제조업과 더불어 IT를 활용하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그림 6> 참조). IT로 중무장한 서비스업의 발전은 여성이나 고령자의 사회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효과와 함께 미국의 경제 성장에도 적지 않은 동력원이 되고 있다.
게다가, IT의 구체적인 응용 과정에서
미국의 IT기술 자체가 향상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콘텐츠·음악 다운로드 서비스·하드웨어 등을 모두 패키지로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로 확장 적용되면서 애플의 하드웨어 사업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역시 미국의 서비스업 등 기존 산업이 IT와 융합되고 최근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구조로 변모하는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이 1980년대 이후 일본 기업의 공세로 거의 초토화된 미국의 AV 가전 산업을 일부 부활시킨 것 역시 IT산업과
기타 산업 간 융합의 위력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첨단 서비스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객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서비스 수요의 실체를
탐구하면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제조업의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를 모색하는 미국 기업의 전략이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의 차별화 포인트 전략에 집중
산업 경계를
넘나드는 IT 융합화와 더불어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미국 IT의 강점은 하드웨어 기업들이 기술적 우위성을 십분 활용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 각종 IT 하드웨어를 동아시아 지역 및 세계 각국에서 수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반도체의 인텔, 네트워크 장비의 시스코, 대형 컴퓨터의 IBM 등은 세계를 주도할만한 경쟁 우위성을 지니고
있다.
인텔과 시스코는 성장 초기에 틈새시장에서 독점적인 경쟁우위를 구축한 결과 해당 부문 산업의 성장과 함께 매출이 동반적으로
급성장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인텔의 경우 MPU (중앙연산처리장치)라는 핵심 기술을 끊임없이 향상시키면서 철저한 기술 보안에 주력했다. 동시에
이를 활용한 마더보드(Mother Board) 기술은 개방하여 대만기업 등의 생산 증대를 유도, PC 산업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사의
MPU에 대한 수요 역시 덩달아 늘어나는 성과를 이루었다. 핵심 기술의 보안성을 높이고 고가격을 유지하는 반면, 주변 기술은 공개하여 외부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시켜 가격 하락 후 제품이 대량 보급되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또한 핵심 분야의
경우 미국 본국에서의 연구 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이스라엘 등 인텔 자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 향상에 주력, 자사 MPU의 성능이
주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세계 PC산업의 고도화를 유도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기업이 해외 연구거점을 운영할 때 자국에서 개발한
기술을 현지 시장에 맞추는 수준에 그치는 데 반해, 인텔은 각국에 포진해 있는 연구 인력의 지식 활동을 취합하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켜 기초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시스코의 경우 라우터(Router)라는 초기에는 생소했던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핵심 기술인 IOS(Internetworking Operating System)를 확보하여 이를 지적재산권 전략을 통해 철저하게
보호했다. 동시에 자사의 네트워크 기기를 연결하는 방식은 오픈화된 IP(Internet Protocol) 을 채용, 자사의 라우터 기기 기술을
글로벌 표준으로 확립시켰다. 시스코는 인텔과 달리 자체적인 기초기술 개발에는 소극적이었지만 네트워크 장비 관련 벤처기업을 지속적으로 매수하는 등
나름대로의 차별화된 성장 전략을 펼쳤다.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나 잠재적 핵심 기술을 치밀하게 계산한 후 우호적인 매수 합병을 성공시키는 기술
마케팅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통해 성장을 거듭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콘텐츠 및 서비스를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애플의 경우도 하드웨어의 우수한 감성적 디자인 능력이나 중장기 디지털 비전에 충실한 하드웨어 전략을 구사해 왔던 것이 부분적인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프트웨어 유저 인터페이스의 혁신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의 독특한 촉감 등 제품을 직접 접하는 소비자를 물리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도록 세밀하게 계산된 디자인도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결국 애플은 아이팟(iPod)를 출시한 초기 단계에서 향후
도래할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의 위력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디지털 가전 기기가 서로
연결되는 환경 하에서 자사 하드웨어의 포지션을 굳건히 하겠다는 분명한 비전과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최근
출시된 아이패드(iPad)는 향후 애플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료 동영상 네트워크 비즈니스와 직접적으로 연계될 것으로 보여 구글의
유튜브(YouTube)와의 격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같이, 미국의 IT 하드웨어 산업이 추구해 온 전략은 단순한 기술적
강점 확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확보하고 있는 고유 기술을 강력한 독점 기술로 만들기 위해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것인지, 무엇을
통해 그 기술의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킬 것인지, 한번 확보한 기술을 이용해 관련 시장의 확대를 유도하고 고수익을 추구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구글과 애플 등이 가지고 있는 IT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부문에서의 강점이 하드웨어
부문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는 연쇄효과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력, 글로벌 시장 장악 능력,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 연계 능력 등 전략적 우수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이노베이션 스필오버(Innovation Spillovers) 시스템
이와 같은 미국 IT산업의 경쟁력은 국가
차원의 이노베이션 스필오버(Innovation Spillovers) 시스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미국은 일찍부터 정부 및 대학의 기초연구가
기업의 제품 개발과 연계되는 오픈 이노베이션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기초과학 부문부터 응용 개발, 제품 마케팅까지 기업 내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 기업의 수직적 시스템과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미국 IT 산업 발전의 초석은 이러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이노베이션 시스템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IT혁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자체가 미국의 군사 연구에서 출발하여 파생된
것이며, 미국 금융 산업의 IT화 과정에서는 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로켓 부문 관련 수학자 및 물리학자들이 대거 금융 산업으로 재취업하여
첨단 금융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등 미국 금융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정부, 대학, 기업 간의 협력과 인재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미국의 이노베이션 시스템은 구체적인 목표 설정 이후 혁신의 방향이 그 목표에 맞추어 조정된다기보다는, 자유로운 기술·아이디어의 교류와
협업 과정 속에서 예기치 못한 성과의 창출을 노리는 측면이 강하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려는 노력들 속에서 무수히 잦은 실패가 반복되는
가운데 단 한 번의 성공이 글로벌 기술 혁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며 미국의 IT산업이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도 산학관 연계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정부가 산업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직접 통제, 조율하려는 측면이 강해 미국의 전략과 정면으로
대비된다.
따라서 미국은 정부 차원의 R&D 투자는 대학 및 정부 산하 연구소 등에서 이루어지는 기초과학 기술 부문에
집중하고 응용 개발 부문은 민간에게 맡기는 성격의 전략을 구사해 왔다(<그림 7> 참조). 특히 IT버블 붕괴 직후 미국 정부는
IT분야의 기초연구에 대한 정책자금 지출을 더욱 확대하여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IT사업 침체 극복을 노렸다고 할 수 있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보다 기초과학 육성을 통한 장기적이고 폭발적인 과학기술의 성과를 노리는 전략적인 방식이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러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에 있어 철저한 정기 점검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 예산의 배분이 이미 경쟁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특정 주요 대학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보여온 대학의 경우 민간 기업과의 직접적인 산학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방향 예측이 어려운 기초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시도가 필수라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기에, 무명 대학 및 소규모
연구진에게도 기회를 주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 것이다.
IT 기초 기술을 잠재적으로 뒷받침하는 첨단 군사기술
미국의 경우 세계 최강의 군사력 증진
노력이 IT 혁명과 상호보완적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DARPA(Defense Advance Research
Project Agency; 미국 첨단군사방위 계획국)는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띠고 있다.
IT는 DARPA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다. DARPA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전쟁 발발시 정보력의 우월성(information superiority)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컴퓨터 네트워크 환경으로의 이행(transformation within network-centric operations)을 준비,
체계적으로 진행해 왔다. 전통적인 컴퓨팅 환경의 초석 위에서 혁신적인 컴퓨팅 환경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환경의
혁신을 위해 DARPA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임베디드 시스템(embedded systems)이다. 이는 특정 처리를 위해 일반 기기 안에
전용으로 설계되어 내장된 특수한 목적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으로, 특히 군사적 적용 범위가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다.
구체적인
IT 관련 프로젝트로서 네트워크가 스스로 조직화되고 자체적인 강화·방어 기능을 가지는 네트워크(network-centric warfare)의
구축, 칩 안에 설치가 가능한 초소형 원자시계, 지령을 접수하자마자 곧바로 투입이 가능하고 장기간동안 전달된 명령만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 비행체 등이 있다. 또한 기상 예보, 암호 해독, 신무기 개발과 같은 기능을 가진 수퍼컴퓨터의 향상, 통·번역 전문가
수준의 실시간 통·번역 기계, 인간의 두뇌로부터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고 조율 및 통제가 가능한 인공 팔·다리 등, 컴퓨터에 일일이 입력하고
명령하는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고 스스로 배우는 능력이 있는 컴퓨터(Cognitive Computing)의 개방 등도 연구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개척 능력
미국 IT산업을 뒷받침하는
국가적 차원의 스필오버 시스템에서 군사 기술 등 미국 정부의 역할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차별화되는 미국의 강점은 이러한
정부의 전략 및 지원, 거기에 따른 기초기술의 발전을 십분 활용하면서 미래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민간 부문의 도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리더십 아래 수많은 새로운 시도가 행해질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고 그 토양 위에서 민간 연구주체들이 마음껏 혁신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글로벌하게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이민 문화의 다이너미즘 (Dynamism)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 특유의 기업 문화에도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글 등 수많은 미국 IT기업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부재했으나 IT혁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는 목적 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자유롭게 사업을 확장하여 추후 혁신적인 수익 모델을
개발한 셈이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수익의 불안정성 속에서도 투자를 계속 고집함으로서 일시적으로 IT버블 붕괴와 같은 침체기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이를 오히려 경험삼아 미래 혁신의 초석으로 삼는 도전의 문화가 정부와 민간 부분에 걸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척 정신은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사고에서 비롯된다기보다 ‘모든 이에게 좋은 것(공공선 : 公共善)’을 추구하겠다는 경영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글의 경우 당장 높은 수익성보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훨씬 큰 동기 부여로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개인주의·시장주의는 금융 부문에서의 투자은행처럼 서브프라임 위기를 촉발시켜 극심한 배금주의의 우를 범하기도 하지만,
뚜렷한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한 개척정신을 통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산업경쟁력을 구축하기도
한다.
Ⅲ. 미국이 주도하는 IT시대의
의미
미국 IT산업 발전의 6가지
시사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IT산업의 급성장과 주도성은 일부 기업의 우연한 발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전략적으로 달성되어 온 것이다. 당분간 이러한 미국 IT산업의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기존 IT 산업의 융·복합화를
주도하면서 ‘애플 현상’을 일구어낸 것과 같이, 제조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과정을 통해 다시 부활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세계적인 IT
하드웨어 강국인 우리나라에게 기회와 동시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클라우드 컴퓨팅 등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IT 트렌드에
적응하여 미국 IT산업과의 공생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중장기적인 IT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강점으로부터 시사점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우선,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에 대응하여 산업의 융·복합 기능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서비스,
하드웨어, 인터넷의 결합은 모든 분야의 경쟁 환경을 혁신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핵심은 클라우드 컴퓨팅일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모든 기기의
클라우드 컴퓨팅 전략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우드 컴퓨팅 전략의 기본은 넷 접속을 통한 계산 기능,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Access에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휴대 단말기의 인터넷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TV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 기계 등에 휴대폰 통신 기능을
탑재함으로써 클라우드 컴퓨팅 이용 환경을 구축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클라우드 컴퓨팅 진행 과정에서 각 산업이 디지털 기술로 재구축될
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서비스나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오퍼레이션 분야에서도 연구·생산·조달·재무 등 각종 업무를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으로 신속히 전환하여 코스트 절감과 업무 효율 개선, 정보 보안 체제 강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 PC
기반에 의존한 기존의 IT혁명에서 더 나아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컴퓨팅 능력 및 기술 자체에 대한 국가전략이 중요할
것이다. IT산업의 기초인 컴퓨팅 기초 기술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기초적인 국가 이노베이션 능력의 제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양자 정보
기술 등 최신 IT 기초기술 영역을 포함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기초적인 컴퓨팅 기술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
환경에서 첨단기술을 개척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이노베이션 스필오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IT 하드웨어 분야의 수출주도국으로서 위상을 지니고 있으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IT서비스 수출
강국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데이터 센터의 확충, 클라우드 컴퓨텅 환경 하에서의 산업의 융·복합화를 통해 새로운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데
기초가 되는 고도의 IT 서비스, 솔루션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개도국의 인프라 건설, 선진국의 인프라 재개발, 각국 기업에 대한
비즈니스 솔루션 등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IT 솔루션 수출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층의 고실업 문제도 해결하고
여성 및 고령자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면서 다가오는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효과를 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미국의 IT하드웨어 전략 사례와 같이 대내적으로는 독보적이고 보안성이 강한 핵심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협력 기업이나 고객과의 분업도
활성화할 수 있는 개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내부적으로는 블랙박스로서의 기반을 가지고 외부적으로는 개방화된 면모를
갖추는 전략(Inside Black Box Outside Module)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하드웨어나 서비스
분야에서 기업 고유의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식의 융합을 주도할 수 있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능력이 필수적이다. 미국 IT 우량기업의
경우 해외거점 활용에 있어 본국에서 개발한 기술을 현지에 적응시키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제품모델의 개발 과정에서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도 활용하고 있다. IT혁명은 글로벌화와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자국의 기술이나 서비스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초기부터 글로벌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갈라파고스 현상(생태계 고립화)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P3 시장을 처음으로 개척한 우리나라의 경우 페이스 북과 유사한 다양한 형태의 IT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개발하기도 했지만
글로벌화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계시장과 국내시장의 구분 자체를 초월하고 세계 각지에 분산된 지적 우위성을 기업 차원에서 통합하여
글로벌하게 이노베이션을 창조·전파할 수 있는 초국적성을 가진 메타내셔널(Meta-national)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그림 8> 참조).
여섯째, 이러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이노베이터(Innovator)가 되기 위해서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미국 IT 기업의 경우와 같이 뚜렷하고 일관된 철학이 있는 기업 문화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 각국
정부, 주주,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Stake Holder)간의 관계를 조율하여 자사 및 자사와 관련된 기업을 포함한 비즈니스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끝>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남유럽 재정위기와 서브프라임 위기 비교
LG경제연구원 '남유럽 재정위기와 서브프라임 위기 비교'
남유럽 재정위기는 리먼 사태에 비해 전체 규모가 작은데다, 부채의 규모와 만기구조 등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동화 과정과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확산 가능성 또한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하지만 남유럽 경제의 회복지연과 정치적 갈등, 유로화 체제가 지닌 맹점 등으로 인해 단기간내 불안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혼란이 다소 진정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위기는 기본적으로 서브프라임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민간의 부채가 공공으로 이전되며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의 병렬적인 비교를 통해 차이점을 해부함으로써 글로벌 재정위기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하고 향후 전개과정과 파급효과 등을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본고에서는 특히 규모와 전염성, 해법, 영향 등에서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서브프라임 위기와 재정위기의 특징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규모 : 은행의 모기지 자산이 정부채권의 5배
리먼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미국의 주거용 모기지 관련 자산은 약 10조 달러에 달한다. 부동산 버블 붕괴와 모기기 부실화로 촉발된 금융기관의 대규모 손실과 파산위험의 증가는 2008년 하반기 전세계 금융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편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유럽 4개국의 정부부채는 약 2조7천억 유로, 달러로 환산(1유로=1.3달러 기준)하면 약 3조5천억 달러(2009년 말 기준) 규모이다. 이는 미국의 주거용 모기지 자산의 1/3 수준으로, 남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영국이나 일본 등 부채규모가 큰 나라로 전이되지만 않는다면 위기발생으로 인한 충격이 리먼 사태 당시보다 작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시스템이 재정불안에 대해 노출되어 있는 정도 또한 모기지 부실에 비해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 IMF가 추산한 미국과 영국, 유로존 은행들의 보유자산 내역에 따르면 선진국 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자산을 약 15조 달러, 정부채권을 약 3조 달러 보유하고 있다(<그림 1> 참조). 이 가운데 모기지 관련 자산의 7.2%에 해당하는 8,170억 달러에 대해서는 2007년 이후 올해까지 손실 상각이 진행중이다. 따라서 부실화의 정도가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선진국 은행 및 금융시스템에 미칠 파급효과 또한 정부부실 쪽이 더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불안으로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미 상당한 규모의 평가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채가 지급불능상태에 빠지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4개국의 정부부채 잔액 2조7천억 유로 가운데,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분은 3,365억 유로(원금 기준)로 전체 부채의 약 13%에 불과하다(<그림 2> 참조). 2011년 말까지의 만기도래분(6,660억 유로)은 전체의 26%, 2012년 말까지 감안할 경우(9,392억 유로) 전체 정부부채의 약 37%에 이르게 되지만 모기지 자산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다. 이들 나라가 만기에 도달한 부채에 대해 지급불능상태에 빠지고, 20%의 손실률(채무재조정 협의 후 다시 상환하는 경우로 20% 정도의 채무축소를 가정)을 가정하는 경우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손실규모가 올해, 내년 말까지 각각 673억 유로, 1,322억 유로, 달러로 환산하면 약 875억 달러와 1,732억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 가운데 정부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CDS Premium)이 크게 상승한 그리스와 포르투갈로 한정하는 경우 올해 내로 만기가 돌아오는 정부부채와 그 지급불능에 따른 손실규모가 각각 434억 달러와 87억달러 수준으로, 직접적인 손실만으로 유럽 금융시장, 더 나아가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들 국가의 위험에 유로화 체제와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의 요동을 유발한 또 다른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염성 : 재정위기의 전염성 서브프라임보다 낮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선진국 금융시스템의 붕괴 위험으로까지 비화되었던 것은, 그 충격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직접적인 부실에 국한되지 않고 시스템 전반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모기지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 및 구조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파생상품이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금융상품과 회사 및 투자자들이 긴밀한 연관관계에 놓이게 된 결과이다.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은 여러 개의 담보 대출 계약을 하나로 묶어 자산담보부증권(CDO)이라는 채권으로 증권화한 후, 이것을 다시 위험도 및 수익성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나눈 것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각 증권의 수익성을 산정하는 데 있어 당시로서는 이미 버블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던 부동산가격의 상승세를 그대로 적용하는가 하면, 기초자산 부실의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한 부적절한 신용등급 산정 등이 복잡한 거래관계를 통해 얽혔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이나 부실의 발생시 그것의 확산,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투자은행들은 고객으로부터 수탁받거나 자금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가지고 자신들이 만든 이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며, 보험회사 등과는 CDO가 부도날 경우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신용부도스왑(CDS)의 거래를 체결했다. 모기지 대출 연체에 따른 부실화가 이 같은 복잡한 거래관계를 통해 확산되면서 전세계적인 금융시스템의 붕괴위험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최근 재정위기가 발생한 유럽지역은 이 같은 금융의 증권화가 미국 금융시장에 비해 덜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증권과 대출로 대별되는 은행의 자산구성을 보더라도 미국의 경우 증권 비중이 36%에 달하는 반면 유로존은 30%에, 영국과 비유로존 유럽 선진국(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등)은 2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3> 참조).
게다가 국채의 경우 일반적으로 복잡한 파생상품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거래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이다. IMF도 최근 발표한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정부부채 문제와 관련된 파생상품으로 신용부도스왑(CDS)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CDS 거래는 동아시아 및 러시아 외환위기를 경험한 1990년대 후반부터 국채거래에 동반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남유럽 4개국의 정부부채 약 3조5천억 달러에 대해 현재 순발행되어 있는 CDS의 잔액 규모는 약 550억 달러, 계약 건수 기준으로는 약 1만6천 건으로 파악된다. 일반적으로 CDS 프리미엄이 상승하는 국가, 기업의 채권에 대해서는 CDS 거래량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두바이 사태 이후 이들 국가의 정부채권에 대한 CDS 발행 및 거래가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올해 초까지 파악된 정부부채 규모 대비 CDS 순발행 잔고는 국가별로 1~4% 수준에 그치고 있다(<그림 4> 참조). 따라서 파생화된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대해 10%의 부도확률을 가정하더라도 남유럽 4개국 국채의 CDS 거래에 대한 신용위험 규모가 금융시스템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다. 더구나 CDS 보증업무를 가장 많이 수행한 AIG를 미국정부가 사실상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CDS 계약의 불이행으로 인해 야기되는 신용위험 또한 리먼 사태 당시에 비해 크게 줄었다. 따라서 이번 남유럽 재정위기에 있어서도 파생상품의 발행과 유통을 통한 부실의 확산은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들 국가들이 국채상환에 차질을 빚을 경우 그 여파가 유럽지역 내에서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이들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자금 조달에 있어 유럽지역 내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고, 유럽 국가들과 역내 금융기관들의 대출관계도 상호의존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부재정의 위험이 다시 민간 금융부문의 위험증가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그림 5> 참조). 불안이 증폭되는 경우 직접적인 파급효과의 크기는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그리스나 포르투갈의 향배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역내 연관관계를 통해 한 나라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럽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불안으로 확대되면, 그 불안은 대외거래 또는 해외자산 보유 등 2차적인 경로를 통해 미국 등 해외 금융시장으로 전염될 것으로 생각된다.
해법 : 서브프라임 사태는 수요 창출, 남유럽 위기는 긴축 조치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해법은 과감한 유동성 확대를 통한 수요창출이 중심이었다. 리먼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우선 금융기관들에 대한 자본확충을 위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함으로써 신용경색을 막고자 노력하였다. 거기에 과감한 재정지출을 단행하여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직접 창출하거나 지원하였으며, 각종 소득세, 소비세 인하를 통해 소비 확대를 유도하였다. 그 결과 글로벌 경제는 2009년 2분기부터 전기대비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반면 재정위기에 대한 해법은 전통적으로 지출통제와 세수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 정부부문의 과도한 빚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축소하고 국가부채 증가속도를 늦추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그림 6> 참조). 그리스는 EU와 IMF로부터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신,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 감축을 위한 지출 통제, 세수 확대 등의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부가가치세율 인상, 공공부문에 대한 임금 및 연금 삭감, 정년 연장, 탈세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 공기업 민영화, 군비 축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안은 2014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이내로 줄이고 국가부채는 2013년까지 계속 늘다가 2014년부터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긴축은 얼핏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당시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과 유사해 보이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대외불균형(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원화의 절하와 고금리를 통해 대외불균형을 시정함으로써 위기 극복에 필요한 외환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자체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로(당분간 약세 기조가 나타나더라도)의 대폭적인 절하를 통한 경상수지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독자 통화를 되살리지 않는 한, 경상수지 개선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마이너스 성장, 또는 저성장을 감수하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경제의 체질 개선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향 : 대폭락과 반등 vs. 중장기적 만성질환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부동산 가격하락과 글로벌 신용경색 등으로 전세계적인 실물 경제의 동반 침체가 나타나면서 전후 처음으로 전세계가 지난 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주식시장의 폭락과 금융경색 등 금융시스템의 혼란은 물론 각국의 산업생산, 수출, 소비 등 실물지표들까지 대공황 때만큼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각국 정부들의 빠른 결단과 공조로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 경제가 정상화되어 가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순수하게 경기변동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서브프라임 위기로부터 전세계가 어느 정도 회복된 양상인 것이다.
유럽의 소버린 리스크는 그에 비해 1차적으로 역내 금융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그리스 등 일부 국가가 디폴트 선언을 하게 되는 경우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며 여타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이 외채 위기에 연쇄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내 경제규모 4위인 스페인으로 위기가 전이되기 전에 EU나 IMF 차원에서 공조를 통한 사태 확산 방지 조치가 시행된다면 전면적인 위기로의 확산은 방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정위기 사태가 서브프라임 위기처럼 단기간 내에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번 위기가 역내 문제로의 비화과정을 거쳐 미국, 아시아 등 해외 금융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전세계 금융시장을 일거에 불안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소버린 리스크의 확대가 금융시장의 안정성, 실물경기, 자산가격 등에 대한 기대를 일거에 변경시킴으로써 예상보다 빠르게 위기가 확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유럽 국가들이 역내 은행들과 정부간의 복잡한 대출 및 채권보유 관계 등으로 서로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먼 사태 당시만큼 긴밀하게 글로벌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보다는 중장기에 걸쳐 재정 문제가 남유럽과 유로존 전체의 경제성장을 제약하고 일부는 무역의 경로로, 일부는 외환 및 금융시장의 경로를 통해 만성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의 주요 재정불균형 조정 경험을 살펴보면 GDP 대비 0~6%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는데 적어도 4년에서 10년이 소요된 것으로 확인된다(<표 1> 참조). 이와 같은 경험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향후 최소한 4~5년 동안은 남유럽 국가들이 세수 확대와 지출 축소라는 긴축 기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그에 따라 유로존의 전반적인 부진은 지속될 전망이다.
해법에 대한 이해 관계 : 유로존 내 문제해결 메카니즘 복잡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세계 각국이 비교적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위기의 해법에 대해 이견이 적었기 때문이다. 전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전세계가 다시 대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확대되면서 각국의 정책담당자들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공조를 강화하였고 곧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금융기관 정상화, 인프라 개발, 각종 세율 인하 등의 조치에 대한 논란은, 각국의 개별 정책사안에 따라 존재하긴 했지만 정책의 계획 수립에서부터 실행까지 큰 시차를 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우 이해관계자가 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먼저 남유럽 각국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이 이번 위기로 인한 고통을 직접 감내하도록 정치지도자들이 설득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미 그리스에서는 증세와 공공부문 임금 삭감 등에 대한 반발로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유로화 편입에 따른 피해를 자신들의 내핍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반발한다. 그리스 정부가 고강도의 재정긴축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정치적 반발로 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인 것이다. 만일 재정적자 감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구제금융 지원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남유럽과 중북부 유럽의 경제적 성과 차이로 인해 단일 통화체제 안에 이질적인 경제가 공존한다는 점도 유로화의 안정성을 해침과 동시에 이번 재정위기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되기 전까지 자국 내 반발 등을 고려해 그리스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유로존 회원국들이 그리스 구제금융을 실행하기 위해 자국 내 의회 승인과 정상들의 서명이라는 정치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따라서 각국 내부의 이해관계와 위기 해결을 위한 유로존 내 신속한 메커니즘의 부재, 경제적 성과의 이질성 등으로 향후 남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임은 분명하다.
중장기 글로벌 성장 제약 요인
이번 남유럽 사태의 경우 은행들의 보유자산 중 이들 정부 관련 채권 규모가 서브프라임 당시의 모기지 관련 자산 규모보다 작고 파생화의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사태에 비해 단기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정도가 덜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리먼 사태 당시는 세계 경제가 침체로 빠지는 상황이었던 반면 지금은 경기가 회복국면에 있고 유동성이 비교적 풍부하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여건의 차이로 인해 세계 경제의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이 상대적으로 커진 상태이다.
그러나 남유럽 재정위기가 중장기적으로 향후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남유럽 국가들이 긴축을 통한 내핍을 지속해야 하는 데다가 그 시일이 매우 오래 걸릴 전망이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해당사자들간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재정개혁이 만일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유증으로 남아있는 선진국 가계부채와 함께 당분간 세계 경제에 작지 않은 짐이 될 것이다. 게다가 남유럽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 높은 복지 부담, 유로화 단일 체제의 유지가능성 등에 대한 의문들로 위기가 생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유럽간의 실물 측면에서의 상호의존도는 그리 높지 않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되면서 직접 수출보다 중국 등의 생산기지를 통한 우회수출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2009년 PIIGS에 대한 교역 비중은 2%, 유로존 전체에 대한 비중은 8.9%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무역을 통한 경로보다는 금융 및 외환시장의 혼란에 더 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하게 통합되어 실시간으로 뉴스에 반응하는 금융시장이나 외환시장의 급변동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실물경제에의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끝>
남유럽 재정위기는 리먼 사태에 비해 전체 규모가 작은데다, 부채의 규모와 만기구조 등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동화 과정과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확산 가능성 또한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하지만 남유럽 경제의 회복지연과 정치적 갈등, 유로화 체제가 지닌 맹점 등으로 인해 단기간내 불안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혼란이 다소 진정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위기는 기본적으로 서브프라임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민간의 부채가 공공으로 이전되며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의 병렬적인 비교를 통해 차이점을 해부함으로써 글로벌 재정위기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하고 향후 전개과정과 파급효과 등을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본고에서는 특히 규모와 전염성, 해법, 영향 등에서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서브프라임 위기와 재정위기의 특징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규모 : 은행의 모기지 자산이 정부채권의 5배
리먼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미국의 주거용 모기지 관련 자산은 약 10조 달러에 달한다. 부동산 버블 붕괴와 모기기 부실화로 촉발된 금융기관의 대규모 손실과 파산위험의 증가는 2008년 하반기 전세계 금융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편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유럽 4개국의 정부부채는 약 2조7천억 유로, 달러로 환산(1유로=1.3달러 기준)하면 약 3조5천억 달러(2009년 말 기준) 규모이다. 이는 미국의 주거용 모기지 자산의 1/3 수준으로, 남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영국이나 일본 등 부채규모가 큰 나라로 전이되지만 않는다면 위기발생으로 인한 충격이 리먼 사태 당시보다 작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시스템이 재정불안에 대해 노출되어 있는 정도 또한 모기지 부실에 비해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 IMF가 추산한 미국과 영국, 유로존 은행들의 보유자산 내역에 따르면 선진국 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자산을 약 15조 달러, 정부채권을 약 3조 달러 보유하고 있다(<그림 1> 참조). 이 가운데 모기지 관련 자산의 7.2%에 해당하는 8,170억 달러에 대해서는 2007년 이후 올해까지 손실 상각이 진행중이다. 따라서 부실화의 정도가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선진국 은행 및 금융시스템에 미칠 파급효과 또한 정부부실 쪽이 더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불안으로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미 상당한 규모의 평가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채가 지급불능상태에 빠지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4개국의 정부부채 잔액 2조7천억 유로 가운데,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분은 3,365억 유로(원금 기준)로 전체 부채의 약 13%에 불과하다(<그림 2> 참조). 2011년 말까지의 만기도래분(6,660억 유로)은 전체의 26%, 2012년 말까지 감안할 경우(9,392억 유로) 전체 정부부채의 약 37%에 이르게 되지만 모기지 자산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다. 이들 나라가 만기에 도달한 부채에 대해 지급불능상태에 빠지고, 20%의 손실률(채무재조정 협의 후 다시 상환하는 경우로 20% 정도의 채무축소를 가정)을 가정하는 경우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손실규모가 올해, 내년 말까지 각각 673억 유로, 1,322억 유로, 달러로 환산하면 약 875억 달러와 1,732억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 가운데 정부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CDS Premium)이 크게 상승한 그리스와 포르투갈로 한정하는 경우 올해 내로 만기가 돌아오는 정부부채와 그 지급불능에 따른 손실규모가 각각 434억 달러와 87억달러 수준으로, 직접적인 손실만으로 유럽 금융시장, 더 나아가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들 국가의 위험에 유로화 체제와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의 요동을 유발한 또 다른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염성 : 재정위기의 전염성 서브프라임보다 낮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선진국 금융시스템의 붕괴 위험으로까지 비화되었던 것은, 그 충격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직접적인 부실에 국한되지 않고 시스템 전반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모기지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 및 구조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파생상품이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금융상품과 회사 및 투자자들이 긴밀한 연관관계에 놓이게 된 결과이다.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은 여러 개의 담보 대출 계약을 하나로 묶어 자산담보부증권(CDO)이라는 채권으로 증권화한 후, 이것을 다시 위험도 및 수익성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나눈 것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각 증권의 수익성을 산정하는 데 있어 당시로서는 이미 버블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던 부동산가격의 상승세를 그대로 적용하는가 하면, 기초자산 부실의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한 부적절한 신용등급 산정 등이 복잡한 거래관계를 통해 얽혔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이나 부실의 발생시 그것의 확산,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투자은행들은 고객으로부터 수탁받거나 자금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가지고 자신들이 만든 이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며, 보험회사 등과는 CDO가 부도날 경우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신용부도스왑(CDS)의 거래를 체결했다. 모기지 대출 연체에 따른 부실화가 이 같은 복잡한 거래관계를 통해 확산되면서 전세계적인 금융시스템의 붕괴위험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최근 재정위기가 발생한 유럽지역은 이 같은 금융의 증권화가 미국 금융시장에 비해 덜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증권과 대출로 대별되는 은행의 자산구성을 보더라도 미국의 경우 증권 비중이 36%에 달하는 반면 유로존은 30%에, 영국과 비유로존 유럽 선진국(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등)은 2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3> 참조).
게다가 국채의 경우 일반적으로 복잡한 파생상품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거래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이다. IMF도 최근 발표한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정부부채 문제와 관련된 파생상품으로 신용부도스왑(CDS)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CDS 거래는 동아시아 및 러시아 외환위기를 경험한 1990년대 후반부터 국채거래에 동반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남유럽 4개국의 정부부채 약 3조5천억 달러에 대해 현재 순발행되어 있는 CDS의 잔액 규모는 약 550억 달러, 계약 건수 기준으로는 약 1만6천 건으로 파악된다. 일반적으로 CDS 프리미엄이 상승하는 국가, 기업의 채권에 대해서는 CDS 거래량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두바이 사태 이후 이들 국가의 정부채권에 대한 CDS 발행 및 거래가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올해 초까지 파악된 정부부채 규모 대비 CDS 순발행 잔고는 국가별로 1~4% 수준에 그치고 있다(<그림 4> 참조). 따라서 파생화된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대해 10%의 부도확률을 가정하더라도 남유럽 4개국 국채의 CDS 거래에 대한 신용위험 규모가 금융시스템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다. 더구나 CDS 보증업무를 가장 많이 수행한 AIG를 미국정부가 사실상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CDS 계약의 불이행으로 인해 야기되는 신용위험 또한 리먼 사태 당시에 비해 크게 줄었다. 따라서 이번 남유럽 재정위기에 있어서도 파생상품의 발행과 유통을 통한 부실의 확산은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들 국가들이 국채상환에 차질을 빚을 경우 그 여파가 유럽지역 내에서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이들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자금 조달에 있어 유럽지역 내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고, 유럽 국가들과 역내 금융기관들의 대출관계도 상호의존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부재정의 위험이 다시 민간 금융부문의 위험증가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그림 5> 참조). 불안이 증폭되는 경우 직접적인 파급효과의 크기는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그리스나 포르투갈의 향배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역내 연관관계를 통해 한 나라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럽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불안으로 확대되면, 그 불안은 대외거래 또는 해외자산 보유 등 2차적인 경로를 통해 미국 등 해외 금융시장으로 전염될 것으로 생각된다.
해법 : 서브프라임 사태는 수요 창출, 남유럽 위기는 긴축 조치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해법은 과감한 유동성 확대를 통한 수요창출이 중심이었다. 리먼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우선 금융기관들에 대한 자본확충을 위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함으로써 신용경색을 막고자 노력하였다. 거기에 과감한 재정지출을 단행하여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직접 창출하거나 지원하였으며, 각종 소득세, 소비세 인하를 통해 소비 확대를 유도하였다. 그 결과 글로벌 경제는 2009년 2분기부터 전기대비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반면 재정위기에 대한 해법은 전통적으로 지출통제와 세수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 정부부문의 과도한 빚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축소하고 국가부채 증가속도를 늦추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그림 6> 참조). 그리스는 EU와 IMF로부터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신,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 감축을 위한 지출 통제, 세수 확대 등의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부가가치세율 인상, 공공부문에 대한 임금 및 연금 삭감, 정년 연장, 탈세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 공기업 민영화, 군비 축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안은 2014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이내로 줄이고 국가부채는 2013년까지 계속 늘다가 2014년부터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긴축은 얼핏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당시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과 유사해 보이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대외불균형(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원화의 절하와 고금리를 통해 대외불균형을 시정함으로써 위기 극복에 필요한 외환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자체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로(당분간 약세 기조가 나타나더라도)의 대폭적인 절하를 통한 경상수지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독자 통화를 되살리지 않는 한, 경상수지 개선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마이너스 성장, 또는 저성장을 감수하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경제의 체질 개선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향 : 대폭락과 반등 vs. 중장기적 만성질환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부동산 가격하락과 글로벌 신용경색 등으로 전세계적인 실물 경제의 동반 침체가 나타나면서 전후 처음으로 전세계가 지난 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주식시장의 폭락과 금융경색 등 금융시스템의 혼란은 물론 각국의 산업생산, 수출, 소비 등 실물지표들까지 대공황 때만큼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각국 정부들의 빠른 결단과 공조로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 경제가 정상화되어 가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순수하게 경기변동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서브프라임 위기로부터 전세계가 어느 정도 회복된 양상인 것이다.
유럽의 소버린 리스크는 그에 비해 1차적으로 역내 금융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그리스 등 일부 국가가 디폴트 선언을 하게 되는 경우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며 여타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이 외채 위기에 연쇄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내 경제규모 4위인 스페인으로 위기가 전이되기 전에 EU나 IMF 차원에서 공조를 통한 사태 확산 방지 조치가 시행된다면 전면적인 위기로의 확산은 방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정위기 사태가 서브프라임 위기처럼 단기간 내에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번 위기가 역내 문제로의 비화과정을 거쳐 미국, 아시아 등 해외 금융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전세계 금융시장을 일거에 불안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소버린 리스크의 확대가 금융시장의 안정성, 실물경기, 자산가격 등에 대한 기대를 일거에 변경시킴으로써 예상보다 빠르게 위기가 확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유럽 국가들이 역내 은행들과 정부간의 복잡한 대출 및 채권보유 관계 등으로 서로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먼 사태 당시만큼 긴밀하게 글로벌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보다는 중장기에 걸쳐 재정 문제가 남유럽과 유로존 전체의 경제성장을 제약하고 일부는 무역의 경로로, 일부는 외환 및 금융시장의 경로를 통해 만성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의 주요 재정불균형 조정 경험을 살펴보면 GDP 대비 0~6%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는데 적어도 4년에서 10년이 소요된 것으로 확인된다(<표 1> 참조). 이와 같은 경험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향후 최소한 4~5년 동안은 남유럽 국가들이 세수 확대와 지출 축소라는 긴축 기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그에 따라 유로존의 전반적인 부진은 지속될 전망이다.
해법에 대한 이해 관계 : 유로존 내 문제해결 메카니즘 복잡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세계 각국이 비교적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위기의 해법에 대해 이견이 적었기 때문이다. 전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전세계가 다시 대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확대되면서 각국의 정책담당자들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공조를 강화하였고 곧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금융기관 정상화, 인프라 개발, 각종 세율 인하 등의 조치에 대한 논란은, 각국의 개별 정책사안에 따라 존재하긴 했지만 정책의 계획 수립에서부터 실행까지 큰 시차를 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우 이해관계자가 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먼저 남유럽 각국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이 이번 위기로 인한 고통을 직접 감내하도록 정치지도자들이 설득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미 그리스에서는 증세와 공공부문 임금 삭감 등에 대한 반발로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유로화 편입에 따른 피해를 자신들의 내핍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반발한다. 그리스 정부가 고강도의 재정긴축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정치적 반발로 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인 것이다. 만일 재정적자 감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구제금융 지원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남유럽과 중북부 유럽의 경제적 성과 차이로 인해 단일 통화체제 안에 이질적인 경제가 공존한다는 점도 유로화의 안정성을 해침과 동시에 이번 재정위기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되기 전까지 자국 내 반발 등을 고려해 그리스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유로존 회원국들이 그리스 구제금융을 실행하기 위해 자국 내 의회 승인과 정상들의 서명이라는 정치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따라서 각국 내부의 이해관계와 위기 해결을 위한 유로존 내 신속한 메커니즘의 부재, 경제적 성과의 이질성 등으로 향후 남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임은 분명하다.
중장기 글로벌 성장 제약 요인
이번 남유럽 사태의 경우 은행들의 보유자산 중 이들 정부 관련 채권 규모가 서브프라임 당시의 모기지 관련 자산 규모보다 작고 파생화의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사태에 비해 단기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정도가 덜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리먼 사태 당시는 세계 경제가 침체로 빠지는 상황이었던 반면 지금은 경기가 회복국면에 있고 유동성이 비교적 풍부하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여건의 차이로 인해 세계 경제의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이 상대적으로 커진 상태이다.
그러나 남유럽 재정위기가 중장기적으로 향후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남유럽 국가들이 긴축을 통한 내핍을 지속해야 하는 데다가 그 시일이 매우 오래 걸릴 전망이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해당사자들간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재정개혁이 만일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유증으로 남아있는 선진국 가계부채와 함께 당분간 세계 경제에 작지 않은 짐이 될 것이다. 게다가 남유럽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 높은 복지 부담, 유로화 단일 체제의 유지가능성 등에 대한 의문들로 위기가 생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유럽간의 실물 측면에서의 상호의존도는 그리 높지 않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되면서 직접 수출보다 중국 등의 생산기지를 통한 우회수출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2009년 PIIGS에 대한 교역 비중은 2%, 유로존 전체에 대한 비중은 8.9%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무역을 통한 경로보다는 금융 및 외환시장의 혼란에 더 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하게 통합되어 실시간으로 뉴스에 반응하는 금융시장이나 외환시장의 급변동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실물경제에의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끝>
◎위안화 절상되면 중국경제 구조변화 가속
LG경제연구원 '위안화 절상되면 중국경제 구조변화 가속'
위안화 절상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미국의 압박보다도 중국 경기과열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해온 ‘주동적’ 필요에 의한 절상이 임박했다는 의미이다. G2급 경제위상을 지닌 중국의 위안화 절상은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10% 정도의 위안화 절상세는 한국 경제의 수출확대를 통해 성장률은 0.3%p 끌어올리고, 실업률을 0.2%p 떨어트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한국 물가는 0.2%p 상승에 그칠 것으로 시산됐다.
이러한 단기적 경기효과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위안화 절상국면이 상징하는 중국경제의 체질변화이다. 사실 위안화 절상세는 2005년 이후 대조류(大潮流)로 굳어졌다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멈칫했다. 환율변화란 것도 관련 교역국들의 펀더멘탈에 영향만 주는 외생(外生)변수가 아니라 경제체질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내생(內生)변수에 가깝다.
중국 위안화 절상은 ‘세계의 공장’, 특히 연해지역 수출거점의 원가경쟁력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약화시킬 것이다. 반면 그 성장동력을 내수와 서비스산업에서 찾으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선택인 만큼 두 부문의 성장세는 2010년대 중국경제의 고속성장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부상할 것이다.
< 목 차 >
Ⅰ. 피하기 어려워지는 위안화 절상
Ⅱ. 위안화 절상의 방법론
Ⅲ. 위안화 절상이 초래할 중국 경제의 구조변화
Ⅳ. 시사점
Ⅰ. 피하기 어려워지는 위안화 절상
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숨을 고르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예정됐던 ‘환율조작국’ 지정을 보류하자,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이에 화답하듯 워싱턴의 핵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양측의 날 선 공방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위안화 절상 가능성이 옅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자국 경제위기 주범의 하나로 ‘값싼’ 위안화를 지목하고 있고, 많은 국제 투자은행들도 연내 위안화 절상을 대세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혹자는 미국의 공개적인 압박이 수그러든 요즘이 환율결정을 주권문제로 다뤄온 베이징 당국이 정치적 부담 없이 절상을 단행할 적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의 입장은 난감하다. 2005년 7월 이후 만 3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된 위안화 절상이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지 못했다는 경험이 말해주듯, 양국 무역 불균형은 경제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만큼 해법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소비지출 확대와 미국의 소비억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조합이 중국 측이 선호하는 방향이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 지도부가 위안화 절상이란 정책수단을 완전 배제하진 않았다. 중국 당국은 누차 현 환율수준을 ‘비상한 시기의 비상한 정책수단’이라고 주장해왔다. 국제 경제흐름이 정상을 찾아가면 환율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인데, 최근 글로벌 경제흐름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확산 등 돌출변수가 남아있지만, ‘정상복귀’ 가능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위안화 절상의 계기는 중국 내부에서 차라리 찾기 쉽다. 올해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거시경제 상황은 부동산 등 자산시장 과열이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과 맞물리면서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으로 파급되는 경우이다. 중국은 올해 물가상승 억제 목표치를 3%(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기준)로 설정했다. 4월 CPI 상승률은 2.8%로 억제범위 내였지만, 체감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식품물가지수 상승세가 5.9%로 치솟은 데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세가 만만찮다(4월 6.8%, <그림 1> 참조). 중국 정부는 금리인상과 위안화 절상이란 두 가지 긴축카드를 어떤 수순으로 펼칠지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 카드의 출수(出手) 가능성은 수출상황과 연동돼 있다. 중국 상무부는 위안화가 3%만 절상돼도 많은 영세 수출기업들이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영세 수출부문이 내륙 출신 농민공들에게 일터를 제공해왔던 사정을 생각할 때 위안화 절상은 사회적 긴장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4월 수출입이 각각 1,199억 달러와 1,192억 달러를 기록, 전달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다. 2000년대 중국의 무역수지는 대개 상반기에 흑자규모가 전년 동기보다 줄어들어 경고등을 켜지만, 하반기 들어 급격한 회복세로 전환해 결국 매년 무역흑자 기록을 다시 쓰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4월 무역수지가 흑자기조로 돌아선 것은 연초 나타났던 무역적자가 ‘계절효과’에 따른 것으로서,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해소하진 못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Ⅱ. 위안화 절상의 방법론
위안화 절상의 정책목표 중 경기조절이 포함돼 있다면, 금리인상과 따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긴축카드 중 어느 것을 먼저 꺼내들까.
중국인민은행은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3차례 지불준비율을 올렸지만, 금리는 손대지 않았다. 시중의 과잉유동성은 빨아들이지만, 기존 여신에 대한 금리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피하려는 조치로 해석됐다. 그렇지만 물가인상 압력이 더욱 고조된다면,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리인상은 해당국 통화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 즉 환율을 떨어뜨린다(가치상승). 미 연준의 금리인상 조치를 달러화 강세요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안화의 경우에도 금리인상을 먼저 실시할 경우 절상압력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에 ‘先 절상, 後 금리인상’이 충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전문가가 더러 있다.
그러나 중국 외환시장은 시장참여자가 금리나 환율변동에 즉각 반영하는 재정(裁定)거래가 활성화된 곳이 아니다. 개방도가 비교적 낮은 외환시장에서 나타나는 역외선물시장(NDF)이 잔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외환전문가들도 전례로 볼 때 국제투기세력의 중국 자금시장 유입이 금리차를 노렸기보다 주로 자산가격 상승이나 환 평가차익에 주목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 경기억제 수단 중 먼저 금리인상으로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고 ‘필요할 경우’ 추가적으로 위안화 절상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반대로‘先 절상, 後 인상’의 조합은 실제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위안화 절상은 중국산 수출품의 달러표시 가격을 끌어올리고 수입품의 위안화 표시가격을 낮춘다. 수출을 억제하고 수입을 늘려 경기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 주장인데, 그 근저엔 중국 수출입이 환율변화에 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가정이 전제돼 있다.
중국 전체수입에서 자국의 최종소비용으로 쓰이는 비중은 70%(2007년 기준) 정도로 추산된다(LG 비즈니스 인사이트 1030호 <중국의 글로벌경기 견인력 아직 역부족> 참조). 미국의 9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인데, 이는 중국경제가 그만큼 수입품의 상당부분을 원자재 중간재로 들여와 재수출에 활용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 원자재 중간재 등은 소비품과 달리 가격변화에 대한 탄력성이 낮은 편이다. 따라서 위안화 절상으로 수입이 늘어나는 경기억제 효과가 작동하려면, 상당 폭의 절상이 단행돼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중국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상당 폭의 절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 경우 후속 금리인상의 필요성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그렇지만 절상 폭이 크지 않다면, 경기과열을 막기 위한 후속 금리인상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중국 내부적으로 긴축기조로 나설 필요가 없다면, 미국의 처지를 배려하는 정치적 결정으로 소폭의 절상만 허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30% 이상의 절상을 주장하는 미 정가를 만족시키기엔 턱 없이 부족한 수준으로서, 오히려 추가적인 절상기대만 부풀리는 결과를 가져와 통상외교적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묶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금리인상과 상당 폭의 위안화 절상은 어떤 카드를 먼저 쓰더라도, 다른 긴축카드의 필요성을 크게 줄이게 된다. 금리인상은 후속 위안화 절상을 ‘통상외교적’ 카드로만 남겨둘 가능성이 높고, 마찬가지로 상당 폭의 위안화 절상이 이뤄진다면 금리인상 카드는 이후 경기상황을 보고 난 뒤 결정해도 될 것이다. 통상외교 차원에서 일회성 소폭 절상만 단행하는 경우는 정책효과가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짙다.
이제 중국 정부의 환율정책 방향을 대입시켜 판단해보자. 중국 정부의 관련 입장 중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지난달 초 위안화 절상압력이 한껏 고조됐던 시기 중국 외교부가 천명한 환율정책의 3대 원칙, 즉 주동성(主動性) 통제가능성(可控性) 점진성(漸進性)이다.
주동성은 중국 내부적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의미로서, 바꿔 말하면 미국 등 국제압력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통제가능성은 위안화 절상을 허용하더라도 철저히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이도록 한다는 의미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점진성은 관련 경제주체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환율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원칙을 고려하면, 일부 투자은행들이 제시한 위안화 일일 변동폭(현재 0.5%) 확대나 급격한 계단식 절상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3대 원칙에 따르면, 급격한 절상으로 시작하는 정책조합은 선택 가능성이 가장 낮다. 나머지는 ‘금리인상 후 필요 시 위안화 절상’과 ‘소폭 절상 후 금리인상’카드, 그리고 ‘금리인상 없는 소폭 절상’등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소폭 절상이 일회성으로 끝나긴 어려울 것이다. 위안화 가치에 변동을 주기 시작했다는 뜻은 ‘비상한 시기’가 끝났음을 중국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인 만큼 향후 상당기간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안화는 2005년 7월 이후 3년 동안 거의 20% 가깝게 절상됐는데, 이는 일일 변동 폭에 미치지 못하는 소폭의 절상을 꾸준히 진행시킨 결과였다. 향후 나타날 위안화 절상세도 유사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 절상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4월까진 대외적 압박에 의해 그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최근의 경제 지표는 중국 대내적으로 경기과열 억제의 필요성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동성’에 입각할 경우 위안화 절상을 마냥 늦추는 것은 상책(上策)이 아닐 것이다. 절상시기를 늦출수록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도, 국제 투기자본들의 기대심리가 팽배해질 가능성도 모두 높아지고, 이는 ‘점진성’이란 세 번째 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국면을 자초할 수 있다. 외부적 압박에 밀려 절상에 나선다는 모양새를 준다면 이는 주동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이달 24일 베이징에서 ‘경제전략대화’를 연다. 글로벌 불균형의 근원을 해소하면서 양국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인 만큼 환율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고 넘어갈 것이다. 다만 이 문제를 안방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중국에 ‘주권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현재 워싱턴과 베이징간에는 절상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막후조정이 벌어지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이 같은 조정작업은 2005년 7월 외환바스켓제도 이행과 평가절상을 발표하기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위안화 절상은 빠르면 이달 중 첫 물꼬를 틀 수도 있다.
Ⅲ. 위안화 절상이 초래할 중국 경제의 구조변화
위안화 절상이 미중 무역역조의 즉효약이라는 데엔 이견이 많다. 스티븐 로치(Roach) 모건 스탠리 아시아 회장 같은 사람은 중국의 소비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즉 저축을 줄이지 못하는 한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되긴 어렵다고 강조한다. 반면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환율조작국 지정 등 강력한 위안화 절상 압박조치가 양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미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위안화가 상당히 저평가돼있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수년의 명목환율 수준에서 중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위안화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를 보여왔고, 그 덕택에 중국 외환당국이 2조4,470억 달러(3월 말 기준)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쌓아 올릴 수 있었던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향후 위안화 절상은 초기엔 소폭으로 이뤄지더라도 상당기간 점진적으로 이뤄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수준까지 절상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임박한 중국 위안화 절상세는 비록 소폭이더라도 중국 거시경제의 대전환을 이끄는 촉매이자, 구조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위안화 절상에서 기대하는 다양한 구조개선 효과는 중국 정부의 11차 5개년 계획에도 포함돼 있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위안화가 달러에 사실상 페그되면서 보류됐다. 내년부터 시행될 12차5개년 계획에선 위안화 절상의 기대효과는 각종 정책목표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위안화 절상이 영향을 미칠, 두드러진 구조변화 양상은 다음 3가지 형태로 정리된다.
1. 경쟁우위의 급격한 변화(Competitiveness Shift)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공산당 권력 전면에 부상한 현 4세대 지도자 그룹이 조화사회(和諧社會)를 국정운영 노선으로 표방하면서 대대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을 펼치면서부터이다. 특히 2008년 발효된 노동합동법은 노동자와 사용자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노동계약(勞動合同) 분야에 대해 정부가 개입, 노동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를 고쳤다. 이에 따라 신설된 퇴직금규정(경제보상금) 등을 감안하면, 대략 법 제정 이전보다 10% 정도의 인건비 상승요인이 생겨났다. 법 제정 전 중국 노동시장은 농촌 잉여인력으로 인해 단순 근로직의 인건비는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제돼 있었다.
<표 1>은 아시아 각국 주요 생산거점 후보지의 생산 인프라 비용을 비교한 것이다.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上海)의 경우 이미 인도의 뉴델리 방갈로르 등 유력 후보지나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경쟁도시보다 비용 부담이 커졌다.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한 산둥성 칭다오(靑島)조차 인도네시아나 베트남보다 비용 부담이 높다. 특히 중국 두 도시에서는 법정 최저임금이나, 명목임금 상승률 등에서 경쟁력 약화추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합동법 제정 등 임금 분배 몫을 키우려는 정책방향에 기인한 결과로도 해석된다.
<표 1>의 내용 중 근로자 임금부담만 떼어내 비교한 것이 <그림 3>이다. 칭다오 일반근로자 인건비 부담을 1로 놓고 경쟁 도시를 비교해보면, 중국 연해 대도시의 임금경쟁력은 인도에서 가장 번화한 뉴델리 방갈로르 수준에 맞먹음을 알 수 있다. 인도 인력이 대개 영어에 능통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임금 경쟁력은 글로벌기업들에겐 인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중국이 최근 수년 새 비용상승세 속에서도 세계의 공장이란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집적(集積)효과’ 덕택이었다.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부터 국가단위 혹은 지방정부 단위의 경제특구, 경제기술개발구, 보세구 등을 조성한 뒤 세 혜택이나 저렴한 토지 전력 용수가격 등의 장점으로 기업들을 유치해왔다. 더욱이 외자기업들의 투자관심이 지역적으로 흩어져 난(亂)개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혁개방의 중점을 남부 연해지역(경제특구·1980년대 초반), 연해지역 주요 항구(연해개방구·1980년대 중후반), 상하이(푸동신구·1990년대),텐진(빈하이신구·2000년대) 등으로 단계적으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지역별로 충실한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공급사슬 면에서 기업들에게 강력한 원가절감 유인을 제공해온 것이다.
그러나 위안화 절상으로 공급사슬 면에서의 이점을 능가하는 비용상승 요인이 누적된다면, 중국 생산거점들의 집적효과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8년 외자소득세법을 국내소득세법과 병합하면서(兩稅合幷) 연해지역 외자기업에 대한 우대조치의 상당부분을 폐지했다. 이중 핵심은 연해지역 경제기술개발구 소재기업에 제공했던, 수출의무 비율 달성에 따른 우대세율의 폐지였다.
조세혜택 경감에 이은 위안화 절상으로 연해지역의 수출거점 매력도는 크게 약화할 것이다. 중국산 제품의 달러표시 가격이 상승해 해외시장 점유율 확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이 진행되면, 위안화 표시 이윤공간은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존 연해 생산거점들의 생존전략은 자연스레 내륙진출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중국 위안화의 절상 추세가 촉매가 돼 한국 원화나 대만 달러 등 경쟁국 통화의 동반 절상까지 일어난다면, 이 같은 경쟁우위의 변화는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선진국 진영은 재정여력이 고갈돼 향후 저성장을 피하기 어려운 반면, 재정여력이 비교적 탄탄하고 내수의 확장여지가 큰 아시아권의 성장세는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 지역 통화의 전반적인 절상추세로 이어져 아시아 제조 경쟁력의 전반적인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2. 지역별로 차별화될 내수확대
저평가된 위안화를 절상시키는 것은 수출업계에 제공했던 보조금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효과를 가진다. 경제 전반적으로 수출의 성장기여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나고, 특히 수출거점이었던 연해지역의 성장세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2003~2008년 각 지방별 지출기준 GRP를 토대로 소비 투자 순(純)수출의 성장기여율을 계산해봤다(<그림 4> 참조).
예상했던 대로 샨시 쓰촨 랴오닝 후난 허난 등 내륙지역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하이 베이징 저장 장수 광둥 등 연해지역은 순 수출의 기여가 긍정적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소비 투자 등 내수항목의 기여율을 비교해보면, 연해지역 고소득 지방에서 소비의 기여가 두드러지고, 내륙지역은 상대적으로 투자의 기여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이 최근 수년 새 중부 내륙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점과 관련이 깊다.
위안화 절상은 수출이라는 성장동력이 약화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서는 적정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활발한 내수진작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재정여력이 탄탄하고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연해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지역에 재원을 집중시킬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위안화 절상기의 내수확대 국면에서 연해지역은 소비의 기여도가 높아지는 반면 내륙지역의 성장은 투자확대에 의존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앞서 1.에서 언급한 연해지역 경쟁우위 약화현상에 따라 고정자산 투자가 내륙으로 점차 이동하게 될 경우 이 같은 내수 차별화는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내수확대를 상징하는 프로젝트가 중앙정부의 ‘4縱4橫’고속철 계획이다(<그림 5> 참조). 서부 사막지역을 제외한 전역을 남북과 동서로 각각 4개 노선씩 신설하거나 연장한 뒤 국내항공 노선과 경쟁을 시켜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르면 2007년 1,100km 수준인 고속철도 총연장 길이는 2012년 1만3,000km, 2020년엔 1만8,000km로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광둥 남단의 선전까지 1일 생활권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중국엔 고속철 외에 이미 남북을 관통하는 2개의 간선철로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3개의 횡단철로가 있다. 중국에서 철로운송은 운송거리와 운송중량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가장 많은 물동량을 맡고 있는 핵심 물류 인프라이다. 고속철의 확충으로 철로운송의 산업경제적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속철 및 철로운송과 같은 대규모 교통 물류인프라의 확충은 연해-내륙지역 불균형 해소와 내륙거점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류비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연해 생산기지의 내륙이전이나 내륙 병행투자가 보다 용이해지며, 반면 연해지역의 소비중심 도시들은 내륙 중고소득층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강화돼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이는 종국적으로 내륙- 연해지역의 소득격차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호구제 개혁도 내륙경제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계획경제의 유산이자, 개혁개방 이후 도농간 소득격차를 확대시키는 역기능을 보여왔던 호구제는 연해지역 대도시들의 지방이기주의에 밀려 그간 개혁이 답보상태를 보여왔다. 중앙정부는 지난 해부터 현실적인 대안으로 내륙 중소도시에 한정해 우선적으로 도시 호구 취득제한 규정을 대대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내륙지역의 중핵도시들은 내수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이들은 교통물류 인프라를 통해 연해 대도시와 연결되는 식으로 상호연계가 강화될 수 있다.
내수확대 과정에서 중국의 자산시장은 상당기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엔고기의 일본기업과 달리 중국의 공공부문이나 유력기업들은 해외투자 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 제약조건을 안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시장경제를 표방한 중국경제의 특징으로서, 중국 여유자본의 중국 내륙투자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개혁개방 과정에서 뒤처졌던 내륙지역 토지 등 자산의 생산성 증가가 두드러지고 이는 부동산 및 유가증권 시장의 상승세로 나타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국제투자은행들의 연해지역 부동산 투자 붐에 이어 최근엔 글로벌 기업들의 내륙진출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사업기반 확보와 함께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서비스 부문의 확대
중국 경제는 루이스(A.W.Lewis)의 후진국 경제발전 단계에 따르면, 아직도 ‘이중구조 경제’에 머물고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중구조의 한 축인 농촌부문엔 광범위한 잉여인력이 존재하는 만큼 임금 인상 없이 도시 제조업 부문에 고용돼 자본축적을 돕는다. 그 결과 제조업 부문은 지속적으로 고용을 확대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잉여인력이 전부 소진되는 시점(Lewis’ Point)에 이르면 임금 인상이 양 부문에 공히 나타나는 식으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중국 사회과학원 등에서 지난해 추계한 농촌의 잉여인력은 최소 1억 명 수준이다. 그런데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훨씬 전인 2001년 11월 이뤄졌다. 이후 5년 여 동안 중국 정부는 가입의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개방 조치를 취했고,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설비투자 등 고정자본투자에 집중됐다(<그림 6> 참조). 그 결과 제조업 분야의 고용흡수력은 크게 취약해져, 성장률 1%의 고용흡수인구가 1990년대 초반의 100만 명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글로벌 수요가 위축된 전통 산업부문은 설비도태나 시설 현대화 등을 추구하고, 신재생에너지 등 차세대 산업 부문은 첨단 기술과 고도설비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채택했다. 두 가지 모두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를 자본 기술집약적 구조로 바꿔간다는 의미인 만큼 향후 제조업 분야의 고용흡수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위안화 절상은 특히 전통 제조업 분야의 수출경쟁력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줘 고용여력을 줄일 것이다. 차세대 산업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농민공 흡수 등 낙후된 내륙지역의 고용사정을 개선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용흡수력이 가장 좋은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대량의 일자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자연스럽다.
중국은 이미 11차5개년 계획에 서비스 부문 육성계획을 포함시켰다. 발전개혁위원회 산하에 ‘전국서비스업발전영도소조’ 사무국을 두고 국무원 부총리에게 조장을 맡긴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이 사안을 매우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표 2>에 나타나듯 지난 5년의 성과는 매우 미진했다. 특히 서비스업의 GDP 비중은 43% 미만으로서, ‘서비스 왕국’인 미국의 70%에는 물론 중진국 수준인 50~60%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서비스부문 육성이 투자나 성장률과 같은 양적 목표가 아니라 구조개선이 뒷받침돼야 진전이 이뤄지는 ‘질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국무원이 공포한 ‘상하이 서비스업 발전계획’은 두 해전 국무원의 서비스발전계획보다 구체적이다. 2년 전 계획은 직할시, 주요 성회(省會)도시 등을 대상으로 서비스경제가 주도하는 산업구조 개편을 서두를 것을 촉구한 반면, 지난해 계획은 아예 국무원이 나서 상하이를 국제금융 항공물류 등의 첨단 서비스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실행방안까지 구체화시켰다. 5월 개막한 상하이 엑스포 역시 이 지역 서비스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중국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림 7>은 최근 수년의 해외 직접투자액을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나눠 비교한 것이다. 2004년 이후 자리바꿈 현상이 두드러짐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서비스업 육성을 위해 금융, 물류, 유통 등의 개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외자기업으로서도 위안화 절상 등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개방 대상 서비스업은 주로 제조업 지원 서비스, 의료보건 교육과 같은 민생 서비스들로서, 향후 중국시장 및 사회의 질적 변화를 초래할 분야들이다. 중국 경제의 구조개선은 위안화 절상을 계기로 차츰 가속화하는 모양새를 나타낼 전망이다.
Ⅳ. 시사점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제약조건 등을 감안할 때 중국 정부가 고려하는 위안화 절상은 초기엔 소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제 금융시장 및 무역부문에 영향을 미치기엔 미미한 수준일 수도 있다.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도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상반된 거시경제 구조, 미국이라는 수퍼파워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관계 상의 비대칭성, 상당기간 유지될 중국의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위안화 절상세가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은 매우 작은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위안화가 비록 소폭으로 절상되더라도 이는 ‘거대한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 가격조정’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실 위안화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달러화에 페그(peg)된 채 움직이지 않다가 2005년 외환바스켓제도 도입과 함께 계단식으로 절상된 뒤 이후 꾸준히 절상국면을 유지해왔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다시 페그된 것은 중국 정부의 표현대로 ‘예외적 조치’에 해당한다. 즉 위안화 절상이 상징하는 구조변화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진행돼왔으며 향후 가속될 것이란 의미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위안화 절상세를 타고 ‘세계의 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갈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시장은 소비와 투자를 모두 감안한 내수시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소득재분배를 억제하는 다양한 구조적 걸림돌이 산재한 중국 경제에서 단기간 소비가 늘어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의 민간소비가 미국 규모에 버금가려면, 아직도 20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망기관이 적지 않다. 소비 확대추세는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끊기지 않고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외자기업으로선 중장기적 안목에서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안화 절상세에 따라 수출이란 성장동력이 약화되면 중국 정부는 그 대안으로서 투자의 역할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수출용 투자가 아닌 내륙개발을 위한 내포형(內包形) 산업화를 추진할 것이며, 위에서 설명한 교통 물류인프라 조성계획 역시 이를 위한 물적 토대를 갖추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내륙지역의 산업화 투자수요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이는 외자기업에도 다양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향후 위안화 절상에 따른 제조업-서비스산업의 엇갈린 전망은 외국기업들에게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기존 연해지역에 즐비하게 포진했던 수출거점들은 이제 내수시장 진출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제품의 구성을 보다 기술집약적인 것으로 바꿔나가야 원가 상승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디스플레이 항공기제작 태양발전 등 분야에서 몇 년 전까지 중국 정부의 요청에서 아랑곳하지 않던 글로벌 강자들이 최근 기꺼이 중국 내 첨단제품 투자에 나서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0년대 중반 잇따른 법제화를 통해 ‘돈만 들고 오는, 저임금에만 초점을 맞춘, 에너지 소모 및 환경오염이 심한’ 외자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반면 첨단기술로 무장한 외자에 대해선 선별적인 세제혜택을 남겨놓고 있다. 위안화 절상국면은 이 같은 외자정책 방향을 더욱 굳건히 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비수출-서비스 부문의 성장세는 정부의 육성정책과 맞물려 비약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중국 정부가 희망하는 생산지원, 민생지원 서비스 산업은 앞선 노하우, 상당한 규모의 초기자본, 강한 브랜드파워 등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런 부분에선 외자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막강하나, 서비스사업의 특성상 현지화란 난제를 넘어서야 한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중국 정부의 편파 플레이도 복병으로 부상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 가능성이 큰 서비스 분야 진출은 로컬업체와 상생하겠다는 자세로 적극적인 파트너십이 불가피할 것이다. <끝>
위안화 절상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미국의 압박보다도 중국 경기과열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해온 ‘주동적’ 필요에 의한 절상이 임박했다는 의미이다. G2급 경제위상을 지닌 중국의 위안화 절상은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10% 정도의 위안화 절상세는 한국 경제의 수출확대를 통해 성장률은 0.3%p 끌어올리고, 실업률을 0.2%p 떨어트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한국 물가는 0.2%p 상승에 그칠 것으로 시산됐다.
이러한 단기적 경기효과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위안화 절상국면이 상징하는 중국경제의 체질변화이다. 사실 위안화 절상세는 2005년 이후 대조류(大潮流)로 굳어졌다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멈칫했다. 환율변화란 것도 관련 교역국들의 펀더멘탈에 영향만 주는 외생(外生)변수가 아니라 경제체질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내생(內生)변수에 가깝다.
중국 위안화 절상은 ‘세계의 공장’, 특히 연해지역 수출거점의 원가경쟁력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약화시킬 것이다. 반면 그 성장동력을 내수와 서비스산업에서 찾으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선택인 만큼 두 부문의 성장세는 2010년대 중국경제의 고속성장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부상할 것이다.
< 목 차 >
Ⅰ. 피하기 어려워지는 위안화 절상
Ⅱ. 위안화 절상의 방법론
Ⅲ. 위안화 절상이 초래할 중국 경제의 구조변화
Ⅳ. 시사점
Ⅰ. 피하기 어려워지는 위안화 절상
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숨을 고르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예정됐던 ‘환율조작국’ 지정을 보류하자,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이에 화답하듯 워싱턴의 핵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양측의 날 선 공방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위안화 절상 가능성이 옅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자국 경제위기 주범의 하나로 ‘값싼’ 위안화를 지목하고 있고, 많은 국제 투자은행들도 연내 위안화 절상을 대세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혹자는 미국의 공개적인 압박이 수그러든 요즘이 환율결정을 주권문제로 다뤄온 베이징 당국이 정치적 부담 없이 절상을 단행할 적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의 입장은 난감하다. 2005년 7월 이후 만 3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된 위안화 절상이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지 못했다는 경험이 말해주듯, 양국 무역 불균형은 경제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만큼 해법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소비지출 확대와 미국의 소비억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조합이 중국 측이 선호하는 방향이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 지도부가 위안화 절상이란 정책수단을 완전 배제하진 않았다. 중국 당국은 누차 현 환율수준을 ‘비상한 시기의 비상한 정책수단’이라고 주장해왔다. 국제 경제흐름이 정상을 찾아가면 환율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인데, 최근 글로벌 경제흐름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확산 등 돌출변수가 남아있지만, ‘정상복귀’ 가능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위안화 절상의 계기는 중국 내부에서 차라리 찾기 쉽다. 올해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거시경제 상황은 부동산 등 자산시장 과열이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과 맞물리면서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으로 파급되는 경우이다. 중국은 올해 물가상승 억제 목표치를 3%(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기준)로 설정했다. 4월 CPI 상승률은 2.8%로 억제범위 내였지만, 체감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식품물가지수 상승세가 5.9%로 치솟은 데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세가 만만찮다(4월 6.8%, <그림 1> 참조). 중국 정부는 금리인상과 위안화 절상이란 두 가지 긴축카드를 어떤 수순으로 펼칠지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 카드의 출수(出手) 가능성은 수출상황과 연동돼 있다. 중국 상무부는 위안화가 3%만 절상돼도 많은 영세 수출기업들이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영세 수출부문이 내륙 출신 농민공들에게 일터를 제공해왔던 사정을 생각할 때 위안화 절상은 사회적 긴장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4월 수출입이 각각 1,199억 달러와 1,192억 달러를 기록, 전달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다. 2000년대 중국의 무역수지는 대개 상반기에 흑자규모가 전년 동기보다 줄어들어 경고등을 켜지만, 하반기 들어 급격한 회복세로 전환해 결국 매년 무역흑자 기록을 다시 쓰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4월 무역수지가 흑자기조로 돌아선 것은 연초 나타났던 무역적자가 ‘계절효과’에 따른 것으로서,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해소하진 못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Ⅱ. 위안화 절상의 방법론
위안화 절상의 정책목표 중 경기조절이 포함돼 있다면, 금리인상과 따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긴축카드 중 어느 것을 먼저 꺼내들까.
중국인민은행은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3차례 지불준비율을 올렸지만, 금리는 손대지 않았다. 시중의 과잉유동성은 빨아들이지만, 기존 여신에 대한 금리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피하려는 조치로 해석됐다. 그렇지만 물가인상 압력이 더욱 고조된다면,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리인상은 해당국 통화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 즉 환율을 떨어뜨린다(가치상승). 미 연준의 금리인상 조치를 달러화 강세요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안화의 경우에도 금리인상을 먼저 실시할 경우 절상압력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에 ‘先 절상, 後 금리인상’이 충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전문가가 더러 있다.
그러나 중국 외환시장은 시장참여자가 금리나 환율변동에 즉각 반영하는 재정(裁定)거래가 활성화된 곳이 아니다. 개방도가 비교적 낮은 외환시장에서 나타나는 역외선물시장(NDF)이 잔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외환전문가들도 전례로 볼 때 국제투기세력의 중국 자금시장 유입이 금리차를 노렸기보다 주로 자산가격 상승이나 환 평가차익에 주목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 경기억제 수단 중 먼저 금리인상으로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고 ‘필요할 경우’ 추가적으로 위안화 절상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반대로‘先 절상, 後 인상’의 조합은 실제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위안화 절상은 중국산 수출품의 달러표시 가격을 끌어올리고 수입품의 위안화 표시가격을 낮춘다. 수출을 억제하고 수입을 늘려 경기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 주장인데, 그 근저엔 중국 수출입이 환율변화에 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가정이 전제돼 있다.
중국 전체수입에서 자국의 최종소비용으로 쓰이는 비중은 70%(2007년 기준) 정도로 추산된다(LG 비즈니스 인사이트 1030호 <중국의 글로벌경기 견인력 아직 역부족> 참조). 미국의 9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인데, 이는 중국경제가 그만큼 수입품의 상당부분을 원자재 중간재로 들여와 재수출에 활용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 원자재 중간재 등은 소비품과 달리 가격변화에 대한 탄력성이 낮은 편이다. 따라서 위안화 절상으로 수입이 늘어나는 경기억제 효과가 작동하려면, 상당 폭의 절상이 단행돼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중국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상당 폭의 절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 경우 후속 금리인상의 필요성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그렇지만 절상 폭이 크지 않다면, 경기과열을 막기 위한 후속 금리인상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중국 내부적으로 긴축기조로 나설 필요가 없다면, 미국의 처지를 배려하는 정치적 결정으로 소폭의 절상만 허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30% 이상의 절상을 주장하는 미 정가를 만족시키기엔 턱 없이 부족한 수준으로서, 오히려 추가적인 절상기대만 부풀리는 결과를 가져와 통상외교적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묶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금리인상과 상당 폭의 위안화 절상은 어떤 카드를 먼저 쓰더라도, 다른 긴축카드의 필요성을 크게 줄이게 된다. 금리인상은 후속 위안화 절상을 ‘통상외교적’ 카드로만 남겨둘 가능성이 높고, 마찬가지로 상당 폭의 위안화 절상이 이뤄진다면 금리인상 카드는 이후 경기상황을 보고 난 뒤 결정해도 될 것이다. 통상외교 차원에서 일회성 소폭 절상만 단행하는 경우는 정책효과가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짙다.
이제 중국 정부의 환율정책 방향을 대입시켜 판단해보자. 중국 정부의 관련 입장 중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지난달 초 위안화 절상압력이 한껏 고조됐던 시기 중국 외교부가 천명한 환율정책의 3대 원칙, 즉 주동성(主動性) 통제가능성(可控性) 점진성(漸進性)이다.
주동성은 중국 내부적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의미로서, 바꿔 말하면 미국 등 국제압력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통제가능성은 위안화 절상을 허용하더라도 철저히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이도록 한다는 의미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점진성은 관련 경제주체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환율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원칙을 고려하면, 일부 투자은행들이 제시한 위안화 일일 변동폭(현재 0.5%) 확대나 급격한 계단식 절상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3대 원칙에 따르면, 급격한 절상으로 시작하는 정책조합은 선택 가능성이 가장 낮다. 나머지는 ‘금리인상 후 필요 시 위안화 절상’과 ‘소폭 절상 후 금리인상’카드, 그리고 ‘금리인상 없는 소폭 절상’등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소폭 절상이 일회성으로 끝나긴 어려울 것이다. 위안화 가치에 변동을 주기 시작했다는 뜻은 ‘비상한 시기’가 끝났음을 중국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인 만큼 향후 상당기간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안화는 2005년 7월 이후 3년 동안 거의 20% 가깝게 절상됐는데, 이는 일일 변동 폭에 미치지 못하는 소폭의 절상을 꾸준히 진행시킨 결과였다. 향후 나타날 위안화 절상세도 유사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 절상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4월까진 대외적 압박에 의해 그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최근의 경제 지표는 중국 대내적으로 경기과열 억제의 필요성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동성’에 입각할 경우 위안화 절상을 마냥 늦추는 것은 상책(上策)이 아닐 것이다. 절상시기를 늦출수록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도, 국제 투기자본들의 기대심리가 팽배해질 가능성도 모두 높아지고, 이는 ‘점진성’이란 세 번째 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국면을 자초할 수 있다. 외부적 압박에 밀려 절상에 나선다는 모양새를 준다면 이는 주동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이달 24일 베이징에서 ‘경제전략대화’를 연다. 글로벌 불균형의 근원을 해소하면서 양국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인 만큼 환율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고 넘어갈 것이다. 다만 이 문제를 안방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중국에 ‘주권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현재 워싱턴과 베이징간에는 절상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막후조정이 벌어지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이 같은 조정작업은 2005년 7월 외환바스켓제도 이행과 평가절상을 발표하기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위안화 절상은 빠르면 이달 중 첫 물꼬를 틀 수도 있다.
Ⅲ. 위안화 절상이 초래할 중국 경제의 구조변화
위안화 절상이 미중 무역역조의 즉효약이라는 데엔 이견이 많다. 스티븐 로치(Roach) 모건 스탠리 아시아 회장 같은 사람은 중국의 소비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즉 저축을 줄이지 못하는 한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되긴 어렵다고 강조한다. 반면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환율조작국 지정 등 강력한 위안화 절상 압박조치가 양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미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위안화가 상당히 저평가돼있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수년의 명목환율 수준에서 중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위안화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를 보여왔고, 그 덕택에 중국 외환당국이 2조4,470억 달러(3월 말 기준)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쌓아 올릴 수 있었던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향후 위안화 절상은 초기엔 소폭으로 이뤄지더라도 상당기간 점진적으로 이뤄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수준까지 절상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임박한 중국 위안화 절상세는 비록 소폭이더라도 중국 거시경제의 대전환을 이끄는 촉매이자, 구조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위안화 절상에서 기대하는 다양한 구조개선 효과는 중국 정부의 11차 5개년 계획에도 포함돼 있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위안화가 달러에 사실상 페그되면서 보류됐다. 내년부터 시행될 12차5개년 계획에선 위안화 절상의 기대효과는 각종 정책목표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위안화 절상이 영향을 미칠, 두드러진 구조변화 양상은 다음 3가지 형태로 정리된다.
1. 경쟁우위의 급격한 변화(Competitiveness Shift)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공산당 권력 전면에 부상한 현 4세대 지도자 그룹이 조화사회(和諧社會)를 국정운영 노선으로 표방하면서 대대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을 펼치면서부터이다. 특히 2008년 발효된 노동합동법은 노동자와 사용자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노동계약(勞動合同) 분야에 대해 정부가 개입, 노동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를 고쳤다. 이에 따라 신설된 퇴직금규정(경제보상금) 등을 감안하면, 대략 법 제정 이전보다 10% 정도의 인건비 상승요인이 생겨났다. 법 제정 전 중국 노동시장은 농촌 잉여인력으로 인해 단순 근로직의 인건비는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제돼 있었다.
<표 1>은 아시아 각국 주요 생산거점 후보지의 생산 인프라 비용을 비교한 것이다.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上海)의 경우 이미 인도의 뉴델리 방갈로르 등 유력 후보지나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경쟁도시보다 비용 부담이 커졌다.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한 산둥성 칭다오(靑島)조차 인도네시아나 베트남보다 비용 부담이 높다. 특히 중국 두 도시에서는 법정 최저임금이나, 명목임금 상승률 등에서 경쟁력 약화추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합동법 제정 등 임금 분배 몫을 키우려는 정책방향에 기인한 결과로도 해석된다.
<표 1>의 내용 중 근로자 임금부담만 떼어내 비교한 것이 <그림 3>이다. 칭다오 일반근로자 인건비 부담을 1로 놓고 경쟁 도시를 비교해보면, 중국 연해 대도시의 임금경쟁력은 인도에서 가장 번화한 뉴델리 방갈로르 수준에 맞먹음을 알 수 있다. 인도 인력이 대개 영어에 능통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임금 경쟁력은 글로벌기업들에겐 인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중국이 최근 수년 새 비용상승세 속에서도 세계의 공장이란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집적(集積)효과’ 덕택이었다.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부터 국가단위 혹은 지방정부 단위의 경제특구, 경제기술개발구, 보세구 등을 조성한 뒤 세 혜택이나 저렴한 토지 전력 용수가격 등의 장점으로 기업들을 유치해왔다. 더욱이 외자기업들의 투자관심이 지역적으로 흩어져 난(亂)개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혁개방의 중점을 남부 연해지역(경제특구·1980년대 초반), 연해지역 주요 항구(연해개방구·1980년대 중후반), 상하이(푸동신구·1990년대),텐진(빈하이신구·2000년대) 등으로 단계적으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지역별로 충실한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공급사슬 면에서 기업들에게 강력한 원가절감 유인을 제공해온 것이다.
그러나 위안화 절상으로 공급사슬 면에서의 이점을 능가하는 비용상승 요인이 누적된다면, 중국 생산거점들의 집적효과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8년 외자소득세법을 국내소득세법과 병합하면서(兩稅合幷) 연해지역 외자기업에 대한 우대조치의 상당부분을 폐지했다. 이중 핵심은 연해지역 경제기술개발구 소재기업에 제공했던, 수출의무 비율 달성에 따른 우대세율의 폐지였다.
조세혜택 경감에 이은 위안화 절상으로 연해지역의 수출거점 매력도는 크게 약화할 것이다. 중국산 제품의 달러표시 가격이 상승해 해외시장 점유율 확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이 진행되면, 위안화 표시 이윤공간은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존 연해 생산거점들의 생존전략은 자연스레 내륙진출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중국 위안화의 절상 추세가 촉매가 돼 한국 원화나 대만 달러 등 경쟁국 통화의 동반 절상까지 일어난다면, 이 같은 경쟁우위의 변화는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선진국 진영은 재정여력이 고갈돼 향후 저성장을 피하기 어려운 반면, 재정여력이 비교적 탄탄하고 내수의 확장여지가 큰 아시아권의 성장세는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 지역 통화의 전반적인 절상추세로 이어져 아시아 제조 경쟁력의 전반적인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2. 지역별로 차별화될 내수확대
저평가된 위안화를 절상시키는 것은 수출업계에 제공했던 보조금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효과를 가진다. 경제 전반적으로 수출의 성장기여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나고, 특히 수출거점이었던 연해지역의 성장세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2003~2008년 각 지방별 지출기준 GRP를 토대로 소비 투자 순(純)수출의 성장기여율을 계산해봤다(<그림 4> 참조).
예상했던 대로 샨시 쓰촨 랴오닝 후난 허난 등 내륙지역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하이 베이징 저장 장수 광둥 등 연해지역은 순 수출의 기여가 긍정적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소비 투자 등 내수항목의 기여율을 비교해보면, 연해지역 고소득 지방에서 소비의 기여가 두드러지고, 내륙지역은 상대적으로 투자의 기여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이 최근 수년 새 중부 내륙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점과 관련이 깊다.
위안화 절상은 수출이라는 성장동력이 약화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서는 적정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활발한 내수진작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재정여력이 탄탄하고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연해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지역에 재원을 집중시킬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위안화 절상기의 내수확대 국면에서 연해지역은 소비의 기여도가 높아지는 반면 내륙지역의 성장은 투자확대에 의존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앞서 1.에서 언급한 연해지역 경쟁우위 약화현상에 따라 고정자산 투자가 내륙으로 점차 이동하게 될 경우 이 같은 내수 차별화는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내수확대를 상징하는 프로젝트가 중앙정부의 ‘4縱4橫’고속철 계획이다(<그림 5> 참조). 서부 사막지역을 제외한 전역을 남북과 동서로 각각 4개 노선씩 신설하거나 연장한 뒤 국내항공 노선과 경쟁을 시켜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르면 2007년 1,100km 수준인 고속철도 총연장 길이는 2012년 1만3,000km, 2020년엔 1만8,000km로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광둥 남단의 선전까지 1일 생활권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중국엔 고속철 외에 이미 남북을 관통하는 2개의 간선철로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3개의 횡단철로가 있다. 중국에서 철로운송은 운송거리와 운송중량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가장 많은 물동량을 맡고 있는 핵심 물류 인프라이다. 고속철의 확충으로 철로운송의 산업경제적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속철 및 철로운송과 같은 대규모 교통 물류인프라의 확충은 연해-내륙지역 불균형 해소와 내륙거점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류비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연해 생산기지의 내륙이전이나 내륙 병행투자가 보다 용이해지며, 반면 연해지역의 소비중심 도시들은 내륙 중고소득층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강화돼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이는 종국적으로 내륙- 연해지역의 소득격차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호구제 개혁도 내륙경제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계획경제의 유산이자, 개혁개방 이후 도농간 소득격차를 확대시키는 역기능을 보여왔던 호구제는 연해지역 대도시들의 지방이기주의에 밀려 그간 개혁이 답보상태를 보여왔다. 중앙정부는 지난 해부터 현실적인 대안으로 내륙 중소도시에 한정해 우선적으로 도시 호구 취득제한 규정을 대대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내륙지역의 중핵도시들은 내수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이들은 교통물류 인프라를 통해 연해 대도시와 연결되는 식으로 상호연계가 강화될 수 있다.
내수확대 과정에서 중국의 자산시장은 상당기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엔고기의 일본기업과 달리 중국의 공공부문이나 유력기업들은 해외투자 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 제약조건을 안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시장경제를 표방한 중국경제의 특징으로서, 중국 여유자본의 중국 내륙투자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개혁개방 과정에서 뒤처졌던 내륙지역 토지 등 자산의 생산성 증가가 두드러지고 이는 부동산 및 유가증권 시장의 상승세로 나타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국제투자은행들의 연해지역 부동산 투자 붐에 이어 최근엔 글로벌 기업들의 내륙진출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사업기반 확보와 함께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서비스 부문의 확대
중국 경제는 루이스(A.W.Lewis)의 후진국 경제발전 단계에 따르면, 아직도 ‘이중구조 경제’에 머물고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중구조의 한 축인 농촌부문엔 광범위한 잉여인력이 존재하는 만큼 임금 인상 없이 도시 제조업 부문에 고용돼 자본축적을 돕는다. 그 결과 제조업 부문은 지속적으로 고용을 확대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잉여인력이 전부 소진되는 시점(Lewis’ Point)에 이르면 임금 인상이 양 부문에 공히 나타나는 식으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중국 사회과학원 등에서 지난해 추계한 농촌의 잉여인력은 최소 1억 명 수준이다. 그런데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훨씬 전인 2001년 11월 이뤄졌다. 이후 5년 여 동안 중국 정부는 가입의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개방 조치를 취했고,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설비투자 등 고정자본투자에 집중됐다(<그림 6> 참조). 그 결과 제조업 분야의 고용흡수력은 크게 취약해져, 성장률 1%의 고용흡수인구가 1990년대 초반의 100만 명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글로벌 수요가 위축된 전통 산업부문은 설비도태나 시설 현대화 등을 추구하고, 신재생에너지 등 차세대 산업 부문은 첨단 기술과 고도설비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채택했다. 두 가지 모두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를 자본 기술집약적 구조로 바꿔간다는 의미인 만큼 향후 제조업 분야의 고용흡수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위안화 절상은 특히 전통 제조업 분야의 수출경쟁력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줘 고용여력을 줄일 것이다. 차세대 산업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농민공 흡수 등 낙후된 내륙지역의 고용사정을 개선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용흡수력이 가장 좋은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대량의 일자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자연스럽다.
중국은 이미 11차5개년 계획에 서비스 부문 육성계획을 포함시켰다. 발전개혁위원회 산하에 ‘전국서비스업발전영도소조’ 사무국을 두고 국무원 부총리에게 조장을 맡긴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이 사안을 매우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표 2>에 나타나듯 지난 5년의 성과는 매우 미진했다. 특히 서비스업의 GDP 비중은 43% 미만으로서, ‘서비스 왕국’인 미국의 70%에는 물론 중진국 수준인 50~60%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서비스부문 육성이 투자나 성장률과 같은 양적 목표가 아니라 구조개선이 뒷받침돼야 진전이 이뤄지는 ‘질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국무원이 공포한 ‘상하이 서비스업 발전계획’은 두 해전 국무원의 서비스발전계획보다 구체적이다. 2년 전 계획은 직할시, 주요 성회(省會)도시 등을 대상으로 서비스경제가 주도하는 산업구조 개편을 서두를 것을 촉구한 반면, 지난해 계획은 아예 국무원이 나서 상하이를 국제금융 항공물류 등의 첨단 서비스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실행방안까지 구체화시켰다. 5월 개막한 상하이 엑스포 역시 이 지역 서비스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중국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림 7>은 최근 수년의 해외 직접투자액을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나눠 비교한 것이다. 2004년 이후 자리바꿈 현상이 두드러짐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서비스업 육성을 위해 금융, 물류, 유통 등의 개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외자기업으로서도 위안화 절상 등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개방 대상 서비스업은 주로 제조업 지원 서비스, 의료보건 교육과 같은 민생 서비스들로서, 향후 중국시장 및 사회의 질적 변화를 초래할 분야들이다. 중국 경제의 구조개선은 위안화 절상을 계기로 차츰 가속화하는 모양새를 나타낼 전망이다.
Ⅳ. 시사점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제약조건 등을 감안할 때 중국 정부가 고려하는 위안화 절상은 초기엔 소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제 금융시장 및 무역부문에 영향을 미치기엔 미미한 수준일 수도 있다.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도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상반된 거시경제 구조, 미국이라는 수퍼파워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관계 상의 비대칭성, 상당기간 유지될 중국의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위안화 절상세가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은 매우 작은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위안화가 비록 소폭으로 절상되더라도 이는 ‘거대한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 가격조정’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실 위안화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달러화에 페그(peg)된 채 움직이지 않다가 2005년 외환바스켓제도 도입과 함께 계단식으로 절상된 뒤 이후 꾸준히 절상국면을 유지해왔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다시 페그된 것은 중국 정부의 표현대로 ‘예외적 조치’에 해당한다. 즉 위안화 절상이 상징하는 구조변화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진행돼왔으며 향후 가속될 것이란 의미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위안화 절상세를 타고 ‘세계의 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갈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시장은 소비와 투자를 모두 감안한 내수시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소득재분배를 억제하는 다양한 구조적 걸림돌이 산재한 중국 경제에서 단기간 소비가 늘어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의 민간소비가 미국 규모에 버금가려면, 아직도 20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망기관이 적지 않다. 소비 확대추세는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끊기지 않고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외자기업으로선 중장기적 안목에서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안화 절상세에 따라 수출이란 성장동력이 약화되면 중국 정부는 그 대안으로서 투자의 역할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수출용 투자가 아닌 내륙개발을 위한 내포형(內包形) 산업화를 추진할 것이며, 위에서 설명한 교통 물류인프라 조성계획 역시 이를 위한 물적 토대를 갖추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내륙지역의 산업화 투자수요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이는 외자기업에도 다양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향후 위안화 절상에 따른 제조업-서비스산업의 엇갈린 전망은 외국기업들에게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기존 연해지역에 즐비하게 포진했던 수출거점들은 이제 내수시장 진출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제품의 구성을 보다 기술집약적인 것으로 바꿔나가야 원가 상승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디스플레이 항공기제작 태양발전 등 분야에서 몇 년 전까지 중국 정부의 요청에서 아랑곳하지 않던 글로벌 강자들이 최근 기꺼이 중국 내 첨단제품 투자에 나서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0년대 중반 잇따른 법제화를 통해 ‘돈만 들고 오는, 저임금에만 초점을 맞춘, 에너지 소모 및 환경오염이 심한’ 외자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반면 첨단기술로 무장한 외자에 대해선 선별적인 세제혜택을 남겨놓고 있다. 위안화 절상국면은 이 같은 외자정책 방향을 더욱 굳건히 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비수출-서비스 부문의 성장세는 정부의 육성정책과 맞물려 비약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중국 정부가 희망하는 생산지원, 민생지원 서비스 산업은 앞선 노하우, 상당한 규모의 초기자본, 강한 브랜드파워 등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런 부분에선 외자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막강하나, 서비스사업의 특성상 현지화란 난제를 넘어서야 한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중국 정부의 편파 플레이도 복병으로 부상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 가능성이 큰 서비스 분야 진출은 로컬업체와 상생하겠다는 자세로 적극적인 파트너십이 불가피할 것이다. <끝>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병원 홍보에 도움되는 병원포털사이트를 만들자!
내가 먹지 못하는 떡은 내떡이 아니다.
가끔씩 사업을 할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저번에도 해외택배를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 여러가지 많은 것을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모두가 내떡이 아닐바에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어떨까?
2010/03/25 - [自 話 想/아이디어 발상] - 이탈리아에서 해볼만한 사업?
현재 나의 금전적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기에..... 그냥 생각만 할 뿐이다.
그중 어떤 아이디어는 많은 자금이 들어가야 하는 대기업의 아이템들이고, 어떤것은 1억정도
들어가야 하는 아이템들이기에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으로 생각할 따름.
그러니 내가 먹지 못하는 떡이라면 차라리 남의 떡으로 생각하는게 속 편할듯^^
너에게 주는 떡
너에게 주는 떡? <- 제목을 적고보니 쫌 껄쩍찌근함이 이상야릇하네-.-
이번에 주는 떡은 의료계 분들이 읽어봐야할 아이디어 되겠다.
이른바 '병원마케팅' 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것이고, 아직까지 국내나 해외에서
온라인 사업화로 진행된 적이 없는 그런것 이기에 당당히 알려주고자
만약 나에게 병원관계자 인맥이 있었다면 아아도 실행했을 사업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 아이디어로 진행을 한다면 많은 돈을 벌것은 확실하다.
병원들이 홍보비용으로 1년에 집행되는 돈이 많다고 알기에...
그것을 전국의 병원들을 상대하기에 해볼만 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병원 포털 검색순위 사이트 !!
여기서 병원이라고 함은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분인과, 심리상담(정신과), 성형외과,
한방병원 등이 있다.'사' 들어가는 사람들이라 본인들이 직접만들기는 뭐~ 하지만 동업식으로
하면 괜찮을듯.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듯이 현재 각 병원들이 홍보마케팅하는 방식이라면 온오프 신문에
의학상식으로 집필하는 방법과 지하철에 포스터 홍보..... 포털사이트에 억대 배너광고
그외 카페(블로그)를 만들어 홍보하는게 대부분인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까지가 현재 병원들이 홍보하는 방식인데.... 너무 틀에 고정되어 있고, 각인이 안되는
홍보라 할 수 있다. 그럼 다시한번 틀을 깨서 생각해보자!
병원 관계자들을 위한 병원 실시간 검색사이트는 왜 없는 것일까?
포털에서 하는 것처럼 병원 실시간 인기어도 있고, 각 동네에 있는 병원들의 인기순위
베스트도 뽑고,친절하고 깨끗한 병원 모습등등..... 병원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섹션 한곳을 활용하여 학술논문으로 유명한 '네이쳐지'화 하면 좋을듯하다.
이밖에 사이트안에 들어갈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 실시간 병원검색 순위 및 검색어
- 우리동네 병원소식 및 병원약도 (동영상 로드뷰처럼)
- 의사들의 각 과의 의학상식 집필문
- 환자들이 추천하는 병원(사연)
- 병원관련 기사들 등등.....
- 병원 구인구직
이외에도 종합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의 포털이기에 한약과 양약을 구분해서 만들어야
할 것이고조금더 세분화 하자면 각 지역별 사이트를 분양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 서울,경기,인청,충북 등등......
왜 세분화 하여야 하는지는 각 지역별 병원들이 너무나 많기에 전국을 한곳에 집어넣기란
쉬운일이 아니기에 세분화를 해야한다고 느껴진다. 또한 처음 단순하게 현대병원과 한방병원을
분리를 시켜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있기에 당연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원 포털사이트 마케팅은 어떻게....?
이건 개발하는 사람의 몫이지만 약간의 힌트를 주자면.....
병원마다 팩스와 이메일로 사이트 개설을 알리고 동참하고자 하는 병원들을 파트너 형식으로
합류 시키는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병원 홍보하고자 하는 곳은 많기에 아마도 개설단계에서 부터 쉽게 이루어지라 예상한다.
끝으로 한마디 한다면.................
처음 말했던 것처럼 내가 갖지 못할 바에야 남에게 주는게 어쩌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가 입지 못하는 옷 다른 사람이 입어서 몸에 맞고 잘 어울린다면 그 옷의 진정한 주인이기에....
만약 이 아이디어를 기초로 사이트를 만드는 분이 있다면.... 또 이것이 성공한다면 나중에 아시죠?^^
또한 이 사이트를 접목해서 할 수 있는 사업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아이디어 회의 참석을 바란다면
기꺼이 응해드릴 수 있습니다.^^ Good Luck~~♣
2010년 5월 21일 금요일
◎시중자금의 단기화, 아직 부작용 크지 않다
LG경제연구원 '시중자금의 단기화, 아직 부작용 크지 않다'
시중자금이 단기금융시장으로 쏠리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의 금융시장 단기화는 경기회복과 장단기금리 차이축소에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며, 우려되는 바와 같이 자산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4월 이후 국고채를 중심으로 시중금리가 크게 하락하고, MMF, CMA 등의 단기금융상품 잔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9년말 4.41%이던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5월초에는 3.71%까지 하락하였고(AA- 등급p,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도 5.53%에서 4.48%로 하락하였다. 이와 같은 시중금리 하락세는 예금금리로까지 파급되어 6개월~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3.76%(2009년 12월)에서 3.26%(2010년 3월)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중금리 하락세와 더불어 단기금융부문으로 시중자금이 이동하면서 2010년 1월말 68.9조원이던 MMF 잔액은 5월 4일 현재 79.8조원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시중금리 하락과 시중자금의 단기화 경향의 폐해를 우려한다.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로 인해 경제주체들이 수익창출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게 되면, 자산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단기화 현상의 원인을 통화수요의 측면에서 분석하여 최근의 상황을 진단하고자 한다.
금융시장의 단기화 현상 심화
우선 최근 금융시장 상황을 여러 통화지표를 통해서 살펴보자. 현금, 결제성 예금, MMF 등으로 구성된 협의의 통화인 M1은 2009년 3월 이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2010년 15.3% 증가) 반면 광의의 통화인 M2 증가율은 9%에 머물고 있으며 M2보다 만기가 길고 현금으로 전환시 원금의 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기관 유동성(이하 Lf)의 경우도 6%대의 낮은 증가율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만기가 짧은 금융상품으로 구성된 M1의 증가율은 높고,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통화지표(M2, Lf 등)의 증가율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시중자금이 단기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M1/M2 비율도 2009년 3월 이후 상승 추세를 보여, 2010년 3월에는 24%에 이르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p 정도 상승하였다.
장기적으로 볼 때 M1, M2, Lf의 연평균 증가율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1992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전년동기 대비 각 통화지표의 증가율을 보면, M1은 12.8.%, M2는 13.4%. Lf는 13.0%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보면 단기와 장기 금융시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경기변동, 금리변화 등에 따라서 각 통화지표의 움직임은 크게 달랐다. <그림 3>을 보면 M1은 상대적으로 단기금리인 콜금리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M2는 콜금리보다는 경기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변동폭도 M1이 가장 컸고, 그 다음으로 M2, Lf 순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의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M2 증가율은 크게 높지 않고, M1의 상승률이 높은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정책금리가 2%로 낮게 유지되는 것이 M1의 상승률이 높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1999년 이후 단기금리를 정책수단으로 변경하게 되면서, 중앙은행은 단기금리가 정책금리의 일정 범위에서 유지되도록 자금의 과부족을 조절한다. 결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중심으로 단기금리가 변동할 수 있도록 통화량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M1의 증가율이 높은 것이다.
반면 M2 증가율이 다소 낮은 이유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차이가 크지 않으니 장기금리가 올라갈 때까지 단기로 자금을 예치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M2 증가율은 낮고 M1 증가율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중자금의 단기화가 예금자 및 투자자들이 수익률이 낮은 장기금융상품을 기피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더라도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단기로 조달하여 장기로 운용)이 원활히 작동한다면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단기화 현상이 투자 및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여 대출수요가 감소하면서 나타난 것이라면 경제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우려해야 할 수도 있다.
거래적, 투기적 요인으로 M1/M2 비율 상승
<그림 4>는 M1/M2 비율의 변동을 거래적, 예비적, 투기적 동기의 세 가지 요인으로 분해한 것이다. 그림에 따르면 거래적 요인에 따른 M1/M2 비율의 변동은 경기종합지수 동행지수의 변동과 일치한다. 그리고 예비적 요인에 의한 변동은 거래적 요인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투기적인 요인에 의한 변동은 다른 요인에 의한 변동보다는 크지 않고, 여타 요인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최근 M1/M2 비율의 변동은 우선 경기가 회복되면서 거래적 요인에 의해서 M1/M2 비율이 상승한 결과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예비적 요인에 의한 변동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서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투기적 수요는 장단기 금리 차이의 축소에 따라서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의 세 가지 요인 이외에도 최근의 M1/M2 비율의 상승과 시중금리 하락에는 외국인 채권투자 확대와 대출 수요 감소에 따른 은행권의 자금운용의 변화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국인 채권투자는 단기금리보다는 장기금리를 떨어뜨리고, 장기금리의 하락은 단기금융시장으로의 쏠림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우리나라 채권의 수익률 수준보다는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수익률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금리하락은 전 세계적인 저금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09년까지 크게 증가하였던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이 2010년 들어 크게 축소되고 있는 것도 시중금리 하락과 단기화의 주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1~3월 중 은행의 가계와 중소기업 대출은 3.9조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의 34% 수준(2009년 1~3월중 11.4조원)에 그쳤다. 가계대출은 대출기준금리의 변경, 주택가격 약세지속 등으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으며, 중소기업 대출은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정부의 보증비율 축소, 신용위험 가능성 증대 등으로 은행들이 대출에 소극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은행들이 정기예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였지만 대출 등 자금운용이 여의치 않자 일부 자금을 단기로 운용하는 것도 금융시장 내 단기화 경향에 일조하고 있다.
각 요인별 수요와 자산가격과의 관계
M1/M2 비율을 거래적, 예비적, 투기적 요인으로 분해한 결과와 주가수익률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주가수익률과 세 요인들 간에는 장기적인 관계(공적분)가 있었다. 우선 주가수익률은 거래적 요인이 증가하면 상승하였다. 거래적 동기의 화폐수요 증가는 경기회복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주가와 거래적 화폐수요가 정(+)의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예비적 요인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거래적 수요와는 반대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자산은 처분하고 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을 보유하려는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투기적 요인의 증가는 향후 금리 상승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나타는 현상이므로 주식수익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수익률과는 달리 주택가격 상승률과 세 요인들 사이에는 장기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공적분 관계가 없었음). 이는 주택가격의 변화가 경기 및 이자율 변화 이외에 정부의 세제 및 금융규제, 주택수요자의 구매심리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택가격과 개별 요인들간의 선행관계를 살펴보면 거래적 요인은 주택가격 상승률에 3~4개월 정(+)의 관계로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예비적 요인도 주택가격 상승률에 마찬가지로 3~4개월 부(-)의 관계로 선행하였다. 이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득이 증가하고, 불확실성도 줄어들면 주택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투기적 수요는 오히려 주택가격 상승률에 12개월 정도 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격이 일정 기간 상승한 후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단기 금융시장으로의 쏠림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산가격 급등 가능성은 낮은 듯
최근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금리하락과 자금의 단기화 현상을 통화량 분석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우선 M1 증가율이 M2보다 높은 현상이 단순히 ‘고수익 투자처를 기다리는 대기수요(투기적 수요)’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경기회복이 가시화되고 결제수요가 늘어나면서 M1/M2 비율이 상승한 측면이 크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정책적인 고려가 M1/M2 비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정책금리 인상 기대가 상당 기간 미뤄지면서 장기금리가 하락하고 그에 따라 금융시장 내 단기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외국인 채권투자의 확대와 대출 수요의 감소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근의 M1/M2 비율의 상승은 국제적인 저금리에 따른 외국인 채권투자, 정책금리 인상 기대의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산배분, 경제 전반의 대출감소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상이 주택 등의 자산 가격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90년에 비해 99년 이후 M1, M2 증가율 격차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주택가격의 상승도 높았던 점을 감안할 때 시중자금의 단기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는지를 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끝>
시중자금이 단기금융시장으로 쏠리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의 금융시장 단기화는 경기회복과 장단기금리 차이축소에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며, 우려되는 바와 같이 자산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4월 이후 국고채를 중심으로 시중금리가 크게 하락하고, MMF, CMA 등의 단기금융상품 잔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9년말 4.41%이던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5월초에는 3.71%까지 하락하였고(AA- 등급p,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도 5.53%에서 4.48%로 하락하였다. 이와 같은 시중금리 하락세는 예금금리로까지 파급되어 6개월~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3.76%(2009년 12월)에서 3.26%(2010년 3월)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중금리 하락세와 더불어 단기금융부문으로 시중자금이 이동하면서 2010년 1월말 68.9조원이던 MMF 잔액은 5월 4일 현재 79.8조원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시중금리 하락과 시중자금의 단기화 경향의 폐해를 우려한다.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로 인해 경제주체들이 수익창출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게 되면, 자산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단기화 현상의 원인을 통화수요의 측면에서 분석하여 최근의 상황을 진단하고자 한다.
금융시장의 단기화 현상 심화
우선 최근 금융시장 상황을 여러 통화지표를 통해서 살펴보자. 현금, 결제성 예금, MMF 등으로 구성된 협의의 통화인 M1은 2009년 3월 이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2010년 15.3% 증가) 반면 광의의 통화인 M2 증가율은 9%에 머물고 있으며 M2보다 만기가 길고 현금으로 전환시 원금의 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기관 유동성(이하 Lf)의 경우도 6%대의 낮은 증가율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만기가 짧은 금융상품으로 구성된 M1의 증가율은 높고,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통화지표(M2, Lf 등)의 증가율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시중자금이 단기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M1/M2 비율도 2009년 3월 이후 상승 추세를 보여, 2010년 3월에는 24%에 이르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p 정도 상승하였다.
장기적으로 볼 때 M1, M2, Lf의 연평균 증가율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1992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전년동기 대비 각 통화지표의 증가율을 보면, M1은 12.8.%, M2는 13.4%. Lf는 13.0%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보면 단기와 장기 금융시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경기변동, 금리변화 등에 따라서 각 통화지표의 움직임은 크게 달랐다. <그림 3>을 보면 M1은 상대적으로 단기금리인 콜금리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M2는 콜금리보다는 경기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변동폭도 M1이 가장 컸고, 그 다음으로 M2, Lf 순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의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M2 증가율은 크게 높지 않고, M1의 상승률이 높은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정책금리가 2%로 낮게 유지되는 것이 M1의 상승률이 높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1999년 이후 단기금리를 정책수단으로 변경하게 되면서, 중앙은행은 단기금리가 정책금리의 일정 범위에서 유지되도록 자금의 과부족을 조절한다. 결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중심으로 단기금리가 변동할 수 있도록 통화량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M1의 증가율이 높은 것이다.
반면 M2 증가율이 다소 낮은 이유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차이가 크지 않으니 장기금리가 올라갈 때까지 단기로 자금을 예치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M2 증가율은 낮고 M1 증가율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중자금의 단기화가 예금자 및 투자자들이 수익률이 낮은 장기금융상품을 기피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더라도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단기로 조달하여 장기로 운용)이 원활히 작동한다면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단기화 현상이 투자 및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여 대출수요가 감소하면서 나타난 것이라면 경제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우려해야 할 수도 있다.
거래적, 투기적 요인으로 M1/M2 비율 상승
<그림 4>는 M1/M2 비율의 변동을 거래적, 예비적, 투기적 동기의 세 가지 요인으로 분해한 것이다. 그림에 따르면 거래적 요인에 따른 M1/M2 비율의 변동은 경기종합지수 동행지수의 변동과 일치한다. 그리고 예비적 요인에 의한 변동은 거래적 요인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투기적인 요인에 의한 변동은 다른 요인에 의한 변동보다는 크지 않고, 여타 요인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최근 M1/M2 비율의 변동은 우선 경기가 회복되면서 거래적 요인에 의해서 M1/M2 비율이 상승한 결과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예비적 요인에 의한 변동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서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투기적 수요는 장단기 금리 차이의 축소에 따라서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의 세 가지 요인 이외에도 최근의 M1/M2 비율의 상승과 시중금리 하락에는 외국인 채권투자 확대와 대출 수요 감소에 따른 은행권의 자금운용의 변화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국인 채권투자는 단기금리보다는 장기금리를 떨어뜨리고, 장기금리의 하락은 단기금융시장으로의 쏠림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우리나라 채권의 수익률 수준보다는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수익률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금리하락은 전 세계적인 저금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09년까지 크게 증가하였던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이 2010년 들어 크게 축소되고 있는 것도 시중금리 하락과 단기화의 주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1~3월 중 은행의 가계와 중소기업 대출은 3.9조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의 34% 수준(2009년 1~3월중 11.4조원)에 그쳤다. 가계대출은 대출기준금리의 변경, 주택가격 약세지속 등으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으며, 중소기업 대출은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정부의 보증비율 축소, 신용위험 가능성 증대 등으로 은행들이 대출에 소극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은행들이 정기예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였지만 대출 등 자금운용이 여의치 않자 일부 자금을 단기로 운용하는 것도 금융시장 내 단기화 경향에 일조하고 있다.
각 요인별 수요와 자산가격과의 관계
M1/M2 비율을 거래적, 예비적, 투기적 요인으로 분해한 결과와 주가수익률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주가수익률과 세 요인들 간에는 장기적인 관계(공적분)가 있었다. 우선 주가수익률은 거래적 요인이 증가하면 상승하였다. 거래적 동기의 화폐수요 증가는 경기회복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주가와 거래적 화폐수요가 정(+)의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예비적 요인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거래적 수요와는 반대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자산은 처분하고 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을 보유하려는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투기적 요인의 증가는 향후 금리 상승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나타는 현상이므로 주식수익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수익률과는 달리 주택가격 상승률과 세 요인들 사이에는 장기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공적분 관계가 없었음). 이는 주택가격의 변화가 경기 및 이자율 변화 이외에 정부의 세제 및 금융규제, 주택수요자의 구매심리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택가격과 개별 요인들간의 선행관계를 살펴보면 거래적 요인은 주택가격 상승률에 3~4개월 정(+)의 관계로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예비적 요인도 주택가격 상승률에 마찬가지로 3~4개월 부(-)의 관계로 선행하였다. 이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득이 증가하고, 불확실성도 줄어들면 주택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투기적 수요는 오히려 주택가격 상승률에 12개월 정도 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격이 일정 기간 상승한 후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단기 금융시장으로의 쏠림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산가격 급등 가능성은 낮은 듯
최근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금리하락과 자금의 단기화 현상을 통화량 분석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우선 M1 증가율이 M2보다 높은 현상이 단순히 ‘고수익 투자처를 기다리는 대기수요(투기적 수요)’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경기회복이 가시화되고 결제수요가 늘어나면서 M1/M2 비율이 상승한 측면이 크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정책적인 고려가 M1/M2 비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정책금리 인상 기대가 상당 기간 미뤄지면서 장기금리가 하락하고 그에 따라 금융시장 내 단기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외국인 채권투자의 확대와 대출 수요의 감소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근의 M1/M2 비율의 상승은 국제적인 저금리에 따른 외국인 채권투자, 정책금리 인상 기대의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산배분, 경제 전반의 대출감소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상이 주택 등의 자산 가격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90년에 비해 99년 이후 M1, M2 증가율 격차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주택가격의 상승도 높았던 점을 감안할 때 시중자금의 단기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는지를 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끝>
◎소니 사례에서 배우는 계획의 오류
LG경제연구원 '소니 사례에서 배우는 계획의 오류'
계획 오류란 현실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계획 오류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성향에서 발생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 기업 환경에서, 계획 오류는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소니의 사례로부터 계획 오류의 위험과 예방책에 대해 생각해 본다.
'10일 오후 3시 30분 군 최고사령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해군부대는 6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알류샨 열도에 있는 적의 거점과 주변 일대를 급습하는 공격을 펼쳤다. 한편 5일에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적 근거지인 미드웨이 섬 공군기지에 공습을 감행했고, 지원하러 오던 미국 함대에 맹공을 퍼부어 적 항공모함과 주요 군사시설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1942년 6월 11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난 기사다. 이 신문은 태평양 전황은 이 전투로 결판이 났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도 미드웨이 해전의 승전보를 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일어났다. 진주만 공습이래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완패했다. 이 전쟁은 태평양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인해 그때까지 미군에 우위를 보이던 일본군의 전력과 사기가 일거에 뒤집힌다. 이는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토록 중요한 전투였기에 국민들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당시 일본군의 전력은 미군에 비해서 월등히 앞서 있었다. 북태평양에서 작전을 펼치는 일본 해군 함정은 항공모함 여덟 척을 비롯해 200척이나 되었고, 항공기는 700여기를 넘었다. 여기에 일본 해군은 세계 최고 성능의 비행기, 사정거리가 가장 긴 장거리포, 최고 정확도의 어뢰 등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미군은 진주만 기습의 여파로 사용할 수 있는 전함은 한 척도 없었으며 제대로 된 항공모함은 두 척에 불과했다. 더욱이 일본 조종사들은 진주만 공습을 경험한 베테랑들이었고 미군 조종사들은 기량이 부족한 신참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적인 화력에서도 세 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조종사들의 숙련도를 감안하면 일본군의 전력이 미군보다 대여섯 배 높았다. 험준한 산악이나 해류가 뒤엉킨 복잡한 섬에서의 전투가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에서의 싸움은 전략보다 전력 싸움이다. 항공모함끼리 서로 화력 대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질 수 없었다.
도대체 일본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일본군의 계획 오류
일본군의 계획은 치밀했다. 애초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습에서 진주만 공습 때 잡지 못했던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1단계 : 알래스카 근처의 알류샨 열도를 침공함 으로써 미군의 관심을 돌린다.
2단계 : 미드웨이 기지에 있는 항공기와 시설에 공습을 가해 화력을 무력화시킨다.
3단계 : 미드웨이 점령을 듣고 달려온 미군 항공모함을 폭격기로 공격하여 격침시킨다.
그런데 일본군이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군 내에 수학자들로 구성된 암호해독반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했던 것이다. 미군은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할 일본군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미군은 알류샨 열도에 있는 기지를 포기했다. 미드웨이에서도 항공기를 철수시키고, 항공모함은 미리 출격하여 섬 북쪽에서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군은 1차 공습에서 미드웨이 기지를 완전히 전소하지 못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반격했다.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 사령관은 무언가 상서롭지 않은 조짐을 느꼈다. 그러나 계획을 중시하던 나구모는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하려는 목적을 위해 2차 폭격을 준비했다. 이때 정찰기가 미군 항공모함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 사령관은 혼란에 빠졌다.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할 때까지 미군 항공모함은 나타나면 안되는 것이었다. 미드웨이 기지 점령을 위해 공습을 지속할지, 미군 항공모함과는 어떻게 싸울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미군 전투기들이 일본 항공모함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구모는 부랴부랴 항공모함에 대한 공격을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네 척의 일본 항공모함 전투기들은 모두 육지를 공격하기 위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 폭탄을 어뢰로 교체하는 등 함정공격용으로 즉시 무장을 전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항공모함 갑판 위에 폭탄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미드웨이를 공격하고 돌아오는 공격대를 착륙시키기 위해 함정공격용으로 무장한 전투기들을 즉각 출격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미군의 전투기가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했다. 기량이 부족한 대부분의 미군 전투기는 일본군의 공격에 격침되었지만 한두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이 일본 항공모함에 떨어졌다. 이것이 갑판 위에 가득한 폭탄, 연료와 함께 폭발하여 항공모함 네 척이 모두 격침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항공모함 네 척과 순양함 한 척을 잃고, 항공기 300대가 격추당했으며 3천명이 넘는 해군이 사망했다. 이 전투로 전쟁 종식이 1년 이상 앞당겨졌다고 한다.
미드웨이 해전은 계획과 현실이 다르게 나타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준다. 계획과 다른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보여준다.
더불어 미드웨이 해전은 인간이 세우는 계획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계획과 현실 사이에 수많은 변수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예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람들은 현재의 정보만을 토대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보다 보니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낙관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성향을 심리학에서는 계획의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른다.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계획 오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계획을 그때그때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데, 일본군이 그랬듯이 많은 조직에서 계획을 고수하다가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범했던 실수가 50년이 지난 후 일본 최고 기업인 소니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소니의 계획
1995년 이데이 노부유키는 오가 노리오의 후계자로 사장에 취임한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 그리고 모리타가 일찍 발굴하여 경영자로 키운 오가에 이어, 실질적인 네 번째 CEO였다. 이데이는 앞으로 소니가 당면할 경영환경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까지 소니는 아날로그 기술로 세계를 재패했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미국시장을 공략했고, 트리니트론 TV, 워크맨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으며, CD와 MD를 개발하여 음반 산업을 발전시켰다. 세계 최고의 AV(오디오·비디오) 기술을 가지고 있던 회사였다. 또 영화사와 음반사를 인수하여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소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최고 회사였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이 가전과 오락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취임 후 처음 맞이한 연례 경영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데이 사장은 2천명의 소니 간부들 앞에서 ‘제2의 창업(Regeneration)’을 주창했다. 앞으로 소니는 디지털 시대에서 자랐고 디지털 기술에 친숙한 고객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독창적이고 재미가 넘치는 상품을 계속 만들어가자고 하면서,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했다.
단순히 디지털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것이 아니다. 향후 네트워크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고 소니의 제품을 연결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즐거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0년대 미리 10년을 내다보고 Connect, Synergy, Hub로 이어지는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 1단계: Connect
소니는 콘텐츠,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유통, 콘텐츠를 재생하는 기기를 모두 연결하여 소비자들이 더 쉽고 편리하게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소니는 영화와 음악, 게임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풍부했다. 이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켰다. 이렇게 전환된 디지털 콘텐츠를 방송이나 인터넷, 연결매체, 케이블 TV 등을 통해서 전달하기 위해, 1995년 인터넷 접속회사인 소네트를 설립하였고, 스카이 퍼펙트 TV를 통해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에도 진출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애플보다 먼저 온라인 음악상점인 프레스플레이(Pressplay)를 통해 음악 다운로드를 가능하게 했다. 또 에버퀘스트(EverQuest)를 통해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러한 콘텐츠를 소니의 TV, 오디오, 휴대용 미디어 기기, 게임기 등을 통해 재생하게 하는 것이다. 소니가 1997년 바이오(VAIO)라는 브랜드로 PC 사업에 뛰어든 것도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를 연결하는데 컴퓨터가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메모리스틱, AV 제품과 PC를 연결시켜주는 아이링크(i.Link) 등을 개발한 것도 가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이동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2단계: Synergy
소니의 제품들이 연결되면 점유율이 높은 소니의 제품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것도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연결과 점유율 확대가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가령 소니의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에서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바이오와 연결하면 곧바로 재생할 수 있고 프린트까지 할 수 있다. 다른 컴퓨터로는 이처럼 편리하게 소니의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자연스레 바이오를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가전제품과 콘텐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도 점차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되면 소니 제품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소니 제품과 서비스의 연결망에 묶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생각은 창업자인 모리타 회장 때부터 있었다. 모리타는 1970년대 기술적으로 우수한 베타맥스의 실패를 돌이켜 보면서, 그때 영화나 텔레비전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VHS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러한 모리타의 염원이 CBS 레코드와 콜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하게 만든 것이다.
● 3단계: Hub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가정에 소니의 제품이 중심이 되는 디지털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니가 구상하는 홈 네트워크는 디지털 방송이나 지상파, 인터넷 등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는 많은 양의 정보를 홈 서버에 축적하여 소비자가 원할 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콘텐츠를 소니의 TV,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 카 미디어 같은 다양한 AV 기기를 연결하여 즐길 수 있게 된다면 다양한 수익 모델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소니 왕국이 건설되면 장차 디지털 시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소니의 현실
그러나 현실은 소니의 생각과 달랐다. 소니의 콘텐츠와 제품, 서비스를 연결하면 취약한 제품의 판매도 따라 올라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가령 2004년 아이팟에 대응하는 디지털 음악플레이어를 출시했을 때 MP3 포맷이 아닌 독자적인 디지털 음악 포맷인 ATRAC 파일만 재생되도록 했다. 자체적으로 음악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 복제나 공유가 쉽지 않은 독자 포맷을 가져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MP3 음악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제품으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았다. 제품은 실패했고, 프레스플레이를 통해 소니의 음원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거의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바이오가 아닌 다른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바이오하고만 연결되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했다. 점유율이 낮은 제품이 인기 있는 제품의 판매를 끌어내린 꼴이 되었다.
체인의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체인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체인의 법칙이다. 수많은 부품 중에서 가장 약한 부품의 품질이 우주선의 안전을 결정하는 사례 등에 적용된다. 그런데 이 법칙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나타난다.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도 연결되는 순간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전체 네트워크의 품질과 만족도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제품을 연결하는 단계에서 소니가 생각하던 그림이 현실화되지 않자, 다음 단계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물거품이 되었다.
소니의 실수
그러면 소니의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가?
● 너무 앞서갔다
소니가 예상한 방향은 맞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너무 앞서서 바라보았다. 이데이 사장은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의 미래에 관한 연설 도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TV 한대에 10엔이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회사의 기술력에 따라 제품마다 커다란 차이가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건 차이가 없어질 것이었다. 결국 하드웨어로는 차별화시키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디지털 TV 산업도 부품이 모듈화되고 범용화됨에 따라 컴퓨터 산업처럼 수평 분화되리라고 생각하여 당시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던 LCD나 PDP에 투자하지 않았다. TV 생산에 필요한 부품은 다른 회사에서 공급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훨씬 앞선 기술인 OLED에 투자했다. 하지만 현실은 LCD TV가 대중화되어 수요가 폭발했다. LCD 모듈을 자체 생산하지 않았던 소니는 TV 수요에 즉시 대응하지 못하여 한국기업에게 시장 지위를 내주게 되었다. 반면 OLED는 오랜 기간 상품화되지 않아 투자비를 회수하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간 실수를 했다.
● 너무 구체적이었다
컨텐츠와 소프트파워가 중요해질 거라는 소니의 계획은 들어맞았다. 하지만 소니는 모든 영역에서 너무나 장기적이면서도 자세한 그림을 그렸다. 소니가 구축하려고 하는 디지털 허브는 AV 제품뿐만 아니라 미디어, 게임, 정보통신 등 다양한 기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영역의 기술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니는 네트워크 전략을 세우던 당시의 기술로 모든 것을 엮으려고 했지만 현실은 다르게 진화되었다.
가령 홈 서버에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려던 소니의 계획은 인터넷의 발달로 저장매체의 중요성이 감소하여 사업성이 줄어들었다. 메모리스틱이나 아이링크로 디지털 기기를 연결하려던 계획은 산업의 표준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여 무용지물이 되었다. 미래의 기술 변화를 하나하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소니는 이를 시도했다.
즉 10년의 계획이 너무 구체적이었던 것이 또 다른 실수였다.
● 너무 자신만만했다
당시 소니는 일등 기업이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했다. 소니는 콘텐츠부터 플랫폼, 혁신적인 제품까지 엔터테인먼트 관련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왕국 안에서 소비자들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MP3 음악을 듣는 추세 속에서도 독자적인 포맷을 제시하여 소비자들을 이끌려고 했다.
더욱이 소니와 같은 일본기업이 잘나가는 것에 대해서 글로벌 경쟁기업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시기와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최근 도요타 제품 불량 사태에서 미국 사회가 보여준 것처럼, 시기의 대상이 된 기업은 약점을 보이면 더 크게 다친다. 소니가 사업에서 오만함을 보이자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경쟁기업들마저 점차적으로 소니의 반대세력이 된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우월한 전력과 우수한 군사를 보유한 일본군이 미군을 얕보는 실수를 범한 것처럼, 소니 역시 겸손하지 못하고 자만에 빠진 것이 큰 실수였다.
조령모개를 잘하는 기업
“전투란 착오의 연속으로, 착오를 적게 저지른 쪽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 것인지, 이에 대한 우리 대응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확실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게임의 참가자는 착오의 연속에 직면하게 된다.”
지식경영의 대가 노나카를 비롯한 일본의 군사학자들이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분석한 책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착오란 계획과 현실의 차이다. 불가피한 것이다. 전쟁은 착오의 싸움이다. 누가 착오를 적게 범하느냐의 싸움이며, 착오를 범하더라도 얼마나 빨리 이를 줄이느냐의 싸움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알류샨 열도를 구하기 위해 미군이 그쪽으로 몰려가지 않았으며, 항공모함이 진주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은 착오가 발생했는데도 계획을 고수하려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평생 계획의 실천에 목숨을 바쳤던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는 결국 자결한다.
앞으로 경영환경은 전쟁터처럼 예측이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만큼 계획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 계획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은 계획이란 항상 변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부터다.
모방에서 혁신으로 도약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저마다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다각화된 제품을 결합하고 서비스를 융합하여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자 컨버전스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아마 그동안 한국기업이 GE와 같은 기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GE는 한국기업처럼 다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술, 금융, 비즈니스 모델 등을 결합하여 차별화된 솔루션을 만들어 성공했다. 하지만 GE는 B2B 회사다.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한두 경쟁자와 싸운다.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소비재 회사는 다르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과 수많은 경쟁자들이 모인 곳에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지금 한국기업은 10여 년 전 소니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소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너무 앞서가거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마도 소비자가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컨버전스 전략은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주는 과정에서 여러 서비스가 차곡차곡 쌓였을 때 만들어 질 수 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란 말을 재해석해야 할 지 모른다. 조령모개란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으로,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함을 꼬집는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령모개를 잘하는 것도 기업의 새로운 역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끝>
계획 오류란 현실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계획 오류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성향에서 발생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 기업 환경에서, 계획 오류는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소니의 사례로부터 계획 오류의 위험과 예방책에 대해 생각해 본다.
'10일 오후 3시 30분 군 최고사령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해군부대는 6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알류샨 열도에 있는 적의 거점과 주변 일대를 급습하는 공격을 펼쳤다. 한편 5일에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적 근거지인 미드웨이 섬 공군기지에 공습을 감행했고, 지원하러 오던 미국 함대에 맹공을 퍼부어 적 항공모함과 주요 군사시설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1942년 6월 11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난 기사다. 이 신문은 태평양 전황은 이 전투로 결판이 났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도 미드웨이 해전의 승전보를 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일어났다. 진주만 공습이래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완패했다. 이 전쟁은 태평양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인해 그때까지 미군에 우위를 보이던 일본군의 전력과 사기가 일거에 뒤집힌다. 이는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토록 중요한 전투였기에 국민들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당시 일본군의 전력은 미군에 비해서 월등히 앞서 있었다. 북태평양에서 작전을 펼치는 일본 해군 함정은 항공모함 여덟 척을 비롯해 200척이나 되었고, 항공기는 700여기를 넘었다. 여기에 일본 해군은 세계 최고 성능의 비행기, 사정거리가 가장 긴 장거리포, 최고 정확도의 어뢰 등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미군은 진주만 기습의 여파로 사용할 수 있는 전함은 한 척도 없었으며 제대로 된 항공모함은 두 척에 불과했다. 더욱이 일본 조종사들은 진주만 공습을 경험한 베테랑들이었고 미군 조종사들은 기량이 부족한 신참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적인 화력에서도 세 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조종사들의 숙련도를 감안하면 일본군의 전력이 미군보다 대여섯 배 높았다. 험준한 산악이나 해류가 뒤엉킨 복잡한 섬에서의 전투가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에서의 싸움은 전략보다 전력 싸움이다. 항공모함끼리 서로 화력 대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질 수 없었다.
도대체 일본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일본군의 계획 오류
일본군의 계획은 치밀했다. 애초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습에서 진주만 공습 때 잡지 못했던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1단계 : 알래스카 근처의 알류샨 열도를 침공함 으로써 미군의 관심을 돌린다.
2단계 : 미드웨이 기지에 있는 항공기와 시설에 공습을 가해 화력을 무력화시킨다.
3단계 : 미드웨이 점령을 듣고 달려온 미군 항공모함을 폭격기로 공격하여 격침시킨다.
그런데 일본군이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군 내에 수학자들로 구성된 암호해독반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했던 것이다. 미군은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할 일본군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미군은 알류샨 열도에 있는 기지를 포기했다. 미드웨이에서도 항공기를 철수시키고, 항공모함은 미리 출격하여 섬 북쪽에서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군은 1차 공습에서 미드웨이 기지를 완전히 전소하지 못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반격했다.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 사령관은 무언가 상서롭지 않은 조짐을 느꼈다. 그러나 계획을 중시하던 나구모는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하려는 목적을 위해 2차 폭격을 준비했다. 이때 정찰기가 미군 항공모함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 사령관은 혼란에 빠졌다.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할 때까지 미군 항공모함은 나타나면 안되는 것이었다. 미드웨이 기지 점령을 위해 공습을 지속할지, 미군 항공모함과는 어떻게 싸울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미군 전투기들이 일본 항공모함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구모는 부랴부랴 항공모함에 대한 공격을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네 척의 일본 항공모함 전투기들은 모두 육지를 공격하기 위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 폭탄을 어뢰로 교체하는 등 함정공격용으로 즉시 무장을 전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항공모함 갑판 위에 폭탄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미드웨이를 공격하고 돌아오는 공격대를 착륙시키기 위해 함정공격용으로 무장한 전투기들을 즉각 출격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미군의 전투기가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했다. 기량이 부족한 대부분의 미군 전투기는 일본군의 공격에 격침되었지만 한두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이 일본 항공모함에 떨어졌다. 이것이 갑판 위에 가득한 폭탄, 연료와 함께 폭발하여 항공모함 네 척이 모두 격침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항공모함 네 척과 순양함 한 척을 잃고, 항공기 300대가 격추당했으며 3천명이 넘는 해군이 사망했다. 이 전투로 전쟁 종식이 1년 이상 앞당겨졌다고 한다.
미드웨이 해전은 계획과 현실이 다르게 나타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준다. 계획과 다른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보여준다.
더불어 미드웨이 해전은 인간이 세우는 계획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계획과 현실 사이에 수많은 변수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예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람들은 현재의 정보만을 토대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보다 보니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낙관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성향을 심리학에서는 계획의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른다.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계획 오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계획을 그때그때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데, 일본군이 그랬듯이 많은 조직에서 계획을 고수하다가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범했던 실수가 50년이 지난 후 일본 최고 기업인 소니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소니의 계획
1995년 이데이 노부유키는 오가 노리오의 후계자로 사장에 취임한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 그리고 모리타가 일찍 발굴하여 경영자로 키운 오가에 이어, 실질적인 네 번째 CEO였다. 이데이는 앞으로 소니가 당면할 경영환경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까지 소니는 아날로그 기술로 세계를 재패했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미국시장을 공략했고, 트리니트론 TV, 워크맨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으며, CD와 MD를 개발하여 음반 산업을 발전시켰다. 세계 최고의 AV(오디오·비디오) 기술을 가지고 있던 회사였다. 또 영화사와 음반사를 인수하여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소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최고 회사였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이 가전과 오락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취임 후 처음 맞이한 연례 경영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데이 사장은 2천명의 소니 간부들 앞에서 ‘제2의 창업(Regeneration)’을 주창했다. 앞으로 소니는 디지털 시대에서 자랐고 디지털 기술에 친숙한 고객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독창적이고 재미가 넘치는 상품을 계속 만들어가자고 하면서,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했다.
단순히 디지털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것이 아니다. 향후 네트워크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고 소니의 제품을 연결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즐거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0년대 미리 10년을 내다보고 Connect, Synergy, Hub로 이어지는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 1단계: Connect
소니는 콘텐츠,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유통, 콘텐츠를 재생하는 기기를 모두 연결하여 소비자들이 더 쉽고 편리하게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소니는 영화와 음악, 게임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풍부했다. 이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켰다. 이렇게 전환된 디지털 콘텐츠를 방송이나 인터넷, 연결매체, 케이블 TV 등을 통해서 전달하기 위해, 1995년 인터넷 접속회사인 소네트를 설립하였고, 스카이 퍼펙트 TV를 통해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에도 진출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애플보다 먼저 온라인 음악상점인 프레스플레이(Pressplay)를 통해 음악 다운로드를 가능하게 했다. 또 에버퀘스트(EverQuest)를 통해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러한 콘텐츠를 소니의 TV, 오디오, 휴대용 미디어 기기, 게임기 등을 통해 재생하게 하는 것이다. 소니가 1997년 바이오(VAIO)라는 브랜드로 PC 사업에 뛰어든 것도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를 연결하는데 컴퓨터가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메모리스틱, AV 제품과 PC를 연결시켜주는 아이링크(i.Link) 등을 개발한 것도 가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이동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2단계: Synergy
소니의 제품들이 연결되면 점유율이 높은 소니의 제품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것도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연결과 점유율 확대가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가령 소니의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에서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바이오와 연결하면 곧바로 재생할 수 있고 프린트까지 할 수 있다. 다른 컴퓨터로는 이처럼 편리하게 소니의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자연스레 바이오를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가전제품과 콘텐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도 점차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되면 소니 제품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소니 제품과 서비스의 연결망에 묶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생각은 창업자인 모리타 회장 때부터 있었다. 모리타는 1970년대 기술적으로 우수한 베타맥스의 실패를 돌이켜 보면서, 그때 영화나 텔레비전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VHS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러한 모리타의 염원이 CBS 레코드와 콜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하게 만든 것이다.
● 3단계: Hub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가정에 소니의 제품이 중심이 되는 디지털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니가 구상하는 홈 네트워크는 디지털 방송이나 지상파, 인터넷 등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는 많은 양의 정보를 홈 서버에 축적하여 소비자가 원할 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콘텐츠를 소니의 TV,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 카 미디어 같은 다양한 AV 기기를 연결하여 즐길 수 있게 된다면 다양한 수익 모델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소니 왕국이 건설되면 장차 디지털 시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소니의 현실
그러나 현실은 소니의 생각과 달랐다. 소니의 콘텐츠와 제품, 서비스를 연결하면 취약한 제품의 판매도 따라 올라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가령 2004년 아이팟에 대응하는 디지털 음악플레이어를 출시했을 때 MP3 포맷이 아닌 독자적인 디지털 음악 포맷인 ATRAC 파일만 재생되도록 했다. 자체적으로 음악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 복제나 공유가 쉽지 않은 독자 포맷을 가져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MP3 음악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제품으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았다. 제품은 실패했고, 프레스플레이를 통해 소니의 음원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거의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바이오가 아닌 다른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바이오하고만 연결되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했다. 점유율이 낮은 제품이 인기 있는 제품의 판매를 끌어내린 꼴이 되었다.
체인의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체인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체인의 법칙이다. 수많은 부품 중에서 가장 약한 부품의 품질이 우주선의 안전을 결정하는 사례 등에 적용된다. 그런데 이 법칙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나타난다.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도 연결되는 순간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전체 네트워크의 품질과 만족도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제품을 연결하는 단계에서 소니가 생각하던 그림이 현실화되지 않자, 다음 단계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물거품이 되었다.
소니의 실수
그러면 소니의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가?
● 너무 앞서갔다
소니가 예상한 방향은 맞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너무 앞서서 바라보았다. 이데이 사장은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의 미래에 관한 연설 도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TV 한대에 10엔이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회사의 기술력에 따라 제품마다 커다란 차이가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건 차이가 없어질 것이었다. 결국 하드웨어로는 차별화시키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디지털 TV 산업도 부품이 모듈화되고 범용화됨에 따라 컴퓨터 산업처럼 수평 분화되리라고 생각하여 당시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던 LCD나 PDP에 투자하지 않았다. TV 생산에 필요한 부품은 다른 회사에서 공급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훨씬 앞선 기술인 OLED에 투자했다. 하지만 현실은 LCD TV가 대중화되어 수요가 폭발했다. LCD 모듈을 자체 생산하지 않았던 소니는 TV 수요에 즉시 대응하지 못하여 한국기업에게 시장 지위를 내주게 되었다. 반면 OLED는 오랜 기간 상품화되지 않아 투자비를 회수하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간 실수를 했다.
● 너무 구체적이었다
컨텐츠와 소프트파워가 중요해질 거라는 소니의 계획은 들어맞았다. 하지만 소니는 모든 영역에서 너무나 장기적이면서도 자세한 그림을 그렸다. 소니가 구축하려고 하는 디지털 허브는 AV 제품뿐만 아니라 미디어, 게임, 정보통신 등 다양한 기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영역의 기술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니는 네트워크 전략을 세우던 당시의 기술로 모든 것을 엮으려고 했지만 현실은 다르게 진화되었다.
가령 홈 서버에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려던 소니의 계획은 인터넷의 발달로 저장매체의 중요성이 감소하여 사업성이 줄어들었다. 메모리스틱이나 아이링크로 디지털 기기를 연결하려던 계획은 산업의 표준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여 무용지물이 되었다. 미래의 기술 변화를 하나하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소니는 이를 시도했다.
즉 10년의 계획이 너무 구체적이었던 것이 또 다른 실수였다.
● 너무 자신만만했다
당시 소니는 일등 기업이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했다. 소니는 콘텐츠부터 플랫폼, 혁신적인 제품까지 엔터테인먼트 관련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왕국 안에서 소비자들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MP3 음악을 듣는 추세 속에서도 독자적인 포맷을 제시하여 소비자들을 이끌려고 했다.
더욱이 소니와 같은 일본기업이 잘나가는 것에 대해서 글로벌 경쟁기업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시기와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최근 도요타 제품 불량 사태에서 미국 사회가 보여준 것처럼, 시기의 대상이 된 기업은 약점을 보이면 더 크게 다친다. 소니가 사업에서 오만함을 보이자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경쟁기업들마저 점차적으로 소니의 반대세력이 된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우월한 전력과 우수한 군사를 보유한 일본군이 미군을 얕보는 실수를 범한 것처럼, 소니 역시 겸손하지 못하고 자만에 빠진 것이 큰 실수였다.
조령모개를 잘하는 기업
“전투란 착오의 연속으로, 착오를 적게 저지른 쪽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 것인지, 이에 대한 우리 대응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확실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게임의 참가자는 착오의 연속에 직면하게 된다.”
지식경영의 대가 노나카를 비롯한 일본의 군사학자들이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분석한 책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착오란 계획과 현실의 차이다. 불가피한 것이다. 전쟁은 착오의 싸움이다. 누가 착오를 적게 범하느냐의 싸움이며, 착오를 범하더라도 얼마나 빨리 이를 줄이느냐의 싸움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알류샨 열도를 구하기 위해 미군이 그쪽으로 몰려가지 않았으며, 항공모함이 진주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은 착오가 발생했는데도 계획을 고수하려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평생 계획의 실천에 목숨을 바쳤던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는 결국 자결한다.
앞으로 경영환경은 전쟁터처럼 예측이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만큼 계획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 계획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은 계획이란 항상 변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부터다.
모방에서 혁신으로 도약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저마다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다각화된 제품을 결합하고 서비스를 융합하여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자 컨버전스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아마 그동안 한국기업이 GE와 같은 기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GE는 한국기업처럼 다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술, 금융, 비즈니스 모델 등을 결합하여 차별화된 솔루션을 만들어 성공했다. 하지만 GE는 B2B 회사다.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한두 경쟁자와 싸운다.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소비재 회사는 다르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과 수많은 경쟁자들이 모인 곳에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지금 한국기업은 10여 년 전 소니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소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너무 앞서가거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마도 소비자가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컨버전스 전략은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주는 과정에서 여러 서비스가 차곡차곡 쌓였을 때 만들어 질 수 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란 말을 재해석해야 할 지 모른다. 조령모개란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으로,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함을 꼬집는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령모개를 잘하는 것도 기업의 새로운 역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끝>
◎그리스 구제금융에도 꺼지지 않는 남유럽 위기의 불씨
LG경제연구원 '그리스 구제금융에도 꺼지지 않는 남유럽 위기의 불씨'
구제금융 지원으로 그리스는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러나 유동성지원만으로 채무상환능력 개선에는 한계가 있으며, 순조로운 이행여부에 대해서도 시장의 불신은 남아있다. 특히 유로존 회원국들간의 높은 상호의존성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그리스의 위기는 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로의 확산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번 사태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유로존의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 개별 회원국에 대한 거시감독체제가 부재했고, 회원국간 경제격차가 벌어져 왔다. 이번 사태가 확산되면서 유로화 단일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들도 있다. 그렇지만 환율 안정 등 유로존 통합에 따른 이점과 이전 체제로 돌아갈 때 발생할 환원비용을 고려한다면 유로존 붕괴 가능성은 낮다. 이번 사태로 인해 당분간 유로화 약세는 불가피하며,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실물경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다만 안전자산 회귀현상을 통해 국내 외환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남유럽 위기, 근본적 해결 낙관 어렵다
Ⅱ. 안정성을 의심받는 유로존(Euro Zone)의 향방
Ⅲ.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5월 1일, 그리스에 대한 1,1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방안이 결정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2월 초부터 그리스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지만, EU 회원국간의 구제금융을 금지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독일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지원 프로그램의 확정이 지연되면서 시장의 불안이 커져 왔다. 더욱이 4월 27일 S&P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채 신용등급을 하락시켜 그리스 위기가 주변국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였다. 국가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져 자체적인 자금조달 능력을 상실한 그리스는 5월 19일 만기도래하는 85억 유로의 국채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번 구제금융 지원으로 그리스 부도(default)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듯하다(<표 1> 참조).
그리스를 비롯하여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남유럽 국가들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럽 단일통화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서 표출된 것이다. 때문에 구제금융으로 위기가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며, 앞으로의 전개 과정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전세계가 경기침체를 경험하면서 정부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은 남유럽 몇몇 국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향후 전망,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유로존의 향방 그리고 국내외 경제에 대한 영향을 살펴본다.
Ⅰ. 남유럽 위기, 근본적 해결 낙관 어렵다
그리스에 대한 EU/IMF 공동의 구제금융 지원규모는 당초 거론되던 450억 유로의 두 배가 넘는 1,100억 유로에 달한다. 이는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 파산이 가져올 파장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신속히 수습하여 유로 전체로 금융불안이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구제금융 시작과 더불어 지난 수개월간 지속된 그리스 재정위기로 인해 야기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일단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그림 1> 참조). 그러나 남유럽의 재정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제시된 의무조항을 잘 이행할 수 있을 지 불확실하고, 여타 PIIGS(그리스 외에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에 속하는 국가들의 재정불안 문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채무상환능력 개선에 제한
향후 2010~2012년의 3년 동안 그리스에 지원될 1,100억 유로 중에서 800억 유로는 연 5%의 조건으로 그리스를 제외한 여타 15개 유로존 국가들이 분담하게 되며, 나머지 300억 유로는 IMF에 의해 지원된다.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액은 그리스 정부가 추가 자금 조달 없이도 2012년까지 만기도래할 800억 유로의 국채를 상환하고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는 평가이다. 3년 동안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한 그리스로서는 재정건전화를 이루면서 정부부채 규모를 줄이고 부채상환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구제금융에 대한 이행조건으로 그리스는 앞으로 3년간 300억 유로의 고강도 재정긴축에 나서, 2009년 중 13.6%에 달했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4년에는 3% 미만으로 낮춰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재정긴축을 위해 임금삭감 등을 감수해야 할 공공부문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어려움이 있다. 이번 그리스의 재정개혁 조치들은 단기간 내 대폭의 재정적자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어 매우 강도가 높다. 실현 가능성은 물론, 시행과정 중에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삐걱거릴 우려가 있다. 이 경우 IMF나 EU로부터의 단계적인 자금지원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금융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 지난 2001~2002년 중 IMF의 자금지원이 예정되어 있던 아르헨티나가 이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IMF로부터 자금지원이 유보된 사례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국민적 합의하에 순조롭게 재정건전화가 진행되더라도 재정긴축은 한동안 마이너스 성장 또는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계획에 따르더라도 금년과 내년 각각 -4%, -2.6%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2012년 이후에나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는 당분간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리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2013년까지 140%로 높아진 후에야 줄어든다.
때문에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전문가들이 여전히 상환금액 삭감 및 만기연장 등의 채무조정을 통해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불가피하며 문제 해결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채무상환능력이 없는 국가에게 단순히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으로의 전이 가능성 잔존
또 다른 난제는 ‘PIIGS’로 지칭되는 다른 4개국(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의 재정불안이 해소될 수 있느냐이다. 그리스의 재정 불안이 가라앉으면 여타 취약 국가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도 전반적으로 해소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유럽 각국의 은행들이 당장은 손실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로 내 취약 국가들이 구제금융과 이에 따르는 엄격한 이행조건들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정개혁을 서두르는 효과도 예상된다.
하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PIIGS’ 국가들을 둘러싼 재정불안이 크게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BOX 기사 참조). 현재 그리스 다음으로 위기를 겪을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국가는 포르투갈이다. 그리스보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높은 재정적자 비율, 낮은 국내저축률로 인한 높은 대외 채무의존도 등에 비춰 볼때 채무상환능력이 그리스만큼 취약하다. 이미 포르투갈의 국채금리가 여타 국가들에 비해 크게 급등하는 모습이어서 금융시장 내에서 포르투갈 정부부채의 상환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포르투갈도 외부에서의 자금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의 경우 GDP 대비 정부부채가 그리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데다, 높은 국내저축률로 인해 정부부채의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다. 단기간 내 공공부문의 채무상환능력에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주택버블의 후유증, 높은 실업률, 민간부문의 신용위험 등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이 무너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스페인이다. 유로지역 내 국가들은 교역 및 금융거래를 통한 상호의존도가 높아 한 나라의 파산은 금융거래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나라들로 빠르게 파급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포르투갈이 재정위기에 봉착할 경우, 최대 채권국인 스페인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신용등급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높아 스페인은 금리가 급등하고 국채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아일랜드는 현재 진행 중인 재정건전화 계획이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으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는 남아 있으며, 이탈리아는 여타 국가들과 달리 채무상환능력과 유동성 부족 문제가 단기간 내 표면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남부유럽 국가들은 재정건전화를 통해 정부부채 수준을 줄여 나가는 한편, 그 동안 취약했던 대외경쟁력을 개선하여 외부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외경쟁력 개선은 단일통화 사용으로 통화가치 절하가 불가능한 만큼 임금 및 물가 억제 등 내적절하(internal devaluation)가 불가피하다. 이 모두가 시간이 걸리는 데다, 경기위축과 생활수준의 저하라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세수확대와 재정지출 감소, 그리고 내적절하가 불가피한 것이지만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 채무상환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딜레마적인 상황을 여하히 극복할 수 있느냐가 향후 남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과제이다.
Ⅱ. 안정성을 의심받는 유로존(Euro Zone)의 향방
유로존 형성 이후 환율의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회원국간의 상호 직접투자가 활성화되고, 경제통합을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유로 출범 당시, 정책 담당자와 경제학자들은 회원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단일 통화의 도입에 힘입어 각국 경제가 서로 수렴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유럽통합 움직임의 초기부터 ‘경제적 수렴(Economic Convergence)’에 대한 믿음은 유럽통합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강한 논거였다.
그러나 회원국 경제들의 경기변동과 각종 거시 지표들이 수렴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유로존 전체 차원에서 개별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감독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했고, 경제적 이질성은 여러 측면에서 심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유로존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재정 건전성 유지의 실패와 이질화의 심화라 할 수 있다.
금융위기 해결과정에서 구조적 취약점 노출
단일통화동맹의 출발점인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은 회원국들에게 엄격한 자격 조건을 요구했다. ▲재정적자 한도 GDP의 3% ▲국가부채 한도 GDP의 60% ▲가입 이전 2년 내 통화절하 금지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유럽위원회가 개별 국가의 재정운용을 엄격히 감독하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재정에 대한 감독은 사실상 각국의 경제정책에 간여해야 가능한 것인데, 경제정책은 주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점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럽차원의 위기 대응책의 마련은 상징적 구호에 그쳤고, 주요 정책들은 개별 국가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 과정으로 예산적자 한도와 기업에 대한 보조금 금지 등 조약의 준수조항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이와 관련하여 유로존 창설의 핵심 인물인 오트마 이싱은 단일 통화가 제 기능을 하려면 하나의 중앙은행과 하나의 재무부가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동맹을 결성하기 전에 통화동맹을 출범시킨 것이 잘못이었다고 평가한다.
유로 단일통화체제 하의 10년 동안, 각국 경제의 이질화 경향이 심화된 점도 남유럽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과도한 부채와 경쟁력 약화에 직면하게 된 원인이다. 1999년 유로 출범 이후 명목 금리는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물가상승율이 국가별로 차이를 보여 실질금리가 괴리되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은 물가상승률이 높아 실질 이자율이 낮았던 반면, 물가가 안정적인 독일과 프랑스는 실질 이자율이 높게 유지되었다(<그림 2> 참조).
남부 유럽은 이자 부담이 줄어 과도하게 채무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저축하기보다는 소비에 관심을 돌렸다. 이로 인해 역내 직접투자의 흐름에서도 규모나 구성 면에서 대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북유럽은 교역재 부문에 설비투자가 많이 이뤄진 반면, 남유럽은 주택 등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그 결과 북유럽은 경상수지가 개선되었지만 남유럽은 경쟁력이 저하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고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기도 했다(<그림 3> 참조).
안정화를 위한 움직임 나타나
이번 그리스 지원이 단기적 처방이라면, 중장기적 대안으로는 IMF의 유럽 판인 유럽통화기금(Eurpoean Monetary Fund. 이하 EMF)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독일이 먼저 제안한 EMF는 ▲유로존의 금융시장 안정화 ▲회원국 구제 금융 ▲투기활동 억제 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제안에 그치고 있어 EMF 설립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설립을 위해서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구제금융 금지 조항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회원국 전체의 합의와 승인 등 정치적인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유럽위원회 등은 EMF 설립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MF 설립이 그리스 사태에 대한 보완책이라면, 보다 구조적인 개선방안으로 회원국에 대한 가입 기준 및 규제 강화를 들 수 있다.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10년 간의 유로화 운영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으로 ‘새로운 회원국이 가입할 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꼽고 있다. 일단 가입한 이후에 국가간 차이를 교정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입 이전에 경제체제간의 이질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재정 건전화와 경쟁력 회복을 할 수 없는 국가는 EU 회원국으로는 남을 수 있지만 유로존에서 퇴출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 국가에 대한 통제방식의 개선, 거시적 감독의 강화, 버블 방지를 위한 규제 도입 등 보완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들은 EMF의 설립 과정 논의에서 제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남유럽 위기는 유로존의 내부적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유로화 자체의 위기에 대한 논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과 다수의 학자들은 유럽연방 수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진 난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 단일통화체제가 끝내 붕괴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나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 등은 그리스 위기가 구제금융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에 이어 남유럽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위기를 겪으면서 유로화가 끝내 공중 분해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곧바로 유로존의 붕괴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미 20년에 걸쳐 준비하고 운영해온 유로 단일체제를 다시 되돌린다는 것은 치러야 할 비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로체제 10년동안 역내 거래비용을 감소시켰고 환율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등 유로존 통합에 의한 이점도 작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제도적 변천이 그러하듯이 유로체제는 현재의 제도가 갖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점차적으로 개선, 보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 어디로 가나
그리스 위기가 터지면서 달러의 대안으로 여겨지던 유로마저 취약성을 드러남에 따라 앞으로의 기축 통화 판도에서 달러와 유로의 관계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가 관심을 모은다.
유로는 2009년 11월말 1유로 = 1.51달러까지 상승했지만, 그리스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급락하여 현재 1유로=1.28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리스 구제금융안이 결정되었지만, 위기에 대한 우려는 당장 수그러들지 않아 유로는 하락세를 뒤집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대되는 데 위기감을 갖고 있는 유럽 주요국들의 정책적 개입이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보여, 유로화는 현 수준에서 추가적인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며 다시 완만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로가 대외 준비고나 대외결제 부분에서 달러를 대체해 나갈 것인가는 좀 다른 문제이다. 최근 그리스 위기 과정에서 뚜렷해진 것처럼 유로존 내의 각국 경제에 이질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별 재정정책의 방향이 다르며, 유로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회원국 경제들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데 일차적인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즉 세계적 차원의 생산과 무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동성을 제공하는 기축 통화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유로화가 내부의 이질성을 줄여 단일시장, 단일경제에 이르기 전까지는 기축통화 역할 면에서는 보조적 위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위기는 유로존과 유로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그런 만큼 달러 기축통화의 시대는 좀 더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Ⅲ.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신용경색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구제금융 지원에 힘입어 유동성 위기는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번 조치가 그리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 해소과정에서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여전히 비관적인 시각들이 많다. 더욱이 이번 그리스 사태가 포르투갈로, 나아가 스페인까지 옮겨지게 된다면 신용경색이 재발할 개연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와는 달리 이번 재정위기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시장에 유럽계 은행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서브프라임 사태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그리스 등 남유럽의 경우 해외자산 70% 이상이 유럽계 은행에 집중되어 있다(<그림 4> 참조).
다만 선진권인 유로존의 금융불안으로 인하여 안전자산으로의 회귀현상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사태와 같은 극심한 신용경색은 아닐지라도 당분간 금융시장 흐름에 대해서는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진국의 재정위기 상황을 맞이해 이보다 위험이 높을 것으로 평가 받는 개도국의 위험 프리미엄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개도국 중에서도 동유럽이 상관성에 있어서 더 큰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높다. IMF에 따르면 서유럽의 리스크에 동유럽 국가들의 민감도가 1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유럽 국가의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에 동유럽 국가들의 프리미엄도 동반 상승되었고, 그 상승폭이 훨씬 컸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신용위기가 동유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부채조정으로 유럽 성장세 둔화 불가피
위기 당사국인 그리스나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등 부실한 경제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역내 교역비중이 높은 유럽경제는 이번 사태와 이들 국가들의 침체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비록 독일 등 북부 유럽 국가들의 견실한 성장세로 유럽 전체의 성장률이 플러스(+)를 보인다고 할 지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1% 내외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까지 재현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반등효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최근 빠른 회복세를 보이던 글로벌 경제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호황 때 쌓여온 민간부채가 정부의 개입확대로 정부부채로 단순히 이전되었을 뿐, 부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글로벌 경제의 견실한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부채부담이 축소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부채의 조정은 여러 측면에서 성장세를 제약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순탄하게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가계부채의 조정은 저축률 상승과 민간 소비의 제약요인이 될 것이며, 기업부채의 조정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경험한 것처럼 설비투자 증가율이 둔화될 것이다. 정부부채의 축소는 정부지출 감소, 세율 증가에 따른 민간부문 경제활동 위축, 민간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 감소 등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성장세의 둔화는 불가피한 측면이다. 또한 정부부채의 증가로 향후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이 올 경우 정책 개입의 여지가 감소된 것 역시 리스크 요인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주요 선진국들의 부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그림 5> 참조). 비록 금번 사태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온 일부 국가들에서 촉발되긴 하였지만,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향후 수년간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단기적으로는 반등효과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과 같은 고성장세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내경제의 영향 및 시사점
유럽은 부진을 이어가겠지만 개도국 등의 고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국내경제도 이번 사태로 실물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EU회원국에 수출하는 금액은 2009년 기준 전체 수출의 12.7%를 차지하지만, 남유럽 국가는 2.4%에 불과하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확산되어 세계경제 전체가 부진에 빠지지 않는 한 국내경제의 회복세는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그리스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개방도가 매우 높은 소규모 경제라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국내경제는 외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크게 받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IT 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사태 당시에 세계 금융시장 불안과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외자 유출로 환율이 급등한 바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건전성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개선되어 왔다는 것이다(<표 3> 참조). 국내은행의 외화유동성비율은 2008년말 98.9%에서 작년 말 105.1%로 개선되었고, 중장기 외화대출 재원조달 비율도 양호해진 상황이다. 또한 외환보유고도 올 4월말 2,788억달러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서 최대치를 기록하였고 경상수지 흑자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서브프라임 당시의 충격이 오더라도 국내경제가 받을 영향은 보다 작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안전자산 회귀현상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의 해소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정부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이러한 정부부채 수준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구고령화, 사회복지 서비스의 필요성 증대 등 재정지출 소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번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정부, 나아가 공기업 부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끝>
구제금융 지원으로 그리스는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러나 유동성지원만으로 채무상환능력 개선에는 한계가 있으며, 순조로운 이행여부에 대해서도 시장의 불신은 남아있다. 특히 유로존 회원국들간의 높은 상호의존성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그리스의 위기는 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로의 확산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번 사태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유로존의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 개별 회원국에 대한 거시감독체제가 부재했고, 회원국간 경제격차가 벌어져 왔다. 이번 사태가 확산되면서 유로화 단일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들도 있다. 그렇지만 환율 안정 등 유로존 통합에 따른 이점과 이전 체제로 돌아갈 때 발생할 환원비용을 고려한다면 유로존 붕괴 가능성은 낮다. 이번 사태로 인해 당분간 유로화 약세는 불가피하며,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실물경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다만 안전자산 회귀현상을 통해 국내 외환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남유럽 위기, 근본적 해결 낙관 어렵다
Ⅱ. 안정성을 의심받는 유로존(Euro Zone)의 향방
Ⅲ.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5월 1일, 그리스에 대한 1,1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방안이 결정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2월 초부터 그리스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지만, EU 회원국간의 구제금융을 금지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독일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지원 프로그램의 확정이 지연되면서 시장의 불안이 커져 왔다. 더욱이 4월 27일 S&P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채 신용등급을 하락시켜 그리스 위기가 주변국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였다. 국가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져 자체적인 자금조달 능력을 상실한 그리스는 5월 19일 만기도래하는 85억 유로의 국채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번 구제금융 지원으로 그리스 부도(default)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듯하다(<표 1> 참조).
그리스를 비롯하여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남유럽 국가들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럽 단일통화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서 표출된 것이다. 때문에 구제금융으로 위기가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며, 앞으로의 전개 과정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전세계가 경기침체를 경험하면서 정부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은 남유럽 몇몇 국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향후 전망,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유로존의 향방 그리고 국내외 경제에 대한 영향을 살펴본다.
Ⅰ. 남유럽 위기, 근본적 해결 낙관 어렵다
그리스에 대한 EU/IMF 공동의 구제금융 지원규모는 당초 거론되던 450억 유로의 두 배가 넘는 1,100억 유로에 달한다. 이는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 파산이 가져올 파장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신속히 수습하여 유로 전체로 금융불안이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구제금융 시작과 더불어 지난 수개월간 지속된 그리스 재정위기로 인해 야기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일단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그림 1> 참조). 그러나 남유럽의 재정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제시된 의무조항을 잘 이행할 수 있을 지 불확실하고, 여타 PIIGS(그리스 외에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에 속하는 국가들의 재정불안 문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채무상환능력 개선에 제한
향후 2010~2012년의 3년 동안 그리스에 지원될 1,100억 유로 중에서 800억 유로는 연 5%의 조건으로 그리스를 제외한 여타 15개 유로존 국가들이 분담하게 되며, 나머지 300억 유로는 IMF에 의해 지원된다.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액은 그리스 정부가 추가 자금 조달 없이도 2012년까지 만기도래할 800억 유로의 국채를 상환하고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는 평가이다. 3년 동안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한 그리스로서는 재정건전화를 이루면서 정부부채 규모를 줄이고 부채상환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구제금융에 대한 이행조건으로 그리스는 앞으로 3년간 300억 유로의 고강도 재정긴축에 나서, 2009년 중 13.6%에 달했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4년에는 3% 미만으로 낮춰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재정긴축을 위해 임금삭감 등을 감수해야 할 공공부문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어려움이 있다. 이번 그리스의 재정개혁 조치들은 단기간 내 대폭의 재정적자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어 매우 강도가 높다. 실현 가능성은 물론, 시행과정 중에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삐걱거릴 우려가 있다. 이 경우 IMF나 EU로부터의 단계적인 자금지원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금융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 지난 2001~2002년 중 IMF의 자금지원이 예정되어 있던 아르헨티나가 이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IMF로부터 자금지원이 유보된 사례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국민적 합의하에 순조롭게 재정건전화가 진행되더라도 재정긴축은 한동안 마이너스 성장 또는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계획에 따르더라도 금년과 내년 각각 -4%, -2.6%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2012년 이후에나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는 당분간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리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2013년까지 140%로 높아진 후에야 줄어든다.
때문에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전문가들이 여전히 상환금액 삭감 및 만기연장 등의 채무조정을 통해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불가피하며 문제 해결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채무상환능력이 없는 국가에게 단순히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으로의 전이 가능성 잔존
또 다른 난제는 ‘PIIGS’로 지칭되는 다른 4개국(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의 재정불안이 해소될 수 있느냐이다. 그리스의 재정 불안이 가라앉으면 여타 취약 국가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도 전반적으로 해소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유럽 각국의 은행들이 당장은 손실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로 내 취약 국가들이 구제금융과 이에 따르는 엄격한 이행조건들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정개혁을 서두르는 효과도 예상된다.
하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PIIGS’ 국가들을 둘러싼 재정불안이 크게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BOX 기사 참조). 현재 그리스 다음으로 위기를 겪을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국가는 포르투갈이다. 그리스보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높은 재정적자 비율, 낮은 국내저축률로 인한 높은 대외 채무의존도 등에 비춰 볼때 채무상환능력이 그리스만큼 취약하다. 이미 포르투갈의 국채금리가 여타 국가들에 비해 크게 급등하는 모습이어서 금융시장 내에서 포르투갈 정부부채의 상환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포르투갈도 외부에서의 자금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의 경우 GDP 대비 정부부채가 그리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데다, 높은 국내저축률로 인해 정부부채의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다. 단기간 내 공공부문의 채무상환능력에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주택버블의 후유증, 높은 실업률, 민간부문의 신용위험 등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이 무너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스페인이다. 유로지역 내 국가들은 교역 및 금융거래를 통한 상호의존도가 높아 한 나라의 파산은 금융거래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나라들로 빠르게 파급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포르투갈이 재정위기에 봉착할 경우, 최대 채권국인 스페인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신용등급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높아 스페인은 금리가 급등하고 국채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아일랜드는 현재 진행 중인 재정건전화 계획이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으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는 남아 있으며, 이탈리아는 여타 국가들과 달리 채무상환능력과 유동성 부족 문제가 단기간 내 표면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남부유럽 국가들은 재정건전화를 통해 정부부채 수준을 줄여 나가는 한편, 그 동안 취약했던 대외경쟁력을 개선하여 외부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외경쟁력 개선은 단일통화 사용으로 통화가치 절하가 불가능한 만큼 임금 및 물가 억제 등 내적절하(internal devaluation)가 불가피하다. 이 모두가 시간이 걸리는 데다, 경기위축과 생활수준의 저하라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세수확대와 재정지출 감소, 그리고 내적절하가 불가피한 것이지만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 채무상환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딜레마적인 상황을 여하히 극복할 수 있느냐가 향후 남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과제이다.
Ⅱ. 안정성을 의심받는 유로존(Euro Zone)의 향방
유로존 형성 이후 환율의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회원국간의 상호 직접투자가 활성화되고, 경제통합을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유로 출범 당시, 정책 담당자와 경제학자들은 회원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단일 통화의 도입에 힘입어 각국 경제가 서로 수렴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유럽통합 움직임의 초기부터 ‘경제적 수렴(Economic Convergence)’에 대한 믿음은 유럽통합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강한 논거였다.
그러나 회원국 경제들의 경기변동과 각종 거시 지표들이 수렴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유로존 전체 차원에서 개별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감독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했고, 경제적 이질성은 여러 측면에서 심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유로존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재정 건전성 유지의 실패와 이질화의 심화라 할 수 있다.
금융위기 해결과정에서 구조적 취약점 노출
단일통화동맹의 출발점인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은 회원국들에게 엄격한 자격 조건을 요구했다. ▲재정적자 한도 GDP의 3% ▲국가부채 한도 GDP의 60% ▲가입 이전 2년 내 통화절하 금지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유럽위원회가 개별 국가의 재정운용을 엄격히 감독하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재정에 대한 감독은 사실상 각국의 경제정책에 간여해야 가능한 것인데, 경제정책은 주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점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럽차원의 위기 대응책의 마련은 상징적 구호에 그쳤고, 주요 정책들은 개별 국가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 과정으로 예산적자 한도와 기업에 대한 보조금 금지 등 조약의 준수조항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이와 관련하여 유로존 창설의 핵심 인물인 오트마 이싱은 단일 통화가 제 기능을 하려면 하나의 중앙은행과 하나의 재무부가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동맹을 결성하기 전에 통화동맹을 출범시킨 것이 잘못이었다고 평가한다.
유로 단일통화체제 하의 10년 동안, 각국 경제의 이질화 경향이 심화된 점도 남유럽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과도한 부채와 경쟁력 약화에 직면하게 된 원인이다. 1999년 유로 출범 이후 명목 금리는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물가상승율이 국가별로 차이를 보여 실질금리가 괴리되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은 물가상승률이 높아 실질 이자율이 낮았던 반면, 물가가 안정적인 독일과 프랑스는 실질 이자율이 높게 유지되었다(<그림 2> 참조).
남부 유럽은 이자 부담이 줄어 과도하게 채무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저축하기보다는 소비에 관심을 돌렸다. 이로 인해 역내 직접투자의 흐름에서도 규모나 구성 면에서 대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북유럽은 교역재 부문에 설비투자가 많이 이뤄진 반면, 남유럽은 주택 등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그 결과 북유럽은 경상수지가 개선되었지만 남유럽은 경쟁력이 저하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고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기도 했다(<그림 3> 참조).
안정화를 위한 움직임 나타나
이번 그리스 지원이 단기적 처방이라면, 중장기적 대안으로는 IMF의 유럽 판인 유럽통화기금(Eurpoean Monetary Fund. 이하 EMF)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독일이 먼저 제안한 EMF는 ▲유로존의 금융시장 안정화 ▲회원국 구제 금융 ▲투기활동 억제 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제안에 그치고 있어 EMF 설립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설립을 위해서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구제금융 금지 조항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회원국 전체의 합의와 승인 등 정치적인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유럽위원회 등은 EMF 설립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MF 설립이 그리스 사태에 대한 보완책이라면, 보다 구조적인 개선방안으로 회원국에 대한 가입 기준 및 규제 강화를 들 수 있다.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10년 간의 유로화 운영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으로 ‘새로운 회원국이 가입할 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꼽고 있다. 일단 가입한 이후에 국가간 차이를 교정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입 이전에 경제체제간의 이질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재정 건전화와 경쟁력 회복을 할 수 없는 국가는 EU 회원국으로는 남을 수 있지만 유로존에서 퇴출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 국가에 대한 통제방식의 개선, 거시적 감독의 강화, 버블 방지를 위한 규제 도입 등 보완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들은 EMF의 설립 과정 논의에서 제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남유럽 위기는 유로존의 내부적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유로화 자체의 위기에 대한 논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과 다수의 학자들은 유럽연방 수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진 난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 단일통화체제가 끝내 붕괴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나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 등은 그리스 위기가 구제금융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에 이어 남유럽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위기를 겪으면서 유로화가 끝내 공중 분해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곧바로 유로존의 붕괴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미 20년에 걸쳐 준비하고 운영해온 유로 단일체제를 다시 되돌린다는 것은 치러야 할 비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로체제 10년동안 역내 거래비용을 감소시켰고 환율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등 유로존 통합에 의한 이점도 작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제도적 변천이 그러하듯이 유로체제는 현재의 제도가 갖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점차적으로 개선, 보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 어디로 가나
그리스 위기가 터지면서 달러의 대안으로 여겨지던 유로마저 취약성을 드러남에 따라 앞으로의 기축 통화 판도에서 달러와 유로의 관계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가 관심을 모은다.
유로는 2009년 11월말 1유로 = 1.51달러까지 상승했지만, 그리스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급락하여 현재 1유로=1.28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리스 구제금융안이 결정되었지만, 위기에 대한 우려는 당장 수그러들지 않아 유로는 하락세를 뒤집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대되는 데 위기감을 갖고 있는 유럽 주요국들의 정책적 개입이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보여, 유로화는 현 수준에서 추가적인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며 다시 완만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로가 대외 준비고나 대외결제 부분에서 달러를 대체해 나갈 것인가는 좀 다른 문제이다. 최근 그리스 위기 과정에서 뚜렷해진 것처럼 유로존 내의 각국 경제에 이질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별 재정정책의 방향이 다르며, 유로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회원국 경제들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데 일차적인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즉 세계적 차원의 생산과 무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동성을 제공하는 기축 통화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유로화가 내부의 이질성을 줄여 단일시장, 단일경제에 이르기 전까지는 기축통화 역할 면에서는 보조적 위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위기는 유로존과 유로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그런 만큼 달러 기축통화의 시대는 좀 더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Ⅲ.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신용경색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구제금융 지원에 힘입어 유동성 위기는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번 조치가 그리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 해소과정에서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여전히 비관적인 시각들이 많다. 더욱이 이번 그리스 사태가 포르투갈로, 나아가 스페인까지 옮겨지게 된다면 신용경색이 재발할 개연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와는 달리 이번 재정위기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시장에 유럽계 은행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서브프라임 사태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그리스 등 남유럽의 경우 해외자산 70% 이상이 유럽계 은행에 집중되어 있다(<그림 4> 참조).
다만 선진권인 유로존의 금융불안으로 인하여 안전자산으로의 회귀현상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사태와 같은 극심한 신용경색은 아닐지라도 당분간 금융시장 흐름에 대해서는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진국의 재정위기 상황을 맞이해 이보다 위험이 높을 것으로 평가 받는 개도국의 위험 프리미엄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개도국 중에서도 동유럽이 상관성에 있어서 더 큰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높다. IMF에 따르면 서유럽의 리스크에 동유럽 국가들의 민감도가 1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유럽 국가의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에 동유럽 국가들의 프리미엄도 동반 상승되었고, 그 상승폭이 훨씬 컸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신용위기가 동유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부채조정으로 유럽 성장세 둔화 불가피
위기 당사국인 그리스나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등 부실한 경제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역내 교역비중이 높은 유럽경제는 이번 사태와 이들 국가들의 침체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비록 독일 등 북부 유럽 국가들의 견실한 성장세로 유럽 전체의 성장률이 플러스(+)를 보인다고 할 지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1% 내외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까지 재현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반등효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최근 빠른 회복세를 보이던 글로벌 경제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호황 때 쌓여온 민간부채가 정부의 개입확대로 정부부채로 단순히 이전되었을 뿐, 부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글로벌 경제의 견실한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부채부담이 축소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부채의 조정은 여러 측면에서 성장세를 제약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순탄하게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가계부채의 조정은 저축률 상승과 민간 소비의 제약요인이 될 것이며, 기업부채의 조정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경험한 것처럼 설비투자 증가율이 둔화될 것이다. 정부부채의 축소는 정부지출 감소, 세율 증가에 따른 민간부문 경제활동 위축, 민간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 감소 등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성장세의 둔화는 불가피한 측면이다. 또한 정부부채의 증가로 향후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이 올 경우 정책 개입의 여지가 감소된 것 역시 리스크 요인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주요 선진국들의 부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그림 5> 참조). 비록 금번 사태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온 일부 국가들에서 촉발되긴 하였지만,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향후 수년간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단기적으로는 반등효과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과 같은 고성장세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내경제의 영향 및 시사점
유럽은 부진을 이어가겠지만 개도국 등의 고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국내경제도 이번 사태로 실물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EU회원국에 수출하는 금액은 2009년 기준 전체 수출의 12.7%를 차지하지만, 남유럽 국가는 2.4%에 불과하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확산되어 세계경제 전체가 부진에 빠지지 않는 한 국내경제의 회복세는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그리스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개방도가 매우 높은 소규모 경제라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국내경제는 외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크게 받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IT 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사태 당시에 세계 금융시장 불안과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외자 유출로 환율이 급등한 바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건전성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개선되어 왔다는 것이다(<표 3> 참조). 국내은행의 외화유동성비율은 2008년말 98.9%에서 작년 말 105.1%로 개선되었고, 중장기 외화대출 재원조달 비율도 양호해진 상황이다. 또한 외환보유고도 올 4월말 2,788억달러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서 최대치를 기록하였고 경상수지 흑자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서브프라임 당시의 충격이 오더라도 국내경제가 받을 영향은 보다 작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안전자산 회귀현상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의 해소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정부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이러한 정부부채 수준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구고령화, 사회복지 서비스의 필요성 증대 등 재정지출 소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번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정부, 나아가 공기업 부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끝>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기업간 경쟁 더욱 치열
LG경제연구원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기업간 경쟁 더욱 치열'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위기를 전후한 실적을 살펴본 결과 2009년 중반을 고비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들어서는 실적의 회복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는 아직까지 경제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소득이 감소하고 투자가 위축되면서 석유가스, 무역, 자본재, 화학, 소재, 운송, 전기전자 업종 등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크게 악화되었다. 지역별로는 일본기업의 실적이 특히 부진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엔화 강세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의 실적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했고 회복속도도 더 빨랐다. 한국 기업의 양호한 실적은 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58개 중에서 원화가치 하락 정도는 2008년에는 2번째, 2009년에는 4번째로 컸다. 2010년 들어 원화가치는 상승한 반면 엔화 가치는 하락하여 한국 기업의 실적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환율효과가 소멸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를 통과하는 중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 중 해외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노력이 제조업 뿐만 아니라 통신 등 다른 서비스 부문으로도 확대되고 있어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간의 경쟁은 한층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 목 차 >
Ⅰ. 글로벌 기업의 실적 추이
Ⅱ. 2009년 글로벌 기업 실적의 특징
Ⅲ. 시사점
2010년 들어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 글로벌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극심한 실적 악화를 경험했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직면해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GM, 메릴린치 등과 같이 과거 초우량기업의 위세를 자랑했던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었다. GE와 같은 우량기업도 금융부문의 부실로 자금조달을 하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중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기업실적도 개선되는 추세로 돌아섰다. 2010년 들어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자본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실적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투자심리가 호전되었고 주식시장도 상승세로 다시 돌아섰다. 기업실적 개선과 주식시장 상승은 소득을 증가시키고 소비심리를 자극하여 금융시장, 실물경제, 그리고 기업실적이 동반 개선되는 선순환을 일으키는 촉매역할을 하고 경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어떻게 변했고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의 경영성과도 비교해본다.
Ⅰ. 글로벌 기업의 실적 추이
2009년 글로벌 기업 실적 악화
실적 분석을 위한 글로벌 기업은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Forbes가 선정하는 2000개 글로벌 기업(Forbes Global 2000)이다. Forbes지는 매년 매출액, 자산총액, 순이익, 시가총액 등의 순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2000개 기업을 선정한다. Forbes Global 2000은 매출액 기준으로 500개 기업은 선정하는 Fortune지의 Fortune Global 500이나 시가총액 기준으로 500개 기업을 선전하는 Financial Times의 FT Global 500 등에 비해 다양한 기준을 고려하여 많은 기업을 선정한다.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기업들의 2009년 매출액은 32.0조 달러, 시가총액은 19.6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2009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4.3조 달러, 전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47.8조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Forbes Global 2000 기업들의 규모가 전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62개국에 걸친 다양한 지역의 기업이 포함되어 있다.
Forbes Global 2000에 속한 기업 중에서 1,117개 비금융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성과 추이를 살펴보면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2005-2007년 동안 10% 이상을 유지했던 분석 대상 글로벌 기업의 매출증가율(자국통화 매출증가율 중앙값 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8.0%로 둔화되었다. 2009년 들어 각국의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글로벌 경제위기는 수습되는 모습을 모였지만 실물경기 위축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글로벌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5.7%로 급락했다.
글로벌 기업의 수익성도 악화되었다.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분석대상 기업의 중앙값 기준)은 2005-2007년 연평균 11.9%에서 2008년 11.2%, 2009년 10.5%로 하락했다. 2009년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 하락은 소폭에 그쳤지만 매출액 규모가 2008년에 비해 감소함에 따라 영업이익 규모는 매출액보다 더 많이 줄었다(매출액과 영업이익 규모 변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II. 글로벌 기업 실적의 특징 참조)
한국 기업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양호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실적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12월 결산 580개 비금융회사의 매출증가율(중앙값 기준)은 1.6%를 기록했다. 2008년에 비해 매출은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이 역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은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9년 한국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5.2%를 기록하여 2008년(4.7%)에 비해 상승했다. 글로벌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 기업의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추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2009년 한국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1.6%로 급격하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 한국 기업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수익성의 측면에서는 글로벌 기업에 비해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절대 수준의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글로벌 기업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이 하락했지만 10%대를 유지한 반면 한국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상승했음에도 글로벌 기업의 절반 수준인 5%대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의 수익성 개선 추세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저수익성의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하반기 이후 기업실적 회복세 반전
분기별 실적을 살펴보면 글로벌 기업의 기간별 실적 변화 추이를 좀더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의 실적 변화를 분기별로 살펴보기 위해 2007년부터 2010년 1분기 동안 전체 분기별 실적 자료 입수가 가능한 367개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변화를 살펴보았다. 한국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12월 결산 107개 기업을 분석하고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은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2009년 분석대상 글로벌 기업의 전년 동기 대비 분기별 매출증가율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2분기 -8.2%를 고비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4분기에는 2.1%를 기록하면서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0년 1분기 글로벌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7.7%를 기록하여 회복세가 확연해졌다. 글로벌 기업의 영업이익률도 2009년 1분기 11.2%를 저점으로 상승하여 2010년 1분기에는 13.9%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의 실적 추이도 글로벌 기업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4월 30일 기준 2010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기업 중에서 2007년부터 분기별 실적 자료 입수가 가능한 107개 국내 상장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2009년 2분기를 고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올해 1분기에는 16.1%를 기록했다. 2009년 1분기부터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0년 들어 소폭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2009년 중반으로 고비로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기업실적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금융완화 정책으로 경제위기 동안에 위축되었던 수요가 되살아난 때문이다. 매출회복과 더불어 경제위기 과정에서 실적 악화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들의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나면서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기업실적 개선은 실물경기가 2009년 중반부터 회복단계에 들어섰고 2010년 들어 회복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후퇴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는 아직까지 경제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외환위기 이전의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를 기준으로 외환위기 전후의 글로벌 기업의 실적을 추이를 살펴보면 연간 기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은 각각 2007년, 2006년 수준에 머문 것으로 분석되었다. 2005년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을 100으로 보았을 때 2006년 111.3, 2007년 123.8, 2008년 135.2 등으로 증가했던 매출액 규모는 2009년에는 2007년 수준인 125.8로 하락했다. 2009년 글로벌 기업의 영업이익(2005년을 100으로 보았을 때에 112.9)도 2006년(113.2) 수준으로 하락했다.
분기별 실적을 살펴보아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2010년 1분기 매출증가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매출액영업이익률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규모는 2008년 초와 유사한 수준에 머물렀다. 매출증가율이나 매출액영업이익률과 같은 지표 상으로는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제위기 동안에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던 데에 따른 반작용의 효과가 크다. 실질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규모는 외환위기 이전인 2007-2008년 수준으로 줄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의 가파른 실적 개선은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추세에서 벗어난 실적이 정상궤도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아직은 정상괘도로 돌아가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되며,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상반기 이상의 수준으로 증가해야 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Ⅱ. 2009년 글로벌 기업 실적의 특징
내구 소비재 업종 실적 크게 악화
실물경제 환경은 2009년 업종별 경영성과에 반영되었다. 경제위기에 따라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자들의 수요가 줄었고 기업들의 투자도 크게 위축하였다. 이에 따라 석유가스, 무역, 자본재, 화학, 소재, 운송, 전기전자 등의 업종이 경제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심하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가 소득변화에 민감한 자동차, 가전제품 등을 비롯한 내구소비재 업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부진했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최종 수요제품의 수요 감소로 화학제품이나 금속소재 등과 같은 중간 투입 제품을 생산하는 업종의 실적도 상당히 저조했다. 기업들의 투자위축으로 기계,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자본재 업종의 실적도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악화되었다. 전세계적인 교역 감소로 무역과 운송 업종의 실적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급격하게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은 실적 악화 정도가 작았다. 보험, 의약품, 항공, 식품 업종 등은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성장세를 지속했다. 통신서비스와 전력 업종 등은 매출이 둔화되었지만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다. 전반적으로 경기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필수소비재 업종이나 해외 요인의 영향력이 적은 내수 업종의 실적이 경제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업종별로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09년 1분기와 2010년 1분기 실적을 비교해 보았다. 2009년 1분기는 경제위기의 부정적인 충격이 기업실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때이고 2010년 1분기는 경제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이다. 앞에서 이미 분기별 실적 추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부분의 업종이 2010년 들어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위기의 충격을 많이 받았던 업종들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 내구소비재, 소재, 전기전자 업종 등의 전년 동기 대비 2010년 1분기 매출증가율이 10%대를 기록하고 매출액영업이익률도 크게 개선되는 등 금융위기에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던 업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이러한 업종들은 2009년초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던 데 따른 상대적 반등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내구소비재와 전기전자 업종 등의 실적 개선은 외환위기 기간 동안에 억눌렸던 대기수요가 되살아나면서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에 대한 소비가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본재와 소재 업종의 실적 회복은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기업의 실적 저조
지역별로 나누어서 글로벌 기업의 실적을 살펴보면 개도국 기업의 실적은 양호했던 반면 선진국 기업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진국 중에서 일본 기업의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다.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비금융 일본 기업의 2009년 매출증가율은 -15.7%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2008년에 비해 11.7%p 하락했다. Forbes Global 2000에 비금융회사가 10개 이상 포함된 국가 중에서 매출증가율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매출액영업이익률도 2번째로 많이 하락했다. 일본 기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크게 하락한 것은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경기위축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자동차, 전자, 화학 업종 등에 속한 기업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요 부진과 유로화 강세 등으로 전반적으로 유럽 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기업들의 실적이 특히 좋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출발지인 미국 기업의 매출은 줄었지만 매출액영업이익률은 12%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선진국 중에서 영국 기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는데 파운드화 약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특히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 및 인도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보였다. 개도국 중에서 대만과 브라질 기업의 실적이 좋지 못했다. 대만에는 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위축된 전자기업의 비중이 높았고 브라질에는 금융위기의 충격을 많이 받은 에너지와 금속소재 기업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환율 효과에 엇갈린 실적
글로벌 기업의 실적에 각국별 환율 변동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환율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실적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통화가치 상승은 수출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여 기업들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Forbes Global 2000에 10개 이상의 비금융회사가 포함된 국가를 대상으로 통화가치 변화와 기업실적을 비교해 보았다. 통화가치 변화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제공하는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측정했다.
통화가치 변화는 수익성보다 성장성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보다 매출액이 통화가치(환율) 변화와 더 연동된 것으로 보인다. 환율 변화에 따라 수출제품의 가격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또한 환율 변화는 수입 원자재 가격에 반영되어 제품의 제조원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만 매출에서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를 차감하여 계산되는 영업이익에는 원가나 비용 변화 등을 통해 환율 변화의 영향력이 일부 흡수되어 반영된다. 따라서 영업이익보다 매출과 환율 변동 간의 연계성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2009년에 일본 기업들의 저조했던 실적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엔고에 따른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제공하는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2009년 통화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전체 58개국 중에서 일본의 통화가치가 2번째로 많이 절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에도 9번째로 통화가치 절상률이 높았다. 일본보다 통화가치가 많이 상승한 국가는 대부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요국 중에서 일본의 통화가치가 가장 많이 상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이 2008-2009년 동안 상당히 양호한 실적을 달성한 것은 원화가치 변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원화 가치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2008년 18.9%, 2009년 11.6% 하락했다. 실질실효환율이 제공되는 58개 중에서 통화가치 하락 정도가 2008년에는 2번째, 2009년에는 4번째로 컸다. 2008년과 2009년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던 원화와 엔화의 움직임은 우리나라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자제품, 자동차 등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쟁관계에 있는 제품이 많다. 그 결과 엔화 가치 상승, 원화가치 하락은 우리나라 기업의 실적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다.
2010년 들어 각국별 통화가치는 2009년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난다. 2010년 1분기 우리나라 원화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2008년 1분기에 비해 19.2%가 상승한 반면 일본의 엔화는 6.5% 하락했다. 향후 우리나라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 및 기업실적과 관련되어 우려되는 대목이다.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글로벌 기업들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기업 중에서 2005-2009년 동안 수출 자료 입수가 가능한 974개 비금융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전 30%대에서 2009년에는 40%대 중반으로 높아졌다. 글로벌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은 2007년 40.4%에서 2009년에는 44.8%로 4.4%p 증가했다. 경제위기에 따른 수요부진을 경험하면서 해외시장을 개척한 결과로 보인다. 해외시장에서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금융위기 과정에서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던 화학과 소재 업종의 해외매출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6년과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었던 2009년을 비교해 보면 해외매출 비중은 화학이 11.8%p, 소재가 11.2%p 상승했다. 자본재, 전기전자, 내구소비재 업종의 등의 해외매출 비중도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았지만 증가했다. 화학과 소재 업종의 해외매출 비중이 높아진 것은 중국이 고도 성장세를 지속하고 개도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화학 소재 및 금속, 철강 등의 원재료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면서 교역량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신, 사업서비스 업종의 해외매출 비중도 늘어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활동이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 부문으로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확대되면서 해외매출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좀더 장기적인 추세를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해외매출 비중의 증가는 높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 개도국에 대한 시장 확대의 노력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경제위기 이후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글로벌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이 상당히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 2005-2006년 20%대에 머물던 해외매출 비중이 2009년 35.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에 38%대였던 미국 기업들도 43%로 늘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10%p 이상 상승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선진국 다른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여 영국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늘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매출 비중 증가는 개도국에서의 글로벌 기업들간의 경쟁이 한층 심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미 개도국 진출에 상당히 공을 많을 들인 일본이나 미국 기업들이 자국의 통화가치가 약세를 보일 경우 개도국 진출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미 해외매출 비중이 상당히 높은 업종에 속한 기업들간의 해외시장 개척과 관련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Ⅲ. 시사점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실적 개선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경제위기 동안의 수요위축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자동차, 전자, 화학, 소재 업종 등의 실적도 빠르게 회복되면서 경영활동이 정상을 되찾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매출이나 영업이익 규모에 있어서는 경제위기 직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은 세계경기의 회복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을 통해 살펴보면 세계경제는 2009년 중반부터 회복국면에 들어섰고 2010년 들어서는 회복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우량기업들은 경제위기 동안에는 내실을 다지기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탐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경기가 회복되고 수요가 살아나면 경쟁양상도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 경쟁자뿐만 아니라 M&A 등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성장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내수나 역내 교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선진국 기업들이 개도국에 대한 진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들어 한국의 원화가치가 상승하고 일본의 엔화 가치는 하락하는 등 환율효과의 긍정적인 영향이 사라지고 있다.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로 부정적인 환율효과의 영향이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경쟁기업에 있는 일본기업들의 수출가격 경쟁력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화가치가 빠르게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 기업이 최근 몇 년과 같은 양호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화 가치 상승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글로벌 기업들이 실적 악화를 경험한 것은 불과 1년여에 걸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강도는 엄청나서 대다수의 기업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위기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경쟁구조 변화에 대해 예의 주시하면서 대응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단기적인 환율 변동이나 새로운 경쟁자 출현 등과 같은 경영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적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혁신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여 경쟁구도를 주도할 수 있는 본질적 핵심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끝>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위기를 전후한 실적을 살펴본 결과 2009년 중반을 고비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들어서는 실적의 회복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는 아직까지 경제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소득이 감소하고 투자가 위축되면서 석유가스, 무역, 자본재, 화학, 소재, 운송, 전기전자 업종 등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크게 악화되었다. 지역별로는 일본기업의 실적이 특히 부진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엔화 강세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의 실적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했고 회복속도도 더 빨랐다. 한국 기업의 양호한 실적은 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58개 중에서 원화가치 하락 정도는 2008년에는 2번째, 2009년에는 4번째로 컸다. 2010년 들어 원화가치는 상승한 반면 엔화 가치는 하락하여 한국 기업의 실적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환율효과가 소멸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를 통과하는 중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 중 해외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노력이 제조업 뿐만 아니라 통신 등 다른 서비스 부문으로도 확대되고 있어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간의 경쟁은 한층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 목 차 >
Ⅰ. 글로벌 기업의 실적 추이
Ⅱ. 2009년 글로벌 기업 실적의 특징
Ⅲ. 시사점
2010년 들어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 글로벌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극심한 실적 악화를 경험했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직면해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GM, 메릴린치 등과 같이 과거 초우량기업의 위세를 자랑했던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었다. GE와 같은 우량기업도 금융부문의 부실로 자금조달을 하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중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기업실적도 개선되는 추세로 돌아섰다. 2010년 들어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자본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실적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투자심리가 호전되었고 주식시장도 상승세로 다시 돌아섰다. 기업실적 개선과 주식시장 상승은 소득을 증가시키고 소비심리를 자극하여 금융시장, 실물경제, 그리고 기업실적이 동반 개선되는 선순환을 일으키는 촉매역할을 하고 경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어떻게 변했고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의 경영성과도 비교해본다.
Ⅰ. 글로벌 기업의 실적 추이
2009년 글로벌 기업 실적 악화
실적 분석을 위한 글로벌 기업은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Forbes가 선정하는 2000개 글로벌 기업(Forbes Global 2000)이다. Forbes지는 매년 매출액, 자산총액, 순이익, 시가총액 등의 순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2000개 기업을 선정한다. Forbes Global 2000은 매출액 기준으로 500개 기업은 선정하는 Fortune지의 Fortune Global 500이나 시가총액 기준으로 500개 기업을 선전하는 Financial Times의 FT Global 500 등에 비해 다양한 기준을 고려하여 많은 기업을 선정한다.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기업들의 2009년 매출액은 32.0조 달러, 시가총액은 19.6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2009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4.3조 달러, 전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47.8조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Forbes Global 2000 기업들의 규모가 전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62개국에 걸친 다양한 지역의 기업이 포함되어 있다.
Forbes Global 2000에 속한 기업 중에서 1,117개 비금융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성과 추이를 살펴보면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2005-2007년 동안 10% 이상을 유지했던 분석 대상 글로벌 기업의 매출증가율(자국통화 매출증가율 중앙값 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8.0%로 둔화되었다. 2009년 들어 각국의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글로벌 경제위기는 수습되는 모습을 모였지만 실물경기 위축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글로벌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5.7%로 급락했다.
글로벌 기업의 수익성도 악화되었다.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분석대상 기업의 중앙값 기준)은 2005-2007년 연평균 11.9%에서 2008년 11.2%, 2009년 10.5%로 하락했다. 2009년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 하락은 소폭에 그쳤지만 매출액 규모가 2008년에 비해 감소함에 따라 영업이익 규모는 매출액보다 더 많이 줄었다(매출액과 영업이익 규모 변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II. 글로벌 기업 실적의 특징 참조)
한국 기업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양호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실적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12월 결산 580개 비금융회사의 매출증가율(중앙값 기준)은 1.6%를 기록했다. 2008년에 비해 매출은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이 역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은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9년 한국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5.2%를 기록하여 2008년(4.7%)에 비해 상승했다. 글로벌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 기업의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추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2009년 한국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1.6%로 급격하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 한국 기업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수익성의 측면에서는 글로벌 기업에 비해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절대 수준의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글로벌 기업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이 하락했지만 10%대를 유지한 반면 한국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상승했음에도 글로벌 기업의 절반 수준인 5%대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의 수익성 개선 추세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저수익성의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하반기 이후 기업실적 회복세 반전
분기별 실적을 살펴보면 글로벌 기업의 기간별 실적 변화 추이를 좀더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의 실적 변화를 분기별로 살펴보기 위해 2007년부터 2010년 1분기 동안 전체 분기별 실적 자료 입수가 가능한 367개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변화를 살펴보았다. 한국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12월 결산 107개 기업을 분석하고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은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2009년 분석대상 글로벌 기업의 전년 동기 대비 분기별 매출증가율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2분기 -8.2%를 고비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4분기에는 2.1%를 기록하면서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0년 1분기 글로벌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7.7%를 기록하여 회복세가 확연해졌다. 글로벌 기업의 영업이익률도 2009년 1분기 11.2%를 저점으로 상승하여 2010년 1분기에는 13.9%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의 실적 추이도 글로벌 기업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4월 30일 기준 2010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기업 중에서 2007년부터 분기별 실적 자료 입수가 가능한 107개 국내 상장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2009년 2분기를 고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올해 1분기에는 16.1%를 기록했다. 2009년 1분기부터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0년 들어 소폭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2009년 중반으로 고비로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기업실적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금융완화 정책으로 경제위기 동안에 위축되었던 수요가 되살아난 때문이다. 매출회복과 더불어 경제위기 과정에서 실적 악화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들의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나면서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기업실적 개선은 실물경기가 2009년 중반부터 회복단계에 들어섰고 2010년 들어 회복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후퇴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는 아직까지 경제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외환위기 이전의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를 기준으로 외환위기 전후의 글로벌 기업의 실적을 추이를 살펴보면 연간 기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은 각각 2007년, 2006년 수준에 머문 것으로 분석되었다. 2005년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을 100으로 보았을 때 2006년 111.3, 2007년 123.8, 2008년 135.2 등으로 증가했던 매출액 규모는 2009년에는 2007년 수준인 125.8로 하락했다. 2009년 글로벌 기업의 영업이익(2005년을 100으로 보았을 때에 112.9)도 2006년(113.2) 수준으로 하락했다.
분기별 실적을 살펴보아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2010년 1분기 매출증가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매출액영업이익률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규모는 2008년 초와 유사한 수준에 머물렀다. 매출증가율이나 매출액영업이익률과 같은 지표 상으로는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제위기 동안에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던 데에 따른 반작용의 효과가 크다. 실질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규모는 외환위기 이전인 2007-2008년 수준으로 줄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의 가파른 실적 개선은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추세에서 벗어난 실적이 정상궤도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아직은 정상괘도로 돌아가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되며,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상반기 이상의 수준으로 증가해야 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Ⅱ. 2009년 글로벌 기업 실적의 특징
내구 소비재 업종 실적 크게 악화
실물경제 환경은 2009년 업종별 경영성과에 반영되었다. 경제위기에 따라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자들의 수요가 줄었고 기업들의 투자도 크게 위축하였다. 이에 따라 석유가스, 무역, 자본재, 화학, 소재, 운송, 전기전자 등의 업종이 경제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심하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가 소득변화에 민감한 자동차, 가전제품 등을 비롯한 내구소비재 업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부진했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최종 수요제품의 수요 감소로 화학제품이나 금속소재 등과 같은 중간 투입 제품을 생산하는 업종의 실적도 상당히 저조했다. 기업들의 투자위축으로 기계,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자본재 업종의 실적도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악화되었다. 전세계적인 교역 감소로 무역과 운송 업종의 실적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급격하게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은 실적 악화 정도가 작았다. 보험, 의약품, 항공, 식품 업종 등은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성장세를 지속했다. 통신서비스와 전력 업종 등은 매출이 둔화되었지만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다. 전반적으로 경기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필수소비재 업종이나 해외 요인의 영향력이 적은 내수 업종의 실적이 경제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업종별로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09년 1분기와 2010년 1분기 실적을 비교해 보았다. 2009년 1분기는 경제위기의 부정적인 충격이 기업실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때이고 2010년 1분기는 경제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이다. 앞에서 이미 분기별 실적 추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부분의 업종이 2010년 들어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위기의 충격을 많이 받았던 업종들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 내구소비재, 소재, 전기전자 업종 등의 전년 동기 대비 2010년 1분기 매출증가율이 10%대를 기록하고 매출액영업이익률도 크게 개선되는 등 금융위기에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던 업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이러한 업종들은 2009년초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던 데 따른 상대적 반등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내구소비재와 전기전자 업종 등의 실적 개선은 외환위기 기간 동안에 억눌렸던 대기수요가 되살아나면서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에 대한 소비가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본재와 소재 업종의 실적 회복은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기업의 실적 저조
지역별로 나누어서 글로벌 기업의 실적을 살펴보면 개도국 기업의 실적은 양호했던 반면 선진국 기업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진국 중에서 일본 기업의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다.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비금융 일본 기업의 2009년 매출증가율은 -15.7%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2008년에 비해 11.7%p 하락했다. Forbes Global 2000에 비금융회사가 10개 이상 포함된 국가 중에서 매출증가율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매출액영업이익률도 2번째로 많이 하락했다. 일본 기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크게 하락한 것은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경기위축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자동차, 전자, 화학 업종 등에 속한 기업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요 부진과 유로화 강세 등으로 전반적으로 유럽 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기업들의 실적이 특히 좋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출발지인 미국 기업의 매출은 줄었지만 매출액영업이익률은 12%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선진국 중에서 영국 기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는데 파운드화 약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특히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 및 인도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보였다. 개도국 중에서 대만과 브라질 기업의 실적이 좋지 못했다. 대만에는 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위축된 전자기업의 비중이 높았고 브라질에는 금융위기의 충격을 많이 받은 에너지와 금속소재 기업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환율 효과에 엇갈린 실적
글로벌 기업의 실적에 각국별 환율 변동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환율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실적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통화가치 상승은 수출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여 기업들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Forbes Global 2000에 10개 이상의 비금융회사가 포함된 국가를 대상으로 통화가치 변화와 기업실적을 비교해 보았다. 통화가치 변화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제공하는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측정했다.
통화가치 변화는 수익성보다 성장성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보다 매출액이 통화가치(환율) 변화와 더 연동된 것으로 보인다. 환율 변화에 따라 수출제품의 가격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또한 환율 변화는 수입 원자재 가격에 반영되어 제품의 제조원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만 매출에서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를 차감하여 계산되는 영업이익에는 원가나 비용 변화 등을 통해 환율 변화의 영향력이 일부 흡수되어 반영된다. 따라서 영업이익보다 매출과 환율 변동 간의 연계성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2009년에 일본 기업들의 저조했던 실적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엔고에 따른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제공하는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2009년 통화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전체 58개국 중에서 일본의 통화가치가 2번째로 많이 절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에도 9번째로 통화가치 절상률이 높았다. 일본보다 통화가치가 많이 상승한 국가는 대부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요국 중에서 일본의 통화가치가 가장 많이 상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이 2008-2009년 동안 상당히 양호한 실적을 달성한 것은 원화가치 변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원화 가치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2008년 18.9%, 2009년 11.6% 하락했다. 실질실효환율이 제공되는 58개 중에서 통화가치 하락 정도가 2008년에는 2번째, 2009년에는 4번째로 컸다. 2008년과 2009년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던 원화와 엔화의 움직임은 우리나라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자제품, 자동차 등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쟁관계에 있는 제품이 많다. 그 결과 엔화 가치 상승, 원화가치 하락은 우리나라 기업의 실적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다.
2010년 들어 각국별 통화가치는 2009년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난다. 2010년 1분기 우리나라 원화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2008년 1분기에 비해 19.2%가 상승한 반면 일본의 엔화는 6.5% 하락했다. 향후 우리나라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 및 기업실적과 관련되어 우려되는 대목이다.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글로벌 기업들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Forbes Global 2000에 포함된 기업 중에서 2005-2009년 동안 수출 자료 입수가 가능한 974개 비금융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전 30%대에서 2009년에는 40%대 중반으로 높아졌다. 글로벌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은 2007년 40.4%에서 2009년에는 44.8%로 4.4%p 증가했다. 경제위기에 따른 수요부진을 경험하면서 해외시장을 개척한 결과로 보인다. 해외시장에서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금융위기 과정에서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던 화학과 소재 업종의 해외매출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6년과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었던 2009년을 비교해 보면 해외매출 비중은 화학이 11.8%p, 소재가 11.2%p 상승했다. 자본재, 전기전자, 내구소비재 업종의 등의 해외매출 비중도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았지만 증가했다. 화학과 소재 업종의 해외매출 비중이 높아진 것은 중국이 고도 성장세를 지속하고 개도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화학 소재 및 금속, 철강 등의 원재료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면서 교역량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신, 사업서비스 업종의 해외매출 비중도 늘어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활동이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 부문으로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확대되면서 해외매출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좀더 장기적인 추세를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해외매출 비중의 증가는 높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 개도국에 대한 시장 확대의 노력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경제위기 이후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글로벌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이 상당히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 2005-2006년 20%대에 머물던 해외매출 비중이 2009년 35.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에 38%대였던 미국 기업들도 43%로 늘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10%p 이상 상승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선진국 다른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여 영국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늘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매출 비중 증가는 개도국에서의 글로벌 기업들간의 경쟁이 한층 심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미 개도국 진출에 상당히 공을 많을 들인 일본이나 미국 기업들이 자국의 통화가치가 약세를 보일 경우 개도국 진출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미 해외매출 비중이 상당히 높은 업종에 속한 기업들간의 해외시장 개척과 관련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Ⅲ. 시사점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실적 개선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경제위기 동안의 수요위축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자동차, 전자, 화학, 소재 업종 등의 실적도 빠르게 회복되면서 경영활동이 정상을 되찾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매출이나 영업이익 규모에 있어서는 경제위기 직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은 세계경기의 회복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을 통해 살펴보면 세계경제는 2009년 중반부터 회복국면에 들어섰고 2010년 들어서는 회복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우량기업들은 경제위기 동안에는 내실을 다지기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탐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경기가 회복되고 수요가 살아나면 경쟁양상도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 경쟁자뿐만 아니라 M&A 등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성장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내수나 역내 교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선진국 기업들이 개도국에 대한 진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들어 한국의 원화가치가 상승하고 일본의 엔화 가치는 하락하는 등 환율효과의 긍정적인 영향이 사라지고 있다.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로 부정적인 환율효과의 영향이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경쟁기업에 있는 일본기업들의 수출가격 경쟁력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화가치가 빠르게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 기업이 최근 몇 년과 같은 양호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화 가치 상승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글로벌 기업들이 실적 악화를 경험한 것은 불과 1년여에 걸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강도는 엄청나서 대다수의 기업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위기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경쟁구조 변화에 대해 예의 주시하면서 대응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단기적인 환율 변동이나 새로운 경쟁자 출현 등과 같은 경영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적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혁신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여 경쟁구도를 주도할 수 있는 본질적 핵심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끝>
2010년 5월 13일 목요일
◎애플·혼하이를 통해 본 제조모델 변화의 바람
LG경제연구원 '애플·혼하이를 통해 본 제조모델 변화의 바람'
아이폰, 아이패드, 3D TV와 같은 혁신적인 제품의 등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제조 분야에도 다양한 변화와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지속될 제조에 관한 주요 논쟁은 크게 제조 모델 측면에서 △애플식 수평분업형 모델의 가능성 △New Breed 제조전문기업, 혼하이의 진화 △일본식 제조모델의 부활 가능성과 입지전략 측면에서 △핵심제조기지 전진배치를 통한 시장기회 확보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평분업형 제조모델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으나 제품 형태의 진화 및 분화 가능성,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 가능성으로 인해 잠재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LCD 패널을 내재화한 혼하이는 다른 차원의 제조전문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경영 능력, 전후방 수직통합 수준에 따라 성장 Potential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식 제조모델은 범용시장에서 점차 활력을 잃어가겠지만 미래유망영역을 중심으로 부활의 가능성이 옅보인다. 핵심제조기지 전진배치는 혁신의 원천을 잘 관리하면서 갈 때 그 성과가 배가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제조영역과 혁신에 대한 재정의 △제조 생태계와 연계된 제조모델 탐색 △내외부 조직간 협업 문화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제조에 부는 변화의 기운
Ⅱ. 제조 모델의 변화
Ⅲ. 핵심 제조기지 입지 전략의 변화
Ⅳ. 시사점
Ⅰ. 제조에 부는 변화의 기운
IT기업들의 가전시장(Consumer Electronics) 진입이 활발해지면서 애플과 같이 제조기반이 미약한 기업이 특정 시장을 지배하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동시에 제조의 성공요건이 부족해 성장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견되던 제조전문기업의 성장이 눈에 띄는 반면 제조의 성공요건을 갖춰 실패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 받던 일본기업의 쇠락이 여러 영역에서 관찰되고 있다. 한편 본국 중심의 제조전략이 기본으로 여겨지던 장치 산업에 있어 제조거점의 해외 이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제조모델에 관한 주요 가정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일시적인 현상일까? 제조모델간 충돌이 진행되고 있는 영역과 해외 이전 사례 분석을 통해 향후 제조전략 수립에 감안해야 할 시사점을 살펴 보도록 한다.
Ⅱ. 제조 모델의 변화
1. 애플- 수직통합에 대한 수평분업의 도전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가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심플한 디자인, 직관적인 사용방법, 그리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여기에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제품이 아닌 신분의 상징으로 받아 들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뒤집어 보면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Manufactured in China’.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제품을 사실 애플이 아닌 다른 기업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성공을 스티브 잡스라는 스타 CEO로 쉽게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아서’ 제조를 대행해 주는 제조전문기업(ODM/EMS)이 없었더라면 스티브 잡스가 미려한 디자인이나 직관적인 사용을 위한 핵심 플랫폼 설계에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특정 가치사슬에 전문화된 기업간 연합을 통해 제조를 추구하는 수평분업형 모델이 주목 받고 있다.
● 수평분업형 모델의 등장 배경
수평분업형 모델이 부상하게 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디지털화에 의한 제품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제품구성이 복잡하고 부품이나 소재간 많은 조율을 통해 제품을 만들었던 아날로그 시대에는 제조현장의 섬세한 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제조 위탁에 따른 기회비용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품 구성은 핵심 Chip이나 Software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졌고 부품 상호간 결합이 표준화되고 개방화되면서 제조현장에서의 다기능 숙련공 보다는 젊고 두뇌회전이 빠른 소수의 핵심 브레인에 의해 제품의 품질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예컨데 Intel CPU의 스펙만 자세히 보면 PC의 성능을 기본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즉 제품 아키텍처(Architecture)가 소위 조율형에서 모듈형으로 전환되면서 제조현장의 1차 진입장벽이 해체되어 버렸고 제조를 위탁하는 브랜드 기업관점에서는 ‘위탁’에 따른 기회비용이 상당히 줄어 들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핵심부품 및 주요 플랫폼을 시장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Open Market의 활발한 형성을 들 수 있다. CPU, 메모리, LCD 모듈과 같은 핵심부품의 제조 헤게모니가 전문부품기업으로 점차 이전되면서 Open Market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스마트화로 인해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소프트 영역에서도 동시에 관찰되고 있다. 안드로이드(Android)와 같이 뛰어난 운영체제가 염가로 배포되고 있으며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개발 툴 역시 염가로 제공되고 있다. 소위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본 재료를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번째로는 제조전문기업의 발달과 브랜드 제조기업들의 투자리스크 회피를 들 수 있다. 제조전문기업들은 브랜드나 R&D투자를 최소화해 간접비를 최소화하는 반면 SCM(Suppy Chain Management)이나 다양한 글로벌 생산지 네트워크 등 제조 그 자체에 상당히 최적화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플랫폼이 안정화된 대규모 범용시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시장전망기관인 iSupply에 따르면 세계 LCD TV 생산에서 외부위탁이 차지하는 비율이 ‘07년 28%에서 ‘12년에서는 41%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태양전지 선두기업인 Q-Cell은 최근 플렉트로닉스와 200메가와트 규모의 솔라셀 모듈 제조위탁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글로벌 생산지가 취약했던 Q-Cell이 플렉트로닉스의 말레이시아 Site를 통해 저원가 실현과 시장근접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종산업에서도 로열티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리스크 없이 제조업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주방기기업체인 알레시(Alessi)는 최근 무선랜과 디지털TV 튜너를 내장한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 PC ‘알레시탭(AlessiTAB)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모듈화, △핵심부품의 오픈 시장 발달, △제조전문기업의 등장, △투자리스크 회피 등으로 인해 기존 제조시스템은 해체와 통합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표준 플랫폼이 거의 정립된 PC시장은 이미 수평분업이 정착되었으며 비교적 플랫폼화가 덜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노트북, TV, 핸드폰까지 EMS를 활용한 수평분업체제가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연간 1억 2천만대가 팔리는 디지털 카메라 역시 제조전문기업에 의한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비중은 전체 물량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 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후지쯔, 도시바, 소니 등 일본 PC기업들은 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위탁생산비중을 전체 물량의 50% 가까이 늘릴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전문기업들이 제조하는 제품군을 펼쳐 보면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 서버 및 저장장치, 핸드폰, 차량전장, 가전기기, 의료장비, 산업용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다양한 기업이 포진해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수평분업체제에 내재된 함정: 시간, 유연성, 혁신 경쟁에 근본적인 취약성이 잠재
하지만 여기서 잠깐 수평분업체제가 안고 있는 몇 가지 근본적 한계와 이에 대한 가정이 과연 바뀌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2000년대 중반 IT기업들은 브랜드, 고객기반, 핵심기술로 무장하고 전자산업의 질서재편을 추구한 바 있으나 그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하드웨어 진화가 빠르고 진행되고 제품 형태(Form Factor)가 다양해 지면서 시간경쟁에 지연되는 모습을 보였고 IT기업으로서 기대되었던 차별성 확보에도 실패했다. IT기업에 의한 시도는 아니지만 핸드폰 산업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아웃소싱 전략을 추구하면서 수평분업형 제조시스템을 구축했던 소니에릭슨 역시 Time to Market 경쟁에 밀리면서 경쟁력 약화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 결과 수평분업모델은 하드웨어의 진화가 계속되는 한 R&D와 제조가 물리적으로 분리되면서 5%의 원가절감은 가능하나 40% 혁신에는 이르지 못하는 약점을 내재한 제조모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이후 제조모델에 관한 논쟁은 수직통합형 모델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아웃소싱은 제품라인업 및 제조시스템상의 복잡성을 일부 줄이면서 저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선택적 옵션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 애플식 제조모델에 대한 평가
그러나 최근 애플의 성공 사례를 보면 기존의 가설이 과연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한다. 애플이 수평분업모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배경에는 애플이 제품 라인업을 아주 단조롭게 운영했고 그 결과 조직 외부에 있는 생산 기능과의 조율 필요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고객들은 아이폰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아이폰 내에 있는 개인화 기능이나 앱 스토어를 통해 메뉴 구성이나 자신들이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어서 하드웨어 관점에서 몰개성적인 제품을 사실상 철저히 개인화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편리하고 미려한 유저 인터페이스로 인해 번거롭기 보다는 오히려 재미있기도 하다. 동시에 애플은 ‘심플하다’로 브랜드 포지셔닝 하고 있으며 이상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비고객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폰의 고객가치 구성과 고객 포지셔닝은 제조부문의 운영을 보다 간명하고 선명하게 만들어 외부자원을 활용한 제조가 실패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고 있다. 즉 애플은 제품 라인 업을 늘리는 방안으로 제품 형태(Form Factor)를 다양화시키기 보다는 사용자 주도의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대안을 발굴함으로써 제조 파트너에게 근원적인 역설을 해결해 줌과 동시에 사실상 저원가 대량맞춤생산에 성공하고 있다.
물 론 이러한 애플의 제조전략에도 기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소프트웨어적 차별화 역시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고 하드웨어의 진화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Form Factor에 대한 대응이나 고객 확대를 위해 라인 업 다양화가 여전히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평분업형 제조모델이 여전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 하드웨어의 혁신을 파트너링을 통해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수직통합모델이 다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제조모델 논쟁에 있어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2. 혼하이(Hon Hai) - New Breed 제조전문기업의 출현
앞서 잠깐 언급된 제조전문(EMS/ODM) 산업 내에서 있어 일어 나고 있는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제조전문기업의 재분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전문기업들은 제조를 위탁 받아 가공하는 것을 업의 본질로 삼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EMS내에서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제조전문기업들의 전후방 확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EMS에서 제품 설계를 확장한 ODM모델은 과거부터 있어 왔던 모델이나 최근에는 범용부품을 중심으로 수직통합이 추진되는가 하면 이를 넘어 핵심부품 통합, 전방으로는 유통, 고객서비스까지 확장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New Breed EMS/ODM’라고 호명할 수 있는 수준인데, 대만의 혼하이(Hon Hai)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혼하이는 약 60만 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기반으로 기존의 상식을 뛰어 넘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으며 Set조립의 저마진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PCB, 방열판과 같은 범용 부품을 내재화한 바 있다. 특히 제품력을 제고하기 위한 지속적인 금형 투자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혼나이의 사업모델은 △범용부품의 수직통합, △차별적 기구설계역량, △토탈 솔루션 제공, △ 특정사이트에서 대규모 클러스터 구축을 통한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라는 점에서 기존 제조전문기업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대만 전자기업의 제조 경쟁력 해부’, ’07.10.17, 조준일, LG Business Insight)
혼하이의 이러한 차별적 특성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혼하이의 자회사인 Innolux는 작년 LCD 패널 세계 3위 기업인 CMO(치메이 옵토일렉트로닉스)를 1,720억 대만달러(53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전자산업 내에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전자기업들이 EMS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혼하이의 성장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니는 지난 해 멕시코 공장을 혼하이에 90% 지분을 넘기고 금년 4월에는 소니 LCD TV 판매량의 약 1/4에 해당하는 연간 400만대의 TV를 제조할 수 있는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TV 공장의 지분을 추가로 혼하이에 매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혼하이는 해외제조거점과 안정적 고객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혼하이는 브랜드만 없을 뿐, 사실상 굉장히 강력하게 수직 통합된 사업구조와 고객기반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1차적으로 EMS 산업 내에서는 구조조정이나 합종연횡이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랜드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투자비 절감과 저원가 실현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잠재적인 경쟁자를 육성하는 리스크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혼하이의 모델이 중장기적으로 성공할지는 아직 의문에 싸여 있다. 최근 매출이나 성장세가 뛰어나긴 하지만 워낙 마진폭이 낮고 성장의 원동력이 아직은 농민공을 중심을 한 저임금 노동력에 기반해 있으며 글로벌하게 산재된 복수의 Complex를 동시에 관리하는 소위 'Big M'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내 농민공들의 귀농, 빠른 인건비 상승,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한 물류비용 증가는 혼하이의 Complex기반의 저원가 전략의 근원을 조심씩 잠식할 수 있다. 소니로 부터 인수한 해외 공장의 운영, 베트남, 인도 등으로 사이트 확장 과정에서는 이질적인 문화와 혼하이의 문화가 충돌하면서 경영상의 리스크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방기업의 독과점화로 인한 교섭력 상실을 우려하는 전방기업들의 복수 Vendor 정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 이러한 도전을 혼하이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향후 전개될 제조모델 논쟁에 있어 눈 여겨 볼 부분이 될 것이다.
3. 일본식 제조모델- 제조생태계에 기반한 제조전략
다음으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일본식 제조모델이 이대로 쇠락해 버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진행된 DTV, 휴대폰 등 디지털 전자 영역에서의 글로벌 지배력 약화와 함께 토요타 리콜 사태, 소니의 해외공장 매각 사례 등을 계기로 일본식 제조모델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쇠락은 크게 △일본식 표준만을 고집하다가 세계적인 시장의 흐름과 멀어져 버리는 갈라파고스 신드롬, △ BRICs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 및 대규모 저가시장에 대한 소홀한 대응, △일본식 문화로 인한 의사결정 스피드의 지연, △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투자 실기, △ 한국기업의 빠른 성장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제품의 시장점유율 변화가 아닌 일본식 제조모델의 본질을 살펴 볼 때, 일본식 제조모델이 시대적 운명을 다했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명쾌한 결론에 이르기 힘들다. 일본 제조기업들은 자국 내 수 많은 핵심소재, 부품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완성품 기업은 이를 ‘말하지 않아도 말이 통한다’는 일본식 문화로 쉽게 통합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일본식 제조모델은 다른 모델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확고한 부품 및 소재산업, 전후방 기업간 높은 신뢰관계(Trust)라는 사회적 자본의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식 제조모델의 경쟁력은 본질적으로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제조모델과 애플 및 구글의 제조모델이 그 근간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다는 점이다. 본국 내에 고객가치를 구성하는 전후방 산업이 잘 구축되어 있고 이러한 파트너들간 협업을 할 수 있는 문화, 사회적 신뢰나 관행의 구축, 이것과 잘 조율된 제품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부 품 및 소재산업은 다양한 산업에서 완제품의 경쟁력을 다시 개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Set 기업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소위 제조생태계 측면에서 확보된 파트너들간의 높은 신뢰관계는 제조가 범용화되지 않은 다른 산업영역에서 일본 Set 기업의 화려한 부활을 견인할 또 하나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미래 유망영역으로 언급되는 신재생에너지,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전기자동차에 요구되는 핵심부품, 소재기업만 보더라도 일본제조업의 기본경쟁력이 얼마나 탄탄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즉 일본 Set 업체들은 일부 영역에서 부침이 예상되나 내재화된 역량(Competency)이나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감안 시 시장과의 연결성(Fitness)를 좀 더 보강할 경우 언제든지 미래 유망영역에서 다시 개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Ⅲ. 핵심 제조기지 입지 전략의 변화
다음으로 눈 여결 볼 제조와 관련된 논쟁은 시장 기회 선점을 위한 핵심 제조기지의 전진배치를 들 수 있다. 제조부문의 범용화가 가속화 되자 주요 기업들은 후가공 기지의 전진배치를 넘어 핵심 제조기지를 전진 배치함으로써 차별화된 고객서비스의 제공, SCM 전반의 경쟁력 강화, 전략적 고객 확보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지정부들은 고용창출 및 전후방 산업의 연관효과를 감안,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니즈와 맞물려 핵심 제조기지의 전진배치를 촉진시키고 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는 ‘04년 9억 9,800만 달러 규모의 8인치 공장을 상하이에 설립한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TSMC는 하이얼과 같은 중국 로컬 고객을 보다 긴밀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Intel 역시 수요 확보를 위해 제조기지를 이전한 바 있다. 인텔은 ‘04년 초부터 아시아 지역의 수요 확보와 저렴한 노동력 이용한 원가 절감을 위해 여러 지역을 검토한 후 2년이 넘는 협상기간을 거쳐 ‘06년에 가장 성실히 협상에 임하고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약속한 중국의 대련을 투자지로 결정 짓고 35억 달러를 투자, 12인치 웨이퍼 Fab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하이닉스가 ‘05년 중국 강소성 무석시에 D램 전공정을 진출시킨 바 있으며 작년에는 후공정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해 중국 내에서 D-램관련 전/후공정 일괄생산체제를 구축, 중국 D램 시장에서 보다 견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여러 장치산업에서 관찰되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인 STX는 ‘06년 STX다렌을 설립,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복합조선단지를 진출시킨 바 있으며 최근 LCD산업에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LCD 전공정 진출을 통한 현지 기반확보가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는 반대로 제조, 그 자체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도 공존한다. 캐논은 저원가나 시장기회를 찾아 제조거점을 이동하는 것을 ‘화전민식 경영’으로 보고 있다. 캐논은 캐논 고유의 제조방식을 찾아 제품과 원가, 그 자체로 승부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근원이라고 파악하고 자동화 설비의 과감한 투자, 셀 생산방식 도입, 지식공유의 활성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핵심 제조기진 이전을 통한 경쟁 포지션 확보는 개별산업의 경쟁구도 및 제조부분의 범용화 리스크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기술유출, 국내 제조기지 공동화로 인한 혁신 원동력 상실, 국내 제조생태계 약화 등 중장기 관점에서 제조의 근본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은 옵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앞 서 살펴 본 인텔이 대련에 칩셋 및 주변 부품 제조를 위한 Fab을 건설했지만 핵심제품인 Microprocessor는 여전히 본국 내에서 제조하면서 핵심역량의 보존과 육성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동시에 많은 일본기업들이 시장기회보다는 핵심역량 관점의 의사결정을 지나치게 일상화한 결과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빠져 전반적인 활력을 잃어 버리고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시장기회, 투자리스크 회피, 핵심역량의 보존이라는 패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Ⅳ. 시사점
지금까지 제조영역에서 전개되는 주요 변화와 논쟁을 살펴 보았다. 수직통합모델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제조업 내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피상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인식을 통해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혁신의 원천을 어디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제조모델을 Upgrade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들은 자신들의 본업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본업에서 지금의 제조모델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 하에서 어떻게 하면 차별적 제조역량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 충분한 고민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아직 모든 모델을 아우르는 ‘절대 반지’와 같은 지배적 제조모델은 여전히 탐색 중이다. 하지만 성급히 다른 모델에서 대안을 찾고자 시도했던 기업들이 결국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쇠락에 직면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위 5%의 원가절감을 위해 40%의 혁신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핵심생산기지 전진배치를 통한 경쟁우위 확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핵심기지 전진배치는 본국 내에서 차세대 제품 투자나 혁신활동에 대한 중장기 계획과 맞물려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제조생태계와 연계된 제조모델의 탐색이 필요하다. 애플과 일본기업들은 상이한 제조모델을 추구하고 있지만 본국 내 제조 생태계와 제조모델 전략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소재 및 부품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애플은 자국 내에 잘 발달된 소트프웨어 산업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이러한 생태계를 활용하기 보다는 관련 생태계를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전개해 왔다. 과거 한국 전쟁 이후 전후방 산업 인프라가 없어 기업 스스로 생태계를 창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젠 모든 것을 기업이 스스로 다 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은 물론 정부 역시 전후방 산업의 육성, 상호간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이질적인 것과의 공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향후 제조모델은 소프트한 부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하드한 부분과 소프트한 부분이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내부구성원과의 협력보다는 외부 조직과의 협업이 많이 증가할 것이다. 동시에 보다 좋은 제조 생태계를 찾아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사례도 증가할 것이다. 생산기지 운영이나 로컬 소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화가 상이한 조직과의 협업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기업들의 글로벌화는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측면에서는 국내에서 구축된 수직 계열화된 구조를 복제, 해외에 이식한 한 것에 불과한 사례가 많다. 오픈형/현지형 제조시스템 구축 전략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이러한 이질성과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조직 내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제 조업의 상대적 부가가치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제조업은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에서 짧은 기간 놀라운 성과를 창출해 왔고 점차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되고 있다. 제조 모델에서 일고 있는 변화는 우리기업에게 새로운 도전이지만 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아이폰, 아이패드, 3D TV와 같은 혁신적인 제품의 등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제조 분야에도 다양한 변화와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지속될 제조에 관한 주요 논쟁은 크게 제조 모델 측면에서 △애플식 수평분업형 모델의 가능성 △New Breed 제조전문기업, 혼하이의 진화 △일본식 제조모델의 부활 가능성과 입지전략 측면에서 △핵심제조기지 전진배치를 통한 시장기회 확보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평분업형 제조모델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으나 제품 형태의 진화 및 분화 가능성,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 가능성으로 인해 잠재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LCD 패널을 내재화한 혼하이는 다른 차원의 제조전문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경영 능력, 전후방 수직통합 수준에 따라 성장 Potential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식 제조모델은 범용시장에서 점차 활력을 잃어가겠지만 미래유망영역을 중심으로 부활의 가능성이 옅보인다. 핵심제조기지 전진배치는 혁신의 원천을 잘 관리하면서 갈 때 그 성과가 배가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제조영역과 혁신에 대한 재정의 △제조 생태계와 연계된 제조모델 탐색 △내외부 조직간 협업 문화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제조에 부는 변화의 기운
Ⅱ. 제조 모델의 변화
Ⅲ. 핵심 제조기지 입지 전략의 변화
Ⅳ. 시사점
Ⅰ. 제조에 부는 변화의 기운
IT기업들의 가전시장(Consumer Electronics) 진입이 활발해지면서 애플과 같이 제조기반이 미약한 기업이 특정 시장을 지배하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동시에 제조의 성공요건이 부족해 성장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견되던 제조전문기업의 성장이 눈에 띄는 반면 제조의 성공요건을 갖춰 실패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 받던 일본기업의 쇠락이 여러 영역에서 관찰되고 있다. 한편 본국 중심의 제조전략이 기본으로 여겨지던 장치 산업에 있어 제조거점의 해외 이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제조모델에 관한 주요 가정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일시적인 현상일까? 제조모델간 충돌이 진행되고 있는 영역과 해외 이전 사례 분석을 통해 향후 제조전략 수립에 감안해야 할 시사점을 살펴 보도록 한다.
Ⅱ. 제조 모델의 변화
1. 애플- 수직통합에 대한 수평분업의 도전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가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심플한 디자인, 직관적인 사용방법, 그리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여기에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제품이 아닌 신분의 상징으로 받아 들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뒤집어 보면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Manufactured in China’.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제품을 사실 애플이 아닌 다른 기업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성공을 스티브 잡스라는 스타 CEO로 쉽게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아서’ 제조를 대행해 주는 제조전문기업(ODM/EMS)이 없었더라면 스티브 잡스가 미려한 디자인이나 직관적인 사용을 위한 핵심 플랫폼 설계에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특정 가치사슬에 전문화된 기업간 연합을 통해 제조를 추구하는 수평분업형 모델이 주목 받고 있다.
● 수평분업형 모델의 등장 배경
수평분업형 모델이 부상하게 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디지털화에 의한 제품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제품구성이 복잡하고 부품이나 소재간 많은 조율을 통해 제품을 만들었던 아날로그 시대에는 제조현장의 섬세한 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제조 위탁에 따른 기회비용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품 구성은 핵심 Chip이나 Software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졌고 부품 상호간 결합이 표준화되고 개방화되면서 제조현장에서의 다기능 숙련공 보다는 젊고 두뇌회전이 빠른 소수의 핵심 브레인에 의해 제품의 품질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예컨데 Intel CPU의 스펙만 자세히 보면 PC의 성능을 기본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즉 제품 아키텍처(Architecture)가 소위 조율형에서 모듈형으로 전환되면서 제조현장의 1차 진입장벽이 해체되어 버렸고 제조를 위탁하는 브랜드 기업관점에서는 ‘위탁’에 따른 기회비용이 상당히 줄어 들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핵심부품 및 주요 플랫폼을 시장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Open Market의 활발한 형성을 들 수 있다. CPU, 메모리, LCD 모듈과 같은 핵심부품의 제조 헤게모니가 전문부품기업으로 점차 이전되면서 Open Market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스마트화로 인해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소프트 영역에서도 동시에 관찰되고 있다. 안드로이드(Android)와 같이 뛰어난 운영체제가 염가로 배포되고 있으며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개발 툴 역시 염가로 제공되고 있다. 소위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본 재료를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번째로는 제조전문기업의 발달과 브랜드 제조기업들의 투자리스크 회피를 들 수 있다. 제조전문기업들은 브랜드나 R&D투자를 최소화해 간접비를 최소화하는 반면 SCM(Suppy Chain Management)이나 다양한 글로벌 생산지 네트워크 등 제조 그 자체에 상당히 최적화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플랫폼이 안정화된 대규모 범용시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시장전망기관인 iSupply에 따르면 세계 LCD TV 생산에서 외부위탁이 차지하는 비율이 ‘07년 28%에서 ‘12년에서는 41%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태양전지 선두기업인 Q-Cell은 최근 플렉트로닉스와 200메가와트 규모의 솔라셀 모듈 제조위탁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글로벌 생산지가 취약했던 Q-Cell이 플렉트로닉스의 말레이시아 Site를 통해 저원가 실현과 시장근접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종산업에서도 로열티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리스크 없이 제조업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주방기기업체인 알레시(Alessi)는 최근 무선랜과 디지털TV 튜너를 내장한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 PC ‘알레시탭(AlessiTAB)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모듈화, △핵심부품의 오픈 시장 발달, △제조전문기업의 등장, △투자리스크 회피 등으로 인해 기존 제조시스템은 해체와 통합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표준 플랫폼이 거의 정립된 PC시장은 이미 수평분업이 정착되었으며 비교적 플랫폼화가 덜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노트북, TV, 핸드폰까지 EMS를 활용한 수평분업체제가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연간 1억 2천만대가 팔리는 디지털 카메라 역시 제조전문기업에 의한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비중은 전체 물량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 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후지쯔, 도시바, 소니 등 일본 PC기업들은 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위탁생산비중을 전체 물량의 50% 가까이 늘릴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전문기업들이 제조하는 제품군을 펼쳐 보면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 서버 및 저장장치, 핸드폰, 차량전장, 가전기기, 의료장비, 산업용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다양한 기업이 포진해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수평분업체제에 내재된 함정: 시간, 유연성, 혁신 경쟁에 근본적인 취약성이 잠재
하지만 여기서 잠깐 수평분업체제가 안고 있는 몇 가지 근본적 한계와 이에 대한 가정이 과연 바뀌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2000년대 중반 IT기업들은 브랜드, 고객기반, 핵심기술로 무장하고 전자산업의 질서재편을 추구한 바 있으나 그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하드웨어 진화가 빠르고 진행되고 제품 형태(Form Factor)가 다양해 지면서 시간경쟁에 지연되는 모습을 보였고 IT기업으로서 기대되었던 차별성 확보에도 실패했다. IT기업에 의한 시도는 아니지만 핸드폰 산업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아웃소싱 전략을 추구하면서 수평분업형 제조시스템을 구축했던 소니에릭슨 역시 Time to Market 경쟁에 밀리면서 경쟁력 약화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 결과 수평분업모델은 하드웨어의 진화가 계속되는 한 R&D와 제조가 물리적으로 분리되면서 5%의 원가절감은 가능하나 40% 혁신에는 이르지 못하는 약점을 내재한 제조모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이후 제조모델에 관한 논쟁은 수직통합형 모델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아웃소싱은 제품라인업 및 제조시스템상의 복잡성을 일부 줄이면서 저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선택적 옵션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 애플식 제조모델에 대한 평가
그러나 최근 애플의 성공 사례를 보면 기존의 가설이 과연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한다. 애플이 수평분업모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배경에는 애플이 제품 라인업을 아주 단조롭게 운영했고 그 결과 조직 외부에 있는 생산 기능과의 조율 필요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고객들은 아이폰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아이폰 내에 있는 개인화 기능이나 앱 스토어를 통해 메뉴 구성이나 자신들이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어서 하드웨어 관점에서 몰개성적인 제품을 사실상 철저히 개인화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편리하고 미려한 유저 인터페이스로 인해 번거롭기 보다는 오히려 재미있기도 하다. 동시에 애플은 ‘심플하다’로 브랜드 포지셔닝 하고 있으며 이상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비고객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폰의 고객가치 구성과 고객 포지셔닝은 제조부문의 운영을 보다 간명하고 선명하게 만들어 외부자원을 활용한 제조가 실패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고 있다. 즉 애플은 제품 라인 업을 늘리는 방안으로 제품 형태(Form Factor)를 다양화시키기 보다는 사용자 주도의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대안을 발굴함으로써 제조 파트너에게 근원적인 역설을 해결해 줌과 동시에 사실상 저원가 대량맞춤생산에 성공하고 있다.
물 론 이러한 애플의 제조전략에도 기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소프트웨어적 차별화 역시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고 하드웨어의 진화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Form Factor에 대한 대응이나 고객 확대를 위해 라인 업 다양화가 여전히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평분업형 제조모델이 여전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 하드웨어의 혁신을 파트너링을 통해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수직통합모델이 다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제조모델 논쟁에 있어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2. 혼하이(Hon Hai) - New Breed 제조전문기업의 출현
앞서 잠깐 언급된 제조전문(EMS/ODM) 산업 내에서 있어 일어 나고 있는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제조전문기업의 재분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전문기업들은 제조를 위탁 받아 가공하는 것을 업의 본질로 삼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EMS내에서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제조전문기업들의 전후방 확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EMS에서 제품 설계를 확장한 ODM모델은 과거부터 있어 왔던 모델이나 최근에는 범용부품을 중심으로 수직통합이 추진되는가 하면 이를 넘어 핵심부품 통합, 전방으로는 유통, 고객서비스까지 확장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New Breed EMS/ODM’라고 호명할 수 있는 수준인데, 대만의 혼하이(Hon Hai)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혼하이는 약 60만 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기반으로 기존의 상식을 뛰어 넘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으며 Set조립의 저마진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PCB, 방열판과 같은 범용 부품을 내재화한 바 있다. 특히 제품력을 제고하기 위한 지속적인 금형 투자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혼나이의 사업모델은 △범용부품의 수직통합, △차별적 기구설계역량, △토탈 솔루션 제공, △ 특정사이트에서 대규모 클러스터 구축을 통한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라는 점에서 기존 제조전문기업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대만 전자기업의 제조 경쟁력 해부’, ’07.10.17, 조준일, LG Business Insight)
혼하이의 이러한 차별적 특성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혼하이의 자회사인 Innolux는 작년 LCD 패널 세계 3위 기업인 CMO(치메이 옵토일렉트로닉스)를 1,720억 대만달러(53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전자산업 내에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전자기업들이 EMS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혼하이의 성장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니는 지난 해 멕시코 공장을 혼하이에 90% 지분을 넘기고 금년 4월에는 소니 LCD TV 판매량의 약 1/4에 해당하는 연간 400만대의 TV를 제조할 수 있는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TV 공장의 지분을 추가로 혼하이에 매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혼하이는 해외제조거점과 안정적 고객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혼하이는 브랜드만 없을 뿐, 사실상 굉장히 강력하게 수직 통합된 사업구조와 고객기반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1차적으로 EMS 산업 내에서는 구조조정이나 합종연횡이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랜드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투자비 절감과 저원가 실현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잠재적인 경쟁자를 육성하는 리스크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혼하이의 모델이 중장기적으로 성공할지는 아직 의문에 싸여 있다. 최근 매출이나 성장세가 뛰어나긴 하지만 워낙 마진폭이 낮고 성장의 원동력이 아직은 농민공을 중심을 한 저임금 노동력에 기반해 있으며 글로벌하게 산재된 복수의 Complex를 동시에 관리하는 소위 'Big M'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내 농민공들의 귀농, 빠른 인건비 상승,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한 물류비용 증가는 혼하이의 Complex기반의 저원가 전략의 근원을 조심씩 잠식할 수 있다. 소니로 부터 인수한 해외 공장의 운영, 베트남, 인도 등으로 사이트 확장 과정에서는 이질적인 문화와 혼하이의 문화가 충돌하면서 경영상의 리스크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방기업의 독과점화로 인한 교섭력 상실을 우려하는 전방기업들의 복수 Vendor 정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 이러한 도전을 혼하이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향후 전개될 제조모델 논쟁에 있어 눈 여겨 볼 부분이 될 것이다.
3. 일본식 제조모델- 제조생태계에 기반한 제조전략
다음으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일본식 제조모델이 이대로 쇠락해 버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진행된 DTV, 휴대폰 등 디지털 전자 영역에서의 글로벌 지배력 약화와 함께 토요타 리콜 사태, 소니의 해외공장 매각 사례 등을 계기로 일본식 제조모델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쇠락은 크게 △일본식 표준만을 고집하다가 세계적인 시장의 흐름과 멀어져 버리는 갈라파고스 신드롬, △ BRICs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 및 대규모 저가시장에 대한 소홀한 대응, △일본식 문화로 인한 의사결정 스피드의 지연, △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투자 실기, △ 한국기업의 빠른 성장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제품의 시장점유율 변화가 아닌 일본식 제조모델의 본질을 살펴 볼 때, 일본식 제조모델이 시대적 운명을 다했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명쾌한 결론에 이르기 힘들다. 일본 제조기업들은 자국 내 수 많은 핵심소재, 부품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완성품 기업은 이를 ‘말하지 않아도 말이 통한다’는 일본식 문화로 쉽게 통합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일본식 제조모델은 다른 모델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확고한 부품 및 소재산업, 전후방 기업간 높은 신뢰관계(Trust)라는 사회적 자본의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식 제조모델의 경쟁력은 본질적으로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제조모델과 애플 및 구글의 제조모델이 그 근간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다는 점이다. 본국 내에 고객가치를 구성하는 전후방 산업이 잘 구축되어 있고 이러한 파트너들간 협업을 할 수 있는 문화, 사회적 신뢰나 관행의 구축, 이것과 잘 조율된 제품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부 품 및 소재산업은 다양한 산업에서 완제품의 경쟁력을 다시 개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Set 기업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소위 제조생태계 측면에서 확보된 파트너들간의 높은 신뢰관계는 제조가 범용화되지 않은 다른 산업영역에서 일본 Set 기업의 화려한 부활을 견인할 또 하나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미래 유망영역으로 언급되는 신재생에너지,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전기자동차에 요구되는 핵심부품, 소재기업만 보더라도 일본제조업의 기본경쟁력이 얼마나 탄탄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즉 일본 Set 업체들은 일부 영역에서 부침이 예상되나 내재화된 역량(Competency)이나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감안 시 시장과의 연결성(Fitness)를 좀 더 보강할 경우 언제든지 미래 유망영역에서 다시 개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Ⅲ. 핵심 제조기지 입지 전략의 변화
다음으로 눈 여결 볼 제조와 관련된 논쟁은 시장 기회 선점을 위한 핵심 제조기지의 전진배치를 들 수 있다. 제조부문의 범용화가 가속화 되자 주요 기업들은 후가공 기지의 전진배치를 넘어 핵심 제조기지를 전진 배치함으로써 차별화된 고객서비스의 제공, SCM 전반의 경쟁력 강화, 전략적 고객 확보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지정부들은 고용창출 및 전후방 산업의 연관효과를 감안,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니즈와 맞물려 핵심 제조기지의 전진배치를 촉진시키고 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는 ‘04년 9억 9,800만 달러 규모의 8인치 공장을 상하이에 설립한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TSMC는 하이얼과 같은 중국 로컬 고객을 보다 긴밀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Intel 역시 수요 확보를 위해 제조기지를 이전한 바 있다. 인텔은 ‘04년 초부터 아시아 지역의 수요 확보와 저렴한 노동력 이용한 원가 절감을 위해 여러 지역을 검토한 후 2년이 넘는 협상기간을 거쳐 ‘06년에 가장 성실히 협상에 임하고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약속한 중국의 대련을 투자지로 결정 짓고 35억 달러를 투자, 12인치 웨이퍼 Fab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하이닉스가 ‘05년 중국 강소성 무석시에 D램 전공정을 진출시킨 바 있으며 작년에는 후공정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해 중국 내에서 D-램관련 전/후공정 일괄생산체제를 구축, 중국 D램 시장에서 보다 견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여러 장치산업에서 관찰되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인 STX는 ‘06년 STX다렌을 설립,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복합조선단지를 진출시킨 바 있으며 최근 LCD산업에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LCD 전공정 진출을 통한 현지 기반확보가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는 반대로 제조, 그 자체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도 공존한다. 캐논은 저원가나 시장기회를 찾아 제조거점을 이동하는 것을 ‘화전민식 경영’으로 보고 있다. 캐논은 캐논 고유의 제조방식을 찾아 제품과 원가, 그 자체로 승부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근원이라고 파악하고 자동화 설비의 과감한 투자, 셀 생산방식 도입, 지식공유의 활성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핵심 제조기진 이전을 통한 경쟁 포지션 확보는 개별산업의 경쟁구도 및 제조부분의 범용화 리스크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기술유출, 국내 제조기지 공동화로 인한 혁신 원동력 상실, 국내 제조생태계 약화 등 중장기 관점에서 제조의 근본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은 옵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앞 서 살펴 본 인텔이 대련에 칩셋 및 주변 부품 제조를 위한 Fab을 건설했지만 핵심제품인 Microprocessor는 여전히 본국 내에서 제조하면서 핵심역량의 보존과 육성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동시에 많은 일본기업들이 시장기회보다는 핵심역량 관점의 의사결정을 지나치게 일상화한 결과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빠져 전반적인 활력을 잃어 버리고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시장기회, 투자리스크 회피, 핵심역량의 보존이라는 패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Ⅳ. 시사점
지금까지 제조영역에서 전개되는 주요 변화와 논쟁을 살펴 보았다. 수직통합모델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제조업 내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피상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인식을 통해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혁신의 원천을 어디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제조모델을 Upgrade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들은 자신들의 본업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본업에서 지금의 제조모델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 하에서 어떻게 하면 차별적 제조역량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 충분한 고민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아직 모든 모델을 아우르는 ‘절대 반지’와 같은 지배적 제조모델은 여전히 탐색 중이다. 하지만 성급히 다른 모델에서 대안을 찾고자 시도했던 기업들이 결국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쇠락에 직면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위 5%의 원가절감을 위해 40%의 혁신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핵심생산기지 전진배치를 통한 경쟁우위 확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핵심기지 전진배치는 본국 내에서 차세대 제품 투자나 혁신활동에 대한 중장기 계획과 맞물려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제조생태계와 연계된 제조모델의 탐색이 필요하다. 애플과 일본기업들은 상이한 제조모델을 추구하고 있지만 본국 내 제조 생태계와 제조모델 전략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소재 및 부품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애플은 자국 내에 잘 발달된 소트프웨어 산업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이러한 생태계를 활용하기 보다는 관련 생태계를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전개해 왔다. 과거 한국 전쟁 이후 전후방 산업 인프라가 없어 기업 스스로 생태계를 창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젠 모든 것을 기업이 스스로 다 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은 물론 정부 역시 전후방 산업의 육성, 상호간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이질적인 것과의 공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향후 제조모델은 소프트한 부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하드한 부분과 소프트한 부분이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내부구성원과의 협력보다는 외부 조직과의 협업이 많이 증가할 것이다. 동시에 보다 좋은 제조 생태계를 찾아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사례도 증가할 것이다. 생산기지 운영이나 로컬 소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화가 상이한 조직과의 협업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기업들의 글로벌화는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측면에서는 국내에서 구축된 수직 계열화된 구조를 복제, 해외에 이식한 한 것에 불과한 사례가 많다. 오픈형/현지형 제조시스템 구축 전략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이러한 이질성과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조직 내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제 조업의 상대적 부가가치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제조업은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에서 짧은 기간 놀라운 성과를 창출해 왔고 점차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되고 있다. 제조 모델에서 일고 있는 변화는 우리기업에게 새로운 도전이지만 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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