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2010년 산업전망

하나금융연구소 '2010년 산업전망'

 

Ⅰ. 2010년 국내산업 전망 개관
개관 | 2009년 1/4분기중 경기 저점을 통과. 환율 하락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나 경기여건의
회복으로 IT와 철강, 자동차업종의 회복이 예상되며, 석유화학은 2010년중 down cycle 진입 가능성

  • 국내 제조업 생산은 중국의 수입수요에 힘입어 1/4분기를 저점으로 빠른 회복세를 시현중.
    아직 위기 이전 수준까지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의 경기 지표 개선으로 장기간 침
    체에 대한 우려는 불식
  • 2010년에는 민간소비 회복과 기업 설비투자 확대 등 전반적인 경기 여건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나, 환율 하락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 업종별로 영향은 차
    별화될 것으로 보이나, 수출비중이 높고 순외화자산이 많은 디스플레이와 조선업종의 피해
    가 예상
  •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의 지연투자 재개와 경기회복으로 설비투자 여력이 확보되면서 위
    기 이전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 IT와 석유화학의 투자 확대 예상
  • 2010년에는 IT와 철강, 자동차중심의 성장이 예상되나, 조선은 신규수주의 급감으로 부진
    지속이 불가피하며, 석유화학은 2010년중 down cycle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음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2010년 세계경제 및 국제금융시장 전망

국제금융센터 '2010년 세계경제 및 국제금융시장 전망'

본 보고서는, 2010년 세계경제가 점진적인 회복 국면의 지속과 함께 세계교역 규모가 증가세로 전환되고, Global Imbalance가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주요국 재정적자 및 정부부채가 급증하고 2010년 하반기 경기회복세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美 달러화가 2008년 줄곧 강세를 나타내다 글로벌 금융불안 완화, 위험선호 증가, 초저금리 정책 지속 등으로 2009년 약세로 반전됨에 따라 美 달러화가 금리인상 이전까지 약세기조를 유지할 것이나 다시 강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원화는 신흥국 통화중 대외 상황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급등락을 시현했는데, 글로벌 경기회복의 전망에 따라 달러 공급우위 등으로 점진적 강세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안 커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 '美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안 커지고 있다'

미국의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경제 회복세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재정수지 악화의 심각성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이며 이에 따른 문제점 및 관건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지난 10월 16일 미국 재무부는 2009 회계년도(2008.10~2009.9)의 재정 적자가 1조 4,171억 달러로 집계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는2008 회계년도 재정 적자의 3.1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GDP의 9.9%에 해당한다. 백악관 예산관리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에 따르면 2009년 말까지 누적될 국가 부채는 GDP 대비 90.4%에 해당하는 12조 8,67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미국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그 원인 및 파급효과에 대한 논란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1월 3일 오바마 정부는 올해 초 확정된 7,870억 달러의 재정 확대 정책에 이어 추가적인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실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피력하였다.
 
본고에서는 미국의 재정 건전성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인지 살펴보고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성 및 위험 요인들을 점검해 본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 효과의 향방에 따른 경기 흐름의 변화 가능성도 짚어본다.
 
미국의 정부 부채, 2차 대전 이후 최대 수준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의 재정 건전성이 가장 크게 훼손되었던 시기는 다섯 기간에 걸쳐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1> 참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규모의 국방비 지출에 기인하여 재정 적자 및 국가 부채는 GDP 대비 각각 1943년 30.3%, 1946년 121.7%까지 증가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권 하에서는 국방비 증대 이외에도 대대적인 감세 및 규제 완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시에 목격되었으며, 이는 조지 H.W. 부시 정권까지 이어졌다. 조지 W. 부시 정부 역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전에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감세 정책 기조를 유지하였다. 현재 오바마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재정 악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194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GDP대비 부채 규모는 현재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아직 OECD 평균인 91.9%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올해 6월 발표된 OECD 경제 전망(OECD Economic Outlook No.85)에 따르면 내년 미국의 부채 규모 역시 올해보다 증가한 GDP대비 97.5% 수준으로 예측되지만 OECD 평균인 100.2%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이후의 재정 상황에 대한 美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백악관 예산관리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등 미국 내 주요 기관들의 전망은 긍정적인 편이다(<그림 3> 참조). 재정 적자는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줄어들다가 이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 부채 규모도 올해 이후 누적 속도가 둔화되다가 안정세를 되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 기관들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6월 10일 자체 보고서(2009 Article Ⅳ Consultation with the U.S.)를 통해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가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음을 지적하였고,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경우 역시 가장 최근에 발표된 경제 전망(OECD Economic Outlook No.85)을 통해 미국의 재정 악화 정도가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렇듯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현황과 전망이 비관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재정 적자는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근본 적자의 비중이 크다는 것과, 둘째, 미국의 재정은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 셋째, 성장세 제고를 통한 세수(稅收) 증대를 노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 등이다.
 
1. 근본 적자(Primary Deficit) 심각성 두드러져 
 
국가별로 재정 건전성의 정도를 비교하기 위해 우선 파악해야 할 것은 근본 적자(Primary Balance)의 규모이다(<그림 4> 참조). 근본 적자란 그 동안 발행된 국채의 이자 지불분을 제외한 순수한 의미의 재정 수지를 일컫는다. 미국의 GDP 대비 근본 적자는 6.2%로 일본이나 스페인보다 높으며, 최고치인 영국의 7.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의 상당 부분이 과거 부채에 대한 이자 지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주요국들에 비해 심각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자 지불분을 제외한 실질적인 의미의 적자 규모인 것이다. 근본 적자는 과거 정권으로 부터 이어받은 재정 상황보다는 현 정부 재정운영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오바마 정부의 재정 운영상의 적자 수준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가 경기부양의 가능성, 높은 보건의료 비용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적자 요인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채 이자가 재정 수입으로 충당될 만한 수준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명목GDP와 국채 금리간 차이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차이는 금리가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 경제 성장률을 상회할수록 낮아져, 실질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4.5%p로 국채 이자 조달의 부담이 크지만 근본 적자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국들 사이에서 심각성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 부채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채 이자부담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근본 적자의 축소에 주력하면서 완만한 물가 상승과 명목 GDP의 확대 속에서도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거시경제적 여건은 현실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2.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 상대적으로 높아 
 
미국의 재정 문제는 단순히 그 규모로만 파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미국의 경우 일본에 비해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림 5> 참조).
 
일본의 올해 GDP 대비 재정 적자는 OECD 국가 중 6번째 규모이며, 국가 부채는 GDP의 189.6% 수준으로 두 번째로 높은 이탈리아의 122.9%, 일본을 제외한 OECD 국가 평균 63.1%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일본의 부채가 이처럼 불어난 것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목 건설 등 대대적인 공공 지출을 늘려온데다 고령화에 따른 세수 부족에도 불구하고 감세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비효율적인 정부지출과 감세 정책의 문제점은 미국이 향후 취해야 할 정책적 노선을 고려하는 데 지양해야 할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부 채권의 비중은 2002년 이후 급증하고는 있지만 2009년 3월말 기준으로 아직 6.3% 수준에 그치고 있다. GDP 대비 부채의 절대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메우기 위해 발행되는 정부 채권을 국내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부채의 90% 이상이 대내적으로 조달된다는 것은 재정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 역시 자체적인 정책 조율에 의해 모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미국의 경우 해외 차입에 의존한 정부 채권의 비중이 일본과 비교해 4배가 넘는 25.9%를 기록하고 있다. 재정 적자의 재원을 해외 자금을 통해 조달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만약 미국 국채 및 공공채 등에 투자된 해외 자금이 대거 유출될 경우 그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채권 상환 능력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히 하락할 경우 국채 금리가 명목GDP를 훨씬 상회하게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 경우 이자 부담도 가중되어 재정 불안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
 
3. 성장을 통한 세수(稅收) 증대 여의치 않아 
 
과거 몇 차례 민간 수요 증대를 통한 성장세 회복이 정부의 재정수지를 개선시킨 사례가 있었다. 실제로 대대적인 감세 기조가 강했던 1980년대를 제외하고, 경제 성장 촉진을 통한 세수 증대가 재정 건전성 회복의 원동력이 되어왔다(<그림 6> 참조).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한 막대한 규모의 국방비 지출은 일시적으로 최악의 재정 상황을 초래했지만, 고용 증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대공황 이후 침체되어 있던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자 세금을 통한 정부 수입이 많아지면서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고 부채의 상당 부분 또한 단기간에 상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위적인 증세 정책을 통한 정부 수입 확보가 아닌 경제 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가 재정 악화 해소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경기가 빠르게 활성화될 경우 인위적인 정책 개입 없이도 세수가 증대되어 가장 자연스러운 경로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성장세를 제고할 만한 동인(動因)을 찾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함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재정 악화의 탈출구를 모색한다는 의도도 분명히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책적 대응의 실효성이 관건 
 
이처럼 미국의 재정 상황은 부채 확대 추세가 수년 내 둔화되고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공식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우려할 만한 요소들이 상존해 있다.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재정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운신의 폭을 큰 무리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재정악화를 얼마나 진정시킬 수 있을지의 관건은 경기 부양을 통한 성장 동력의 확보,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보건의료 절감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지난 2월에 확정된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of 2009) 중 올해 사용되기로 계획되었던 1,850억 달러를 초과하는 1,950억 달러가 이미 현재까지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세 제고 효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그림 7> 참조).  
 
특히 10월의 실업률이 26년만에 처음으로 실업률이 10%를 넘어서는 등 노동 시장의 침체가 극심하다. 이에 따라 올해 11월말 종료 예정이었던 최초 주택구매자 대상 8천 달러의 조세 지원이 내년 4월까지 연장되고 실업수당 자금 지원 기한을 연장시키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등 최근 민간 수요 진작을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이 시도되고 있지만, 경기부양 자금을 적재 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보건의료 개혁 등과 관련한 정부지출의 절감 가능성 문제이다. 과거 미국의 정부지출 구성을 살펴보면, 네 번의 재정 위기 모두의 경우 재정 악화가 막대한 규모의 국방비 조달을 위한 재정 지출에 상당 부분 기인한 반면, 오바마 정권 하에서는 이보다는 보건의료 및 금융 관련 지출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8> 참조).
 
과거의 재정 위기 시기와는 다르게, 현재 미국 재정 위기의 주 원인은 국방비 지출이 아니라 보건의료 및 사회보장 비용, 그리고 일시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금융 관련 자금이며, 이들의 향방이 중요한 변수이다. 특히 현재 전체 정부지출 중 20%를 차지하는 보건의료 부문의 지출이 당장 내년부터는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 부문에 대한 조정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13일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가결되고 11월 7일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보건의료 개혁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오바마 정부는 현재 보건의료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디케어(Medicare: 고령층 대상)와 메디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대상) 부문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정 적자 절감 효과가 증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법안 내용이 상원 심의 과정에서 크게 수정되거나 반대론자들의 이의에 부딪쳐 추후에 변경될 경우 중장기적인 세출 감소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이번 개혁을 통해 공공보험(Public Option) 등 새로운 보건의료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절감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는지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중장기적인 경제회복세의 발목 잡을 수도 
 
증세를 통한 세수(稅收)의 확대도 지켜볼 부분이다. 미국의 조세 수입은 현재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OECD 국가들의 평균치인 GDP대비 37.1%에도 크게 못 미치는 31.3%를 기록하고 있어 향후 증세 기조가 강화될 여지가 있다(<그림 9> 참조). 역사적으로도 민주당 정권은 공화당 정권보다 증세 정책을 선호해왔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강도 높은 증세 정책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이제 막 회복세를 되찾기 시작한 실물 경제 부문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 시장의 위축이 아직 완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세금이 인상될 경우 민간 부문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여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증세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은 부문의 세율을 올리고 경기 회복 효과가 큰 부문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는 효율적인 조세 정책을 운영하여, 전반적인 재정 적자 감소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 재정의 현주소는 정부지출을 통한 민간 수요 회복으로 성장력을 제고시키는 한편, 세수 증대 및 금리 안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개선시키고 해외 자본에의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는, 서로 상충되는 과제들을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경우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제회복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끝>

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환율 충격 흡수력 높아졌지만 휘둘리는 구조 여전

LG경제연구원 '환율 충격 흡수력 높아졌지만 휘둘리는 구조 여전'

크게 높아진 수출비중, 환율변화에 따른 달러표시 수출가격 전가도 하락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환율 하락시 수익이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시기를 비교할 때 기업들이 원화환율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수입원재료의 투입 비중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용 절감, 결제통화 및 수출시장 다변화와 함께 비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효과도 적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환율의 변동성이 커진 점을 감안하면 단위당 환율효과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을지라도 전체 환율 변화에 따른 수익 변화 효과는 여전히 클 수 있다.  
 
금년 국내외수요의 극심한 위축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실적이 예상보다 호조를 보인 데에는 작년 평균 대비 20% 가량 상승한 환율 덕이 크다. 향후 환율은 당분간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경기나 수출단가의 회복세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화환율이 하락세를 유지한다면 이에 따른 수익악화 효과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 목 차 > 
 
Ⅰ. 환율하락에 따른 기업수익 악화 정도
Ⅱ.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시기의 비교
Ⅲ. 환율 효과 변화의 원인 분석
Ⅳ. 시사점
 
 
지난 상반기중 달러당 1,352원 수준이던 원화환율이 최근 1,160원대로 하락한 데 이어 내년까지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이 비교적 선전한 것이 환율효과 때문이라는 평가이고 보면, 원화환율의 빠른 하락세가 야기할 수출 위축, 수출채산성 악화 등의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 몇 년간 국내기업들의 수출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데다, 주력 수출품목들인 반도체를 비롯한 IT 분야에서의 높은 시장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표준화 또는 소수의 공급자간 치열한 경쟁, 빠른 기술혁신 등의 이유로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 부문에서는 탄탄한 해외수요의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환율 하락을 가격인상으로 흡수할 여력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 글로벌 위기의 와중에서 국내기업들의 해외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는 등 국내제품의 질적인 경쟁력 개선을 시사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환율효과 외에도 품질경쟁력 향상, 연구개발 투자의 증대 등이 성과를 거두면서 우리 수출구조가 환율 변화에 덜 민감한 구조로 변모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하여 기업수익성과 환율변화 또는 여타의 요인들간의 관계가 어떠하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결과에 기반하여 향후 환율하락에 따른 영향과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Ⅰ. 환율하락에 따른 기업수익 악화 정도 
 
 
기업의 수익은 제품에 대한 국내외 수요와 생산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 수익에 대한 환율의 영향력은 주로 수출비중, 수입원재료비 비중 그리고 환율 변화에 따른 수출입가격 및 수출입물량의 탄력성 등에 좌우된다(박스기사 “환율변화와 기업수익” 참조). 추정 결과에 따르면 기업별, 업종별로 편차가 크지만 환율 하락이 기업수익에 미치는 마이너스 효과가 작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높은 수출비중으로 환율변화에 민감한 구조 
 
외견상으로만 보면 국내기업들은 환율변화에 매우 민감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2007~2008년 기간 중 상장 제조기업의 수출비중은 60.6%에 달한다. 해외 매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환율이 하락하면 전체 매출이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중간재 중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중 30%여서 환율하락시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기대되지만 해외매출 감소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2007~2008년 상장 제조기업의 재무제표 자료를 이용하여 환율변화에 따른 수출입가격이나 수출입 물량의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고 단순히 해외매출과 수입중간재 투입 비용이 환율 변화에 따라 바뀌는 효과를 시산해 보면, 원/달러 환율의 10% 하락은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3.85%포인트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표 1> 참조).
 
환율하락의 영향은 업종별로 편차가 심하다. 경공업과 중공업으로 구분하여 비교해보면, 2007~2008년 중 원화환율 10% 하락의 영업이익률 악화 효과가 경공업 부문에서 0.67%포인트에 불과한 데 비해 중공업 부문에서는 4.24%포인트나 된다. 경공업 부문 기업의 수출비중이 15%에 불과한 데 비해 중공업 부문 기업들의 수출비중은 7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세부 산업별로 환율변화에 대한 노출도를 살펴보면, 선박, 고무·플라스틱, 금속, 기계, 전자 부문이 수출비중이 높아 환율하락에 취약한 구조이고 목재·종이, 음식료, 비금속 광물 부문은 환율하락의 수익악화 효과가 적거나 환율하락이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업종이다.
 
환율 하락의 기업 수익 악화 효과 
 
실제에 있어 수출 기업들은 환율 상승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거나 또는 환율 하락의 부정적인 효과를 극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응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환율 변화가 기업수익에 미치는 효과는 위에서 살펴본 것보다는 훨씬 작을 가능성이 높다. 수출가격 변화를 통한 대응, 생산성 향상 및 원가절감 노력, 환위험 관리 등으로 기업, 업종에 따라 환율하락의 충격이 일부분 또는 상당 부분 흡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상장 기업들의 과거 실적들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에서 확인된다. <표 2>는 1986~2008년 기간에 대해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하여 연간 영업이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국내외 수요 요인 및 세계 수출단가와 함께 환율 변화를 고려하여 분석한 결과이다. 대형 기업으로 분석대상을 제한한 것은 소규모 기업이 전체 추정결과를 좌우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추정 결과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10% 하락은 상장 제조기업의 영업이익률을 0.45%포인트 악화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 악화 정도가 수출입가격 및 물량이 고정된 것으로 가정하고 도출한 것보다는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원/엔 환율 하락의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명목실효환율 10% 하락 역시 영업이익률을 0.4%포인트 악화시키는 효과를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수출 위주의 기업들에 한정하여 분석하면, 환율 하락의 효과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난다. 매출액 중에서 수출비중이 50%를 넘는 수출기업들의 경우 원/달러 환율 또는 명목실효환율 10% 하락시 영업이익률은 평균 0.8%포인트 악화되는 효과가 있다.  
 
업종별로는 섬유·의복, 화학, 고무·플라스틱, 전자, 철강, 정밀기계 등이 비교적 환율하락에 따른 수익 악화 정도가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동차, 기계, 선박 등 전통적으로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에서 환율하락의 수익 악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업종별 특수한 요인들이 완전히 고려되지 않은 분석상의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Ⅱ.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시기의 비교 
 
 
현재 우리나라의 수출입구조는 80~90년대에 비해 급격히 변화된 상태이다. 경공업보다 중공업 부문의 수출비중이 월등히 높고 전자, 통신 등 IT 제품은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소비재 수입이 10% 전후에서 정체된 가운데 자본재 수입비중이 다소 줄어든 반면 원자재의 수입의존도가 높아졌다. 기업들의 중간재 투입 중 수입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 환율 변화에 따른 생산비용의 변화 정도를 커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환율변화에 따른 기업수익의 민감도가 과거에 비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하여 환율의 기업 수익에 대한 영향력이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출비중 증대로 환율 변화에 대한 노출도 증대 
 
수출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내기업들이 환율변화에 민감한 사업구조로 변모해 온 것이 사실이다. 1990~1991년 중 상장 제조기업의 수출비중은 33.2% 수준이었는데 1995~1996년에 40.6%로 늘어난 데 이어 2000~2001년에는 49.4%로 높아졌다. 또한 2007~2008년 기간에는 상장 제조기업들이 생산품의 60.6%를 해외에 수출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간재중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점차적으로 늘어나 환율하락시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커진 것이 사실이지만, 크게 늘어난 해외매출 감소 효과를 상쇄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한다.
 
수출입가격이나 수출입 물량의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고 환율 변화의 효과를 시산해 보면, 그 동안 기업수익의 환율 변화에 대한 노출도가 커진 것으로 나타난다. 10%의 원/달러 환율 하락이 상장 제조기업의 영업이익률을 악화시키는 정도가 1990~1991년 중 1.71%포인트에서 1995~1996년, 2000~2001년에 각각 2.34%포인트, 2.96%포인트로 커진 데 이어 2007~2008년에는 3.85%포인트로 높아진 것으로 계산된다(<표 3> 참조).
 
경공업과 중공업으로 구분하여 비교해보면, 1990~1991년 중 원화환율 10% 하락에 따른 영업이익률 악화는 경공업과 중공업이 각각 1.56%포인트, 1.76%포인트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후 환율 하락에 따른 영업이익 악화 정도가 중공업 부문에서는 커지고 경공업 부문에서는 줄어들면서 두 부문간의 환율 효과 차이에 있어 격차가 커지고 있다. 2007~2008년 중에는 원화환율 10% 하락의 영업이익률 악화 효과가 경공업 부문에서 0.67%포인트에 불과한 데 비해 중공업 부문에서는 4.24%포인트나 된다. 수입중간재 투입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경공업 부문 기업의 수출비중이 크게 낮아진 반면 중공업 부문 기업들의 수출비중은 급격히 높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기업 수익에 대한 환율 효과 감소 
 
앞서의 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환율 외에 기업 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분석한 결과는 환율 효과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을 보여준다(<표 4> 참조).
 
원/달러 환율 10% 하락(상승)이 상장 제조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악화(개선)시키는 효과가 1986~1997년 기간 중 1.3%포인트였으나 1998~2008년 기간 중에는 0.8%포인트로 줄어들 것으로 나타난다. 원/엔 환율과 명목실효환율의 기업 수익에 대한 영향력은 외환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명목실효환율의 경우, 10% 하락은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외환위기 이전 0.7%포인트 정도 악화시켰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0.8%포인트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수출비중이 50% 이상인 수출 위주의 기업들에 한정한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발견된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원/달러 환율 10% 하락이 수출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1.9%포인트 악화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그 효과가 0.8%포인트로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마찬가지로 명목실효환율 10% 하락이 수출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악화시키는 효과도 외환위기 이전 1.14%포인트에서 외환위기 이후 0.8%포인트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원/엔 환율 10% 하락의 효과도 0.43%포인트에서 0.04%포인트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해외수요 및 세계 수출단가의 영향력 확대 
 
과거에 비해 원화환율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해외수요나 세계 수출단가의 기업수익에 대한 영향력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출기업에 한정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세계수출단가 10% 하락이 수출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을 악화시키는 효과가 외환위기 이전에는 크지 않았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0.42%포인트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주요 교역상대국의 가중 평균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국내 수출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0.02%포인트 악화되는데 그쳤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0.14%포인트 악화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Ⅲ. 환율 효과 변화의 원인 분석 
 
 
국내기업들의 수출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전자와 화학 등의 수출 중에서 표준화된 범용제품은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이 높지 않아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수출가격 인상을 통해 대응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을 수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외환위기 이후의 기간 동안 달러표시 수출단가의 환율에 대한 탄력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환율하락의 수익 악화 효과가 커질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하락의 효과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 데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경쟁력 개선 효과 
 
우선 질적인 경쟁력 개선 효과를 들 수 있다. 기술혁신과 R&D 투자 확대 등 우리 기업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우리 수출품이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품질 경쟁력을 갖춘 결과가 환율의 영향력 축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 주력 수출품에 대한 해외수요 변화 등의 영향력이 커진 점도 마찬가지 효과를 낳는 요인이다. 우리 수출품의 가격탄력성이 과거에 비해 약화된 것은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량 축소에 대한 부담이 없이 수출가격 변화를 통해 원화환율 하락에 대응할 수 있는 품목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산비용 절감 효과 
 
원화환율 하락의 효과가 줄어든 또 다른 이유로 중간재 중 수입제품의 투입비중이 늘어나면서 원화환율 하락이 생산비용 절감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제조업의 중간재중 수입재의 투입 비중은 1990년의 24.7%에서 2007년 30%로 늘어났다. 더욱이 원화표시 수입단가의 환율변화에 대한 탄력치가 외환위기 이후 크게 높아져 환율하락의 수입 중간재 투입비용의 하락을 가속시킨 요인이다. 수입가격과 환율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원화환율 10% 하락시 원화표시 수입가격은 외환위기 이후 6.5%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나 외환위기 이전의 2.8%에 비해 크게 커진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가 수입가격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없는 원자재 등의 수입비중이 늘어난 때문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환율하락시 생산비용 절감 효과가 커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그림 1> 참조). 환율하락에 따른 해외매출의 감소효과를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상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것이다. 이는 반대로 환율이 상승하게 되면 수입재료비용이 크게 늘어나 해외매출 증대 효과를 상쇄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통화 및 수출시장 다변화 효과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유로화나 위안화 등 주요 개도국 통화의 영향력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결제통화로서 달러화의 비중이 아직도 월등히 높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낮아진 데다 수출시장 다변화로 여타 통화가 기업의 해외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표 5> 참조). 우리 수출 중에서 차지하는 미국시장의 비중이 1991년의 25.8%에서 2008년 11%로 낮아지고 일본 또한 비중이 급격히 감소한 대신, 중국과 여타 국가에 대한 수출시장 의존도가 높아졌다(<그림 2> 참조). 이들 국가에 대해 달러화 표시로 수출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 변화가 우리 수출과 수출가격 설정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과거 해외시장에서 주된 경쟁상대가 일본, 대만 등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 등 후발 개도국들과의 경쟁이 높아진 것 역시 원/달러, 엔/달러 환율 외에 여타 통화의 중요성이 높아진 원인으로 지적된다.
 
 
Ⅳ. 시사점 
 
 
이상에서 추정된 기업수익에 미치는 원화환율 효과의 분석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해외 자회사 및 해외 현지법인의 경영성과를 포함하지 못한 결과인 데다 환율과 수출입 가격 및 물량에 영향을 미치는 수요 외에 여타 요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외매출이 모두 달러화로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원화환율 효과를 분석하였다는 한계도 있다.
 
이같은 몇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추정 결과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기업 수익이 과거에 비해 환율 변화에 덜 영향을 받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환율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환율변화의 부정적인 효과를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환율 효과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환율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기업수익이 환율변화에 휘둘리는 구조는 여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내수기업의 수익률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인 데 비해 수출기업의 수익률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내수기업에 비해 훨씬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단위당 환율 효과는 줄어들었더라도 환율변동성 증대로 전체 환율효과는 크게 변하지 않은 때문으로 볼 수 있다(<그림 3> 참조).  
 
금년 상반기 국내외 수요의 극심한 위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실적이 괜찮았던 것은 원/달러 환율이 작년 평균치에 비해 20% 가량 상승한 결과 전체 환율효과가 작지 않았던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마찬가지로 현재 환율이 상반기 평균에 비해 10% 이상 하락한 상태인 데다 내년 중까지 추가 하락세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수익악화 정도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기업수익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 세계 수요나 세계 수출단가의 회복세가 유지된다면 환율하락에 따른 수익 악화는 어느정도 극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세계경기 회복이나 우리 주력수출품의 단가 회복세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화환율만이 하락세를 유지한다면 이에 따른 수익악화 효과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있다.   <끝>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달러 캐리 트레이드, 금융시장 불안정성 높인다

LG경제연구원 '달러 캐리 트레이드, 금융시장 불안정성 높인다'

금융시장 불안이 완화되면서 미국의 제로금리 및 양적 완화 정책에 기반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의 단기 금리가 일본의 낮은 금리 수준을 하회하면서 종전에 엔화 자금의 조달을 통해 이루어졌던 캐리 트레이드의 상당 부분이 달러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캐리 트레이드의 확산은 개도국의 외화유동성 사정을 개선시키고 자산가격 상승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급격한 청산으로 인한 금융불안 및 자산가격 폭락의 위험도 안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단기적으로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향방에 가장 큰 결정요인인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시기는 유동적이나, 주요 선진국들의 저금리 정책 기조가 지속되는 만큼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이후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규모의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향후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급격한 청산 또는 여타 통화로의 교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목 차 > 
 
Ⅰ.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부상
Ⅱ. 달러 캐리 트레이드 확대의 영향
Ⅲ.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향방 및 시사점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2008년 하반기 두드러졌던 미국으로의 집중적인 자금 유입 현상도 빠르게 완화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매월 발표하는 국제 자본 유출입 자료(TIC; Treasury International Capital Data)에 따르면, 작년 한 해 6,641억 달러 규모의 순유입을 나타낸 대미 투자자금이 올해는 지난 8월까지 5,096억 달러 순유출로 전환되었다(<그림 1> 참조). 이는 금융시장 불안이 완화되면서 미 국채 같은 안전자산이나 달러 유동성을 대신해 미국 밖의 위험자산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최근 들어서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보다 수익률이 높은 다른 나라의 금융상품 등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국제 자금시장에서 달러 리보(LIBOR) 금리가 1993년 5월 이후 처음으로 엔 리보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종래의 엔화나 스위스프랑이 아닌 달러화가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에 있어 중요한 조달 통화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7년 중반 이후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던 주요 투자은행의 캐리 트레이드 관련 지수도 올해 1분기 이후로는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를 이어오고 있다. 이들 지수는 달러 뿐만 아니라 엔화나 스위스프랑 같은 다양한 조달 및 운용 통화들을 아우르는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의 강도를 나타내는데, 지금은 2007년 중반의 정점에 비해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리먼 브라더스 사태 직후의 극심한 위축 국면으로부터는 상당 부분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2> 참조).  
 
이처럼 달러 캐리 트레이드와 그를 통한 미국 밖으로의 자금유출 가속화가 언뜻 보기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 및 세계경제 회복과 동일한 맥락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투기적 성향의 자본이동이 증가하면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부작용과 후유증에 대한 부담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되어 가는 상황에서 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재개시킨 요인들을 짚어보고, 그 향방을 통해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나갈 것이며, 그에 따른 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 보았다.
 
 
Ⅰ.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부상 
 
 
2007년 하반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이 심화되고 관련 파생상품의 손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이후 올해 초까지는 캐리 트레이드의 위축기였다. 금융기관들이 파산위험에 처하면서 자금시장은 경색되는 모습을 나타냈으며, 투자심리도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 2008년 하반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실화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정책금리를 크게 낮추고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국채를 기준으로 한 각국 금리가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수렴하면서 국가간 금리 차이도 축소되는 흐름을 나타냈다. 여기에 국제 자본이동의 흐름이 급변하고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캐리 트레이드의 안정적인 기반은 크게 약화되었고, 2007년까지 계속 증가세를 나타내 온 엔 캐리 트레이드 또한 상당 부분 청산이 이루어졌다.  
 
반면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서는 다시 캐리 트레이드의 형성에 우호적인 여건들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 주식시장의 불안정 심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변동성지수(VIX)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상당 수 개도국의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으로 크게 치솟았던 신흥시장채권지수(EMBI+)도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그림 3> 참조). 여기에 전세계 외환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환율의 변동성도 줄어들었다(<그림 4> 참조).  
 
이는 환율의 급변동으로 인해 투자 수익률이 급락할 위험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실물경제의 빠른 개선 흐름을 나타내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시장금리의 상승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의 회복 속도나 물가상승압력, 재정 및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정도가 국가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지금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향후 국가간 금리 수준 또한 다시 차별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새로운 조달통화로서 달러화의 매력 부각 
 
이러한 상황에서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통화로서 이번에는 엔화나 스위스프랑이 아닌 달러화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미국의 금리정책이 역사상 가장 완화적인 영역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2008년 12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극복하고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0~0.25% 범위로 낮춘 바 있다. 여기에 국채(3,000억 달러 규모, 올해 10월경 매입 완료 시사)와 모기지 채권(1조2,500억 달러 규모, 완료 시한을 올해 연말에서 2010년 1분기로 연장) 등을 직매입하는, 이른바 양적 완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정부와 금융기관의 지출 및 자금 공급능력이 크게 확충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시장금리는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힘입어 국채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까지 하락한 데 이어, 작년 연말 이후로는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이 되는 오버나잇 금리와 CD, CP 등의 금리도 전반적인 하향 안정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그림 5> 참조). 특히 지난 8월 중순 경에는 리보(LIBOR, London inter-bank offered ratio) 시장에서 달러 리보 금리가 엔 리보 금리를 하회하는 현상이 나타나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어, 달러화가 엔화를 대체해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의 새로운 조달통화로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그림 6> 참조).
 
달러 약세 예상에 기대는 측면 커 
 
미국의 저금리 외에 달러화의 추가 약세 가능성도 달러화의 캐리 트레이드에 있어 핵심 요인이다. 2008년 하반기 전세계 금융시장이 극심한 불안국면을 경험하는 동안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다. 신용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대표적 자산인 미국 국채와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달러 수요가 올해 1분기 이후로는 점진적으로 약화되면서 달러화 또한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 2009년 기준 1조4,000억 달러(GDP의 약 10%에 해당)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자의 부담과 인플레이션 위험 등의 잠재적인 약세요인들까지 감안할 때, 달러화가 약세 추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기대에 기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요인들을 종합해서 볼 때, 캐리 트레이드의 수익은 어느 정도나 될까? 캐리 트레이드의 운용 대상은 채권이나 대출자산에 국한되지 않고, 주식, 상품 및 귀금속 등 다양한 범위와 위험도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수익도 취득 자산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현물통화를 조달해서 대표적인 고금리 국가들로 꼽히는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러시아, 남아공, 멕시코에 같은 비중으로 투자하는 것을 가정하고, 2009년 1월~10월 동안의 기간을 대상으로 수익률을 연도별로 시산해 보았다(<그림 7> 참조). 조달통화를 달러화 이외에 유로, 엔, 파운드, 스위스프랑 등 주요 국제통화들 각각에 대해 계산한 결과 달러화를 조달해서 투자했을 때, 달러화(30.5%)의 기대 수익률이 가장 크고, 엔화(27.1%), 스위스프랑(24.7%), 유로(22.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그림 7> 참조).
 
 
Ⅱ. 달러 캐리 트레이드 확대의 영향 
 
 
자본이 풍부한 나라에서 그렇지 못한 나라로의 자본이동은 생산요소의 효율적 배분에 기여하고 투자를 촉진시킴으로써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이끄는 데 기여한다. 캐리 트레이드 또한 국제 자본이동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러한 순기능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상황이 2008년 하반기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직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의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외화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개발도상국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자산가격을 상승시킴으로써 그 나라 금융시장은 물론 세계경제의 안정에도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외환시장 불안으로 말미암아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크게 절하되었던 나라의 경우에는, 금융시장이 일단 안정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연후에는 통화가치의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될 유인이 더욱 커진다. 이 같은 자금유입은 지난 해 대규모 외국자본 이탈로 폭락했던 개도국 자산가치를 끌어올리고, 이들 나라의 금융기관의 정상화와 경제회복에 있어 도움이 되고 있다(<그림 9>, <그림 10> 참조).  
 
신흥국 경제 안정에 일조, 청산 시 부작용에는 우려 
 
물론 한계는 있다. 캐리 트레이드는 투자대상에 대한 진정한 ‘투자’로서의 의미보다는 자본비용과 수익성에 있어서의 국가간, 통화간 괴리와 거기에 환율 변수까지 고려한 차익거래가 그 본질이다. 따라서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 또한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효율성이나 효과에 기초한 판단과는 다소 괴리가 존재할 수 있으며, 장기투자보다는 단기적인 핫머니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높다. 외부충격으로 인해 금리나 환율 변수에 급변동이 발생하는 경우 캐리 트레이더는 투자대상의 본질적인 투자가치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거래를 언제든지 청산하고자 하는 유인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정책변화나 인접국의 금융불안, 외국인 투자자의 여건 변화 등 외부충격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성행한 엔 캐리 트레이드의 경우에도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나 충격 등이 예상되거나 발생하는 경우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는 데 걸린 시간이 그 전의 포지션 구축에 소요된 시간보다 짧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캐리 트레이드 포지션에 있어 구축 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청산은 일시에 보다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화선물 등 파생금융상품을 통한 캐리 트레이드의 경우 레버리지 효과를 동원함으로써 거래 규모를 원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까지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유사시에는 위험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레버리지 투자 구조는 투자에 있어 자기자본수익률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경제가 불안정해지면서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되는 경우에는 경제의 변동성과 불안의 확대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달러 약세 가중 
 
한편 미국의 초저금리 기조와 그로 인해 발생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유입을 둔화시키고 미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자금의 규모는 증가시킴으로써 달러 가치를 약세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과거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통화였던 일본의 엔과 스위스프랑도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기 전까지는 약세를 나타냈다. 특히 일본은 2000년대 초반까지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거주자에 의한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조달이나 일본 가계 및 기업의 해외투자 증가로 인한 자본수지 악화 요인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에 필요한 모든 달러화가 미국으로부터 조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밖에 존재하는 달러 자금’, 즉 유로달러(Eurodollar)도 캐리 트레이드의 주요한 자금원이다. 따라서 전세계에 걸쳐 기축통화로서 널리 유통되는 달러화의 경우에는 그 규모나 강도에 비해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유출을 야기하는 정도가 약할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캐리 트레이드로 인한 달러 약세 효과 또한 엔이나 스위스프랑의 경우보다는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전자산 선호의 약화, 재정적자 누적, 향후 도래할지도 모를 인플레이션이나 산유국들의 달러 사용 기피에 대한 우려 등 현재 잠재되어 있는 달러 약세 요인들에 더해 최근 나타나는 캐리 트레이드의 영향력까지 지속되면 달러화 약세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최근과 같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폭이 줄어들고 오바마 행정부의 재정건전화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더라도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지속되는 한 달러 약세는 좀더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리 트레이드로 인해 달러화의 약세가 좀더 진행되는 경우에는 만성적인 적자 구조인 미국의 경상수지를 개선시킴으로써 글로벌 불균형을 축소시키고 세계경제의 안정성 제고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원자재에 대한 투기적 수요 조장 
 
달러 가치 하락이 금이나 원유 등 상품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투기적 성향의 캐리 트레이더들에게 있어서는 원자재에 대한 직접적인 수요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금, 원유, 구리 등 원자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시장이 발달하면서 이들 시장에서의 투기적 성향이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상품 가격의 표시가 달러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달러 약세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들 상품의 실질가격 유지를 위한 달러 표시 명목가격의 상승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상품수요가 달러 캐리 트레이드에 의한 자금조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달러 약세가 상품가격 상승을 야기하는 과정을 보다 뚜렷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그림 11> 참조).  
 
 
Ⅲ.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향방 및 시사점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미국의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 즉 금융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예외적인 대응방식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캐리 트레이드를 유발한 요인들이 일본의 경우처럼 향후 수년 동안에 걸쳐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저금리 및 유동성 확대 정책만 보더라도 그러한 정책을 지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출구전략의 구사 시기와 구체적인 방안. 단계 등에 대한 고려도 동시에 저울질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은 미국의 경제상황 호전 여부에 따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인상 결정이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향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히고 있다. 미국의 연방기금금리 선물 가격에 내재된 금리인상 확률을 보면, 최근 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가 다소 늦춰지는 시장기대의 변화가 감지된다. 내년 3월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정책금리가 현재 수준보다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는 기대가 지난 8월 말에 86.3%에서 10월 말에는 31.8%로 크게 감소한 반면,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심지어는 더 낮출 수도 있을 것(현재의 0~0.25% 범위에서 0% 또는 0.25%보다 낮은 수준으로의 인하를 의미)이라는 기대는 8월말의 13.7%에서 68.2%로 크게 높아졌다(<그림 12> 참조). 이는 현재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내년 또는 그 이후까지 재정지출을 계속해서 늘려 나가기가 어려워 정책효과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업용 부동산 금융의 부실과 같은 불안요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성장률 하락 요인을 기업 등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 증가가 성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조기 청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통화의 증가속도와 실물경제의 활동 정도간의 격차를 의미하는 초과유동성의 증가세가 정점을 지나 둔화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그림 13> 참조). 현재의 저금리 정책이 당분간 지속되더라도 향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 초과유동성증가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최근의 분위기 변화에도 불구하고 향후 정책금리의 인상 시기 또한 여전히 유동적으로 남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연방기금금리 선물 가격에 따르면, 금융시장에서는 내년 2분기 중으로 금리 인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현재 나타나는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듯하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조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이외에도 정책금리가 1%를 하회하는 나라들은 일본,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 모두 8개 나라에 이른다. 이들 나라와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를 감안할 때,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가, 이를테면 유로지역이나 일본에 비해 늦을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의 회복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이후 국가간 금리 차는 더욱 벌어질 수도 있다. 즉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줄어들게 되면, 그 대신 파운드화나 스위스프랑 같은 대체통화에 의한 캐리 트레이드가 출현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충분하다. 특히 일본 엔화의 경우 내년 이후에도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 어려워 현재의 달러화에 이은 과도기적인 조달 통화들을 제외했을 때 끝까지 조달통화의 위치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그림 14> 참조). 이 경우 캐리 트레이드 위축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정 요인은 줄어들겠지만 주요 통화간의 국제환율 흐름은 그 방향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 
 
달러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도 상당 부분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의 금리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편인 데다, 특히 경제의 펀더멘탈에 비해 원화환율이 과도한 불안국면을 겪었기 때문에 상반기 이후 원/달러 환율의 하향 안정에 대한 방향성도 비교적 뚜렷했다. 그 결과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채권 등 여타 자산시장에서도 환 헤지 수요를 동반하지 않은 캐리성 자금이 유입되었으며,  원/달러 환율의 하락 폭을 확대시키면서 외환시장의 안정과 회복에 일조했다(<그림 15> 참조). 2008년 한해 동안 412억 달러 순유출을 기록한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은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는 212억 달러 순유입 흐름을 나타내고 있으며 외국인의 채권투자자금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원화환율의 과도한 하락은 수출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달러화 약세 요인이 환율의 하락세를 주도하는 경우에는 다른 경쟁국가들의 통화도 비슷한 정도로 강세를 나타내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출경쟁력의 저하가 환율의 하락속도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교역 상대국가의 분포를 감안할 때 달러화 결제 비중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수출경쟁력의 저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일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유출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캐리 자금의 유입은 우리나라 주식이나 채권 등에 대해 환차익까지 염두에 둔 투기적 수요가 가세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자산시장에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강화되면서 자산가격의 상승폭도 확대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경우 캐리 청산, 또는 조달통화의 급격한 교체 과정에서는 반대로 금융시장의 불안 양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아직 금융위기의 파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캐리 트레이드의 운용통화, 즉 국내에서는 원화 및 그 자산을 팔고 달러를 보유, 매수하는 포지션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경우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내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통화스왑 금리가 급락하는 등 외화자금시장이 크게 악화될 수도 있다. 특히 2009년 들어 해외로부터의 자금조달이 재개되면서 대외채무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데, 그러한 부분이 달러 캐리 트레이드 청산 시에는 충격과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확대 또는 청산 문제는 우리경제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외생변수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캐리 트레이드의 변화가 야기할 수도 있는 자산시장의 과열양상에 대한 관리감독을 지속하면서 외화부채에 대한 관리능력을 제고시켜나가는 한편,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이 해외로부터 전염되지 않도록 국제적 공조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끝>

◎보이지 않는 심리가 조직을 흔들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보이지 않는 심리가 조직을 흔들 수 있다'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 개인의 심리, 정서 상태를 관리하는 것 못지 않게 조직 전체의 심리 상태를 점검,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직의 심리는 구성원들 사이의 역학 관계, 외부 자극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때로는 한 개인의 생각,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형성, 표출될 수도 있다. 
 
최근 인간의 심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 서점가에도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고, 대인관계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심리 기법에 대한 서적들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일반인들이 개인의 심리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면, 기업에서는 개인 단위뿐만 아니라 조직 단위의 심리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의 성과가 구성원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조직의 심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개인보다는 조직이 발휘하는 힘과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McKinsey Quarterly에 소개된 ‘The Psychology of Change Manage-ment’의 저자 에밀리 로손(Emily Lawson)과 콜린 프라이스(Colin Price)도 “많은 기업들이 성과 향상을 위한 변화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의 사고 방식, 마인드에 의해 형성된 조직의 심리를 관리하지 못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들이 조직의 심리 관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이 조직의 심리를 의도하는 대로 잘 관리하면 약이 될 수 있지만 방치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관리한다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부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시도했던 변화 관리, 지식 경영, M&A 등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도 조직의 심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조직의 심리를 어루만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구축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역전한 사례도 있다.  
 
2002년 부도 위기를 극복한 GM대우 사례를 보자. GM대우 출범 시, 구성원들은 외국 자본에 대한 선입견과 구조조정에 대한 거부감으로 경영층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임한 닉 라일리(David Nicholas Reilly) 전임 CEO는 조직 내에 팽배한 불신과 불안의 심리를 현지화 전략과 노사 상생의 경영으로 극복하는 지혜를 보였다. 특히, 정리 해고되었던 생산직 직원들을 5년 만에 복직시켰던 사례는 상처받았던 조직의 심리를 아물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조직의 심리 유형과 관리 포인트 
 
조직의 심리는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구성원들 사이의 역학 관계, 외부 자극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때로는 한 개인의 생각,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형성, 표출될 수도 있고, 때로는 조직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조직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직의 심리 유형을 살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보자(<그림> 참조).
 
‘모두가 Yes면, 나도 Yes’, ‘예스맨’ 조직이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 
 
상사나 동료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음식 주문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장면을 시키면 자기 혼자 다른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눈치 보여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음식을 주문했을 때 늦게 나올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나 상사에 대한 복종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신경학 분야에서도 동조나 복종의 심리가 인간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뇌신경학자 바슬리 클루카레프(Vasily Klucharev) 박사는 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 다수와 다를 경우, 뇌가 이를 인지하고 행동에 교정이 필요하다는 ‘경고’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밝혀냈다. 집단의 영향이 개인의 의사 결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직적 조직 체계,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경우라면 엄격한 위계 질서에 바탕을 둔 상명하복, 만장 일치에 대한 암묵적 압력 때문에 개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물론 이것이 조직의 응집력을 도모할 수 있고,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실행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스맨’ 조직은 조직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고 견제와 균형의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더러 하나의 사안에 대해 고려해야 하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고려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조직에서 이런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사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거나 리더가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회의 석상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개별적인 의견 개진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활용해 봄직하다. 두 번째는 논의 집단 자체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이원화하는 방법이다. 각 집단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장, 단점을 따져보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기된 주장에 대해 흠을 잡는 반론 대변인을 의도적으로 두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해 왔던 방식 그대로’, 관성의 힘이 성공의 함정을 만든다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외부로부터 힘의 작용이 없으면 물체의 운동 상태는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관성의 힘이 조직 내에 장기간 유지될 경우, 성공을 가로막는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이 현재의 상태에 만족해서 변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 혹은 한 번의 성공 경험에 도취된 나머지 성공 방정식을 지속적으로 모든 사업에 적용하려고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모토롤라의 사례를 한 번 보자. 동사는 2005년 디자이너, 예술가, 운동 선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개발에 참여시켜 만든 ‘레이저 폰’으로 업계 2위로 도약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모토롤라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빅 히트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결국 ‘레이져 폰’의 성공은 독약이 되어서 모토롤라의 성장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노키아의 경우는 빅 히트 제품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의 플랫폼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구성함으로써 업계에서 상당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토롤라의 사례처럼 기업이나 조직이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거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구성원들 사이에 심리적 관성(Psychological Inertia)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을 중단하거나 혹은 변화를 해야 하는 확실한 논리와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기존에 내린 결정 또는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조직이 심리적 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로베이스 사고’가 필요하다. 설령 기존의 방식이 맞는 것이라 할지라도 의도적으로 원점부터 다시 생각해 보고, 바라보는 시각도 달리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새로운 리더를 영입하거나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는 방법들도 있다. 예를 들어, 신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기존의 사업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신사업 조직을 별도로 두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린 코끼리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작은 말뚝에 매어 놓으면 성장한 이후에도 말뚝을 뽑아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 채 그냥 묶여 있다고 한다. 조직이 심리적 관성에 얽매여 있으면 과거의 습성에 젖은 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코끼리와도 다를 바 없다.
 
‘우리 회사가 그렇지 뭐!’, 조직 냉소주의가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해친다 
 
‘범망경(梵網經)’에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한다. 의미인즉, 사자가 죽어 시체가 되면 그 몸 속에 벌레가 생겨서 시체를 먹는 것이지, 외부의 벌레가 시체를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고사성어는 후세에 내부에서 재앙을 일으키는 요인,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조직에 비유컨대, 냉소주의는 마치 ‘사자 몸 속의 벌레’와도 같다. 조직의 냉소주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조직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구성원들 사이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게 되면 조직에 대한 몰입이나 자발성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냉소주의가 발생하는 단계는 크게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직에 대한 기대의 형성이며, 두 번째는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신감이나 환멸감의 순환으로 냉소주의가 생성되고 고착된다. 이러한 냉소주의는 급격한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경영층이 직접 나서서 한 단계 도약을 위한 혁신을 부르짖지만 실행이나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또는 혁신을 달성한 이후에 기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냉소주의가 싹틀 수 있다.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냉소주의가 자리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일관성 있는 조직 운영이 중요하다. 냉소적인 태도를 지닌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가 사안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실망을 한 두 번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회사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되겠어’, ‘우리 회사가 그렇지 뭐’라는 식의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구성원들의 기대 심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경영진이나 조직의 리더가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막연한 기대감만 심어준 채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경우, 마치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있다. 실행 가능한 약속만 하고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리더에게는 필요하다.
 
‘누군가는 하겠지!’, 방관자가 많으면 조직의 성장이 더디다 
 
‘산 너머 불 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뒷짐만 지고 ‘누군가는 하겠지’라며 방관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함께 물건을 옮기고 있는데 왠지 자기만 더 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자신의 노력을 게을리하는 즉, 태만에 빠진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도 이렇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www.saramin.co.kr)이 직장인 753명을 대상으로 ‘귀하는 뒷짐지고 구경하는 갤러리족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을 진행한 결과, 32.3%가 ‘예’라고 응답했다. 물론, 조직이 정반대의 경우처럼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휘둘려서 일이 본래의 취지대로 실행되지 않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 방관자적인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많으면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을 리더가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구 하나 자신의 역할이나 책임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성과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려면 무엇보다 업무의 양과 수행 인원을 고려하여 조직의 적정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중복된 업무를 수행하거나 딱히 수행할 업무가 없는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등 집단의 크기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 사회적 태만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책임감이 분산되지 않도록 목표 설정에 기초한 성과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경우 리더는 가급적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경력 개발을 고려하여 업무 분장 및 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 개인의 관심 분야를 고려하지 않고 업무를 분장할 경우 구성원들의 몰입 수준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평가도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이다. 이를 위해 동료 등 피평가자 주변의 시각을 평가에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한 개인의 조직 성과 기여도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누구 차례?’, 구조조정 후 직원들은 불안에 떤다 
 
현재를 사는 직장인들 누구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다. 지난 4월 직장인 2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사 관리 실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41%는 ‘고용에 대해 불안감(구조조정, 희망 퇴직 등)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이런 불안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한 기업의 임원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조직은 발전하기 어렵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적정 수준의 불안감은 조직이나 개인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고용 불안감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거나 인위적인 구조조정 이후에 생긴 것이라면 조직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 해 이후 금융 위기 가운데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이라면 구성원들이 소위 ADD 증후군(After Downsizing Desertification Syndrome)을 겪을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고 살아남은 구성원들이 겪는 정신의 황무지화 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심할 경우, 구성원들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저하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사에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우려도 있다.
 
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계획 단계에서부터 사후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계획 단계에서는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에 대해 구성원들과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실행 단계에서는 분명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대상자에 대해서는 자원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전직 또는 사회 적응을 지원해야 한다. 사후적으로는 남은 직원들이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지 않도록 향후 경영 계획에 대해 공유하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 구성원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해야 한다.
 
기업이 생존에 위협을 받을 경우,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원하는 기업이라면 떠나는 직원이나 남아 있는 직원들의 심리를 살필 줄 아는 섬세함이 필요해 보인다.  
 
조직의 심리, 방치하면 독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심리는 일대일 면담, 코칭 등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 수 있으나, 조직 내에 형성된 심리는 한 번 굳어지면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리더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구성원들의 행동, 서로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찰 등을 통해 조직의 심리 상태가 조직의 성과나 건강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어느 한 방향의 극단적인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직 쇄신과 긴장감 유발을 위해 외부 인재를 수시로 채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조직의 관성을 약화시킬 수는 있으나, 구성원들 사이에 ‘내부 육성만으로는 리더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싹 틔울 수 있다. 즉,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진단이 끝나고 나면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앞서 제시한 방법들 이외에도 전문가나 구성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방법들을 도출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조직의 심리는 잘 관리하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관리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조직의 리더는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끝>

◎기업의 FTA 활용도 아직 낮다

LG경제연구원 '기업의 FTA 활용도 아직 낮다'

우리나라는 동시다발적 FTA 추진전략을 통해 단기간에 많은 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기업의 FTA 활용률은 경쟁국들에 비해 저조한 상황이다. FTA 활용도 저하의 원인과 대응방안을 살펴본다. 
 
 
자유무역협정(FTA)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였다. 다자주의 세계무역질서에 편승해 수출주도형 산업국가로 성장해 오면서 그 결실을 맛보고 있던 우리나라에게 1990년대 초부터 대두된 지역주의 확산 움직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며 다자주의 무역질서의 지속을 예고했지만 한편으론 이미 1992년 NAFTA를 필두로 지역주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조류가 겹쳐 들어섰다. 다자주의와 지역주의가 공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시대적 조류변화를 감지하고 추격에 나섰다. 2003년 동시다발적 FTA추진 로드맵을 수립하고 적극적인 체결정책을 펼친 결과 현재는 모두 15개국과 4개의 협정을 발효시켰다. 이들 국가와 교역에 있어 수출비중은 11.7%, 수입은 9.4%에 달한다. 기 체결, 서명된 거대시장 미국, 유럽연합(EU), 인도 등과의 협정이 모두 발효될 경우 총 44개국과 7개의 자유무역협정을 발효시키게 된다. 체결국가 수 기준 세계 5위다. 우리나라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8년 말 기준 수출은 40%, 수입은 30.7%를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표> 참조).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거나 공동연구 등 계획 중인 FTA가 모두 발효될 경우 수출비중은 79%, 수입은 92%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증가하는 FTA가 우리 경제와 기업 비즈니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체결 못지않게 활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서 실시한 우리나라 기업의 FTA 활용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비즈니스 실제 활용도가 최초 한-칠레 FTA 이후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발효된 FTA 협정 수가 많지 않고 교역 비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고 있어 아직은 활용도가 좀 낮을 수 있다. 하지만 FTA 체결의 목적이 무역제한 조치 완화를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고 성과 제고를 지원하기 위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낮은 활용도는 앞으로에 대한 우려를 낳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FTA에 대해 기업이 가지기 쉬운 오해를 해소하고 활용도를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대응조치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기업 FTA 활용률 20%선에 그쳐 
 
2006년부터 올해 초에 걸쳐 아시아 각국 기업들 중 FTA와 비즈니스 연관성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FTA 특혜관세 활용률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활용률이 평균 20%정도에 그쳐 일본의 29%보다 낮은 것으로 나왔다. 이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우리나라, 일본,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등 5개국 609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그림 1> 참조). 또한 지난 해 한국무역협회에서 국내 505개 규모별 유관 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FTA 특혜관세를 실제 비즈니스에서 활용하는 업체 비율은 대기업 26.4%, 중소기업 16.3%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경우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 기업들의 평균 활용률이 64%인 점을 보면 비교되는 수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수출입 통계에서 나타나는 FTA 활용도도 저조하다. 2004년 발효한 우리나라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의 경우 특혜관세 활용률이 발효 1년 차에서 수출이 93%, 수입이 77%에 달했던데 비해 2007년 발효한 한-ASEAN 10개국과의 상품부문 FTA는 발효 2년 차에도 수출부문 24%, 수입부문 49%의 활용률에 그치고 있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부문에서의 활용률에 더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수출 활용률이 높다는 것은 FTA 상대국에서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수출주도형 경제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 FTA 추진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이 같은 활용률 저하 현상이 지속될 경우 향후 추가로 FTA가 체결되더라도 그만큼 시장개척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발효된 4개의 FTA가 우리나라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1% 정도임에 비해 향후 발효를 앞두고 있는 미국, EU, 인도 등 거대 시장과의 교역규모는 기 발효된 FTA의 세 배에 가깝다. 그러나 아무리 FTA를 체결하더라도 활용도가 높지 않을 경우 FTA가 우리나라 교역과 경제성장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이 제약 받을 수 밖에 없다.  
 
활용도가 낮은 원인과 해소 방안 
 
FTA 활용도 부진은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해당 업종과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기업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적극적인 FTA 특혜 활용을 통해 수입 원재료의 단가를 낮출 수 있다거나 수출품의 관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가격경쟁력과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를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활용률이 낮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FTA 혜택 받으려면 원산지 기준 충족해야 
 
FTA를 맺게 되면 관세철폐 또는 인하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별 품목과 관세인하율과 기간 등이 집중적으로 홍보·보도된다. 해당 업종의 수출입 기업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문제는 해당 기업들 중 상당수가 FTA 체결로 별다른 절차 없이 약속된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특혜관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경제무역산업연구원(RIETI)과 국내의 한 연구조사에서 각각 조사한 자국 기업들의 FTA 활용률 저하 원인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경제무역산업연구원이 자국 수출입 기업 1,688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FTA 체결로 자동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28%의 기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질문에 국내 조사에서는 40%의 기업이 기준요건을 모르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혜택을 받기 위해 밟아야 할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FTA 관세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무역통관 체제와는 다른 해당 FTA의 여러 요구조건, 규정과 절차 등에 부합해야만 한다. 이를 준수해야 비로소 특혜관세를 비롯한 여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것도 해당 FTA에 한해서다.  
 
아시아개발은행 의뢰로 실시된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10% 정도만이 자사의 비즈니스와 관련된 분야에서 FTA 협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가 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의 많은 기업들이 대강 인지하고 있는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자신의 비즈니스에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의미다.
 
더욱이 특혜관세 혜택 부여 여부와 관세율 등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핵심 기준이 되는 원산지 관련 내용이 개별 FTA마다 상이하다는 점을 조사대상의 40% 가까운 기업들이 놓치고 있다. 원산지(Country of Origin)는 생산된 물품의 국적을 의미한다. 공산품의 경우에는 제조·가공이 이뤄진 국가를, 동식물의 경우엔 성장한 국가를 말한다. 원산지가 중요한 이유는 FTA가 체결국간에만 관세혜택을 주는 당사국간 배타적 협정이기 때문이다.  
 
원산지 기준 충족을 통한 역내산 인정 여부가 특혜관세 혜택 가부를 결정하다 보니 개별 FTA마다 품목별 원산지 결정 기준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실사 과정에 있어서도 최종 통관대상 품목의 각 생산과정 단계별로 창출된 부가가치의 일정 비율 이상이 수출국 내에서 생산되었다는 증명을 요구한다(<그림 2> 참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FTA 체결과 관련한 국내 기업들의 FTA 내용 이해수준이 10%에 그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활용률 저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협정에 따라 원산지 결정 기준도 다르다.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체결한 7개 FTA만 놓고 볼 때도 원산지 결정 기준 방식이 범유럽형(EFTA, EU), NAFTA형(칠레, 미국), 혼합형(싱가포르, ASEAN, 인도) 등으로 각기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일례로 기 발효된 4개 FTA와 한-미 FTA를 대상으로 볼 때, HS 6단위 품목 5,224개 중 약 76%에 해당하는 3,961개 품목에 최소 3가지 이상의 상이한 원산지결정기준이 복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세부 수준까지 내려갈 경우 내용은 더 복잡해진다. 이런 까닭에 체결만으로 자동 수혜를 받을 거라는 생각은 말 그대로 오해일 뿐이다.
 
개별 기업이 일일이 대응하기 쉽지 않은 스파게티 보울(Spagehtti Bowl) 효과 제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파게티 보울 효과란 개별 FTA마다 원산지결정기준 등 복잡한 활용절차와 규정이 담겨 있음으로 인해 기업입장에서 일일이 대응하기엔 어려움이 많아 중도 포기함으로써 활용도가 저하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스파게티 보울 효과 감소를 위한 일환으로는 협정을 맺을 때 복잡한 기준 요건들을 양국이 다른 나라와 기존에 맺은 FTA와 표준화, 수렴화시키는 방향으로 체결하는 노력을 들 수 있다. 2006년 아시아개발은행 실증조사에 의하면 개별 FTA마다 상이한 원산지 규정으로 조사대상 전체 기업의 62.9%가 복합원산지(Multiple Rules of Origin)기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면 전세계 각국의 FTA 체결 증가에 따라 이 문제 해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인 만큼 WTO 원산지기준을 준용한 기준조화(Harmonization of ROO)를 협상에 반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조사에서는 원산지기준 조화를 원하는 각국 기업 비중의 합이 64%에 달한다(<그림 3> 참조).
 
중소기업의 활용도 높일 수 있는 지원 필요 
 
FTA 혜택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해당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정내용 파악과 활용의지가 요구된다. 이를 전제로 개별 FTA에 규정된 조건을 기업으로 하여금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기관이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먼저 정부와 관계기관의 집중적인 홍보와 가이드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활용도가 높은 여타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한 면이 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개발은행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FTA 활용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과 태국 기업들이 우리나라보다 5~10% 정도 특혜관세 활용률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주목할 점은 이들 나라의 경우 기업의 특혜관세 활용 지원에 중앙부처와 관계기관 등 공공부문의 지원비중이 일본 51%, 태국 74.3%로 우리나라의 27.5%에 비해 높다. 민간부문의 지원주체들이 대규모 기업들이 회원사로 있는 경제단체들인 점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자원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FTA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민간부문의 유관단체들과 관세청, 코트라(KOTRA) 등이 전국 순회 행사를 통해 FTA 원산지결정기준 설명 등 활용도 제고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이 협력하여 기업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한-ASEAN FTA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사례가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한 화장품회사의 경우 관세율이 높은 일본 OEM업체로부터 원재료와 부자재를 수입하던 거래선을 FTA가 발효된 ASEAN 회원국 업체로 변경해 원산지의 역내산 인정을 받음으로써 수입 특혜관세 혜택을 받았다. 더 나아가 ASEAN 국가내 생산기지를 마련, 원재료 수입시 역내 수입관세 혜택은 물론 완제품을 다시 ASEAN 시장으로 재수출 할 때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FTA를 활용해 수입비용 절감과 수출 가격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경우다.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 등이 이 같은 사례를 준용해 원산지 결정 기준 등 FTA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사이트를 개설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기업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활용도 제고를 위해 자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생산구조상 80%이상의 수출 중소기업이 대기업 납품을 통해 수출을 하고 있다. 완제품을 수출하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FTA 체결국 시장으로 수출시 제품의 역내산 인정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중간재와 원부자재를 생산하는 협력 중소기업도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발효가 목전에 와 있는 미국, EU, 인도 등 거대시장과의 FTA를 놓고 볼 때 특혜관세 혜택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도 기업간 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향후 우리나라의 FTA 체결은 지금보다 증가할 것이고 다른 경쟁국들도 FTA를 확대할 것임에 따라 다수 국가와 FTA를 교차 체결하는 상황이 예견된다. 체결 대상국마다 우리와의 교역패턴, 수출입 업종, 현지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의 형태와 규모 등 다양한 부문에서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FTA 활용도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에게 그 만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협정체결 자체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체결했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FTA 특혜관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미 무관세이거나, 활용해도 관세 인하에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 비용/효과 측면에서 큰 실익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위를 차지했다. FTA 체결 이전부터 대부분 무관세로 거래가 되었던 싱가포르와 EFTA 국가들과의 FTA 활용도가 낮은 원인 중 하나다. 체결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의 후발 FTA보다 협정조건이 불리하게 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정이라는 당초 취지도 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발효를 앞둔 거대시장과의 교역활성화를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비즈니스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FTA 체결 못지 않게 FTA를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렵게 성사된 FTA를 기업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기관은 기업과 유관단체 등에 대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기업계의 이단아, Gore社

LG경제연구원 '기업계의 이단아, Gore社'

정보화, 글로벌화의 심화 및 영역간 컨버전스, 네트워크 연결성 증가 추세로 인해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능한 한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기업 내에서 다양성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특한 경영으로 기업 내 다양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고어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어사는 보스가 없고, 직급이나 직책도 정해져 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CEO를 선출하기도 하여 언론에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조직규모가 커지면 둘로 쪼개어 소규모로 가져가는 상식적이지 않은 프랙티스를 개발해 왔다. 이러한 고어사의 경영 프랙티스와 관행은 모두 직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진화된 것이다. 그리하여 고어사는 수많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로부터 천여 종이 넘는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으며, 대부분 차별화된 가치를 인정받아 프리미엄 가격에 팔리고 있다. 한국기업이 고어사의 경영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양성과 창의성의 시대에 고어사의 독특한 방식에 내재해 있는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통찰력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 목 차 > 
 
Ⅰ. 불확실성의 증대와 다양성의 필요
Ⅱ. 기업계의 이단아, 고어사
Ⅲ. 고어사에는 네 가지가 없다
Ⅳ. 두 가지 가치의 균형
 
 
 
Ⅰ. 불확실성의 증대와 다양성의 필요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산업, 기술, 영역간 컨버전스 추세와 네트워크 발달에 따른 연결성의 증대로 하나의 현상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현재의 학문적인 수준으로는 이처럼 미미한 변수까지 모두 넣어서 모형을 만들 수 없다. 또 인간의 과학기술로는 이처럼 작은 변수들의 영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경영환경의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증권화해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이러한 파생상품에 투자하여 번 돈으로 다른 상품에 투자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도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채무자들과 은행, 금융회사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위기가 부동산이나 주식시장, 외환시장 등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불확실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사태가 어떻게 변화할지, 피해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시나리오 경영과 같은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 경영 역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의 경영환경은 ‘예측할 수 있는’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앞날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경영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기업 내 다양성을 극대화하여 어떠한 환경 변화가 나타나더라도 하나는 걸리게 하는 것이다. 물론 대규모 장치사업이나 투자 규모, 투자 기간이 긴 사업 등은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가혹한 생태환경 변화에서도 종의 다양성을 지닌 생물이 결국 생존하는 것처럼 기업에서도 다양성을 넘치게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제는 똑똑한 경영자 혼자서 기업이 당면한 도전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각기 발휘하여 기업에서 다양한 의견이 넘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비상장 기업인 고어사(W. L. Gore & Associates)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 고어사는 일반기업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프랙티스와 조직문화를 지니고 있어서, 한국기업이 고어사의 경영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또 고어사가 불확실한 환경에 대응하는 미래 경영의 대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고어사의 돌연변이 경영을 살펴보면 직원들이 가진 역량을 펼쳐서 창의력이 넘치는 조직을 만드는 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Ⅱ. 기업계의 이단아, 고어사 
 
 
고어사는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제품 혁신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 있는 제품들은 고어사의 독특한 경영방식에 기인하기 때문에 최근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각광 받고 있다. 게리 하멜(Gary Hamel)과 같은 유명 경영학자는 비즈니스 혁신이나 사업모델 혁신보다 더 획기적인 ‘경영혁신(Management Innovation)’에 성공한 기업으로 고어사를 꼽고 있다. 다양성이 중요시되는 미래 경영환경에서 직원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창의적인 혁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직원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고어사는 유명 경영잡지 포천으로부터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100 Best Companies to Work for)’ 리스트에 12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이 리스트가 만들어진 1984년부터 등재되기 시작하였고 다른 잡지의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회사 중의 하나다. 더욱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등 고어사의 해외법인 역시 그 나라에서 조사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 리스트에 선정되고 있다.
 
심지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하에서도 견조한 성장을 이어 나가고 있다. 2008년 고어의 매출은 25억 달러로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비상장 기업이어서 이익과 관련한 수치를 자세히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창업 이후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으며 경쟁사를 상회하는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2005년 고어사의 네 번째 CEO가 된 테리 켈리(Terri Kelly)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50년간 우리는 위기에 빠져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성과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일은 없습니다. 사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우리 회사는 위기보다는 기회의 측면이 더 많아요. 사업 포트폴리오가 워낙 다양해서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 편이고 그래서 더욱 도약할 수 있습니다. 지난 금융위기에도 우리는 상당히 좋은 성과를 냈지요.”
 
고어사의 어떤 특징이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고어사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고어의 탄생 
 
고어사는 듀퐁에서 화학 엔지니어로 일하던 빌 고어(Bill Gore)에 의해서 1958년 설립되었다. 빌 고어는 듀퐁에서 테프론(Teflon)이라는 브랜드로 화학업계에 잘 알려진 합성수지, PTFE(Polytetra- fluoroethylene)를 응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절연체로 활용하여 케이블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지만 듀퐁에서는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결국 승진을 앞두고 있던 그는 17년간 일하던 듀퐁을 떠나 자신의 집 지하실에 공장을 차리고 고어사를 창업했다.
 
고어사가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1969년 빌 고어의 장남인 밥 고어(Bob Gore)가 PTFE를 확장시키는 방법을 개발한 이후부터이다. 창업자인 아버지를 이어 1976년부터 2000년까지 CEO를 맡았던 밥 고어는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고어사에 입사해 제품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다. 합성수지인 PTFE를 압출 성형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난 이후 우연히 뜨거운 합성수지를 갑작스럽게 늘려보았다. 그랬더니 강도는 강하게 유지되지만 길이가 열 배나 가까이 늘어난 새로운 소재가 만들어졌다. 이를 확장된 PTFE(ePTFE, expanded PTFE)라고 불렀는데 이 합성수지는 공기가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분자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땀과 같은 공기는 통과하고 비와 같은 물은 막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이 소재가 섬유나 불순물을 거르는 멤브레인 등 다양한 제품에 응용되면서부터 고어사의 제품 혁신에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경영철학 
 
듀퐁 시절, 빌 고어는 사람들이 조직의 위계적인 질서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순간은 동료들끼리 카풀(Car Pool)을 할 때란 사실을 발견했다. 비록 상사와 부하 관계라 하더라도 차에 합승해서 출퇴근할 때는 위계적인 관계를 떠나 재미있고 창의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카풀을 할 때 사람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가 위기에 처해서 프로젝트 조직(Task Force Team, TFT)을 가동시킬 때 권위적인 규칙과 속박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토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직급과 상하관계를 집어 던지고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다.
 
빌 고어는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 회사에 적용시켰다. 즉 사람은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행동하는 동기가 있다는 이론에 기반한 기업을 세우려 한 것이다. 그리고 기업을 조직하면서 당시 경영학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맥그리거(Douglass McGregor)의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까지 유행했던 경영이론은 종업원을 게으르고 일에 무관심하며 오직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맥그리거는 이러한 시각을 ‘X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Y이론’을 만들어, 사람은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기업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빌 고어는 애초부터 Y이론에 바탕을 두고 설립된 회사가 없음을 깨닫고 이러한 회사를 구축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창업자의 생각이 고어사의 철학에 녹아있다. 고어사의 독특한 경영을 만들어낸 근본 경영철학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인간에 대해 믿음을 갖고(Belief in the individual), 작은 조직에서 오히려 강한 힘이 나온다고 확신하며(Power of small teams), ‘모두 함께’라는 정신으로(All in the same boat), 장기적 시각으로(Long-term view) 경영한다. 즉 성선설의 가치관으로, 구성원의 자율성이 파괴되는 관료주의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작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핵심이다.
 
이와 같은 경영철학에 기초하여 고어사 직원들은 행동할 때 네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첫째, 자유(Freedom)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한다. 직원들은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펼 수 있도록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른 동료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
 
둘째, 공정(Fairness)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한다. 이는 직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나 고객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공정하게 대하자는 의미이다.  
 
셋째, 무언의 약속(Commitment)을 스스로 실천한다. 이 말은 직원들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스스로 실천하도록 자기 자신을 규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해수면(Waterline) 원칙에 따라 의사결정 한다. 해수면 원칙은 고어사를 하나의 커다란 배로 비유한 개념인데, 어떠한 의사결정이 수면 아래에 구멍을 뚫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배 전체를 침몰시킬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어떤 투자를 할 때 기업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해수면 아래에 구멍을 뚫는 의사결정이 되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해당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이 많은 다른 동료와 충분히 토론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창업자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고어사의 경영철학과 행동원칙을 보면, 결국 직원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품과 사업의 진화 
 
직원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고어사는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따라 사업화된 제품이 많다. 그래서 현재 섬유(Fabrics), 의료(Medical), 전자(Electronics), 산업재(Industrial) 등 4개의 사업부 체제 하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품은 훨씬 더 다양하다. 진입하고 있는 산업 분야만 해도 우주, 자동차, 화학, 컴퓨터, 통신, 에너지, 환경, 산업재, 의료, 군수, 제약, 바이오, 반도체, 섬유 등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에게는 고어텍스 섬유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어사는 1,000 종이 넘는 수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제품들은 ePTFE라고 하는 핵심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가령 불소중합체(Fluoropolymer) 관련 기술에 집중하여 개발된 튜브는 혈관조직 제품으로 이어졌고, 고강도의 합성섬유는 치실 같은 제품으로 확장되었으며, 멤브레인으로 개발된 합성수지가 고어텍스 제품을 낳았다. 그래서 고어사가 영위하는 산업은 회사에서 전략적인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분야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제품이 저절로 진화하게 만들어서 오늘날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의료사업부가 탄생한 것도 한 직원이 스키장에서 의사인 친구와 리프트를 타다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고어텍스 섬유의 안감이 찢어진 것을 그 의사가 만져보고 느낌이 피부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이후 인공피부로 활용할 수 없는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실험을 거듭하여 인공피부와 혈관조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섬유 사업부 다음으로 매출 규모가 큰 사업부가 탄생한 것이다.
 
즉 고어사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영을 통해 제품과 사업도 직원들에 의해 저절로 진화하게 하고 있다.
 
 
Ⅲ. 고어사에는 네 가지가 없다 
 
 
고어사가 주목 받는 이유는 현대 기업경영이 가정하고 있는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프랙티스를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억하기 쉽게 ‘四無’라고 불러보자. 고어에서는 네 가지가 없다는 뜻이다.
 
1. 보스가 없고, 직급이 없다 
 
고어사는 공식적으로 직급이 없다. 그들의 명함에는 동료(Associate)라는 명칭만이 있고 조직 내에서 어떤 위계에 해당하는지를 나타내는 직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직급을 가진 사람은 CEO와 CFO뿐인데, 이것 역시 미국의 상법에서 회사 설립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고, 회사 내부에서는 이들도 동료로 불리고 있다. 4개의 사업부는 존재하지만 공식적인 팀이 없다. 대부분의 업무가 프로젝트 팀을 이루어 진행되고 있다. 당연히 관리자나 보스가 없다.
 
그래서 고어사는 직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스폰서 제도를 도입하여 실행하고 있다. 어떤 직원도 예외가 없이 스폰서를 둬야 한다. 모든 직원들은 적어도 한 명의 스폰서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스폰서는 직원들의 보스가 아니다. 직원들의 성공을 책임지는 멘토와 같은 사람이다. 신입사원부터 스폰서가 따라 붙게 되고 조직 활동의 모든 부분에 걸쳐 조언을 받는다. 경력이 많은 직원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스폰서하는 업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보스가 없지만 스폰서 제도를 통해 효과적인 역량 육성이 가능하다.
 
보스는 없지만 고어사에는 리더가 존재한다. 어떤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많은 동료들이 따르는 사람을 리더라 부르는데 다른 회사의 보스와 비슷한 존재이다.
 
이러한 프랙티스는 ‘관리(Management)’라는 통념에 위배된다. 그래서 언론이나 학자들은 고어사의 경영을 가리켜 ‘반관리(Un-management)’, ‘반구조(Un-structur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2. 직책이 없다 
 
고어사는 재무, 영업, 개발, 구매 등 고유한 영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자기가 담당하는 업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해서 직책이 없다. 신입사원은 회사에 입사하여 다양한 직무를 경험해 보고 난 이후 스스로 자기와 가장 적합한 업무를 찾아가게 되어 있다. 특정한 제품이나 지역의 영업을 담당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주 바뀌고 있어서 한 담당자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원하는 협력업체에서는 이에 대해 가장 불평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고어사는 사람들이 업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프랙티스는 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는 최근 경영학의 통념에 위배된다. 이를 두고 CEO인 켈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직원들이 오히려 전문성을 키우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것이 많은 기업들이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기업들은 너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전문성을 키우는 게 아니라 거기에 함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연한 팀을 기반으로 일하니까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최고의 혁신은 다른 관점과 독특한 시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료사업 부문에서도 의료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동료보다는 관련 지식이 없는 동료들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가 훨씬 많이 나오고 큰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3. 큰 조직이 없다 
 
고어사는 한 공장이나 한 조직이 200명에서 250명을 넘어서면 둘로 쪼개어 작게 가져간다. 제품의 매출 성장률이 높아서 공장 규모가 쉽게 커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기존 공장에 라인을 조금만 늘리면 되는데도 공장을 주변에 다시 세워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장이나 법인이 200명에서 250명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고어사에는 코끼리 같은 거대 조직은 없고 수백 개의 공장시설이 많다. 많은 사람들, 특히 재무지식이 깊은 사람들은 이러한 관행을 비판한다. 사실 혁신을 잘하는 기업들을 보면 공장 면적은 늘리지 않으면서 라인을 효율적으로 변경하고 인원을 조금 늘려서 생산성을 증가시킨다. 더욱이 공장을 새로이 짓는 것은 비용을 엄청나게 증가시키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즉 이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라는 통념에 위배되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러한 프랙티스는 창업자인 빌 고어의 ‘쪼개라, 그래야 더 증식할 수 있다(Divide, so we can multiply)’ 라는 철학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65년 어느 날 창업자 빌 고어가 새로운 공장을 산책하고 있을 때, 그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제품의 매출이 증가하여 공장 규모를 늘렸고 사람들을 더 뽑은 것이다. 그는 한 지붕 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200명이 넘어서면 모든 사람들이 얼굴과 이름을 자세히 아는 상태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는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는데 해롭다고 생각했다. 이 때부터 조직 규모가 커지면 쪼개게 되었다.
 
그래서 공장을 쪼개어 자칫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작은 조직’에서 나오는 장점이 이러한 비용을 상쇄하고 있다. 작은 조직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오너십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하게 됨으로써 창의와 혁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4. 명령이 없다 
 
보스도 없고 직급도 없는 만큼 고어사에서의 리더십은 기존 기업과는 다르다. 보통 조직의 명령체계에 의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한 것을 빠르게 실행하는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회사들이 리더십이 살아있는 곳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고어사의 리더십은 상향식 리더십(Leadership by Followership)이다. 고어사는 직급이나 직책이 없지만 ‘리더’라는 호칭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동료 직원들이 따르게 되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된다는 것이 다른 기업과 다르다. 즉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거듭된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은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동료들이 모여서 프로젝트가 구성되는데 고어사에서 리더 호칭을 달고 있는 비율은 약 10% 정도이다. 즉 리더가 위로부터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직원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 CEO인 켈리가 대표이사가 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났다. 전임 CEO인 척 캐럴(Chuck Carroll)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을 때, 이사회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어서 CEO 후계자를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수백 명의 고어사의 동료들은 자기가 기꺼이 따르고 싶은 사람을 골랐고, 이 과정을 통해 켈리가 CEO로 뽑히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이사회의 최종 결정을 거쳤지만 직원들의 선거에 의해 CEO로 선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고어사의 CEO는 전략을 제시하고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리더십의 정의와 관행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이끌고 통솔한다는 기존의 통념에 위배되는 프랙티스이다.
 
고어사의 경영 메커니즘 
 
이러한 독특한 경영 프랙티스와 사람들의 자율성이 발휘되는 조직문화로 인해 고어사에서는 첨단기술과 차별화된 제품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경영환경이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어처럼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것이 커다란 강점이다. 더욱이 천여 종이 넘는 제품이 세계에서 ‘유일한’ 품질과 기능을 지니고 있는 차별화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직원들이 오너십을 가지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이를 제품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어사의 다양성과 차별화된 강점은 모두가 동료라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고어사의 이름은 W. L. Gore & Associates이다. 이 말은 고어와 동료들이라는 뜻이다. 회사를 만들 당시부터 사장과 직원이 아니라 동료들이 모인 조직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동차를 같이 타고 회사에 출퇴근할 때가 아니면 조직 내의 위계질서로 인해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위계적인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직원들에게서 아이디어가 술술 나오기 때문에 고어사의 경영에서 ‘모두가 동료’라는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두머리도 없애고 직급도 없앤 것이다.
 
아무리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해도 어떤 문제나 도전에 직면했을 때마다 필요한 해결책이 쉽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 때 리더가 직원들을 채근하거나 압박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빗는다. 그래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어사에서는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혼란스럽더라도 리더들은 그것을 관리하려고 하지 않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다. 심지어 켈리 CEO는 리더는 카오스를 사랑하고 모호함을 잘 견뎌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은 고어사에서 리더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어사 직원들이 느슨하게 일하지 않는다. 조직이 작기 때문에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리더가 모든 직원들을 아주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서 믿고 기다려줄 수 있고, 동료들끼리의 압력(Peer Pressure)이 건설적으로 작동하여 동료들간 선의의 경쟁과 견제가 유지된다. 그래서 고어사의 경영에서 ‘작은 것이 강하다는 철학’이 중요하다. 결국 고어사의 작은 것에 대한 가치 부여가 기다려주는 리더십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모든 직원들은 동료라는 생각과 결합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고어사의 창업자인 빌 고어는 가족이나 친족(Clan) 같은 상태로 기업조직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작은 것이 강하다는 철학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작은 조직이 강하다는 철학은 사람들이 서로 알아줄 때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고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신나게 움직인다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즉 고어사의 경영철학과 원칙, 프랙티스 밑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어사의 직원들은 인정받는 만족감 때문에 일한다고 한다. 고어사의 월급은 동종업계 중간 수준이며 동료들간 경쟁하지만 월급차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 고어사는 인정이나 존경과 같은 비금전적 보상이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Ⅳ. 두 가지 가치의 균형 
 
 
유명한 경영학자인 민츠버그(Henry Mintzberg)는 “기업의 조직구조가 집중화(Centralization)와 분권화(Decentralization) 사이를 오가는 것은 마치 유행에 따라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하나를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 중의 어느 하나로 치우쳐지면 단점이 드러나고 그에 대한 반동이 생겨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부드러움과 강함, 편안함과 긴장, 몰입과 휴식 등 둘 중 하나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
 
기업의 다양성 혁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직원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자유’와 긴장감을 가지고 직면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압력’이 모두 존재해야 한다. 현대 피라미드 기업 구조에서는 명령체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긴장감과 압력을 가하는 것이 위주가 되다 보니 직원들의 자율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고어사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을 우선하되, 동료들의 압력(Peer Pressure)이라는 긴장감을 주는 요소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자유와 압력 
 
고어사는 업무의 일정한 시간을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마치 차별화된 제품 혁신으로 유명했던 3M의 15% 룰과 비슷하다. 모든 직원들은 일주일에 반나절 이상의 ‘장난 시간(Dabble Time)’이 허용되고 있다. 직원들 나름대로 선택한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온전히 그 시간을 쓸 수 있게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고어사의 대부분의 혁신적인 제품은 이러한 장난스러운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다. 인공혈관 조직의 개발도, ePTFE도, 고가인 엘릭시르(Elixir) 기타 줄도 모두 장난 시간의 우연한 발견에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단순히 장난 시간을 허용하는 것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도록 기자재를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한번 사용하는데 많은 비용이 드는 기자재도 관료적인 절차나 결재 없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많은 직원들은 값비싼 장비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어사 직원들은 심사숙고 한 후 확신이 생긴 후에 이러한 실험을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동료들이 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료들의 압력이 어쩌면 규칙이나 상사의 감시보다 무게감이 더 클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다. 상사의 평가는 상황의 특수성이나 정보의 부족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여겨서 비록 나쁜 평가를 받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의 평가는 정확하다. 동료들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훤히 알고 있다. 고어사는 모두가 동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가 노출되어 있다.
 
이런 고어사는 결코 자유로운 천국이 아니다. 고어사의 이직률은 5% 정도인데, 이직자들 대부분은 고어사의 급여나 처우보다는 독특한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라고 한다.
 
실행에서 창조로 
 
고어사는 돌연변이다. 정상적인 기업들이 따라 할 수 없다. 켈리 대표도 “고어사의 경영모델은 기존 기업에서는 모방할 수 없고 오히려 신생기업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기업에서 조직문화를 고어사처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어사는 벤치마킹의 사례가 아니라 레퍼런스의 사례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제 한국기업도 외국기업 사례를 그대로 베끼는 단계가 아니라 그 사례를 참조하고 자기 컨텍스트에 맞는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어사의 경영이 한국기업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그 동안 한국기업의 경영 관행은 외국기업의 기술과 제품을 빨리빨리 따라 하는 것에 적합하도록 발달된 것이다. 빠른 실행을 강조하다 보니 위계 질서가 강조되었다. 한국기업의 문화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회사는 윗사람이 이야기하면, 절대로 토를 달지 않아요. 회의할 때도, 가장 높은 사람만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윗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어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에 아랫사람이 ‘이런 것도 생각해 보시죠?’ 라고 상사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 바로 나쁜 놈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는 예스맨이 양성될 수 밖에 없고, 주변에 예스맨만 가득한 상사는 항상 자신의 의사결정이 옳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상사의 착각이나 오판보다 더 큰 문제는 구성원들이 말을 안하다가 결국에는 생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직이 죽는 거죠.”
 
또 한국의 경영자들은 모두 빠른 실행에 뛰어난 사람들이라서 성질이 매우 급하다. 급하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곧 칭찬이었다. “제가 워낙 성질이 급해서 말이죠” 라는 말은 곧 자랑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미래 경영환경에서는 조직 내 다양성을 배양하기 위해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주는 세련된 장치와 함께 인내력 있는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실행력을 유지하면서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태양광 산업, 자생력을 키워야 할 때

LG경제연구원 '태양광 산업, 자생력을 키워야 할 때'

올들어 태양광 산업의 고속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경기 침체에 따른 정책적 지원 축소, 대규모 투자 지연, 유가 하락 등 외부 환경의 변화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정책적 지원 외에 뚜렷한 성장 모멘텀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투자와 원가 절감에 치우친 기술 개발 등 산업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부분도 간과할 수는 없다.  
 
2000년 이후 연평균 40%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보여오던 태양광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맞물린 유가 하락, 신용 경색,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 축소로 태양광 산업의 수요가 급감하였고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되었다. 태양광 산업이 맞고 있는 위기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 위기를 넘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위기의 태양광 산업 
 
2000년 이후 태양광 산업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 고유가, 환경 규제 강화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2009년 들어 태양광 산업의 고속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태양광 발전설비 수요는 2007년 2.4GW에서 2008년 5.5GW로 두 배 넘는 성장을 했지만 2009년에는 5GW 안팎으로 전년 대비 약 1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수요 감소의 원인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정책적 지원의 축소,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지연, 유가 하락 등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스페인의 정책적 지원 축소는 태양광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전세계 수요의 40%를 차지했던 스페인은 신규 발전시설의 상한선을 2009년 500MW, 2010년 460MW로 제한하고 발전차액지원금도 2008년 대비 최대 27%로 줄인다는 법안을 작년 9월에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수요는 2008년의 23%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의한 신규 발전소 건설 역시 태양광 산업의 성장을 가속시켜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금융 위기에 따른 자금 경색으로 높은 투자비용 대비 긴 회수기간이 부담되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또한 작년 배럴당 150달러를 육박하던 국제유가가 급락함에 따라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화석연료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태양광과 화석연료 발전단가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수요 감소로 인해 지난해까지 흑자를 기록했던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17%의 영업이익률을 구가하던 태양전지분야 세계 2위 기업인 큐셀(Q-cell)은 2009년 상반기 영업적자로 돌아섰고, 샤프도 2009년 상반기 9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8년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하여 최고 5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폴리실리콘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올 2분기 바커(Wacker)는 5370유로(9600억원), REC는 9700만 크로네(207억원), MEMC는 1430만 달러(1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불황의 골을 깊게 한 산업 내부의 원인 
 
그렇다면 최근 태양광 산업의 불황의 원인을 과연 글로벌 경기 침체 때문에 급격히 악화된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경기 침체가 전체 신재생에너지 수요를 위축시켰지만 기업 성과 측면에서는 에너지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2009년 풍력 산업 수요도 태양광 산업과 마찬가지로 전년 대비 8%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산업 내 기업들의 실적은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풍력 산업 내 기업들의 매출은 감소할 것으로 보이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풍력 발전 설비를 생산하는 베스타스(Vestas) 등 상위 5개 기업의 지난해 평균이익률은 8.1%를 기록했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인 8.5%로 예상된다. 반면 태양광 산업 내 핵심부품인 태양전지를 생산하는 상위 5개 기업의 평균이익률이 2008년 18% 수준에서 3%로 급격히 감소했다. 따라서 단순히 외부 환경 변화만으로 태양광 산업의 불황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며, 오히려 산업 내부의 요인이 불황의 골을 깊게 하는 데 상당부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판단된다(<그림 1> 참조). 산업 내부 요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겠지만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중요한 요소인 투자, 기술 개발, 수요 창출의 측면에서 그 원인을 살펴보자.  
 
① 낙관적 전망과 정책적 지원에 기댄 무리한 투자 
 
고성장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기업들의 묻지마식 신규 투자가 지나친 공급 과잉을 불러왔고 이러한 수급 불균형이 기업들의 사업 성과를 악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 산업은 2002년 이후 독일, 일본 등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으로 인해 고성장을 지속해왔고 다른 나라에서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책을 속속 발표함에 따라 매년 40~50%씩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대세를 이루었다. 또한 2006년 이후 계속된 공급 부족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영위하게 되었고,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기업들의 대규모 라인 증설 및 신규 기업의 진입을 부추겼다. 2006년부터 급격히 늘어난 설비 투자로 인해 2008년에는 2007년 대비 2배 정도 공급가능량이 증가했고 2009년에도 30%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정책적 지원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었던 태양광 산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공급 과잉 상태로 치닫게 되었다. 결국 단기간 진행된 무리한 투자는 경쟁 과열과 판가 하락을 불러와 전체적인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그림 2> 참조).
 
② 절름발이식 기술 개발 
 
대부분의 산업에서 기술 개발은 성능 개선과 원가 절감의 관점에서 균형을 이루면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태양광 산업의 기술 개발 방향은 원가 절감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수 년간 태양전지의 주원료인 폴리실리콘의 공급 부족으로 가격 폭등이 지속되자 태양전지 기업들은 폴리실리콘의 사용량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는 것을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원가 중심의 기술 개발은 산업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태양광 모듈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1/3 수준으로 줄었으나 결정질 태양전지의 효율은 1960년 이후 40년 동안 단 2배 증가했을 뿐이다. 효율이 낮은 것은 태양광 발전을 보조 전원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일반 주택이 아닌 대형 건물 등에 적용된다면 필요 전력량을 채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질 태양전지와 기술적으로 유사한 반도체의 경우 무어의 법칙이나 황의 법칙으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이 계속 이뤄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태양광 산업의 기술 발전은 성장의 모멘텀이 되기에는 부족했다(<그림 3> 참조).  
 
이와 같은 기술 개발 방향은 산업 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주효했지만 풍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 대비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태양광 발전의 1kw당 초기 투자비는 3천 6백 달러로 풍력에 비해 2배 가량 높으나 평균가동률은 18%로 풍력의 평균가동률 35%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10년간 원가를 1/3로 떨어뜨렸던 것과 같은 속도라면 원가는 2~3년 내에 풍력의 초기 투자비를 따라잡을 수는 있겠지만 2배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격이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저렴하더라도 같은 설치면적에서의 발전량은 줄어들게 된다.  
 
③ 건설 경기에 민감한 수요 산업에 집중 
 
지금의 태양광 시스템은 주로 주택 건설과 같이 경기에 민감한 수요 시장에 집중되어 있는 모습이다. 태양광 시스템이 적용된 어플리케이션은 건물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올린 루프탑(Roof top)이 90%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7년 하반기 미국 주택 경기 침체로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는 전세계 주택 건설 경기에도 도미노처럼 번졌다. 신용 경색으로 인한 자금 조달 사정 악화,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의 하락 등으로 주택 수요가 감소했고, 주택 건설 경기도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태양광 산업의 주 수요처인 유럽에서도 2008년 스페인, 독일, 영국 등은 신규 주택 수주가 20% 정도 감소하였고 주택 수주가 위축되면서 루프탑(Roof top) 위주의 태양광 수요도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그림 4> 참조).
 
태양광 산업, 성장의 모멘텀 필요 
 
세계 경기 침체, 각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에 대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니즈의 증대,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각국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 때문에 세계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EU는 현재 8%에 머물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까지 20%까지 높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 미국 역시 2020년까지 25%까지 그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국도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각국의 강한 정책적 의지와 태양광 산업의 성장은 별개의 문제다. 태양광 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경제적 지원은 계속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기초체력을 기르지 않는다면 태양광 산업 자체가 내실 있는 성장을 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태양광 산업이 신재생에너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성장의 모멘텀이 확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균형 있는 기술 개발로 경쟁력 확보 
 
지금까지 태양광 산업은 에너지원에 비해 턱없이 높은 발전단가 때문에 정책적 지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산업 내 경쟁에 치중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보다는 원가 절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폴리실리콘의 가격 하락으로 태양광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성장의 걸림돌이 상당 부분 해소된 모습이다. 2008년 kg당 400달러를 상회하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2009년 들어 100달러 이하로 하락했고, 이에 따라 와트당 4유로 수준이던 태양광 모듈 가격도 2유로까지 하락했다. 이를 통해 화석연료의 발전단가와 태양광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 시점이 빠르면 2012년으로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태양광 산업 내 경쟁은 의미가 축소되고 풍력, 소수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원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와의 경쟁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원가 절감 관련 기술 개발과 함께 효율 등 성능 개선을 위한 기술 개발도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발전 효율 개선 등을 통해 같은 가격,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태양광 발전이 우위를 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조적 변화를 통한 시장 확대 
 
태양광 산업은 공급 과잉과 경쟁 범위 확대로 인해 공급자 주도의 산업에서 수요자 위주의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만들면 팔린다’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태양전지를 만들고 이를 설치하는 것이 태양광 산업의 전부는 아니다. 이를 기존 전력망과 연결하기 위해서, 또는 분산전원을 원활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자동화된 제어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경제성 미확보로 인해 루프탑(Root top)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었지만 이번 위기로 모듈 가격이 하락하여 대규모 발전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규모 발전의 경우 수많은 태양광 모듈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스템 구축이 더욱 절실하다.
 
태양광 산업과 무관하게 보이는 IBM과 인텔(Intel)이 태양광 산업에 뛰어드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단지 태양전지를 제조해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제어하는 솔루션을 제공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화석연료의 발전단가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의 차액을 보존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기존 발전 사업자의 마인드와는 다르다. 태양광 발전과 관련된 산업을 하나로 엮어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솔루션은 지금의 루프탑(Roof top) 방식에도 적용 가능하지만 대규모 발전소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또한 발전소의 경우 고용 효과와 발전 수요 등을 고려한 정부의 의지에 의해서 건설되기 때문에 주택 산업보다는 경기 변동의 영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련 기업의 유연하고 차별화된 대응 필요 
 
그러나 이러한 성장 모멘텀이 단기간 내에 확보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기업들은 막연한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보다는 유연하고 차별화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태양광 산업은 반도체, LCD 산업과는 달리 기술적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 설비업체가 일괄적으로 라인을 설치해주는 턴키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라인 증설이 용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시장이 좋을 때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지만 지금처럼 시장이 좋지 않을 때에는 기업들의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 여부와 투자 전략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미국의 선파워(Sunpower)와 퍼스트솔라(First solar)는 2009년 불황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두 기업 모두 독자적인 기술을 통해 타 기업과의 경쟁에서 자유로운 자기만의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파워(Sunpower)는 단결정형 태양전지에 태양광 입사량을 높이는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제한된 면적에 고효율 태양전지를 필요로 하는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CdTe계 박막 태양전지를 생산하고 있는 퍼스트솔라(First solar)는 폴리실리콘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인하의 폭풍에서 비껴갔다.  
 
유연한 투자 전략도 필요하다. 독일의 큐셀(Q-cell)과 중국의 선텍(Suntech)을 비교해 보면 투자 시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선텍(Suntech)은 2001년 사업을 시작한 후 줄곧 세계 5위권 밖에 있었으나 2006년 일본의 MSK를 인수하고 이후 대규모 투자를 통해 2008년 세계 1위의 공급량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원가 경쟁력도 확보하게 된다. 반면 큐셀(Q-cell)은 선텍(Suntech)과는 달리 2009년에 무리하게 공급가능량을 2배로 증가시켜 경기 침체의 여파를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던 반도체 산업은 불확실성 증대로 장기계획 수립이 힘듦을 깨닫고 분기별, 월별로 투자 규모와 시기를 검토하였다. 태양광 산업 역시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이므로 시장 상황을 고려한 탄력적인 투자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끝>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그린에너지 시대로의 가교, 리튬이온전지

LG경제연구원 '그린에너지 시대로의 가교, 리튬이온전지'

그린에너지 확대를 촉진할 수 있는 사용자 편의성 증진, 사용 비용의 절감, 그리고 사용 수명 연장의 측면에서 2차전지의 효용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지금까지 모바일 IT기기나 소형 무선 가전제품 위주로 한정된 시장을 가지고 있던 2차전지가 전기자동차의 급성장으로 수요시장의 범위를 넓히면서 재조명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2차전지 시장에서는 다양한 전지 솔루션이 경쟁하고 있지만, 수요자의 본원적 욕구 충족, 수요시장의 범위, 투자규모, 마케팅 전략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비교했을 때 리튬이온전지가 주도적인 솔루션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튬이온전지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리튬이온전지가 소형 IT 기기용에서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다음 세기를 주도하는 친환경사회의 핵심이 되려면, 핵심 원재료에 대한 접근성 확보에 주력해야 하고, 전기자동차와 대규모 전력 저장 등 새로운 수요 시장 확보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그린에너지 시대로의 가교, 2차전지
Ⅱ. 응용기기별 2차전지 산업동향
Ⅲ. 2차전지 산업, 리튬이온전지가 주도
Ⅳ. 리튬이온전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
 
 
 
Ⅰ. 그린에너지 시대로의 가교, 2차전지 
 
 
여기저기서 친환경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페인트를 고를 때 유독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친환경 페인트를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하기도 하고, 에너지 절약 운동에 동참하여 요일제 스티커를 붙인 경차를 몰고 다닌다. 친환경은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현대인들의 삶의 윤택함이 그 바탕이 된 에너지원의 고갈과 지구 온난화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친환경의 본질은 에너지원에 대한 관념이 ‘화석연료의 발굴 및 공급’에서 ‘그린에너지의 발굴과 에너지의 효율적 소비 추구’로 전환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유비퀴터스 사회는 IT 기기로 문이 활짝 열렸고, 진화하는 첨단 기기들이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그린에너지 사회의 문은 아직 열린 것이 아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깐깐한 자격을 갖춰야 하고 수많은 규제를 견뎌내야 한다. 적극적인 수요자들이 많은 IT 산업과는 달리 그린에너지 사회는 규정을 강제하고 감독하는 감시자들로 인해 우리 삶에 불편함을 주고, 게다가 자발적 참여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재활용 폐기물 분리에서 추가된 재사용 폐기물은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고, 앞으로는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 등 그린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고 사용자가 직접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친환경 미래에 대한 사명감으로 남보다 앞서 구입한 전기자동차를 사용하려면,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기 콘센트를 찾아서 플러그를 꽂아야 할 것이다.
 
그린에너지의 확대는 소비자에게 소소한 불편함과 여러가지 에너지 시스템 개선에 대한 지루한 기다림을 요구한다.
 
경제적 부담도 든다. 그린에너지를 집집마다 설치, 관리할 때 필요한 비용에서 수요자가 일정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작게는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까지 부담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한번 투자를 하면 매월 지출되는 비용은 절감될 것이라 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감은 그린에너지의 확산을 저해할 수 있다. 투자 회수기간에 대한 합리성보다 당장의 지출이 부담이 된다.
 
또한, 그린에너지는 수요자가 그 공급량과 공급 시기를 결정 할 수 없는, 우리가 정작 원할 때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에너지원을 전적으로 대체하는 에너지가 아닌,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보완적 에너지원으로 소극적 소비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린에너지의 확산은 똑똑한 수요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성공의 관건이지만, 자발적 참여를 가로막는 요인들은 적지 않다.
 
장애요인을 해소시키는 2차전지 
 
그린에너지 사회에 대한 걸림돌을 해소 시키는 솔루션으로 충방전을 반복하여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가 부각되고 있다.
 
먼저, 2차전지는 충전과정을 통해 전력망에 연결만 되면 수요자의 편의대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최근의 2차전지는 최초 구매비용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용하는 기간 동안 별도의 비용이 필요 없고 오히려 기존에 지출되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따라서, 한번만 지불하면 수요자가 추가 비용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기술유형에 따라 별다른 유지 관리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명도 긴 편이다. 매일 사용하는 환경에서 10년간 성능을 보증할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난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 초기 비용 부담도 2차전지로 인한 총 에너지 비용 관점으로 보면 경제적이다.
 
한때 ‘전기는 흘러가는 것일 뿐, 저장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전기를 저장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했었다. 2차전지의 저장능력이 소형 가전 제품 정도만 사용이 가능할 정도라는 생각도 기술 발전에 따라 대용량 저장이 가능해 지면서 바뀌고 있다. 최근 전기자동차에 적용된 2차전지는 저장된 전기만으로 1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저장 용량이 확대되고 그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그린에너지 사회에 대해 수요자들이 즐겁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Ⅱ. 응용기기별 2차전지 산업동향 
 
 
최근 2차전지 산업의 영역이 IT 기기 시장을 넘어 빠르게 넓혀지고 있다. 이미 리튬이온전지로 표준이 정해진 IT 기기와 달리 이제 겨우 출발선을 벗어난 전기자동차 산업은 니켈수소전지가 안전성과 가격적 장점을 앞세워 주도를 하는 가운데 리튬이온전지가 높은 에너지 밀도를 무기로 거센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연료전지와 수소전지는 장기적 관점의 자동차 동력원으로 개발이 활발하다. 아직 걸음마도 시작하지 않은 에너지 저장분야는 그린에너지의 본격적 확산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나, 광대한 에너지 저장 용량의 범위를 대응할 수 있는 우세한 에너지 저장 솔루션이 아직은 없는 상태다.
 
이하에서는 2차전지 응용산업 분야에 있어 기술유형간 경쟁 동향을 살펴보고, 최적 솔루션으로서 리튬이온전지의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소형 무선 가전 기기, 모바일 IT 기기 
 
1948년에 발명된 니켈카드뮴전지는 소형 전자제품에 이동성을 부여한다는 관점에서 최초의 2차전지다. 19세기 중반에 발명된 납축전지가 그 유래나 기술의 완성도에서 앞서 있었지만 큰 부피와 짧은 수명은 수요 시장에 차별적 응용 영역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 그 후 40여 년간 니켈카드뮴전지는 2차전지 시장의 주력 솔루션으로 수요 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휴대용 면도기, 무선 전화기, 무선 장난감, 전동 공구, 그리고 휴대용 음악재생기기 등에서 니켈카드뮴전지는 유선 기기 대비 성능의 차이를 최소화 하면서 이동성을 부여하는데 성공했다.  
 
1989년대에 등장한 니켈수소전지는 니켈카드뮴전지보다 1.7배에 달하는 고용량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넓혀갔다. 더구나 유해 중금속이 거의 없다는 장점까지 갖추어 니켈수소전지는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새로 등장한 IT 기기에 채택되기 시작했고, 소형 가전제품의 일부 제품 군에서도 니켈수소전지를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Sony에 의해 등장한 ‘더 작고 더 가벼운 전지’를 표방한 리튬이온전지 대비 낮은 저장 용량으로 인해 니켈수소전지는 리튬이온전지와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기가 어려웠다. 90년대 후반 급성장하기 시작한 리튬이온전지가 안전성 문제로 인해 잠시 멈칫거리기 전까지 니켈수소전지는 니켈카드뮴전지와 리튬이온전지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성격의 전지로 인식 되기도 했었다.
 
초기 휴대폰, 노트북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에 장착되기 시작한 리튬이온전지는 IT 산업이 본격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휴대폰과 노트북 등 IT 기기의 주력 2차전지가 되었다.
 
전기자동차 
 
일본의 도요타가 주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는 니켈수소전지가 주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핵심 원재료의 개선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용량을 올리려는 시도는 리튬이온전지안전성의 한계를 드러내게 하였고, 당시 개발 중이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적합한 2차전지를 고민하던 도요타는 결국 니켈수소전지를 채택할 것이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의 높은 구매 가격에 비해 연비가 높지 않고 개선 폭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출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체 자동차 시장의 1% 수준도 안 되는 저조한 성장을 기록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비록 현재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2차전지의 99% 이상이 니켈수소전지이지고, 일부 전기자동차에서 연료전지나 수소전지, 또한 니켈수소전지를 사용한 모델도 보이지만, 새로 소개되는 대다수의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을 대체할 구동기관으로서 리튬이온전지와 전기모터를 사용하고 있다.
 
GM에서 2010년 출시 예정인 Volt에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180kg의 무게(납축전지 사용 시 850kg, 니켈 수소 전지 사용 시 470kg 수준)와 차량 가격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비싼 가격, 그리고 수시로 충전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100km 미만의 단거리 출퇴근용으로만 사용 시 하루에 1,000원 미만의 비용만 부담하면 되는 우수한 경제성을 자랑한다.
 
향후 유가와 각국의 지원정책의 지속성이 관건이긴 하지만,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하는 전기자동차의 도전은 지속될 전망이다.
 
대용량 에너지 저장산업 
 
전기에너지분야에서도 2차전지가 그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다양한 유형이 시도되고 있다. 기존 전력산업에서의 에너지 저장장치는 정전 시 외에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화력, 수력, 원자력 발전소 등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품질이 좋고 공급의 안정성도 뛰어나 굳이 2차전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무정전 전원공급장치의 경우, Data Center, Health Care 및 정밀 기기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의 품질과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졌다. 기존의 짧은 순간의 정전을 대비하는 전력 공급용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사용하든 것이, 이제는 상시적으로 사용해야 할 정도이다. 게다가 안정적 전원을 공급하는 필터링 기능까지 필요로 하고 있다. 현재는 값싸고 안정적인 납축전지가 대세이지만, 한정된 공간의 활용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2차전지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지능형 전력망의 주요 구성요소인 에너지 저장 장치도 납축전지 이외의 솔루션으로 리튬이온전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당분간 소규모 에너지 저장장치의 주력 에너지 솔루션은 검증된 안전성과 낮은 가격, 그리고 공급의 안정성이 보장된 납축전지가 주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납축전지의 에너지 밀도로는 그린에너지 시대에서 요구하는 에너지 저장장치로서 성능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간 활용도 뿐 아니라 10년 이상 써야 하는 저장장치의 수명에 대한 요구가 향후 에너지 저장장치 시장 확대의 가장 큰 장벽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Mega Wh급 에너지 저장 솔루션은 NaS 전지나 Flow 전지가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등 납축전지, 리튬이온전지 외에도 현재 다양한 솔루션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Ⅲ. 2차전지 산업, 리튬이온전지가 주도 
 
 
그렇다면 향후 2차전지 산업에서는 어떠한 전지가 주도적인 솔루션이 될 것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IT 산업에서 실리콘 반도체와 LCD가 해당 산업내에서 어떻게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자.
 
1.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표준화 경쟁에서 배우는 시사점 
 
IT 산업은 우리에게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제공했다. 과거 공상 만화 속에서나 가능하던 IT 기기들의 성능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구현되고, IT 기기들이 빠른 속도로 대중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수요자의 절실한 요구와 외부 환경의 변화도 부분적으로 공헌을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반도체, LCD 등 IT 산업의 핵심 부품들이 전방산업의 표준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혁신적 진화를 거듭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 성장의 출발점은 인간의 본원적 욕구 충족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 칭하는 반도체는 거리에 상관없이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누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소통 욕구가 시작점이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전기신호를 증폭시키기 위한 진공관의 등장, 약하고 비싼 진공관을 대체하는 트랜지스터의 등장, 그리고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작은 칩에 압축한 집적 회로의 등장으로 전자회로는 소형화, 고성능화, 저가격화가 가능해졌고, 가전 제품, 개인용 컴퓨터 등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디스플레이 산업 역시, 더 깨끗하고 밝고 생생한 화면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부피와 무게에 있어서 기존의 CRT (브라운관) 디스플레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혁신이 이루어진 LCD (액정 표시 장치)로 인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벽걸이 TV가 가능해 졌다. 이제 LCD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가장 많이 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광범위한 수요 시장과 대규모 투자의 적시성 
 
반도체와 LCD는 대부분의 전자기기를 수요 시장으로 삼고 있고, 그 수요는 개발 및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경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성능과 원가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실리콘 반도체는 우수한 안전성과 접근성을 무기로 사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가면서 다양한 수요 시장의 표준 부품으로 사용되었다. 실리콘 반도체는 표준 부품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막대한 투자를 쏟아 부었다. 게다가 기업간 치열한 기술 경쟁을 통해 성능의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LCD와 경쟁했던 CRT와 PDP는 각각 중형과 대형에 적합한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LCD는 2인치 대의 소형 휴대폰에서 50인치 대의 대형 TV까지 시장 특성이 다른 제품군에 대응하였다. 응용 기기의 확장성, 많은 참여 기업과의 탄탄한 인프라로 LCD는 수요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고, 이에 걸맞은 대규모 투자를 반복할 수 있었다. 나아가 LCD는 원가를 더 낮추고 성능의 한계는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차별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대상 시장의 영역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수요자에 친숙한 마케팅 전략 
 
실리콘 반도체와 LCD는 수요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주도권을 잡았다. 반도체의 경우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등 집적도 향상에 대한 법칙들이 거론되었다. 해마다 새로 출시되는 반도체는 주요 언론매체의 일면을 장식하고, 고객들은 앞다투어 새로 나온 제품을 구매하였다. 반도체의 법칙들 그리고 ‘인텔 인사이드’와 같은 광고는,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긴 하지만, 수요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의 등장을 알려주고 마치 새로 나온 반도체를 적용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쳐질 거라는 불안감을 갖게 하였다.
 
LCD가 등장한 초기에는 대형화가 어렵고, 시야각이 좁고, 높은 생산 원가로 인해 소형 IT 기기 외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경쟁 솔루션인 PDP는 처음부터 대형 화면을 목표 시장으로 선정하여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TV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낮은 가격이라는 장점까지 있었다. 하지만, LCD는 노트북과 PC용 모니터에서 쌓아 온 ‘가볍고 얇은 고급 디스플레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TV 시장에도 적용함으로써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고급 화면’으로 친숙하게 수요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2. 리튬이온전지, 2차전지 산업을 주도 
 
현재 2차전지의 다양한 솔루션을 앞서 살펴 본 본원적 욕구 충족, 수요시장의 범위, 투자규모, 마케팅 전략 등의 관점에서 비교해 보면 결론적으로 리튬이온전지가 주도적 솔루션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편리하고, 친환경적이어서 인간의 본원적 욕구 충족에 유리 
 
첫 번째로, 리튬이온전지는 납축전지나 니켈카드뮴전지에 비해 인간의 본원적 욕구를 충족하기에 유리하다. 즉, 가벼우면서 긴 수명 특성을 가지고 있어, 수요자가 대상 기기를 편리하고 즐겁게 오래 쓰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또한, 납축전지나 니켈카드뮴전지에 비해 친환경적이다.
 
그린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불편함도 리튬이온전지의 경제적 혜택으로 상쇄될 수도 있다. 최근 앞다투어 리튬이온전지를 채택하는 전기자동차의 경우, 100km 미만의 단거리용으로만 사용 시 한번 충전만으로도 운행이 가능하다. 충전과정에서 오는 불편함도 승용차의 전체 사용기간 중 평균 90%에 달하는 정차 기간 동안 충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다면 오히려 주유소에 들락거리는 번거로움을 없앨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정용 태양광 발전에서 나오는 전력을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해 저장하고, 필요할 때 편리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수요자들의 이익은 시간이 갈수록 상승할 것이다.
 
다른 2차전지에 비해 수요시장 광범위 
 
두 번째로, 리튬이온전지는 다른 2차전지에 비해 넓은 수요시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LCD의 경우 다수의 참여기업들로 구성된 성숙한 인프라로 인해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지속적 가격하락이 가능했다. 이것은 수요 시장을 확장하는 선순환 고리로 연결되었다.  
 
리튬이온전지는 이미 표준으로 자리 잡은 모바일 IT 기기에 이어, 전기자동차에서도 향후 주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다른 2차전지 솔루션과 비교하여 리튬이온전지에는 투자와 개발인력이 집중되고 있고, 이를 통해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원론적 이슈인 안전성, 고비용, 원료 공급의 한계에 대한 돌파구가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대용량 에너지 저장 분야의 경우, 아직 구체적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2차전지가 주력으로 정해질 지를 알 수 없지만,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의 활용방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보면 그 해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Oak Ridge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20년에 미국 전체 차량의 약 20%가 전기자동차이고, 자동차와 전력망의 상호 전기 에너지 교환이 이루어 지지 않고 수많은 전기자동차가 갑자기 전력망에 연결된다면 전력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진 리튬이온전지가 지능형 전력망에 연결되어 전력 수요를 적정하게 분산시키지 않는다면, 미국에만 160개의 새로운 전력 발전소가 필요하다. 즉, 에너지 저장 솔루션과 전기자동차는 독자적 영역이 아닌 서로 엮여 있는 연관 영역이다.  
 
자동차 가격의 25% 이상의 수준으로 비싸고, 휴대폰용 리튬이온전지 용량의 5천 배에 달하는 대형 리튬이온전지를 지능형 전력망용으로 가정에서 구매하여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고, 전기자동차에 리튬이온전지가 표준으로 정해지고, 가동시간이 차량수명의 5~10%에 불과한 전기자동차의 활용도를 올리는 시도가 지속된다면, V2G(Vehicle to Grid)는 현실적으로 구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실현 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등장할 것이다.
 
리튬이온전지에 대규모 투자집중 
 
셋째, 리튬이온전지에 대하여 대규모 투자가 시행되고 있다.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투자는 기존 2차전지 관련 기업은 물론 국가 기관들까지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2차전지의 새로운 본산이 되고자 하는 미국 미시간주의 공격적 투자 유치 전략뿐 아니라,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돌파구로서 새롭고 구체적인 성장 동력인 리튬이온전지를 주요 후보로 삼고 있다. 반도체, LCD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막대한 수요층은 성능과 원가에 대한 혁신을 만들어 내고, 지속적인 투자로 연결되는 선순환 고리를 리튬이온전지에서도 볼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다른 2차전지에 비해 소비자들에게 익숙 
 
마지막으로, 리튬이온전지는 IT 기기에 노출되어 있는 수요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부품이다. 휴대폰에서 노트북, 모니터에 익숙한 LCD 수요자들이 TV로 수요시장이 확장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던 만큼, 리튬이온전지는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모바일 IT기기에 사용되는 익숙한 부품이다. 전기자동차에 리튬이온전지가 채택되고 확대되는 데에 별다른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다. 리튬이온전지가 미래에 매우 중요한 부품이라는 사실을 수요자에게 계속 주지시키고, 그에 맞는 마케팅을 구사한다면 자동차는 물론 대용량 에너지저장 분야에서도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수요자들의 기대는 어렵지 않게 형성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리튬이온전지는 수요자의 본원적 요구, 다양한 수요 시장을 대상으로 한 표준 부품으로서의 위상과 반복되는 대규모 투자, 그리고 수요자에 친숙한 마케팅으로 2차전지 산업의 주력 솔루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리튬이온전지로 인해 다른 2차전지가 채우지 못하는 미래 그린에너지 사회와 수요자 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 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Ⅳ. 리튬이온전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 
 
 
그러나 리튬이온전지가 2차전지 산업의 주력 솔루션을 넘어 그린에너지 사회의 핵심 부품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문제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첫 번째로, 산업 경쟁력 향상 차원에서 핵심 원재료의 안정적 확보가 가능해야 한다. 리튬이온전지의 핵심 원재료는 리튬이다. 비록 리튬이 경쟁 2차전지의 주된 원재료인 납이나 니켈보다 자연계에 더 풍부하게 존재하지만, 실리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한정된 자원이다. 게다가 남미에 리튬 원재료 광산이 집중되어 있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급 불안요소가 상존한다.  
 
반도체 발명 초기의 주력은 게르마늄이었으나, 희귀하고 고가여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대체재인 실리콘에 쉽게 그 자리를 내 주었다. 실리콘은 저가의 장점에다 열 및 화학적 안정성까지 갖추어 반도체의 주력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주력 원재료인 리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수요 시장의 확대를 꾀하는 리튬이온전지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소형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핵심 원재료의 독점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한정된 기업만이 생산과 공급 과정을 독식하였고, 원재료에 대한 독점적 정보의 공유만이 있었다. 원재료의 독점문제는 전후방 시장에서 파트너십이 재편되고 있어 어느 정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도시 광산을 이용한 리튬의 재활용 또는 해수에 담겨있는 리튬을 추출하는 방법 등 리튬의 확보에 대한 다양한 기술도 제시 되고 있다.
 
두 번째, 모바일 IT 기기의 부품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과거 모바일 IT 기기 초반에 발생하였던 리튬이온전지의 불안정한 품질 문제들을 극복하고,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하락과 공급망 확장, 그리고 안전성에 대한 지속적 혁신을 이루었듯이, 막대한 잠재력을 지닌 하이브리드 자동차 및 전기자동차의 부품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자동차 산업에서는 기존 소형 리튬이온전지에 있었던 품질 해결문제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다. 소형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IT 기기의 짧은 수명으로 인한 잦은 모델 개발과 한정된 규모의 생산, 그리고 극도의 원가 인하에 따른 낮은 수준의 부품이 안정적 품질의 장애요인들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은 그 제조나 사용 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10년 이상씩 지속하는 동일 모델이 필요하고, 모델 개발 기간 동안 충분한 검증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동력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에 저가의 저질 부품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 제조 환경의 수준은 IT 기기에 비해 훨씬 더 높다. 수요 시장의 앞선 품질 관리 수준은 리튬이온전지 생산 공정의 혁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용량 에너지 저장 시장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앞으로 2차전지의 주된 시장은 모바일 IT 산업이 아닌 전기자동차 산업과 에너지 저장 산업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견해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도 기술 확보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건은 메가 와트급 수준으로 넓혀지는 에너지 저장 범위에 대한 리튬이온전지의 기술적 대응 가능성이다. 비록, 리튬이온전지의 한계를 넘는 용량의 영역일지라도, 다른 2차전지 솔루션과 통합적 운영을 통해 에너지 저장 산업으로 시장을 넓혀야 한다. 수요시장의 확장은 이미 반도체와 LCD에서 보았듯이 주력상품의 대세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었다. 시장수요의 확대를 위해 리튬이온전지의 단독 솔루션 뿐 아니라, 다른 기능과 연계된 통합적 솔루션 제공을 통한 시장 확대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2차전지는 그린에너지 시대로 도약하는 핵심적인 발판이 될 것이다. 리튬이온전지가 2차전지의 주력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주도권을 확보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지만, 리튬이온전지와 겨룰 유력한 경쟁자는 아직 부각되지 않고 있다. 2차전지 부문에서 현재의 기술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대안이 당장 나오기도 쉽지 않고, 설사 나오더라도 상용 가능한 현실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리튬이온전지는 2차전지 부문에서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이며 향후 상당기간 그 위치가 크게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튬이온전지와 리튬이온전지와 연계된 산업의 변화에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소비자의 전기 사용 방식이 달라진다

LG경제연구원 '소비자의 전기 사용 방식이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전력시장에서 소비자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전기의 소비, 유통, 생산 전체를 좌우하는 현명한 구매자가 등장할 것이다. 미래의 전력시장의 모습을 진화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전기를 사용해왔다. 전력회사에서 공급하는 전기를 별다른 고민 없이 구매해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 성능, 효용가치, 개인선호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단순한 의사결정과정이다. 사람들이 전기를 국가가 저렴하게 제공하는 생필품 정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사람들이 우편함에서 전기 요금 고지서를 발견할 때야 비로소 전기를 구매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적극적으로 전기를 ‘쇼핑’하는 소비자가 등장할 것이다. 꼼꼼한 소비자들은 마치 신용카드 내역서를 보고 다음달 지출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개별 기기별로 전기 사용량을 확인하고 제품별 관리 계획을 세울 것이다. 또한 일부 소비자는 생산자 확인이 가능한 유기농만 구매하는 것처럼, 조금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신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을 원할 수도 있다.  
 
현명한 전력 소비가 중요해지는 이유  
 
전기 소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생산을 늘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기의 증가, 모바일 기기의 확대, 개도국의 산업화 등 글로벌 메가 트렌드로 인해 전기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국제 에너지 기구인 IEA의 World Energy Outlook 2008에 따르면 전세계 전기 소비량은 1980년부터 2006년까지 2.6배로 증가하였으며, 2030년까지 현재 수준에서 1.8배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 16.3%에서 20.9%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전기는 다른 에너지들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소비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다.  
 
이에 반해 전기 생산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발전 및 송배전 설비 증축에는 상당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발전에 필요한 가스, 석탄 등 주요 에너지원의 가격 변동폭이 커지면서 비용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안정된 전력 공급원인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구축하는 것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환경오염, 핵폐기물, 사고위험 등 아직 미결된 과제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뒷마당을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탄소 배출권 거래, 신재생 에너지 의무할당제 등이 도입될 경우, 전력 생산을 늘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면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수록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탄소 배출권 거래가 시행된다면 전력회사는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기준치를 넘을 경우, 이에 상응하는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재생 에너지 의무할당제 역시 총 전기 공급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태양광, 풍력 등으로 충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비용이 상승하는 것이다.  
 
일례로 전력거래소가 올해 8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탄소 배출권 모의 거래 결과에 따르면 전력회사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데 드는 비용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유연탄 대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발전소가 늘면서 비용이 20~24%가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작정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 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한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 행태 변화 동인 
 
피크타임 전력 분산을 위한 인센티브 도입  
 
기존의 전력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중 하나는 특정 시간에 집중된 전력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력회사들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최대수요(Peak Demand)에 맞춰 송배전 설비에 투자해 왔다. 이에 따라 평소에는 거의 가동되지 않다가 수요가 급증하는 단 며칠만 제대로 운영되는 발전소도 있다. 따라서 최대수요를 효과적으로 제어함으로써 기존 설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 발전소를 짓는데 드는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최대수요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목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계절별, 시간대별로 전기 요금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소비가 많을 때는 전기요금을 높게 매기는 반면 적을 때는 낮게 매김으로써, 최대전력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최대수요가 발생하는 시간에 전기 사용을 줄이는 소비자에게 할인 요금을 적용하거나, 절감분에 대한 성과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 즉 지금처럼 사용 총량에 따라 요금이 결정되는 것과 달리 향후에는 소비자가 전력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는 수준에 따라 전기 요금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미 시간대별 요금제 및 절감분에 대한 성과금 제도는 대규모 공장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소비자에게 확대 적용하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2007년 미국 뉴저지주의 전력회사인 PSE&G(Public Service Electric and Gas Company)는 천여 가구를 대상으로 시간대별 요금제인 ‘myPower Pricing’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결과, 가구당 최대수요를 25%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성과급 제도는 아직은 시범단계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절감 효과가 탁월한 만큼 향후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연구기관인 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는 수급여건에 따라 5분마다 전기 가격이 달라지는 Day Trading을 통해 최대수요를 15%까지 줄일 수 있었다.
 
소비 최적화를 지원하는 실시간 정보 교환  
 
기존 전력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또 다른 가능성은 기술혁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정보통신기술과 전력망의 융합, 즉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중에서 사람들의 소비 절감을 가능케 하는 스마트 미터기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스마트 미터기란 통신 기능을 추가한 디지털 전력량계로 가정과 전력회사간의 양방향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 본래 전기 사용량을 확인하기 위해 검침원이 가정을 방문하던 것을 원격 검침으로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또한 실시간 검침은 실시간 요금제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시간대별로 다른 요금제를 적용하려면 사용량도 시간대별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마트미터기는 전력회사의 비용절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스마트 미터기 자체 보다는 스마트 미터기를 활용한 실시간 정보 공유가 될 것이다. 즉 스마트 미터기의 진정한 잠재력은 소비자의 전기 사용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소비자는 웹, 휴대폰, TV 등 다양한 유무선 통신 매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전기 사용량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집안에서는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을 알려주는 디스플레이 기기가 새로운 가전으로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력회사에서 스마트 미터기까지 이어진 통신망이 가정내 홈 네트워크(Home Network) 혹은 빌딩이나 공장의 에너지 제어 시스템과 연동될 경우, 기기별 검침 및 직접적인 기기 제어를 통해 상당량의 전기를 절감할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의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는 스마트 미터기에 가전기기를 연동할 경우, 그렇지 않을 경우에 비해 최대수요를 50GW 정도 더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07년 기준 미국의 발전 설비 규모의 4.5%이며, 우리나라 발전설비 규모가 73GW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양이다. 또한 컨설팅사인 Brattle Group에 따르면 시간대별 요금제 혹은 실시간 요금제만 실시했을 때보다 자동 제어가 가능한 가전기기와 연동했을 때, 최대수요를 20% 이상 더 줄일 수 있다. 결국 실시간 정보에 구체적인 에너지 절감 기술들이 결합되면서, 효과적인 절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현명한 미래 소비자의 8가지 모습 
 
전기 소비를 효율화하기 위한 소비자 인센티브, 실시간 정보 공유, 실질적인 절감 기술 등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꿔놓기 시작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보를 바탕으로 전기 소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소비자가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일부 소비자는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새로운 유통 시장에 참여할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데 참여하는 소비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1. 전기 소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소비자  
 
정보는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는 만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소비를 줄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비자 자신이 얼마나 많은 전기를 낭비하고 있는지 깨닫는다면 솔선수범하여 소비를 관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자신의 돈이 허공에 날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스마트 미터기를 통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전기 소비를 직접적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① 회계 감사형 소비자   
 
조만간 카드 명세서의 지출 항목을 살펴보듯 전기 사용 명세서의 제품별 전기 사용량을 확인하는 소비자가 등장할 것이다. 기기마다 부착된 검침 기기가 스마트 미터기와 연동된다면 소비자는 손쉽게 개별 기기가 사용한 전력량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어디서 전기가 낭비되고, 어떤 기기가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 알아차리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거나, 쓰지 않는 제품의 플러그를 뽑는 등 에너지 절감 행동들을 실천하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이다. 또한 향후 계기별 검침이 일반화될 경우, 제품의 소비 전력, 건물의 에너지 효율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만큼 소비자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생산자에게도 고효율 제품의 중요성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② 벤치마킹형 소비자   
 
기업이 선진사례를 벤치마킹하듯 다른 사람의 전기 사용량을 벤치마킹하는 소비자가 등장할 것이다. 이들은 이웃이나 유사 생활 패턴을 소비자 혹은 모범사례를 기준으로 자신의 전기 사용 방식을 객관적으로 반성하고, 스스로 바꿔가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운전자 사이에 자동차 연비경쟁이 자동차 회사 주최의 연비 컨테스트로 발전하듯이 전기 절약의 모범사례로 선정된 소비자에게는 경제적 인센티브나 칭찬, 격려 등 사회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 게임처럼 등급제를 도입하는 것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될 것 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소비자들간 소비 효율화 경쟁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소비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소비자 
 
전체 전기 사용량을 줄이기 보다는 인센티브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자신의 소비 패턴을 바꾸는 소비자도 등장할 것이다. 이들에게 시간대별 요금제 혹은 절감분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 등은 전기소비 습관을 바꾸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③ 타이머형 소비자  
 
시간대별로 전기 요금이 달라지거나, 절감분에 대한 성과금이 주어진다면 소비자들은 전기를 사용하는 시간대를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전기를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생활을 전기 요금 시간표에 맞출 수도 있다. 만약 더운 여름날 2시부터 6시까지 평소보다 훨씬 비싼 요금제가 적용된다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인 오전에 세탁기를 사용할 것이다. 이런 습관의 변화가 모여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④ 패키지 선택형 소비자 
 
행동 방식의 변화는 소비자 입장에서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이들 중 일부는 시간대별 요금제가 의무화되는 것을 반대할 수도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소비자도 생겨날 것이다. 전기 요금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지능형 가전은 이들의 ‘wish list’ 상위에 위치할 것이다. 다만 이런 기기들은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기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전기 사용을 관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기 요금이 급증한다고 갑자기 가전기기가 멈추는 것은 소비자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월풀(Whirlpool)은 의류 건조기의 회전기능과 온풍기능을 분리했다. 전기 가격이 갑자기 올라갈 경우 상대적으로 전기 사용량이 많은 온풍 기능은 잠시 끄되, 세탁물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회전 기능은 계속 작동시키기 위함이다.  
 
3. 전기 유통 방식을 바꾸는 소비자 
 
지금까지 전기는 생산되는 동시에 소비되는 재화였다. 일부 소형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를 제외하고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전력거래 시장의 등장과 기술 발전은 전기가 유통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시장을 통해 아껴 쓴 전기를 내다 팔거나, 전기차 배터리를 차익거래에 활용하는 소비자가 등장할 전망이다.   
 
⑤ 수요자원 시장 참여형 소비자  
 
소비자가 절감할 수 있는 전력량도 거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전력시장은 발전업체가 소비자에게 전기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수요절감이 곧 발전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비자가 절감할 수 있는 만큼 전기를 내다팔 수 있는 수요자원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수요자원시장이란 소비자가 절감 가능량과 비용을 입찰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판매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주로 대규모로 전기를 사용하는 공장, 기업이 주로 참여할 것이나, 점차 개별 소비자의 절감 가능량을 모아서 대신 시장에 내다파는 별도의 서비스 사업자도 등장할 전망이다.  
 
⑥ 차익거래(Arbitrage)형 소비자  
 
장기적 관점에서 저장장치의 보급은 전기의 유통을 가능케하는 동인이 될 것이다. 전기가 남을 때는 저장했다가, 전기가 부족해지면 다시 방전함으로써 전기의 생산시점과 소비시점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전기차가 저장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하여 저렴한 시간대에 전기를 충전했다가, 비쌀 때 되팔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 관점에서는 충·방전 과정의 전력손실을 감수해야겠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최대수요로 인해 발생하는 발전소 건설 비용을 감안하면 전기차를 이용한 차익거래는 매력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4.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  
 
기술의 발전으로 바람, 태양 등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에너지원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그리드는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제공해 줄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 직접 전기를 생산하거나, 생산자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⑦ 생산 참여형 소비자  
 
태양광, 풍력 등을 활용해서 전기를 직접 생산하는 소비자가 등장하고 있다. 빌딩 벽면에 설치하는 태양광 패널(BIPV, 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을 통해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고, 남는 전기는 전력회사에 파는 소비자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에는 소비자가 직접 발전설비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전력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물류회사인 ProLogis는 캘리포니아 폰타나 물류공장 옥상을 캘리포니아 전력회사인 Southern California Edison에게 임대했다. Southern California Edison이 250MW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을 넓은 대지 대신 다수의 건물 지붕에다가 짓겠다고 선언한 덕분이다. 이는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해답이 될 듯하다. 최소한 태양광 발전을 위해 땅을 갈아엎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⑧ 생산자 선택형 소비자  
 
향후 자기가 소비하는 전기가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 따져보는 소비자도 등장할 것이다. 이미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에너지원에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미래에는 소비자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기를 구매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전력회사는 소비자가 구매한 전기가 어떻게 생산되서, 어떤 경로로 이동되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던 가치를 드러내 줄 수도 있다. 일례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IESO는 풍력발전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구글, 트위터에서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래형 소비자를 육성하기 위해 
 
이처럼 소비자의 전기 사용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행동 변화가 반드시 에너지 절감 및 최대 수요를 효율화시키는 방향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다. 특히 에너지 효율화 및 최대수요 감축 등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이야기 일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 몇천 원을 아끼자고 번거로움을 감수하거나, 몇 십만 원짜리 친환경 제품을 선뜻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과 직결될 수 있는 세심한 정책의 설계가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