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기업 활동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동형화’의 틀로 본 성공 전략'
많은 기업들이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기업 활동을 보면 서로간에 매우 유사한 전략을 추진하거나, 동일한 경영 기법을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법규나 산업계 표준 등에 의한 동형화, 우수한 성과를 내는 기업을 따라하고자 하는 모방적 동형화, 사람들의 가치 기준 혹은 사회적 규범에 의한 규범적 동형화로 인해 서로 유사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의 동형화는 글로벌화의 진전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지구적 현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가 보다 빈번해짐에 따라 그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서로 유사한 활동을 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기업이 모방하려고 하는 선도기업의 활동이 해당 기업에게만 최적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패러다임이 급속히 전환되는 시기에는 이러한 최적화된 기업 활동이 독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시장의 동형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이 세상의 변화에 휩쓸려 버리는 것이다.
항상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할 수 없는 기업들은 영속적인 성공을 위해서 불확실성에 많이 노출된 시장의 선발자가 되기 보다는 변화의 단초를 읽고 재빨리 시장의 표준을 획득하여 동형화를 이끄는 Fast Second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동형화의 시각에서 요구되는 기업의 성공 전략은 최초의 First Mover가 아닌, 시장의 표준을 좇아 아류를 만들어내는 Fast Follower도 아닌, Fast Second 경영의 체질화다.
< 목 차 >
Ⅰ. 기업 활동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 : 동형화
Ⅱ. 기업간 차이의 발생과 소멸의 이유
Ⅲ. 동형화 관점에서 바라본 21세기 성공 전략
Ⅰ. 기업 활동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 : 동형화(Isomorphism)
“떠오르는 환경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 창출”,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신성장 동력 확보”...이러한 미래 전략은 미국의 GE나 유럽의 Siemens와 같은 몇몇 글로벌 기업들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아니다. 지역과 산업을 초월하여, 많은 기업들이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는 ‘공통된’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맞을 것이다. LG화학이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최근 일본 정책투자은행에서 자본금 10억엔 이상의 대규모 업체 3,400개를 조사한 결과 50% 이상이 전기자동차 분야에 신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신사업 전략뿐만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기업 전략을 이끌었던 글로벌화(Globalization) 역시 몇몇 기업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 기업들의 ‘공통된’ 경영 전략이었고 e-biz로 통칭되는 닷컴 전략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정 산업으로 시각을 한정해도 현상은 비슷하다. 차별화와 혁신의 이미지가 강한 휴대폰 산업을 예를 들어 보자. 10여 년 이상 기능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기업 전략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은 웬만한 핸드폰 업체들은 스마트폰 전략을 기업의 주요 전략 방향으로 천명하고 있다. 사업 전략 뿐만 아니라, 기업 운영의 경영 기법 역시 서로간 유사하기는 마찬가지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연봉제와 스톡옵션, JIT와 TQM 등 수 많은 경영 기법들을 ‘공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최고 경영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경쟁사와 자사간의 전략적 차이가 없음을 솔직이 인정한 비율이 무려 70%가 넘는다고 하며, 대다수 CEO들은 전략적 실수 그 자체보다 그 전략을 사용한 유일한 경영자로 평가 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차별화가 성공의 필수 조건으로 여겨지는 기업 세계에서 서로간 차이점이 약해지고 동질화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왜 기업들은 서로 닮아가게 될까?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라는 사회 이론을 주창한 미국의 사회학자 Powell과 DiMaggio는 이러한 조직간 유사성이 세 가지 동인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연구는 기업 조직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지만, 기업 역시 사회 조직의 하나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강압적 동형화 (Coercive Isomorphism)
먼저 법규 등으로 대표되는 강압적 동형화(Coercive Isomorphism)가 조직간 유사성을 만든다. 기업도 사회 조직의 한 형태이므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법규나 규범에 위배되는 활동을 할 수 없다. 이는 현재 수행하는 사업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래 전략을 설계함에 있어서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요소다. 많은 기업들이 21세기 미래 사업으로 환경 분야를 주목하는 것도 강압적 동형화의 시각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교토의정서와 같은 산업을 망라하는 글로벌 규제가 만들어지고, 각 국가별로 실질적인 환경 규제가 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압적 가이드라인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업 양태를 ‘강제적’으로 변화시킨다.
법규나 규제뿐만 아니라, 표준화와 같은 비법률적 요소도 강압적인 동형화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과거 소니와 마츠시타간의 비디오 표준 (베타 방식 대 VHS 방식) 경쟁과 같은 사례는 어떻게 표준화가 기업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산업계 표준화는 산업의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산업간 컨버전스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보다 더 자주, 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모방적 동형화 (Mimetic Isomorphism)
둘째로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조직을 모방하려는 모방적 동형화(Mimetic Isomorphism)가 조직간 유사성을 이끈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월터 바조트가 역설한대로 눈 앞에 있는 것을 모방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강한 부분 중 하나다. 기업 운영의 시각에서 분석해보면, 심리적 동조 현상과 설득의 용이성, 혁신적인 이미지 확보 등의 이유로 모방 활동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먼저 심리적 동조 현상을 보자.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나 판단을 달리할 때 개인에게는 흔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심리학의 동조(Conformity) 이론에 따르면, 이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의 생각을 다수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조직들은 다 하고 있는데, 우리만 하지 않는다면 뒤쳐지지 않을까’하는 동조 심리가 조직의 적극적인 모방을 이끄는 것이다.
설득의 용이성 측면에서도 모방은 힘을 발휘한다. 이해 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힌 조직일수록 조직 내부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외부의 이해 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잘 나가는 기업 이야기를 하면,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도 내부 구성원뿐만 아니라 투자자, 주주 등 외부 이해 관계자들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실제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조직을 따라 하는 것은 나의 논리가 아닌 입증된 사실로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냄에 있어서도 모방은 효과가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니틴 노리아 교수는 경영자들이 대외적으로 혁신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새로운 혁신 기법의 모방을 통해 기업은 자신들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실패와 실수로 얼룩진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다” 사회 구성원들이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경영 기법에 편승함으로써 조직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포춘 500대 기업 중 제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수한 경영 기법으로 여겨지는 베스트 프랙티스의 도입이 ‘가장 존경 받는 기업’ (Fortune’s Most Admired Company) 순위를 높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경영자 개인의 보상 수준을 상승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범적 동형화 (Normative Isomorphism)
마지막으로 규범적 동형화(Normative Isomorphism)가 기업 활동의 유사성을 이끈다. 규범적 동형화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라는 사회의 가치가 조직간 동질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느슨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인이다. 사회의 규범은 대학 교육과 같은 공식 교육, 조직의 경계를 뛰어 넘는 협회 등 전문 단체의 행태, 신문 및 방송과 같은 미디어의 논조 등으로 생성되고 강화된다. 교육과 언론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규범은 조직의 인력 충원 기준을 비슷하게 만들고, 결국 신입, 중간 관리자, 최고 경영진 등 구성원 모두가 비슷한 시각으로 문제를 보며, 정책 결정, 업무 수행, 조직 구조의 설계에서 규범적으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규범적 동형화의 예로서 한국 사회에서의 연봉제 확산을 살펴 보자. 우리나라 100인 이상 사업장의 연봉제 도입률은 IMF 이전 1997년 3.6%에서 2004년 43%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급격한 확대는 연봉제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배해온 사회적 규범이 IMF라는 충격적 사건과 미국식 경영 이념의 빠른 확산을 통해 변화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연봉제의 핵심은 연공 서열이 아닌 성과에 의한 차별이다. 성과에 의한 차별은 과거 한국 사회에서 그 효과성을 떠나 규범적으로 맞지 않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IMF를 위시한 외국 전문 기관의 압력, 미국식 경영 교육을 받은 리더의 급증, 언론 미디어의 미국식 경영 소개, 인수 합병을 통한 선진 외국 기업의 한국 진출 확대 등을 통해 성과에 의한 차별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당연한 수용으로서 사회 규범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연봉제의 급격한 확대가 나타난 것이다.
법규와 같은 강압적 동형화, 우수해 보이는 것을 따라 하려는 모방적 동형화, 증명된 효과가 아닌 가치의 기준을 쫓는 규범적 동형화는 기업 활동의 비차별적 유사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동형화의 이론은 기업 조직간 동질성을 설명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업들이 서로서로 비슷해지는 것이 조직의 생존과 번영에 긍정적이라고까지 본다.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목적(Social Goal)을 꾸준히 신뢰성 있게 수행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직은 사회적으로 존재의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개별 조직의 입장에서는 법규나 사회적 규범에서 제시하는 것을 따르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수행해 ‘보이는’ 기업을 모방하는 것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역으로 보면, 어떤 기업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과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은 존재의 정당성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잃고 사회에서 퇴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Ⅱ. 기업간 차이의 발생과 소멸의 이유
유사한 기업간에 성과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고, 서로 유사해짐으로써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한 기업들이 성과의 측면에서는 서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는 많은 기업들이 형태적으로는 동질화 되었지만, 즉 기업 활동의 겉모습은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 완벽히 똑같아지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한 기업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회의 목표를 신뢰성 있게 이행하는 기업이다. 의미 있는 것은 자신만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조직의 현재 활동은 어느 시점에 불현듯 나타난 것이 아니고, 과거의 수 많은 시행 착오의 경험, 조직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 역사성을 가지고 변화해온 시간의 산물 (Path Dependency)이다. 또한 우수한 조직일수록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활동들이 그 조직에 맞게 군더더기를 없앤 표준화한 일상적인 행동(Routine) 양식으로 체질화 되었다는 점이다.
하버드 경영 대학이 4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도요타가 놀라울 정도로 자신들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모방한 기업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수천 개에 이르는 기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도요타의 공장을 방문해서 벤치마킹을 했지만, 대부분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도요타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철학, 문화, 행동 규범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조직에 이식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미국의 가장 존경 받는 기업 중 하나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CEO 허브 캘러허는 “우리의 경쟁사가 우리의 비행기를 모방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티켓 카운터와 모든 다른 하드웨어를 모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우스웨스트의 문화를 모방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상징적 동조 현상도 차이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 상징적 동조는 쉽게 말해 사회적 압력 때문에 그냥 하는 시늉만 한다는 것이다. 강압적인 동형화, 규범적인 동형화로 조직은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 활동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내부의 논리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관념 때문에 실질적으로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본질적인 동형화를 방해하는 것이다.
1990년 이후 10여 년간 독일 상장 기업을 연구한 논문에 의하면, 이해 관계자 모델을 중시하는 독일 경영계에 주주 중시 경영 전략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공식적으로 주주 중시 경영 전략을 천명하고 관련된 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스톡옵션이나 관련 회계 시스템의 운영 방식은 과거 이해 관계자 모델에서 수행되었던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징적 동조 현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조직 진화의 역사성, 일상화, 상징적 동조 현상 등은 서로 유사한 활동을 하는 조직들 간에 ‘차이’를 유발하게 하고, 승자로 발돋움한 조직은 상당 기간 시장을 지배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Freeman의 연구에 의하면, 오래되고 규모가 큰 조직은 환경에 적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동형화를 유도하여 환경을 지배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성공 기업은 영속할 수 있는가?
동형화의 시각에서 보면, 정당성을 확보한 기업은 다른 기업들의 동형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시장의 지배적인 위치를 만들어내고, 그 지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빨리 쇠퇴하고,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다. 다른 조직들이 완벽하게 모방하기 어려운 역사성(Path Dependency)과 일상화(Routine)가 오히려 바뀐 사회적 패러다임에 대응한 조직 변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사회가 조직에 요구하는 목적이 바뀌는 것과 같이 근본적인 경영 환경이 변화될 때 기업은 기존의 사고 방식과 경영 방식의 본질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이에,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지식의 학습을 통해서 기존의 관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문제는 제대로 된 학습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과거에 쌓아온 지식과 관습을 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저명한 경영학자인 Gary Hamel과 C. K. Prahalad는 조직이 기존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습(Learning)만이 아니라, 낡은 것을 버리는 폐기학습(Unlearning)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들이 주목한 것은 오랜 기간 조직에서 형성된 가치, 신념, 지식 등이 바탕이 되어 형성된 고유의 사고 패턴인 ‘지배적인 논리(Dominant Logic)’가 새로운 학습을 방해한다고 역설했다. 조직의 고유한 사고 패턴은 마치 생명체의 유전자처럼 구조, 제도, 의사 결정 프로세스 등 조직 내 제반 경영 활동에 깊이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효과적으로 학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동형화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기업의 딜레마’ 등의 저서를 통해 크리스텐슨 교수가 설파한 와해성 혁신도 문제 의식은 유사하다. 세상을 바꾸는 와해성 혁신(사회적 목적의 변화, 정당성의 근거 변화)으로 인해 기존의 존속성 혁신(동형화된 기업 활동)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즉 이전의 사회 패러다임을 누구보다도 잘 수행했던 조직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부의 부적응뿐만 아니라 조직 외부의 부적응도 문제다. 조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체화된 일상화한 전략 활동이 바뀌는 것을 외부 이해 관계자들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기존 성공 기업의 성공 논리에 함몰된 이해 관계자들이 조직의 변신을 방해한다.
Ⅲ. 동형화 관점에서 바라본 21세기 성공 전략
21세기의 동형화는 과거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왜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서로 유사한지, 서로 비슷한 활동이 기업의 성공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유사한 경영 활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성공 기업과 실패 기업이 왜 나뉘어 지는지, 시장의 헤게모니를 만들어낸 성공 기업이 세월이 흐른 후 왜 몰락하는지를 동형화의 분석틀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서로간에 유사성이 높아지는 동형화의 속도와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 측면에서 21세기 경영 환경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21세기의 조직간 동질화는 과거 보다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말 시대를 풍미한 글로벌화의 이념과 IT 기반의 정보 통신의 발달은 지역간의 장벽을 무너트리고 지구촌 사회라는 규범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의 유학 증가, 언론 미디어의 글로벌 스탠다드의 이념 설파로 인해 규범적으로 강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글로벌 규제의 폭과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산업 표준화라는 강압적 동형화 또한 강화되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가 제안한 나노 기술의 청사진이 산업계에 미쳤던 동형화의 현상보다도 현재 오바마 정부가 제안한 환경 분야 청사진에 대한 기업들의 동형화가 더 뚜렷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로 보인다. 즉, 21세기의 경영 환경은 조직간 동형화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더 넓은 범위에서 적용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남들보다 빨리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한 기업은 전 세계적인 급속한 동형화를 유도해냄으로써 시장의 지배적 위치를 비교적 손쉽게, 반면 더욱 공고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보다 빨리 변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기업의 지속적 성공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지배적 위치를 공고히 다져온 기업도, 사회의 변화가 빨라 짐에 따라 시장 지위를 급속히 상실하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제품 확산 속도의 변화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21세기는 글로벌화와 기술 발전의 진전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제품 확산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혁신을 가져온 제품이 개발 된 후 전 세계 시장 보급률이 30%를 넘게 되는 시점을 분석해보면, 19세기 후반 개발된 자동차는 약 70년이 걸렸던 반면, 1950년대 개발된 마이크로 웨이브는 약 30년, 1980년대 개발된 휴대폰은 16년 만에 시장 보급률 30%를 달성했다. 문제는 빠른 시장 확산과 비례하여 완벽한 새로운 제품을 원하는 사회의 요구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를 산업 내 다수의 참여자가 느끼면 느낄수록 변화된 시장의 트렌드는 보다 강하게 기업을 압박한다. 따라서 기존 제품 카테고리에 최적화한 기업 입장에서는 예전 같으면 수십 년 동안 시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경영 환경 속에서는 10년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말 S&P 500에 기업에 속한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50년 이상 리스트에 머무르는 것을 예상 했지만, 2020년에는 그 기간이 10여 년으로 짧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비근한 예로 1980년대 초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톰 피터스의 ‘초우량 기업을 찾아서’에서 초우량 기업으로 도출된 46개 기업 중에서 아직까지 생존한 기업은 고작 5개에 불과하다.
성공적인 영속기업이 되기 위한 전략 방향
한 분야에 최적화한 기업이 변화의 시기에 남들보다 더 빨리 몰락한다면, 영속 법인을 지향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사회적 변화가 빠르고, 동시에 조직간 동질화의 확산이 급속히 진행되는 21세기에 기업들은 어떠한 전략적 방향을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기업은 의외로 최초 개발자가 아니다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증권 거래 서비스를 최초로 시행한 기업은 시장의 지배자 찰스스왑이 아니다. 1995년 넷인베스터라는 기업이 최초의 서비스 개발자이고, 찰스스왑은 1996년 초까지도 인터넷 거래 서비스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은 기업들인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장의 IBM, PC OS시장의 마이크로소프트, 일회용 기저귀 시장의 P&G, 복사기 시장의 캐논 등은 시장의 지배자이지만, 시장의 선발자는 아니었다. MP3와 스마트폰 분야의 애플, 검색엔진 분야의 구글도 시장의 선도 기업이 되었지만 이들 역시 해당 분야의 선발자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 시장 지배자들이 막연히 후발 기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눈에 띄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후발 기업들은 보통 사회적 정당성이 확보된 다음 즉,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매김 한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이 형성된 다음에 표준에 맞는 아류 제품을 만들어 내는 반면, 이들 기업들은 업계의 표준이 되는 지배적 디자인이 출현하는 타이밍을 알아차리고 최적의 시점에 시장에 진입하여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에 참여함으로써 실질적인 선도기업이 된 것이다. 시장의 선도자는 아니지만,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남들보다 더 빨리 획득함으로써 동형화의 표준 기업이 된 것이다.
즉, 동형화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영속적인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경영 전략은 재빠른 2등 전략인 Fast Second 경영이다. 사회적 정당성을 남들보다 빨리 인식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경영 활동을 최적화함으로써 시장의 표준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다른 기업의 동형화를 이끌어 냄으로써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성공 프로세스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표준이 만들어진 다음에 이를 따르는 Fast Follower 경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변화가 더욱 빨라지고, 동형화의 속도가 급속히 전개되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Fast Second 전략의 바람직한 실행을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경영 포인트가 있겠지만, 변화를 인지하고 진입의 타이밍을 찾기 위한 경영 프로세스, 진입 분야의 과감한 생태계 구축 프로세스, 변신 그 자체가 일상화된 경영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변화를 인지하고, 진입 타이밍을 찾기 위한 경영 프로세스
새롭게 변화하는 시초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어느 분야에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자기가 속해 있는 분야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영속적인 성공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의 시초를 찾아 낼 수 있는 경영 프로세스와 이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갖추어야 한다. 변화의 시초를 찾기 위한 탐색의 초점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포드의 보급형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 소비자들에게 어떤 교통수단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자동차보다는 빠른 말을 선호했을 것이라는 얘기처럼, 소비자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후에야 그 가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변화의 시초를 찾고 파급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업계의 다른 기업 동향을 먼저 주시하고 난 다음에 소비자의 인식 변화,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양한 변화의 시초를 인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시장이 대중화되기 전, 업계의 표준이 형성되려는 시점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예측의 영역이고,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확실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Fast Second 경영 활동이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프로세스이다. 이 단계에서의 조직은 다른 기업의 동향 보다는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 프로세스를 활용해야 한다. 특히, 얼리어답터 계열의 소비자 층에 대한 정확한 분석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이 요구된다. 얼리어답터는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을 과감히 구입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시장의 대중화 가능성을 평가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경영 프로세스
사회의 변화를 인지하여 진입 대상과 진입 시점에 대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 졌다면, 그 다음은 산업계의 동형화를 최대한 빨리 이끌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IT 기술의 발전, 플랫폼 사업 모델의 일반화, 개방형 협업 모델은 가치 사슬 전체에 대하여 특정 기업이 통제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기업들간의 비즈니스의 생태계를 형성하여 상호 의존적으로 공생을 도모하게끔 한다. 동형화의 초점은 생태계 구축에 맞추어져야 하며, 급진적이고 과감한 행동이 또한 요구된다.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투자 또는 외부 기업 인수 등을 통해 생태계의 단초를 만들기도 해야 하며, 때로는 손해를 감수한 경영 활동이 요구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후발 주자이지만, Fast Second의 가능성이 보이는 구글은 과감한 생태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수익과 관련 없는 다양한 서비스 업체를 인수 합병을 통해 자신의 생태계에 편입시키고, 컨텐츠 개발자에게는 경쟁사 대비 파격적인 수익을 보장함으로써 생태계의 자발적 참여자를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사회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다른 기업의 동형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경영 활동을 고안해내고, 실행할 수 있는 경영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변신 그 자체가 일상화된 경영 프로세스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변신 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이 필요하다. 성공 조직일수록 이전 패러다임에 최적화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조직의 변신 활동, 그 자체를 일상화된 프로세스로 정립할 수 있다면 이는 조직의 영속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변신의 프로세스가 일상화되기 위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사업 다각화와 신수종 사업에 대한 조직 내부의 배려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수 기업의 연구로 유명한 Arie de Geus의 ‘살아있는 기업(Living Company)’이라는 책에는 다각화를 장미 가지 치기로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장미를 키울 때 환경이 좋을 때와 변덕스러울 때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환경이 좋을 때는 가지당 세송이로 짧게 치는 것이 가지당 일곱송이로 길게 치는 것 보다 더 좋지만, 변덕스러운 환경에서는 가지당 길게 치는 것이 훌륭한 장미꽃을 얻을 확률을 더 높인다는 것이다. 즉, 선택과 집중은 안정된 환경에서는 힘을 발휘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다각화가 생존을 높인다는 것이다. 또한, 어리고 약한 가지, 기업 입장에서는 신수종 사업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면 1~2년 후에는 주된 가지, 즉 주력 사업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비유한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금도 시장의 우수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사업의 다각화에 관대했으며, 과감한 변신에 여러 번 성공한 프랙티스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다. 예를 들어 농생명 분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Monsanto는 1901년 사카린 제조에서 처음 출발하여 세계 10대 화학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던 기업이다. 이후 Monsanto는 연관 분야인 제약, 첨가제, 제초제 분야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으며, 1990년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에 대한 규제 완화 분위기 속에서 농생명 분야의 성장을 통찰하고 주력 부분인 화학 부문, 성장 사업으로 여겨졌던 제약 부분을 과감히 매각하고 농생명 분야에만 당시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제는 농생명 분야의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한 Monsanto는 여전히 매해 15% 이상의 매출 성장과 10% 후반의 평균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1865년에 설립된 노키아 역시 제지업에서 출발하여 고무, 화학, 가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커다란 사업의 위기 속에서 기존의 주력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했고, 그 이후 휴대폰, 네트워크, 솔루션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이동통신에 집중하여 휴대폰 분야의 부동의 세계 1위의 성과를 만들어 냈다. 만약 지금의 휴대폰 산업의 정당성이 스마트 폰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노키아가 스마트 폰 분야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노키아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의 변신을 통해 영속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수 기업에 관한 분석으로 유명한 ‘살아 있는 기업’에서 언급된 27개 장수 기업들을 살펴 보면, 그들의 생애를 통해 평균적으로 최소한 한번씩은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영속 기업은 이전의 핵심 사업이라도 과감히 접을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인내해 낼 수 있는 조직의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형화와 혁신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고, 이것이 조직의 생존에 의미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이러한 동형화의 틀을 가지고 조직간 성과 차이의 발생, 조직의 소멸을 분석하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Fast Second 전략의 유용성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다름'에 초점이 맞추어진 혁신과 차별화는 전략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혁신과 차별화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형화의 틀’ 안에서 사회적 정당성을 발견해 내는 프로세스의 혁신과 차별화, 새롭게 생태계를 창조하는 방법에서의 혁신과 차별화, 변신에 용이한 조직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혁신과 차별화가 기업의 성공과 존속에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같아야 하는 것, 남들과 달라야 하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기업 단위의 전략뿐만 아니라 제품 단위의 전략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품은 비슷하지만, 한발 더 나아간 서비스를 제공한다던가, 혹은 공급 혁신을 통한 접근성을 높이는 등의 차별화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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